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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24)

카지모도 2022. 10. 2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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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여편네는 갑산 관비로서 관노 한 사람과 정이 들어 죽자살자 할 지경에,

그때 새로 도임한 갑산부사가 여편네의 인물을 탐내어서 억지로 수청을 들이려

고 하는 까닭에 두 남녀가 공론하고 모야무지에 도망하여 운총내 근처 산골에

와서 초막을 짓고 살려다가 관가에 염문이 들어가서 잡히게 되었었더니, 다행히

선통하여 주는 사람이 있어서 또다시 도망하여 무인지경 이곳으로 들어와서 두

내외가 근 삼십 년 같이 살다가 사나이는 사 년 전에 죽고 지금 홀어머니가 아

들딸 남매만 데리고 지내는 중인데 천왕당에 발원하고 낳은 아들 천왕동이는 나

이가 열여섯이고, 그 누이 운총이는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 처음에는 여편네가

호젓하고 무서울 뿐이 아니라 갖은 고생에 못 살것 같아서 사나이가 사냥 나가

고 집에 없을 때면 어린아이같이 목을 놓고 울기까지 하였더니, 삼십 년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고생에도 익어서 구태여 인간처로 나갈 맘이 없지마는 아들딸

을 성취시키자면 만부득이 나가야 하겠고, 나가자니 남편의 무덤을 내버리고 가

기도 어려워서 맘에 주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들은 아직 성취가 급할 것이 없

으나 스물 넘은 딸이 목전에 걱정이었다. 여편네가 내력과 신세를 이야기하는

끝에 “딸이라고 해야 사나이자식처럼 놓아 길러서 인간처에 가더라도 데려갈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중에게 말을 하며 간간이 총각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것 같았다.

“상좌는 어째서 머리를 깎지 않았습니까?” “상좌가 아니외다. 노승이 속인

으로 있을 때 가르 치던 제자올시다.” “총각은 그러면 중이 아니군.”하고 여편

네의 말 묻는 눈치가 중이 아닌 것을 다행하게 아는 것 같은데, 총각은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여편네가 총각의 일을 캐어묻기

시작하였다. “총각은 고향이 어디여?” “경기도 양주요.” “성은 무어고 이름

은 무어여?” “성은 임가고 이름은 꺽정이오.” “나이는 몇 살이오?” “갓스

물이오.” “우리 운총이보다 세 살 아래일세.” 키가 사천왕 같고 얼굴이 숯검

정 같고 손이 북두갈고리 같은 과년한 계집아이가 말승냥이같이 뛰어다니는 모

양이 꺽정이의 눈앞에 떠올랐다. 꺽정이가 싱긋싱긋 웃으면서 “나를 사위삼으

실라오?”하고 장난조로 물었더니 운총 어머니는 진정의 말로 “총각 같은 사위

를 얻으면 한이 없지”하고 대답하여 꺽정이는 말을 달리 돌리었다. “산짐생

고기만 먹고 사시오?” “지금은 집 뒤에 화전을 일어서 감자도 묻고 강낭이도

심그고할 뿐 아니라 짐생 가죽으로 곡식 바꾸어 오기도 하지.” “옷감은 어떻

게 하오?” “옷감도 바꾸어 오지.” “어디 가서 바꾸어 오나요?” “혜산진으

로도 가고 갑산읍으로도 가고 대중이 없어. 우리 천왕동이는 걸음이 사슴같이

빨라서 회령읍도 삼사 일이면 다녀오니까 물건 바꾸어 오기가 전같이 힘들지

아니해.”하고 운총 어머니가 “손님들이 시장할 터인데 이야기에 팔려서.”하고

웃고 일어서서 정지 앞으로 가더니 감자와 강냉이를 쪄서 솔소반에 담아가지고

와서 손님들을 권하였다. “선생님, 얼른 점심 요기하고 몇십 리 더 가다 잡시

다.” “글쎄.” “가다니? 오늘은 우리게서 묵어야지. 그리고 산에 올라가는 길

을 천왕동이가 잘 아니 길도 배워 가지고 가는 것이 좋지 않아?” “주인께는

폐가 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선생의 말에 "아무리나 하십시다.“ 대

답하는 꺽정이는 천왕동이 남매가 어떻게들 생겼나 한번 보고 갈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주인 손 세 사람이 감자를 벗기고 강냉이를 긁는 중에 ”엄마야, 우

리 온다.“ 하고 말소리가 들리니 그 어머니가 ”저것들이 오늘은 일찍 오네.“

하고 밖을 내다보다가 ”아이쿠, 큰사냥 했구나.“ 하고 말하였다.

