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돌이의 집 안방에 집안 식구가 모여 앉았다. 돌이는 “이 자식, 어디를 가려거
든 말이나 하고 가지, 그런 법이 어디있나? 망한 자식 같으니.” 하고 오래간만
에 돌아온 아들을 금시에 내쫓을 것같이 골을 내더니 아랫목에 일어 앉아서 아
들의 얼굴을 바라보느라고 병까지 잊은것 같고 갖바치는 돌이의 옆에 가까이 앉
아서 빙그레 웃고, 섭섭이는 문 맞은편 동생 옆에 붙어앉아서 동생의 입은 옷을
만져보고, 또 돌이의 여편네는 어린아이 젖을 물리고 문앞에 앉아서 아이의 얼
굴을 건너편으로 내밀며 “언니, 인제 오셨습니까? 그 동안 저는 어떻게 기다렸
는지 모릅니다.” 하고 어린아이 대신 말하고 웃었다. 꺽정이는 여러 사람을 돌
려보는 중에 병든 아버지의 야윈 얼굴과 어린 동생의 가냘픈 몸을 자주 바라보
고, 여러 사람의 눈은 꺽정이에게로 모이었다.“대체 어디 가서 그렇게 오래 있
었어?” 하고 먼저 묻는 것은 돌이의 여편네이었고 “무슨 재주 배워 가지고 왔
니?” 하고 뒤따라 묻는 것은 섭섭이었다. 꺽정이는 먼저 묻는 사람의 말을 접
어놓고 “재주는 무슨 재주요.”하고 뒤에 묻는 누이의 말을 대답하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래 그 동안 어디 가 있었니?”하고 돌이가 여편네의 묻던 말을 다시
물으니 “부평 땅에 가서 있었소.”하고 꺽정이의 대답은 간단 하였다. “누게 가
있고 무엇을 했어? 이야기 좀 해라.”하고 섭섭이가 독촉한 뒤에 꺽정이가 검술
배운 것을 대강대강 이야기하는데, 외딴 주막을 암자라고 말하고 늙은이를 도승
이라고 말하고 외딴 주막 불지르고 도망한 것을 암자에 화재가 나서 도승이 정
처없이 떠나니까 검술을 다 배우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무
말이 없이 듣고 있던 갖바치가 “도승이 검은옷을 입더냐? 흰옷을 입더냐?”하
고 대중할 수 없던 말을 물으니 꺽정이는 물끄러미 갖바치의 얼굴을 바라보며
“예사 중들이 입는 옷을 입지요”하고 꾸민 말에 보태어 말하였다.“너 가지고
온 거적 속에는 무엇이 들었니?”“도승이 정표로 준 것이오.” “어디 좀 구경
하자.” 꺽정이가 갖바치의 말을 듣고 거적 속에 싸서 넣었던 장광도를 꺼내어
왔다. 갖바치가 받아 들고 “왜도로구나. 중에게 왜도가 어디서 났을까?” 하고
말하며 칼날을 뽑아보더니 “칼 좋다! 장광! 이름 있는 칼인가 보다.” 하고 다
시 집에 꽂아서 꺽정이를 주었다.
꺽정이가 돌아온 뒤에 갖바치는 이삼 일을 더 묵다가 먼저 서울로 올라오고
다시 십여 일이 지나서 돌이가 완구히 기동한 뒤에 꺽정이와 섭섭이 내외가 함
께 서울로 올라왔다. 꺽정이가 안방에 퍼더버리고 앉았는데, 섭섭이 내외와 봉학
이와 유복이가 옆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동안 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이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하고 저 사람이 저 이야기를 하던 끝에 봉학이가 “언니가 얼마나
검술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누나의 콩알은 못당하리다.”하고 말하자, 섭섭이가
곧 봉학이의 등줄기를 툭 치며 “누이라면서 그렇게 조롱하는 법이 어디 있니?
