10
주팔이가 시골 내려간 동안에 주팔의 집에는 주팔의 첩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삭불이가 놀러오는 외에는 별로 오는 사람도 없었다. 주팔의 첩이 나이
삼십이 넘었으나 맘은 새파랗게 젊은 까닭에 혼자 지내기가 고적하였다. 삭불이
가 주팔이 있을 때보다 더 자주 오게 되고 낮에 올 뿐이 아니라 밤에도 오게 되
었다. 밤이 늦도록 더위가 물러가지 아니할 때 두 사람이 사발정에 물 먹으러
올라가다가 이웃 젊은 사람들 눈에 뜨이어서 뒷손가락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식전부터 날이 흐리더니 해집 무렵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좍좍 내리
는 빗줄기가 놋날 드린 것 같았다. 주팔의 첩은 해먹기가 귀찮아서 찬밥술로 저
녁을 때우고 바깥문을 일찍이 닫아 걸고 방안에 들어 앉았다. 삭불이가 낮에 왔
다 갈 제 밤에 다시 오마고 말하였지만, 무서운 달구비를 맞고 올 것 같지 아니
하였다. 초저녁이 지나서 바깥은 캄캄한데 퍼붓듯이 쏟아지는 빗소리와 반수 도
랑의 물소리가 천지를 뒤덮을 것 같았다. 주팔의 첩은 맘이 송구하였다. 동네가
만리 같고 이웃이 천리 같아서 사람의 소리는 고사하고 개짐승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였다. 주팔의 첩은 혼자 있기가 무서웠다. 방구석에 있는 등잔거리를 머리
맡으로 옮겨다 놓고 등잔 접시에 기름를 붓고 쌍심지를 켜놓았다.
줄곧 퍼붓던 비가 다음 준비로 쉬는 것같이 그만할 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었다. 주팔의 첩은 이웃집 문간에서 나는 줄 알고 “이런 밤에 어디 나갔다
오는 사람이 다 있는가베.” 하고 혼자 지껄이었는데 두들기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어서 “김서방이 와서 집의 문을 두들기나?” 하고 닫히었던 방문을 열고
귀를 기울였다. 문 밖에서 문이 부서지라고 박차는지 문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주팔의 첩은 삭불이가 온 줄 짐작하고 맘에 반가웠다. 한 손에 관솔을 켜들고
다른 손에 전모를 치어들고 문간으로 나와서 “김서방이오?” 하고 물으니 밖에
있는 사람이 “네”하고 대답하는 모양인데 목소리가 분명히 돌리지 아니하였
다. 주팔의 첩이 들었던 전모를 벽에 의지하여 세우고 나서 빗장을 빼고 문을
열자, 밖에 있던 사람이 황망하게 문 안으로 들어왔다. 주팔의 첩이 들어오는 사
람과 마주치지 아니하려고 얼른 몸을 피하는데, 그 사람의 팔이 공교히 관솔 든
팔을 톡 치며 관솔이 떨어졌다. 주팔의 첩이 “애그머니.” 하고 다시 집으려고
하였으나 마당에서 넘치어 들어온 물이 땅바닥에 고이어 있어 피시시 소리 한번
에 꺼지었다. “이것을 어떻게 하나? 아이 깜깜해라. 좀 찬찬히 들어오지요, 이
양반아.” 하고 주팔의 첩이 더듬더듬하여 문 빗장을 지르는데 그 사람은 아무
소리 없이 서 있었다. 주팔의 첩이 손대중으로 전모를 찾아들고야 “올라갑시다.