밖에서 쿵 소리, 덜컥소리가 나더니 두 아이가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한 아이

는 “낯모를 인간들이 어디서 왔나?” 하고 손님들의 얼굴을 면괴스럽게 보고

섰다. 한 아이는 “배가 고프다.” 하고 손님들 앞에 있는 감자와 강냉이를 두

손으로 움키어 갔다. 섰던 아이가 이것을 보고 “나 좀 다구.” 하고 빼앗으려고

하니 움키어 들고 있는 아이는 “저기 또 있다.” 하고 주지 아니하려고 하는데,

그 어머니가 “손님이 있으니 조용히들 앉아라.” 하고 두 아이를 붙잡아 앉히

다시피 하였다.

 

5

두 아이는 복색이 같고 얼굴이 비슷하여 어느 아이가 운총인지, 또 어느 아이

가 천왕동인지 처음 보는 사람은 얼른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한 아이가 눈찌와 입매에 계집아이의 티가 보이었다. 이 아이가 운총이었다. 꺽

정이가 보기 전에 사천왕 같고 숯검정 같고 또 북두갈고리 같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하나 맞지 않고 모조리 틀리었다. 천왕동이가 숙성하여 열팔구 세 된 아이

와 같이 보이나, 이십여 세 된 운총이의 키가 천왕동이보다 조금 작아 보일 뿐

이고 남매가 모두 외탁하여 얼굴 전형이 동글납작하게 이쁘장스럽고, 얼굴빛은

볕에 그을어서 희지 못할 뿐이지 검지 아니하고, 손은 마디가 굵어서 험하기는

하나 보기에 밉지 아니하였다. 속이 맑은 눈에는 생기가 뚝뚝 떴고 납족한 입은

닫힌 것이 야무져 보이었다.

꺽정이가 “감자주랴?” 하고 몇 개를 집어서 운총에게 던져주니 “누가 저더

러 달라든가.” 하고 운총이는 고개를 돌리고 감자를 집지 아니하였다. 옆에 퍼

더버리고 앉았던 천왕동이가 “싫거든 나나 먹자.” 하고 감자들을 집어다 다리

샅에 넣고 껍질도 변변히 벗기지 않고 아귀아귀 먹는데, 운총이가 욕심이 나는

모양으로 동생이 먹는 것을 보고 있다가 “엄마, 나 배고파.” 하고 어린아이 응

석하듯이 말하니 그 어머니가 “오냐 감자 쪄주마.” 하고 일어서며 대사를 돌

아보고 “이십여 세나 된것이 저 모양이니 누가 데려가겠습니까?” 하고 웃어서

대사가 “남매가 꼭 형제 같습니다.”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형제 같다네,

우리가 형제 아닌가.” 하고 말하고 운총이는 “몰르고 말하는 거다.” 하고 말

하며 서로 킬킬거리었다.

천왕동이는 고사하고 운총이도 곧 꺽정이와 사귀어서 서로 말을 하게 되었다.

“너희들 오늘 무엇 잡았니?” “큰 검둥이를 잡았다. 동생이 쫓고 내가 찔렀다.

” “검둥이가 무어냐?” “나가 볼래?” 하고 천왕동이가 꺽정이의 손을 잡고

일어서니 운총이가 “나도.” 하고 따라 일어섰다. 꺽정이가 끌리어나와서 대가

리 찔러 잡은 시커먼 곰을 보고 대가리에 피묻은 곳을 가리키며 “무엇으로 찔

러 잡았니?” 하고 물으니 운총이가 “이것으로 찔렀다.” 하고 옆에 세웠던 창

을 들어 보이었다. “너도 짐생을 잡아보았니?” 하고 운총이가 묻는 말에 꺽정

이가 “잡아보지 못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사나이 인간이 짐생도 못 잡아

보았나.” “사나이라고 다 짐생 잡을 줄 아나.” 하고 누이 동생이 비웃어 말하

므로 꺽정이가 “한번 나하고 같이 사냥을 가보려냐?” 하고 말하니 운총이는

“짐생을 잡을 줄 모른다며 가서 무어하나.” 하고 여전히 비웃어 말하고 천왕

동이는 “잡나 못 잡나 가보아야지. 오늘밤 자고 같이 가자.” 하고 꺽정이의 등

을 치며 웃었다.

