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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17)

카지모도 2022. 10. 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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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계양산은 부평읍내서 엎드러지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읍의 진산

이니 이 산 안에 명화적이 당을 짓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명화적이 부평부사와

이웃하여 지내는 셈이었다. 도호부사로 진무영장을 겸한 부평부사가 비위를 눅

게 가지어 이웃 대접을 예에 맞도록 하여야망정이지 혹시 성깔을 부리어 큰소리

를 지를 양이면 계양산에서 울려나가는 소리가 동헌 대들보를 흔들었다. 그때

부평부사가 나이 젊은 탓으로 동헌에 들어앉았기가 갑갑하여 고려 이상국의 놀

던 자취를 찾아 계양산 명월사에를 올라가려고 하니 이방이 부사 앞에 나아가서

“계양에는 만일사가 좋다 하옵니다. 안전께옵서 행차합시기도 편하옵고 바다

경치를 내다봅시기도 좋사옵고 또 절도 명월보다 훨씬 낫습니다. 명월사는 높이

있다뿐이옵지 산이 가리어 바다도 잘 보이지 아니하옵니다.”하고 명월을 흠잡

아 말하였으나 부사는 공연한 고집으로 “구경은 가는 길이 좀 어려워야 좋으니

라.”하고 명월에 가려는 것을 변하지 아니하니 이방이 기어코 말릴 생각으로

“말씀을 아뢰옵기도 황송하오나 명월은 화적당의 출입이 잦은 곳이라 불의의

봉변을 하옵실까 두렵소이다.”하고 말하였다. 부사가 화적에게 봉변할 것을 헤

아리지 않고 명월에 올라가도록 구경에 팔리지 아니하여 구경 가려는 것을 중지

하니 이방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내 말에 고집을 세울 수가 있으랴.’

하고 생각하였다. 부사가 구경 못 가서 흥심이 꺾인 까닭으로 분이 나서 좌우

병방을 불러들이어 “계양산 안에 명화적의 소굴이 있다는구나? 이것을 모른체

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관가에 수치가 될 뿐이 아니라 죄없는 백성에게 큰 피해

를 끼치는 것이니 너희들이 장교와 건장한 군노를 데리고 나가서 그 소굴을 찾

아 괴수를 잡도록 하여라.” 하고 분부하니 병방들이 속으로는 ‘이 양반이 화

적의 소굴이 있는 것을 언제 알았나?’ ‘장교 군노 따위를 데리고 화적의 괴수

를 잡느니 하늘의 별을 따기가 쉬울걸.’하고 생각들 하면서도 녜녜 대답하고

물러나왔었다.

장교들이 칼을 차고 군노들이 활을 메기 전에 소문이 벌써 계양산 사람의 귀

에 들어갔다. 병방들이 도망질치기 쉬운 대낮에 군노들을 앞세우고 적굴로 들어

올 제, 적굴이 멀지 아니한 곳에서 화적 두 사람이 마주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은 다같이 몸에 가뜬한 검은 옷을 입고 머리에 긴 검은 수건을 두르고

손에 긴 칼을 들었는데, 한 사람은 얼굴을 다 내놓고 다른 한사람은 머리에 두

르다 남은 수건으로 얼굴을 싸고 눈만 내놓았었다. 얼굴을 내놓은 사람이 “이

놈들 뒤어지고 싶거든 각기 제 손으로 목을 따 뒤어지지, 남의 칼을 더럽힐 생

각 마라.” 하고 호통을 질러서 앞을 선 군노가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병

방 한사람이 “더 나가지 말고 여기서 활을 쏘아라.” 하고 영을 내리었다. 방패

도 아니 가진 검은 옷 두 사람에게 대고 여럿이 활을 쏘니 한 살이라도 맞을 듯

하건마는 한 사람은 옆에 있는 나무 뒤로 숨어서 살이 맞지 않고 다른 한 사람

은 숨지도 아니하고 가까이 가는 살을 칼끝으로 받아 떨어뜨리어 이편에서 화살

만 허비하게 되었다.

활질이 끝나자마자 얼굴 내놓은 검은옷이 “이놈들 활 잘 쏜다. 인제 우리 칼

맛 좀 보아라.”하고 호통치는데 병방 두 사람부터 “이애들, 이거 아니 되겠다.