” 하고 그 사람 옆으로 가서 “가만히 있소. 내가 앞설께. 마당에 물 고인 데가
있세요.” 하고 앞서서 발대중으로 살살 걸어오는데 그 사람은 털벙털벙 몇발짝
을 떼놓더니 겅청겅청 뛰어서 마루 앞 댓돌에 올라섰다. “보선 꼴은 잘 되었겠
소.” 하고 주팔의 첩이 따라오는 동안에 그 사람은 벌써 갓모와 유삼을 벗어
마루에 놓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진 버선을 빼고 있었다. 주팔의 첩이 댓돌 위
에 올라서서 전모를 세우며 “날비를 맞고 와서 입이 굳었구려. 어서 방으로 들
어갑시다.” 하고 먼저 마루로 올라왔다. 주팔의 첩이 그 사람의 뒤에 서서 방안
에 있는 등잔불 빛에 입은 고의와 적삼을 보니 낮에 입었던 것이 아니라 “어디
가서 우장을 얻어 입었소?” 하고 말하면서도 김서방이 아니고 딴 사람인가 의
심을 내서 겁결에 얼른 방에 들어왔다. 그 사람이 뒤미처 방으로 뛰어들어오는
데 몸에서 풍기는 바람이 등잔에 닥치었는지 불이 꺼지며 방안이 지옥이 되었
다. 모진 매의 발톱과 같은 사나이의 손이 참새 새끼같이 떠는 여편네의 몸을
움키며 “나도 김서방은 김서방이다.” 하고 범이 차반감을 놓고 으르렁거리듯
하였다.
한동안 번개가 번쩍거리고 우뢰가 우르르거리더니 한밤중이 지난 뒤에 번개와
우뢰가 그치며 비도 그럭저럭 그치었다. 도랑에 물내려가는 소리는 밤새도록 요
란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주팔의 집에서 사나이 하나가 나가는데 그 사나이는
삭불이와 같이 외모가 해사하지 아니하고 거무스름한 얼굴에 목자가 우락부락하
였다. 주팔의 첩도 그 사나이가 관 근처에 사는 김서방인 줄 아는 외에 더 아는
것이 없었다.
11
선이의 집에서는 돌이가 온다는 때 오지 아니하여 한걱정을 삼았었다. 선이의
내외는 말이나 하며 걱정하지만 애기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 걱정하느라고 얼굴
까지 야위었다. 선이의 안해가 저녁거미 내리는 것을 보고 “내일은 오려는 게
다.” 또 식전 까치 짖는 것을 듣고 “오늘은 오는 게다.” 말하면 애기는 종일
맘을 졸이며 기다리었다. 나중에 애기가 그 어머니 보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난 것이에요. 서울은 혹 소식을 알는지 모르니 아버지가 한번 갔다 오시면 좋겠
네요.” 말하여 선이가 서울 와서 주팔의 첩을 찾아보고 또 삭불이를 만나보았
다. 그리하여 짐군 편의 소식으로 무사히 간 것을 알고 또 주팔이 아직 오지 아
니한 것으로 아직껏 고향에들 있는 것을 짐작한 뒤에 선이의 내외는 돌이나 주
팔이나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고향에서 병이 난 것이라고 추측하였는데, 애기
만은 돌이가 병이 난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돌이가 동행한 사람의 병 까닭으로
자기에게 다짐하다시피 한 기한을 어길 리가 없고 어긴다고 하여도 하루 이틀이
지 십여 일씩 오래 될 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이유삼아 정녕 돌이가 병이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 날 식전에 애기가 그 어머니를 보고 “그가 죽은 게요.” 하고 밑도끝도
없이 말하니 “그건 무슨 소리냐?” 하고 그 어머니가 애기를 나무랐다. “어젯
밤 꿈에 죽은 것을 보았세요.” “네가 너무 걱정하니까 그런 꿈이 꾸이는 게다.
” “꿈이 맞으면 어떻게 하나?” “맞기는 무얼 맞아?” 하고 애기 모녀가 꿈
이야기를 하는 중에 밖에 나갔던 선이가 들어오며 “기다리는 사람이 왔다.”
하고 소리를 쳐서 모녀가 일시에 문간을 바라보니 얼굴이 해쓱한 돌이가 그 뒤
를 따라 들어섰다. 선이의 안해가 쫓아니려가서 “웬일인가? 어데서 자고 이렇
게 일찍 들어오나? 어서 올라가세.” 하고 돌이를 붙들어 올리다시피하여 선이
의 내외는 돌이와 같이 마루에 올라앉고, 애기는 그 어머니 뒤에 서서 돌이를
바라보았다. 돌이가 고향에 가던 길로 중병이 나서 앓은 것을 이야기하고 떠날
때에 고모부가 팔월 추석을 지내고 가라고 붙드는데, 자기가 간다고 고집을 세
울 뿐이 아니라 고모가 병 구원에 몸서리를 내서 하루바삐 가라고 말하여 쉽게
떠나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두 손을 내저어 가라고 말하던 고모의 흉내를
내어서 여러 사람을 웃기었다.