이때 운총 어머니가 방에서 “운총아, 감자 먹어라.” 하고 불러서 운총이는

한달음에 뛰어들어가고 꺽정이가 천왕동이와 같이 뒤에 떨어져 들어오며 “곰을

검둥이라면 호랑이는 무어라고 하고 사슴은 무어라고 하니?” 하고 물은즉 천왕

동이가 “호랑이는 얼룩이도 있고 바둑이도 있고 뿔 있는 사슴은 뿌다귀라고 불

른다. 우리 죽은 아비가 지은 이름이다.” 하고 곧 뒤를 이어 “우리 같이 가거

든 얼룩이나 하나 잡자.” 하고 웃으니 꺽정이는 “얼룩이라니 범 말이구나.”

하고 천왕동이와 같이 웃었다. 꺽정이가 천왕동이의 옆에 붙어앉으며 “너의 집

에 칼 있니?” 하고 물으니 감자를 먹던 운총이가 “이것 말이냐?‘ 하고 묻는

듯이 옆에 있던 조그만 참칼을 들어보이는데, 꺽정이가 아니라고 고개를 외친즉

천왕동이가 ”무슨 칼?“ 하고 되물었다. ”긴 칼, 환도 말이다.“ ”아비 가졌

든 긴 칼이 있어.“ ”내가 찾을까?“ 하고 천왕동이가 일어서려는 것을 그 어

머니가 ”수선떨지 말아.“ 하고 나무라서 주저앉혔다.

 

6

천왕동이가 백두산상봉까지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줄 터이니 하루는 사냥하고

놀다가 가라고 붙들어서, 대사는 운총 어머니와 같이 집에 있고 꺽정이는 천왕

동이 남매와 같이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아침 요기들을 단단히 한 뒤에 셋이

동무지어 나가는데 천왕동이는 창을 들고 앞장을 서고 꺽정이는 환도를 차고 중

간에 들고 운총이는 창을 엇메고 뒤를 따랐다. 얼마동안 숲속을 뚫고 나와서 칠

성늪을 지나 산골로 들어섰다. 짐승의 발자국을 살피며 등성이로 골짜기로 올라

갔다 내려갔다 하는 중에 바람 지나가는 결에 천왕동이가 코를 들여마시며 냄새

를 맡더니 “얼룩이가 가까이 있다.” 하고 바람 오던 편으로 얼마 아니 가서

우뚝 서며 뒤를 돌아보고 손짓하여 뒤에 오던 꺽정이와 운총이가 함께 앞으로

나섰다.

천왕동이가 말이 없이 건너편 등성이 끝을 가리키니 운총이는 대번에 알아보

고 “바둑이다.” 하고 말하는데 꺽정이는 선뜻 보이지 아니하여 천왕동이의 손

가락 가던 곳을 대중삼아 자세히 바라본 뒤에야 조그만큼씩한 떡갈나무 무더기

밑에 얼룩덜룩한 물건이 있는 것을 보았다. 표범이다. 이 편에서 세사람이 목 잡

을 공론들을 하는 중에 저편의 표범이 사람들을 보았던지 누웠다 일어서서 몸을

훌훌 털고 앞뒷발을 버티고 허리를 잘록하게 들어가도록 기지개를 켜고 그리하

고 어슬렁어슬렁 등성이를 타고 내려간다. 천왕동이 남매가 이것을 보고 풍우같

이 등성이 아랫길로 뛰어내려가니 꺽정이도 뒤를 쫓아가려다가 어찌 생각하고

표범 누웠던 등성이 끝으로 뛰어왔다. 천왕동이 남매가 어느틈에 표범 내려가는

길을 막질러 가지고 좌우로 갈라서서 올라온다. 표범은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으르렁 소리를 내더니 사람이 차차 가까이들 오는 것을 보고 성이 나서 색

색거리고 곧 사람에게 덮칠 것같이 앞몸을 솟치더니 번쩍거리는 창날에 덮쳐서

이롭지 못할 줄로 알았던지 휙 돌쳐서며 등성이 위로 올라 닥쳤다. 꺽정이가 칼

날을 뽑아들고 내려다보고 섰다가 바람같이 올라오는 범의 앞을 막으며 번개같

이 칼로 내리쳤다. 표범은 목덜미를 맞고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표범의 뒤를 쫓

아오던 남매가 이것을 보고 우뚝우뚝 서더니 천왕동이는 거꾸러진 표범 앞으로

나가서 몸뚱이와 떨어질 뻔한 대가리를 창끝으로 건드리며 “단번 칼질에 무섭

다.” 하고 혀를 내두르고 운총이는 “저 털가죽은 좁쌀 한 말밖에 못 바꾸겠다.