” 하고 뒤를 빼기 사작하니 장교나 군노는 말할 것도 없다. 병방 이하 삼사십

명 사람이 일제히 뒷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얼굴 가린 검은옷이 나는 새같이

쫓아내려오니 뒷걸음을 앞걸음으로 돌이켜 가지고 도망질들을 하는데 삼사 명

사람의 머리 위에 칼빛이 번쩍번쩍하였다. 병방들이 멀리 도망하여 나온 뒤에

간신히 정신을 진정하여 사람의 수효를 점고하니 다행히 죽거나 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나, 머리에 들쓴 벙거지가 모두 꼭지가 없어졌다. 이것이 검은옷의

칼에 떨어진 것을 알고 간들이 서늘하였다. 병방 이하 여러 사람이 관가에 들어

와서 접전 전말을 아뢰고 꼭지 없는 벙거지를 바치니 부사가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리며 “부평부사는 고만 하직이다.” 하고 혼잣말 하였다.

 

22

부평부사가 계양산 사람을 어찌하지 못하여 한걱정을 하고 지내는 중에 향곳

마을에 사는 농군 하나가 적굴의 잔심부름하는 것을 염탐하여 알고 든손 잡아들

이어 화적의 동류로 다스리며 물어보았다. “화적 괴수놈이 칼을 잘 쓴다더냐?

” 하고 동헌 방안에 앉아 묻는 부사의 말을 계상 계하에 구부리고 섰는 관속들

이 차례로 받아내리어 농군이 듣게 되고

“괴수놈이 칼 잘 쓴단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장틀 위에 매어 있는

농군이 대답한는 것을 관속들이 받아 내릴 때 차례를 거꾸로 하여 받아올리어서

부사가 듣게 된다.

“검술을 잘못하고야 삼사십 명 사람의 벙거지 꼭지를 어떻게 잠시간에 도릴 수

가 있단 말이야?” “그건 모르올시다.” 말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중에 “되우

쳐라.” “되우 치랍신다.” “네이.” 큰 소리와 긴 대답이 연하여 나며 한 어

깨를 벗어 맨 사령이 곤장을 들고 몇 걸음 밖에서 껑충 뛰어들며 허리를 직신하

니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죽는 소리가 농군의 입에서 나왔다. 한동안 뒤에 “바

루 아뢰어라.” “바루 아뢰랍신다.” 곤장 바람에 혼이 난 농군이 간신히 정신

을 차리고 “검술 말씀이오니까? 구슬린 근처 외딴 주막 늙은이가 검술이 세상

에 드물다고 화적이 칭찬하는 것은 들은 일이 있소이다.” 하고 아뢰어서 부사

가 듣고 잠깐 동안 생각하더니 농군을 옥에 내려 가두게 하고 관속들을 모두 퇴

출시킨 뒤에 이방과 병방을 따로 조용히 불러세우고 “주막 주인놈이 검술로 화

적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놈도 화적의 동류인 것은 분명하니 그 주막 주인놈을

잡아들여라. 그런데 그놈이 검술을 잘한다니 섣불리 서둘지 말고 장교와 군노

이십 명을 잘 단속하여 두었다가 밤중에 나가서 잡도록 하여라.” 하고 이르니

이방.병방이 녜녜 하고 물러나갔다.

이때 외딴 주막에는 앞마당에서 늙은이가 맷방석의 휘갑을 치고 뒷마당에서

꺽정이가 나무칼로 칼춤을 추고 있었다. 늙은이의 일이 끝난 뒤에 해가 거의

저녁때가 다 되어서 늙은이가 꺽정이를 데리고 저녁밥을 짓는 중에 얼굴 험상스

러운 사람이 하나 찾아왔다. 늙은이가 이사람이 오는 것을 보자 “자네 왜 왔

나?” 하고 몰풍스럽게 물으니 그 사람은 가쁜 숨을 돌려 가지고 “빨리 다녀오

라는 말씀이 있어서 숨이 턱에 닿게 줄달음을 쳐왔습니다.” 하고 휘황스럽게

대답하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다냐?” “녜.”하고 그 사람이 꺽정이 듣는 것