이야기가 대강 끝난 뒤어 돌이가 선이를 보고 “짐을 어째 아니 들여오나요?
” 말하자 심부름꾼이 짐을 갖다가 마루 끝에 놓았다. 그 짐이 갈 때 괴나리봇
짐과 달라서 어지간한 등짐꾼의 짐만 하였다. 선이의 안해는 “무슨 짐이 이렇
게 많은가?” 하고 짐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돌이는 그 짐을 풀려 “소산을 가지
고 오라는 분부가 있었세요.” 하고 애기를 치어다보이며 웃으니 선이의 내외도
웃으며 애기를 돌아보았다. 애기는 치마끈을 입에 물고 고개를 숙이었다. 돌이가
짐을 풀고 오미자 봉지와 지치 뿌리와 광어 조각, 홍어 조각과 홍합 꼬치를 내
어놓았다. 선이의 안해가 봉지를 펴서 보고 꼬치를 들어 보고 하다가 짐 속에
남아 있는 기름한 궤를 가리키며 “그것은 무었인가?” 하고 물으니 돌이가 “
이것이오? 이것은 우리 조상님이에요.” 하고 웃엇다. “조상님이라니, 신주말인
가?” “아니요, 신주가 다 무어요.” 하고 돌이가 궤 뚜껑을 열더니 활 하나를
꺼내놓고 활의 내력을 이야기하였다. 선이는 “그래, 이 활이 최장군이 아이 적
에 쏘던 활이란 말이냐?” 하고 활을 만져보고 선이의 안해는 “이 다음 아들
낳거든 주지.” 하고 활을 들고 애기를 돌아보았다. 어물 등속은 선이의 안해가
마루 선반에 집어 얹고 활궤는 애기가 자기 방에 갖다 두었다.
그 날 밤에 돌이가 애기를 보고 “한 달 기한에 못 대어 와서 자볼기를 맞을
작정을 했어.” 하고 웃으니 애기는 “병환이 다 나시기나 했소? 얼굴이 지금도
몹시 해쓱하시구려.” 하고 돌이의 몸을 걱정하고 돌이가 “나는 않기나 해서
해쓱하다지만 않지도 않은 사람이 얼굴이 왜 조 모양이야.” 하고 애기의 야윈
얼굴을 가리키는 애기는 “말을 마시오. 그 동안 걱정으로 맘 썩인 것이 십년
살 것은 감수하였을 것이오. 인제 고향에 다 가셨소. 나하고 같이 가기 전에는
못 갈 것이니.”
하고 웃었다.
12
돌이와 주팔이가 고향에 다녀온 뒤에 애기와 주팔의 첩이 각각 태기가 있어
이듬해 사월달에 주팔의 첩이 먼저 해산하여 아들을 낳았다. 돌이가 이 소식을
들은 뒤에 밤에 내외 앉았을 때, 애기의 배를 가리키며 “저 속에 들어앉은 것
도 아들일 터이지.”하고 욕심을 말하니 애기가 “그걸 누가 알아요?” 하고 대
답한 뒤에 “말들이 아들 배는 절구통배라 배가 두리두리하게 부르고 딸 배는
바가지배라 배가 앞산만 부르다는데 배부른 것도 아들 같고 사내아이는 왼손편
에서 놀고 계집아이는 바른손편에서 논다는데 노는 것도 사내아이 같지만 낳아
놓기 전에야 알 수가 있어요?" 하고 의심을 말하였다. 돌이가 이 말을 듣더니 “
내가 전에 등어 둔 법이 있는데 그 법이...”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옳지,
알았어. 내일 한번 써보아야지...” 하고 웃으며 애기가 그 무슨 법이냐고 물어야
내일 가르쳐 주마고만 말하고 그 법은 이야기하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애기가 장독간으로 장 뜨러 가는데 돌이가 뒤에서 “이것 좀 보아.” 하고 갑자
기 부르니 애기가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돌이가 “아들이야, 아들.” 하고 허허
웃는데 부엌에 있던 선이의 안해가 마당으로 나오며 “무엇이 아들이란 말인
가?” 하고 물은즉 돌이는 또 허허 웃으며 “뱃속 아이의 남녀를 아는 법인데
아이 밴 여자를 뒤에서 무심결에 불러서 바른손편으로 돌아보면 아들이래요.”