” 하고 가죽이 많이 상한 것을 말하였다. 꺽정이가 빙그레 웃으며 칼날을 집에

꼽았다.

표범 한마리를 잡은 뒤에는 다시 짐승을 만나지 못하였다. 해가 점심때가 겨

운 뒤에 요기거리로 가지고 왔던 찐감자를 나눠 먹고 차차 내려오는 길에 칠성

늪에를 와서 늪가에서 물 먹고 섰는 사슴 한마리를 만났다. 운총이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뿌다귀는 앞이 무섭다. 갈데없이 몰리어 사람에게 대드는 뿌다귀는

얼룩이보다 더 무서운 거다. 우습게 보고 앞으로 가지 말아.” 하고 정답게 일러

주었다. 천왕동이 남매와 꺽정이가 멀리 돌아서 사슴이 도망갈 길을 삼면으로

막고 들어오며 악 소리를 지르니 놀란 사슴이 도망하려고 돌쳐섰다. 이편을 보

아도 사람이고 저편을 보아도 사람이라 사람의 틈으로 도망하려고 내닫다가 서

슬있는 창날이 앞을 막는 바람에 다시 늪가로 뛰어갔다.

사람들이 차차로 동안을 좁히어 들어온다. 사슴은 위험이 가까운 것을 알고

살려달라는 듯이 ‘매’ 소리를 질렀다. 동안이 어지간히 가까워진 뒤에 중간줄

에 섰던 꺽정이가 별안간에 나는 새같이 사슴에게 뛰어들어가니 사슴은 겁결에

뒤로 돌쳐서며 궁둥이를 솟치어 모두발질하였다. 사슴의 앞은 늪이라 사슴이 다

시 돌쳐섰다. 뿔로 뜨려고 대가리를 숙이었다. 꺽정이가 대어들며 발길로 한번

아래서부터 거두니 사슴은 턱을 차이고 대가리를 치어들었다. 꺽정이가 날쌔게

두손으로 두 뿔의 대 밑동을 움켜쥐었다. 사슴은 뒷다리를 버티고 앞으로 내밀

려고도 하고 대가리를 내흔들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꼼짝 못하였다. 꺽정이의 두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사슴은 앞발로 늪가의 모래를 파헤칠 뿐이었다.

꺽정이가 뛰어갈때 이편에 섰던 운총이는 깜짝 놀랐었다. 사슴의 무서운 것을

일껏 일러주기까지 하였는데 철모르고 뛰어가는 줄로 알았었다. 창을 들고 한달

음에 쫓아왔다. 저편에 섰던 천왕동이도 달음질하여 들어왔다. 꺽정이가 사슴의

뿔을 움켜쥔 뒤라 남매가 다같이 어이없어하며 보고 섰었다. 나중에 꺽정이가

사슴을 끌고 뒷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사슴은 앞발을 놀리던 기운까지 없어진

모양이었다. 눈을 끔적끔적하며 끌려나왔다. 꺽정이가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사족

을 묶으라고 말하고 사슴을 가로 쓰러뜨리니 천왕동이가 가지고 다니는 숙마바

로 사슴의 앞뒤 다리를 친친 동이었다. 사슴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을 보고

꺽정이가 뿔을 놓았다. 운총이는 자기 옷소매로 꺽정이 이마의 땀을 씻어 주었

다. 대가리가 흔들거리는 표범은 앞뒤 다리를 묶고 장대를 꼬이어 천왕동이 남

매가 앞뒤에서 메고 이따금 발버둥이치는 사슴은 꺽정이가 뒷발을 잡아 거꾸로

둘러메고 다 저녁때 돌아들 왔다.

 

7

운총이가 그날 사냥갔다 돌아오며부터 꺽정이의 곁을 잠시 떠나려고 하지 아

니하였다. 저녁은 운총 어머니가 손님 대접한다고 귀한 조밥을 지었는데, 운총이

가 큰 밥그릇을 골라서 꺽정이 앞에 놓아주고 희한한 귀물 깨를 갖다가 꺽정이

소금에 섞어 주었다. 꺽정이는 운총의 부니는 것이 맘에 싫지 아니하나 뜻이 있

는 듯이 웃는 운총 어머니도 보기 부끄럽고 본체 만체하는 선생도 보기 부끄러

워서 직수굿하고 앉았는데, 운총이는 남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모르고 부닐고 싶

은대로 부닐었다. 천왕동이는 운총이와 같이 부닐지만 아니할 뿐이지 꺽정이를

따르는 맘은 운총에게 지지 아니하였다.