을 꺼리는 눈치로 말하기를 주저하니 “염려 말고 아무 말이라도 하게.” 하고

늙은이가 말을 재촉하였다. “벙거지 꼭지 도리신 것이 탄로가 났답니다. 그래

오늘 밤 중에 장교 군노 이십 명이 이리 나온답니다. 아까 이방에게서 급한 기

별이 왔겠지요.” 하고 한번 싱긋 웃고 다시 말을 이어 “그래 대장께서 주막은

치우시고 곧 오시라고 말씀합디다.” 하고 말하니 늙은이가 꺽정이를 가리키며

“저애하고 나하고 둘이 있으면 이십 명은 고사하고 이백 명이 온대도 겁이 없

네.” 하고 빙그레 웃고 다시 “인제 여기 주막은 지니고 있지 못할 모양이니까

오늘 밤으로 치워버리고 갈 터일세. 자네 먼저 가서 말씀하게.” 하고 말하여 곧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꺽정이가 “그 사람이 계양산에서 왔나요?” 하고 물으니 늙은이가 고개를 끄

덕이고

“얼른 저녁을 먹어치우자.” 하고 밥을 퍼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 제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선생 늙은이가 먼저 말하였다. “일 년 넘어

같이 지내다가 섭섭하지만 인제는 작별할 수밖에 없다.” “계양산에 가서 길래

계실 터인가요?” “가서 보아야 알겠지만 아마 평산 박연중이게로 갈까 보다.

” “계양산까지 뫼시고 갔다가 나는 서울로 가지요.” “그럴 것 없다. 너는 그

런데 발을 들여놓을 것이 없다. 저녁 먹은 뒤에 너 먼저 떠나가거라. 나중에 나

는 집을 불질러 버리고 계양으로 갈 터이다.” “장교들 나오는 것을 보고 가시

지요.” “글쎄, 혼들을 좀 내보낼까?” “나도 구경하고 가겠어요.” 선생 늙은

이가 꺽정이를 보고 “칼을 좀 써보고 싶으냐?”하고 빙그레 웃었다.

 

23

저녁밥이 끝난 뒤어 늙은이는 요긴하고 가벼운 물건만을 수습하여 조그맣게

짐을 쌌다. 짧은 환도, 긴 환도 두 자루는 싸지 않고 내어놓았는데 늙은이가 짧

은 환도의 날을 뽑아들고 처음으로 보는 것같이 위아래를 치보고 내리보고 하다

가 날을 누이어 꺽정이를 보이며 “철색을 보아라. 철중쟁쟁이라니 이런 것이

쟁쟁한 철이다. 그리하고 칼끝을 보아라. 명공의 비범한 솜씨가 아니면 저와 같

이 쏙 빠지게 될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제포 진중에서 얻은 뒤로 삼십 년이 가

까웠으나 날카롭게 드는 맛에는 언제든지 새삼스럽게 반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고 칼 칭찬이 굉장하였다.

꺽정이는 써보지 못한 칼이라 드는 맛도 모르거니와 칼 보는 묘리에 서툴러서

칼끝을 보고 명공의 솜씨인지 용공의 솜씨인지 분간할 줄을 모르는 까닭에 다만

서리 같은 칼날의 쇠 좋은것만 들여보다가 어구 가까이 글자 박힌 것을 보았다.

“무슨 글자가 박혔습니다.” “긴 장자, 빛 광자 장광이란 글자다. 아마 이 칼

을 치어낸 왜인의 이름인기 보더라.” 하고 늙은이는 날을 집에 꽂아 어루만지

며 “그래서 내가 이 칼 이름을 장광도라고 지었다. 이것을 정표로 너에게 줄

터이니 나로 여겨 두고 보고 쓰게 될 때는 처음 맹세를 어기지 마라.” 하고 칼

을 들어 꺽정이를 주는데 선선히 주는 늙은이는 칼을 임자 찾아 전하는 것같이

생각하나 오히려 얼굴에 슬픈 빛이 나타나고 공손히 받는 꺽정이는 선생이 목숨같이

아끼는 것을 주거니 생각하여 자연히 눈에 눈물이 고이었다.

그날 밤, 닭이 울 때어 수교 한 명이 장교와 군노 이십 명을 영솔하고 나와서

외딴 주막을 들이쳤다. 앞잡이가 방문을 열고 보니 방안이 비었었다. “벌써 어

느 틈에 김이 새었군. 감쪽같이 도망한 모양인데.” 하고 앞잡이가 돌아섰다.