”하고 암상스럽게 말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꺽정이가 “콩알이 무어냐?”하고
물으니 유복이가 싱글싱글하며 “매부더러 물어보오. 입살에”하고 말하는 중에
금동이가 “이 자식이.”하고 떠다밀어서 유복이가 쓰러지니 섭섭이가 이것을
보고 “아이고 잘코사니야.”하고 방그레 웃었다. 이때 마침 바깥방에서 꺽정이
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안으로 난 문을 열고 내다보던 갖바치가 안마루에
나서는 꺽정이를 보고 “좀 나오너라. 심선생님이 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바깥방으로 나와서 심선생에게 절하고 앉으니 심선생이 “너의 선생
님께서 대강 말은 들었다만 천하 장사가 무쌍한 검객이 되었다지?”하고 허허
웃고서 “그러나 백정의 아들이 탈이다.”하고 갖바치를 돌아보며 다시 허허 웃
으니 “꺽정이에게도 탈이지만 세상에도 좋을 것은 없으리다.”하고 갖바치는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제 7장 분산
1
봉학이와 유복이가 바깥방으로 나왔다. 갖바치가 “거기 들어앉아라. 꺽정이
도 왔고 하니 너희들에게 이를 말이 있다.”하고 전과 같이 세 동무로 몰려다니
며 장난치지 말라고 일렀다. “지금 열육칠 세씩 된 너희들이 함께 뭉쳐다니며
활을 쏜다, 뼘창을 던진다, 또는 칼을 휘드른다 하면 남이 장난으로 보지 않고 역
모한다고 고변할는지 누가 아니? 고변을 당하는 날은 여간 큰일이 아니다.” 하
고 갖바치가 말한 뒤에 심의가 그 뒤를 이어서 “큰일이고말고 만일 고변을 만
나면 역적 괴수는 여기 있다.”하고 갖바치를 가르키며 허하 웃다가 그치고“너
희들은 모를라만 병자년에 동몽옥이란 옥사가 있었다. 이 옥사가 다른 것이 아
니라 여남은 살씩 먹은 아이들이 남산에 올라가서 웃옷을 벗어서 기라고 만들고
나뭇가지를 꺽어서 병장기라고 들고서 장난으로 습진 하는 것을 역적모의라고
고변한 놈이 있어서 입에 젖내나는 아이들을 항쇄족쇄로 금부에 잡아 가두고 나
라에서 추심까지 하게 된 일이다. 여러 아이들 중에 남존 명가의 아들 손자가
많이 섞이었는데 그 중에도 더욱이 정의정의 손자 옥수 같은 귀동자가 끼여 있
어서 일이 쉽사리 변백 되었지만 잘못되었더라면 철없는 아이들이 훌륭하게 역
적이 될 뻔하였다. 세상 인심이 살얼음판이다. 조심들 해라.”하고 갖바치를 가르
키며 “환갑 지난 늙은이를 금부 귀신 만들어 줄라.”하고 다시 허허 웃었다.
그 뒤 어느 날 꺽정이가 구 동무와 같이 훈련원에 기사 쏘는 구경을 갔었다.
구경꾼이 둘러섰는 중에 세 아이가 뒷전에 섰다가 잘 보이지 아니하여 앞으로
나서려고 틈을 벌리었다. 앞에 섰던 사람이 “이거 왜 이러느냐?”하고 돌아보
는 것을 꺽정이가 제잡담하고 그사람을 잡아제치고 봉학이와 유복이를 데리고
앞으로 나섰다. 그사람이 분하였다.“이놈의 애녀석이!”하고 꺽정이의 머리를
끄들렀다. 꺽정이가 그 사람의 손을 쥐고 돌아서서 한번 떠다밀었더니 그 사람은
고사하고 그 사람 뒤에 겹겹이 섰던 구경꾼이 장기 튀김으로 자빠졌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쌈났다!” 하고 소리지르며 모여들고, 멀리 있던 사람들은 “여
편네가 아이 났다!” 하고 외치며 쫓아왔다. 꺽정이가 두 동무더러 “구경 고만
두고 가자.” 하고 여러 사람의 틈을 헤치고 나와서 동소문 안으로 돌아오는데
뒤밟는 포교가 따라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날 저녁때 포교들이 갖바치의
집을 에워싸고 들어와서 꺽정이를 잡아가는데, 꺽정이가 항거하려고 하는 것을
갖바치가 “이애 지각없이 굴지 마라. 죄없는 바에야 잡혀가더라도 곧 나오게
될 것이다” 하고 일러서 못하게 하고 꺽정이가 붙들려나갈 때에 뒤를 따라나오
며 “온순한 것이 제일이다. 명심해라.”하고 다시 일렀다.