하고 지금 애기가 바른손편으로 돌아보았다고 말하였다. 방에 있던 선이가 되창
문으로 내다보며 “이애, 잘못 알았다. 남좌여우라니 왼손편으로 돌아보아야 아
들이지.” 하고 말참례를 들어서 돌이가 “그러면 내가 잘못 알았나?” 하고 머
리를 긁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돌이가 법을 안다고 코큰 체하다가 코를 싸쥐
고 나가는 꼴이 우스워서 애기는 웃느라고 장물을 엎지를 뻔하였다.
오월은 애기가 만삭이라 선이의 집에서 초생부터 해산 준비를 해놓았다. 쌀은
말로 찧어 두고 미역은 춤으로 구하여 두고 첫국밥 담을 새 사발, 새 뚝배기와
아이 씻길 새 옹배기가지 따로 얻어두고 아이 낳기를 기다리었다. 보름이 지난
뒤에 어느 날 애기의 모녀가 “어머니, 무엇이 보이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요?
”
“이슬이다. 희더냐 붉더냐?”하고 군호와 같은 문답을 하더니 그 이튿날 꼭
두새벽부터 애기가 배를 앓기 시작하여 온종일을 신고하였다. 선이가 불수산 첩
이나 지어 왔지만, 애기가 초산으론 순산으로 그날 저녁때에 아이를 낳았다. 선
이의 안해가 아이를 받아서 구정물을 씻겨 누이고 후산을 곧 시켜야 한다고 애
기를 바로 앉힌 뒤에 무릎으로 아랫배를 적이더니 후산까지 탈이 없이 잘하였
다. 선이의 안해가 외할미가 삼할미 노릇까지 한다고 말하고 탯줄을 들고 아이
배꼽에서 한뼘쯤 되는 곳을 서너 번 훑어내린 뒤에 실로 앞뒤를 동이고 수숫대
껍질로 동인 중간을 잘랐다. 갓난아이가 “으으”하고 울으니 선이의 안해가 “
어미 닮았어.”하고 대답하는데 선이의 옆에 섰던 돌이가 이 말을 듣고 정이 떨
어지는 듯이 입맛을 다시니 선이가 가장 미립이 있는 듯이 “아니다, 아직은 모
른다. 아들을 딸이라고 속여야 수명 장수한다고 속이는 버릇이 있으니까 두고
보아야 한다.”하고 말하여 돌이가 맘이 너누룩할 제, 선이의 한해가 방에서 나
오며 “속이고 아니 속이고 할 것도 없어. 순산한 것만 다행이지. 어미 닮아 이
쁘긴 해.”하고 말하였다. 돌이는 낙심하는 중에 슬그머니 골이 나서 “이왕이니
남처럼 아들이나 낳지.” 하고 툴툴거리었다. 그리하여 아이의 삼이 나가기 전에
돌이는 남의 아들이나 보러 간다고 주팔의 집에를 올라왔다.
13
이때 주팔의 집 아들아이는 낳은 지 삼칠일이 지났었다. 아이가 원래 크기도
하거니와 우락부락하게 생긴 살갗 검은 얼굴이 백일 지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돌이가 주팔이를 보고 “아이가 크구려. 그런데 부모와는 딴판이니 누구를 닮았
을까?” 하고 아이의 닮은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하니 주팔이는 “그걸 낸들 아
나. 사람의 자식이니 사람을 닮았겠지.” 하고 허허 웃고서 돌이에게 “그래,
자네 딸은 자네 닮았든가?” 하고 물으니 “나는 보지도 아니했소. 말 들으니
제 어미 닮았답디다. 그까짓 딸자식이 누구를 닮거나 상관이 있소.” 하고 돌이
가 딸이라고 하치 않게 말하는데 주팔이가 “딸자식은 자식이 아닌가? 그러고
딸 낳으면 아들도 낳지.” 하고 위로조같이 말하였다. 돌이와 주팔이가 둘이 앉
아 이야기하는 중에 삭불이가 애기의 딸 낳은 말을 듣더니 “한 집에는 아들 낳
고 한 집에는 딸 났으니 장래 사돈하기 좋겠네.” 하고 하하 웃고 나서 돌이를
보고 “자네 언제 가려나? 갈 때 나하고 같이 가세. 내가 국밥을 얻어 먹으러
갈 터일세.” 하고 말하니 돌이가 “그까짓 국밥 먹으러 멀리 가려고 하는구려.