검술하는 늙은이가 도망한 줄 알고 비로소 맘을 놓고 이십 명이 앞뒤로 갈려서

건정으로 수색하는 중에 별안간에 어디서 “이놈들, 망대로 남의 집을 뒨장질하

느냐?” 하고 호령하는 소리가 나며 검은옷 입은 사람이 손에 긴 칼을 쥐고 앞

마당에 나타났다. “여기 있다!” 하고 수교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소리지른

놈이 누군냐? 내 칼 받아라.” 하고 검은옷이 나는 듯이 달려들어 칼등으로 어

깨를 내리치니 수교는 “아이쿠머니!” 하고 곤두박질을 쳐서 어느 구석으로 들

어갔다. 검은옷의 칼이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하며 여기서도 아이쿠 소리요,

저기서도 아이쿠 소리다. 창잡이는 대중없이 창을 내지르고 칼잡이는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다가 번쩍번쩍하는 칼빛이 눈앞에 닥치면 아이쿠 아이쿠 하고 머리

들을 싸쥐었다. 앞마당에 있던 사람이 이와 같이 우박을 맞을 때 뒷마당에 돌아

갔던 사람은 벼락을 맞았다. 아이쿠 소리도 변변히 못 지르고 이 구석에 엎드러

지고 저 구석에 자빠졌다. 앞마당에서는 과히 상한 사람이 없었지만 뒷마당에는

어깨 떨어지고 이마 쪼개진 사람이 많았다. 앞뒤 마당에 화롯불이 밝아졌다. 상

한 사람들까지도 목숨 붙은 것만 다행으로 여기며 간신해 서로 붙들고 도망하였

는데, 부엌 구석에 쌓아놓은 잎나무 더미 속에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매에 쫓

긴 꿩과 같이 머리만 처박고 있었다. 이것이 검은옷에게 들키어서 “나무더미

속에 있는 놈, 이리 나오너라!” 하는 호령을 듣고 벌벌 떨며 기어나와서 검은옷

앞에 꿇어 엎드렸다.

“수교놈이구나. 다른 놈들은 목숨을 붙이어 보냈지만 네 목만은 용서치 않겠

다.” 얼이 빠지다시피 된 수교가 용서한다는 말로 잘못 듣고 “감지덕지하외다.

” 하고 고개를 정신없이 구부리니 환도날에 묻은 피를 불에 비춰가며 씻고 섰

던 아이가 검은옷 앞으로 나서며 “선생님, 죽인다는데 감사하다는 놈 죽여 무

엇하시오. 쫓아버립시다.”하고 말하였다. 검은 옷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가 쫓

아와서 엎드려 있는 사람을 두손으로 끌어안으려는 것같이 안아 일으키어 서너

간 밖에 가서 떨어지도록 동댕이쳤다. 수교는 다행히 죽거나 병신이 되거나 하

지 않느라고 풀이 무성한 풀밭에 떨어져서 한동안 기절하였을 뿐이었다. 수교

가 정신이 들었을 때 눈앞이 대낮같이 환하였다. “날이 밝았나?” 하고 의심할

사이도 없이 눈에 불빛이 비치고 코에 내가 맡아졌다. 외딴 주막 삼간집이 한

참 타는 중이었다. 수교가 멀찍이 기어나와서 길가에 누워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찾아나온 관속들과 같이 불탄 자리만 돌아보고 들어갔다.

 

24

꺽정이가 집에서 떠난 뒤에 양주서는 서울을 갔거니 생각하고 서울서는 양주

에 있거니 여기어서 찾지도 아니하였다가 서울에 오지 않고 양주에 있지 아니한

것을 서로 알게 되며 처음 얼마 동안은 꺽정이의 소식을 알려고 서울.양주 양편

에서 한 달에 몇 번씩 사람이 왔다갔다 하였다. 양주의 돌이와 서울의 섭섭이가

상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 범범하던 심선생까지도 궁금히 생각하여

가끔 꺽정이의 일을 말하는데 아들같이 귀여워하던 갖바치만은 별로 걱정하는

빛이 없었다.

꺽정이의 간 곳을 몰라 성화하는 돌이를 보고는 “성화할 것이 없네. 어디를

갔든지 간 사람이니 오기도 하겠지.” 하고 모호하게 말하기가 일쑤였다. 봉학이

와 유복이가 어른 몰래 공론하고 꺽정이를 찾아나서려고 하였더니 갖바치가 먼

저 눈치를 알았던지 두아이를 불러놓고 “꺽정이가 너희들 모르게 재주를 배우

러 간 모양이다. 지금 찾아가야 만나지 못할 것이요, 만나야 같이 오지 못할 것

이니 당초에 찾아갈 생각을 하지 마라.” 하고 일러서 두 아이가 찾아나서려던

것을 파의하였다.