꺽정이가 잡힌 뒤에 봉학이와 유복이도 잡히었다. 세 아이가 함께 포정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 밤에 심의가 갖바치를 보고 세 아이의 일을 걱정하니 갖바치
가 “걱정이오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 불똥이 우리에게 까지 튀어올 모양이오?
” 하고 말하였다 “청길을 찾아 청질이나 해보지.”“좋은 청길이 생각나시오?
” “글쎄”하고 심의는 고개를 한참 비틀고 앉았더니 “형조판서 윤임의 집에
드나드는 화초장이를 친하니 그 사람을 놓고 윤임에게 청해 볼까?” “그만한
길이면 될 것 같소.” “나 혼자 가기는 싫으니 둘이 동행해 보지.” “아무리나
합시다.”하고 갖바치가 대답한 뒤에 심의가 곧 가자고 말하여 두 사람은 그날
밤에 화초장이 집을 찾아갔었다 화초장이가 윤판서를 보고 말하는 동안이 있고,
또 윤판서가 포청에 기별하는 동안이 있어서 꺽정이와 두 동무아이는 오륙 일
동안 포청에서 고초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2
훈련원에서 자빠지던 구경꾼 틈에 포도청 부장의 외삼촌이 끼였다. 부장의 외
삼촌이 시골 한량으로 활순이나 쏘아본 사람이라 부장 생질을 데리고 나서 “기
사란 것이 과녁을 뒤로 돌아보며 쏘아야지 앞으로 나가며 쏘면 좀처럼 맞지 않
는 것이야.”하고 기사 쏘는 법도 아는 체하고 “과거 보일 때는 이십 보에 사
중을 해야 뽑는다니까 어렵지그려. 사중이 어디 쉬운가.”하고 과거의 어려운 것
도 탄식하던 중에 앞에 섰던 사람이 넘어지며 따라서 뒤로 자빠지게 되어서 갓
을 부수고 옷을 짓밟히고 일시 졸경을 단단히 치렀었다.
그 부장은 외삼촌이 의외에 봉변한 것을 분하게 생각하여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를 잡아온 뒤에 포도군사들과 통을 짜고 아이 도적으로 몰아서 포도청 북
간에 가두게 하였다. 세 아이가 하나는 천하 장사요, 하나는 활을 잘 쏘고, 또
하나는 창을 잘 쓴다는 것을 염탐하여 들은 뒤에 그 부장은 세 아이를 각각 잡
아 들이어 문초를 받았다. 첫번 차례에 유복이가 걸리었다.“너 이놈! 창을 쓴다
니 창 배운 뜻은 무엇이냐?” “아버지 원수 갚을 랍니다.” “아비 원수? 무슨
원수냐?” “남의 무고에 원통한 죽음을 했습니다.”“무고? 무고라면 구경 죽
기는 나랏법에 죽은 것이로구나. 무고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랏법에 죽
은 네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역적질할 생각이란 말이냐?” “역적질이란
것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이놈 잔소리 마라! 어린 놈이 그런 생각을
가질 때는 가르친 사람이 있겠구나.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가 대어라.” “무엇을
누가 가르쳤단 말씀입니까? 아버지가 원통하게 죽은것은 어머니가 가르쳐 준 것
이고 뼘창 던지는 것은 선생 없이 나 혼자 배운 것입니다.” “어린 놈이 겁없이
대답하는 것이 역적질이라도 족히 할 놈이다.” 고지식한 유복이는 작은 곤장이
나마 십여 도를 맞고 끌려들어가고 다음 차례에 봉학이가 끌려나왔다.