저녁밥이 끝난 뒤에 천왕동이가 그 어머니를 보고 정지 건너편 방에 가서 꺽

정이와 같이 자겠다고 말하여 그 어머니는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운총이가 “

나도 가서 꺽정이하고 잘 테다.” 하고 나서는 것을 어머니가 “너희 둘이 가면

좁아 못 잔다.” 하고 말리니 천왕동이는 “그래, 좁지 않게 나만 잘테다.” 하

고 운총이는 “너는 엄마하고 같이 자, 내가 갈테니.” 하고 내가 가랴 네가 가

랴 남매 서로 다투기 시작하였다. “사내는 사내하고 자고 여인은 여인하고 자

야한다.” “같이 자면 자는게지, 사내는 무어 말라비틀어진 거냐.” “그래도

끼리끼리가 있지 없어.” “사내고 여인이고 가를라면 사내하고 여인하고 같이

자야한다. 여기서 엄마가 아비하고 같이 잘때 저기서는 너하고 나하고 같이 잤

지.” “너희들은 갖은 새소리를 다 지저귄다.” 하고 어머니가 나무라니 천왕동

이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그러면 이렇게 하자. 대사를 엄마하고 같이 자라고

하고 너하고 나하고 둘이 같이 가자.” 하고 말하여 운총이가 “그거 좋다.” 하

고 손뼉을 치는데 어머니가 “종없이 지껄이지 마라. 손님들만 가서 주무시게

해야 한다.” 하고 걱정할 뿐 아니라 꺽정이가 자기 선생 이외 다른 사람과 자

지 않겠다고 말하여 남매가 모두 수그러져서 전날 밤과 같이 손님 두사람만 정

지 건너편 방에 가서 자게 되었다.

꺽정이가 자리에 누운 뒤에 남매의 요절한 말다툼을 돌쳐 생각하고 낄낄거리

니 대사는 “아무 사심없이 자란 것이 귀하다.” 하고 도리어 칭찬하였다. “저

대로 두면 저것들 남매간에 자식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천

지개벽한 뒤 사람이 처음 생겼을 때는 남녀만 알았지. 모자니 남매니 구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제 두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곧 잠이 들었는데, 삼모

자 방에서 밤이 들도록 말소리가 그치지 아니하였다. 운총이와 천왕동이가 번갈

아가며 사냥할 때 광경을 이야기하고 꺽정이를 칭찬한 뒤에는 그 어머니가 “노

인대사는 하루종일 뫼시고 말씀해보니 참말 도승이더라. 내가 젊었을 때 우리

고을 천봉산 자복사에도 가서 보았지만, 손님대사 같은 도승은 못 보았다. 그래

서 너의 아버지 젯날 경을 읽어 줍시사고 청해서 허락까지 맡았다. 도승의 인도

를 받는 것이 죽은 사람에게는 큰 복이다. 꺽정이가 도승의 제자니 그렇지 범연

하겠니?” 하고 연해대사를 도승이라고 칭찬하였다.

도승이라는 말을 모르는 운총이는 “도승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서 어머니

가 “도승이란 것은 장차 부처님이 될 중이다.” “부처님은?” “부처님은 천

왕당의 천왕성제와 같은 영검한 거야.” 하고 대담하고 아비 젯날을 모르는 천

왕동이는 “젯날이 언제인가?” 하고 물어서 어머니가 “열흘 남았다. 아홉 밤

만 자면 된다.” “오늘 밤까지?” “아니, 오늘밤 말고 말이다.” 하고 대답하

였다. 그 뒤에는 천왕동이가 백두산 길 가르쳐 줄 이야기가 나서 “늙은 대사하

고 같이 갔다 올라면 두 밤은 자야 할라.”

하고 운총이가 말하니 천왕동이가 “가다가 갑갑하거든 나 혼자 오지 무어.”

하고 말하는 것을 어머니가 “아서라. 잘 뫼시고 갔다 오너라.” 하고 당부하여

말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대사와 꺽정이가 천왕동이로 길라잡이를 삼고 등산길

을 떠나는데, 운총이가 꺽정이의 홑중의 적삼을 보고 “상봉은 겨울같이 치웁다.

” 하고 깨우쳐서 꺽정이가 걸머진 양식 바랑 위에는 세 사람이 나눠쓸 만큼 털

가죽 여닐곱 장을 묶어 얹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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