섭섭이는 꺽정이가 재주 배우러 갔으리란 말을 듣고 ‘공연히 재주 배우라고

사살을 하였더니, 동생의 결기에 망을 먹은 것이 있든 데다. 동생을 재주 배우라

고 내쫓다시피 하였으니, 나더러 배우라든 동생의 말을 생각하여 나도 한 가지

재주를 배워야 하겠다.’ 하고 속으로 혼잣말하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틈에 부

지깽이나 혹은 식칼을 들고 날뛰어보기도 하였으나 재주답지도 못한 짓을 하다

가 남의 눈에 뜨이거나 하면 웃음바탕만 되려니 생각하여 한두 번에 그만두고,

싸릿대활이나 대가지창은 남몰래 만들 수도 있었으나 남은 고사하고 유복이나

봉학이에게 들키는 날은 창피를 보려니 생각하여 시작도 아니하고 그만두었다.

이와 같이 재주를 고르다 못한 끝에 무엇이든지 익히면 재주가 되려니 생각하

고 콩알을 입에 넣고 입힘으로 부는 것을 익히었다. 처음에는 가까이 떨어지던

것이 차차로 멀리 가고 처음에는 대중없이 가던 것이 차차 대중에 맞게 가도록

되었다. 재주가 늘어가는 데 재미를 붙이어서 섭섭이가 일 년 넘어 콩을 불었다.

이것을 다른 사람은 조금도 알지 못하였지만 금동이만은 곧 알게 되어서 처음에

보고는 “별짓 다하네. 입이 궁겁거던 손가락이나 빨지.” 하고 흉보기까지 하였

으나 남에게 말 말라는 안해의 말을 굳게 지키어 저 혼자만 알고 있었다뿐이지

봉학이와 유복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섭섭이가 입 안에 콩을 넣고 입을

뾰족하고 있을 때 금동이는 한참 재미를 부리느라고 “무얼 먹겠다고 주둥이가

뾰족한구.” 하고 빈정거리다가 섭섭이 입에서 콩알 하나가 튀어나오며 금동이

가 “아이쿠 따라워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입술을 비비었다. 봉학이와 유복이

가 금동이의 입술이 부어오른 것을 보고 봉학이는 “매부 입술이 왜 부었소?”

하고 묻고 유복이는 “벌에게 쏘인 게구려?” 하고 물었더니 금동이가 “벌이

다 무어냐, 콩알을 맞았다.”하고 골난 김에 안해의 콩알 부는 것을 설파하여 봉

학이와 유복이는 일년이 넘은 뒤에 비로소 섭섭이의 재주를 알게 되었었다.

돌이가 병이 나서 대단히 중하다는 기별이 있었다. 갖바치가 유복 어멈에게

집을 맡기고 금동이 내외를 데리고 양주를 내려왔다. 돌이의 병이 홧병이라 갖

바치의 약으로 대세는 돌렸으나 졸연히 낫기가 어려웠다. 갖바치가 말벗도 없고

소일거리도 없어서 심심하게 지내는 것이 보기에 딱하여 섭섭이가 서울로 갈것

을 말하니 갖바치는 “가면 내나 가지, 너까지 갈 것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서울 가셔서 식사를 어떻게 하시나요?” “식사는 걱정할 것 없다. 유복이네

게 얻어먹어도 좋고 심선생님댁게 붙여먹어도 좋지. 그러나 나도 하루 이틀 더

묵어가겠다. 혹시 꺽정이가 오기나 하면 만나보고 갈까 한다.”“일 년 반이 지

나도록 소식 없던 아이가 그렇게 오겠습니까?”“오래 소식이 없었다고 오지 말

란 법이 있느냐? 어쩐지 수이 올 것같이 맘이 키이는구나. 일이일간 기다려보아

서 아니 오거든 서울로 가겠다.” 하고 갖바치는 빙그레 웃었다.

이튿날 저녁때 갖바치가 문 밖에 나서서 거니는데 꺽정이가 돌아왔다. 꺽정이

가 등에 걸머졌던 거적 한 닢을 벗어놓고 갖바치 앞에 와서 절하고 일어서서 “

선생님이 왠일이십니까?” 하고 웃고서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하고 갖바치

가 꺽정이의 손을 끌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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