“너 이놈! 역적질할 생각으로 활을 배웠지?” “활을 잘 배우면 선달이 되어
가지고 나중에 부장이 되고 위장이 된다고는 말합니다만, 역적이 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너는 원수가 없느냐?”“원수는 무슨 원수예요? 외할머니
가 항상 말이 가난이 원수라고 하니까 가난을 저의 원수라고나 말할까요.” 약
은 봉학이는 대답을 약게 하여 포도군사에게 볼퉁이는 쥐어박혔지만, 곤장은 맞
지 아니하고 들어가고 맨 끝 차례에 꺽정이가 나왔다. “너 이놈! 힘이 세다고
역적질할 생각을 가졌다지?” “역적질이오? 할 생각 있지요.” “이놈 보아, 죽
일 놈 같으니!” “내가 남 죽일 생각을 하니까 남도 나 죽일 생각을 하겠지요.
” “이놈, 네가 봉학이와 유복이를 꾀어서 활을 가르치고 창을 가르쳤구나?”
“저희들이 좋아서 배운 것이지 내가 꾀인 것은 아니오.” “이놈, 네가 역적질
을 할 작정이면 봉학이 활과 유복이 창을 써먹을 생각이 있겠구나?” “그럴는
지 모르지요.” “역적질할 것을 누가 가르치더냐?”“가르치다니? 내가 남을
가르칠 작정이오.”“어느 때쯤 일을 내려고 했느냐?” “일을 내기 좋은 때 내
려고 했지요.” “누구를 추대할 생각이 있었더냐?” “추대가 무어요?” “임
금으로 세우려는 것 말이다.” “임금을 없이 하려는 사람이 다시 세운단 말이
오?” “임금 노릇할 사람은 작정이 없었단 말이냐?” “임금이 소용들 있다면
나는 못할까요.”
부장, 군사 할 것 없이 꺽정이의 무식한 말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꺽정
이를 칼을 씌우고 착고를 채우고 하여 다시 내려 가두고, 문초받은 것을 포장에
게 올리었다. 포장이 일변 세 아이를 역적 죄인으로 몰아서 남간으로 옮기어 가
두고, 일변 위에 주달하려고 할 때에 윤판서의 청편지가 왔었다. 판서도 판서 나
름이지 치자면 윤판서는 임금의 처남이라 그 청편지를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포장이 세 아이의 문초받은 것을 가지고 윤판서를 가보고 “역적질할 생각이 있
었다고 승복까지 한 것을 어떻게 하오리까?” 하고 물으니 윤판서가 “어린 놈
들이 역적질이란 다 무어냐? 그까짓 것들을 역적이라고 떠들어야 봉훈을 할 터
인가 무어? 후일 징계하기 위해서 매개나 때려 내쫓는 것이 좋지.” 하고 말하
였다. 포장이 ‘역모라고 떠들기는 일이 우스울 뿐 아니라 윤판서 말을 들어 두
는 것이 장랫길이 좋겠다.’ 하고 생각하여 포정으로 돌아와서 세 아이를 잡아
내어 중곤을 쳐서 내쫓았다.