내가 이번에는 서울서 좀 놀다 갈 터이오.” 하고 속히 가지 아니할 것을 말하
였다.
유월에 이승지가 직품이 올라서 벼슬이 예조참판이 되고 그 부인은 따라서 정
부인을 바치게 되었다. 대체 육조 여섯 마을의 큰일은 판서들이 결처하고, 마을
안 작은 일은 참의들이 알음하여 참판은 따로 맡은 일이 없는 터에 예조는 육조
중에 청한무사하기로 이름난 마을이라 예조참판이란 늙은이 낮잠자기에 좋을 만
한 벼슬이었다. 이참판이 이때껏 벼슬 다니던 중에 가장 몸이 한가하였다. 이참
판이 어느 날 부인과 공론하고 주팔이와 돌이를 불러다 저녁밥을 같이 먹기로
하고 안방 모방의 마루를 치우고 주팔이와 돌이를 불러들이고 사랑에 오는 다른
손은 병이 있다 핑계하고 보지 아니하였다. 이참판의 부인까지 그 마루로 나와
서 네 사람이 각기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이참판이 먼저 입을 열어 “함흥서
떠난 뒤에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보기가 처음이지?” 하고 부인을 돌아보니 부
인은 “서울 온 때가 어제 같아도 벌써 사 년이에요.” 하고 주팔이를 바라보았
다. 주팔이가 돌이를 가리키며 이참판을 향하여 “이 사람이야말로 딸 낳고 골
이 나서 서울로 뛰어왔답니다. 장인 장모가 사람이 좋아서 같쟎은 버릇을 잘 받
아 주는 모양이에요.” 하고 허허 웃으니 이참판이 “너는 게으름뱅이 사위라고
지청구를 받지 않는 게로구나.” 하고 빙그레 웃었다. 이때껏 한 무릎을 세우고
앉았던 돌이가 책상다리로 고쳐 앉으며 “내가 영감 팔자 같소? 그런 소리를 듣
게.” 하고 그 말끝에 “우리가 작년에 고향에 갔을 때도 게으름뱅이 사위가 지
금 벼슬이 정이니냐 무어냐 묻고 봉...” 하고 말하다가 뚝 그치고 다시 말을 돌
려 “누이 이름을 부르며 지금은 무슨 마님이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습디다.
”하고 자기 말에 입증하라는 듯이 주팔이를 돌아보았다.
이때 아이종 하나가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의 손목을 끌고 와서 부인을 보고
“애기가 영감마님께 가겠다고 떼를 써서 데리고 왔습니다.” 말하는데 부인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이참판이 “오, 이리오너라.” 하고 두 손을 벌리었다. 이참
판이 아들을 안아주며 “이 애놈은 함흥 태생이라 이름을 함동이라고 지었다.”
하고 아이를 들여다보며 “함동아, 너는 함흥 사람이야.” 하고 어르듯 말하는데
아이가 “아니야, 서울 사람이야.” 하고 골부림하듯 말하니 “함흥 사람의 자식
이 함흥 사람을 언짢게 하는 모양이야.” 하고 이참판은 허허 웃었다.
얼마 아니 있다가 작은 잔치와 같은 저녁이 벌어져서 배불리 먹은 뒤에 주팔
이와 돌이가 같이 일어서는데 돌이는 일간 내려갈 터인데 다시 오지 못한다고
이참판 내외에게 작별을 말하였다.
-1권 봉단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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