3
꺽정이가 죄없이 고초를 받게 되며 공연한 구설까지 듣게 되었었다. 몸져 누
운 봉학이 외조모와 징징 울고 다니는 유복이 어머니가 모두 꺽정이를 탓하고
원망하였었다. 애가 타는 중에 심정이 사나워하던 섭섭이가 꺽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첫새 “봉학이와 유복이도 나왔겠지?” 하고 물었
다. 꺽정이가 안방 아랫목에 편히 누운 뒤에 섭섭이가 앞에 와서 앉았다. “네가
고초받을 것을 생각하고 뼈가 아픈 중에 남의 구설이 듣기 싫어서 속이 상해 죽
을 뻔했다.” “구설은 무슨 구설이오.” “봉학이 할머니하며 유복이 어머니가
네 원망을 여간 했다더냐.” “나 원망할 것이 무어 있소?” “모두가 너 때문
이라고.” “오죽 못생겨야 남을 원망하겠소. 고만두오.” 하고 꺽정이는 누이의
이야기를 막더니 한참 있다가 “바른 대로 말이지, 이번에 선생님이 항거를 말
라고 당부하신 까닭에 많이 참기도 하였지만 봉학이 유복이가 없고 나 혼자만
같으면 벌써 활개쳐 가며 도망했어. 착고니 칼이니 그까짓 것 소용있소. 그러나
그것들을 둘씩이나 달고서는 포청을 벗어져 나온대도 사대문 밖을 나가기 전에
다시 잡힐 것 같습디다. 그래서 끝까지 가서 어떻게든지 할 작정으로 까짓 것
참고 있었소.” 하고 이야기하니 섭섭이가
“그러니 내가 봉학이나 유복이를 원망해야 할 것 아니야.” 하고 웃어서 꺽
정이도 따라 웃었다. 그 뒤에 봉학이 외조모는 봉학이를 갖바치의 집에도 가지
못하게 금하고, 유복이 어머니는 유복이에게 꺽정이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일렀
다. 그러나 두 아이는 듣지 아니하고 갖바치의 집에 와서 꺽정이와 같이 붙어다
니었다. 봉학이 외조모가 봉학이를 놓고 으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나중에는
“할미의 말을 말같이 듣지 아니하니 애써 기른 보람이 없다. 내가 죽어 보지
않으면 고만이다.” 하고 사설을 섞어 야단까지 쳤지만, 봉학이는 꾀꾀로 틈을
타서 꺽정이를 찾아왔다. 봉학이 외조모에게는 이것이 한걱정이었다. 닭의 새끼
가 아닌 바에 발목을 잡아맬 수도 없고, 생각다 못하여 멀리 떨어져 살 작정으
로 동촌 구석에서 서문 밖 무악재 밑으로 집을 이사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허사
이었다. 인제는 자주 쫓아다니지 못하려니 생각한 것도 며칠 동안에 지나지 못
하였다. 모화관 한량들 활 쏘는 것을 구경간다고 하던 봉학이가 혜화문 안에 와
서 있는 것도 보았고, 또 봉학이의 뒤를 밟아가다가 꺽정이와 유복이가 중간에
장맞이하는 것도 보았다.
그리하여 봉학이 외조모가 얼마 동안은 속으로는 딴생각을 먹으면서 겉으로
모른 체하고 내버려두었다. 친한 진관 중의 전장이 교하 낙하원 근처에 있는 것
을 알고 그 전장을 의지삼아 이사할 작정으로 봉학이 외조모가 졸라서 마침내
그 중의 허락을 얻었다. 봉학이가 다시 교하로 이사하게 되는 것을 알고 저는
아니 가겠다고 말하다가 외조모와 사이에 일장 풍파만 일으키고, 구경은 외조모
를 따라가게 되어서 떠나던 날 식전에 혜화문 안에 와서 면면히 하직하고 나가
는데 뒤따라나오는 꺽정이와 유복이를 보고 “언니, 들어가시오.” “유복아, 들
어가거라.” 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두 손으로 꺽정이와 유복이의 손을 갈라 잡
고 꺽정이를 향하여 “우리가 이 담에 우리 집을 가지고 살 때 되거든 한곳에
모여서 떠나지 말고 삽시다.” 하고 작별하였다. 봉학이가 떠나간 뒤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유복 어머니도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시골은 고향
인 강령이 아니요 배천이었다. 유복 어머니는 원수 같은 고향에를 가기 싫어서
서울서 행랑살이를 하고 지내던 중인데, 고향에 살던 형님의 남편이 배천 땅으
로 이사를 나와서 그 형님을 의지하고 내려가게 된 것이었다. 꺽정이가 봉학이
와 유복이를 차례로 떠나보낸 뒤에는 짝 잃은 기러기가 되었다. 서울 있기가 재
미 없으면 양주로 가고, 양주 있기가 재미 없으면 서울로 왔다. 이럭저럭 한 반
년 지난 뒤에 서울서 다시 맘에 맞는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어서 양주에 별로
가지 않고 서울에 많이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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