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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

카지모도 2022. 10. 30.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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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 화재 나던 해 겨울에 대전에서 병환이 났었다. 처음에 상한 기미로 조금

미령하던 것이 불과 며칠에 증세가 심상치 않게 변하여 내의원 의관들이 정성으

로 약을 드리었으나 약효험이 나지 아니하였다. 동궁에서는 주야로 시측하여 친

히 의약을 보살피는데 초민한 맘에 침식까지 폐하여 며칠 동안에 형용의 수척한

것이 병환 중 대전과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대전은 고통중이라서 알지 못

하고 중전은 심란하다고 모르는 체하고 오직 나이 어린 대군이 때때로 죽이나

미음을 지성껏 권하여 동궁이 곡기를 끊게 되지 아니하였다. 대전 환후가 더욱

침중하여 큰일이 조석에 날 것 같으니 동궁은 목욕재계하고 내전 뒤뜰에 내려서

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몸으로 대신하기를 축원하는데, 찬바람을 무릅쓰고 겨울

긴 밤을 선 채로 새웠었다. 하늘이 앎이 있으면 동궁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이

되었으련만, 대전의 병환은 구경 돌리지 못하고 상사가 나게 되었다. 동궁의 발

상한 뒤에 여러 차례 혼도할 뿐이 아니라 여러날 동안 미음 한 모금을 마시지

아니하여, 나중에는 곡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아니하도록 기운이 시진하였다. 처

음에 대신이 옥새를 받들고 나아왔을 때 통곡하며 받지 아니하여 조정 제신들이

대위는 하루도 비우지 못한다고 국보를 받으시라고 청하고 옥새를 드리는데, 옥

새가 앞에 이른즉 통곡하며 차마 받지 못하니 제신들 중에는 따라서 눈물을 흘

린 사람이 많았었다. 종일 지체한 뒤에 동궁이 하릴없이 눈물로 용상을 적시며

대신 이하 제신의 배례를 받았으나, 상사에 관한 일 외에는 대신에게 일임하고

돌보지 아니하였다. 새 임금이 집상을 과도히 하여 초상부터 졸곡까지 미음과

죽 외에는 진어한 음식이 없고 밤에 침전에 눕지 아니하고 인산을 지난 뒤에도

오히려 상차를 떠나지 아니하여 대신들이 침전에서 기거하시기를 누누이 청하였

으나, 위에서 잘 좇지 아니하였다. 또 새 임금은 자전에 대한 도리를 극진히 차

리어 백 가지로 대비의 맘을 위로하려고 힘썼으나, 대비는 하루 한두번씩 미안

한 처분을 내리지 않는 날이 없고 그것이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하여 과부와 어린

아이가 명에 죽기를 바라지 못한다고 고의로 울며불며 하는 때도 없지 아니하였

다. 대비의 미안이 내릴때는 상감이 억색함이 못이겨하면서도 그 미안을 풀려고

성의를 다하건만, 대비는 목석 아닌 사람으로 심장이 어찌되었든지 그 성의에

감동되는 빛이 없었다. 상감은 청약한 기질로 초상 이후 몹시 지친 끝에 대비의

맘을 얻지 못하여 심려를 많이 하므로 기거범절의 불안한 때가 점점 잦아지니

윤원로, 윤원형 형제와 및 그 동류 이외에 조정 제신들은 한없이 우려하여 성궁

보전할 계책을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옥과현감 김인후가 다른 궁으

로 이어하여 조양하시기를 청하니, 이것은 대비전과 각거하시라는 말이라 성궁

을 보전하기에는 계책이 좋지 않음이 아니로되 도리에 합당치 못하므로 상감이

그 청을 좇지 아니하였다. 일개 현감이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상감께 청할 수

있었을까? 대개 김인후는 칠팔 세때에 전라감사 조원기에게 장성 기재요, 천하

문장이라는 칭찬을 받은 희한한 인재로서 등과한 뒤 시강원 설서 벼슬을 다닐

때, 동궁과 계합이 자별하여 남에 없는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 상감 문안

을 알고자하여 일부러 상경하였을 때 상감이 편전에서 인견하였으므로 상감을

위하여 그만한 말씀을 아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김인후는 성균고나 직강 유희

춘과 정분이 특별히 좋은 터이라 옥과로 내려가기 전에 유직강을 심방하고 여러

이야기 하는 중에 상후 불안한 것을 한걱정삼아 말하였다. "원로의 집에서는 요

사이 매일 점을 친다네. " "점이라니?" "상후가 평복되시지 않기를 점친다는 말

이 있어. " "죽일 놈들 같으니. " "원로는 상감 말씀을 심화거리라고 한다니 더

할 말이 있나. "

윤원형의 건객인 임백령이 유직강의 안해와 육촌척이요, 또 유직강하고 같은

해남 사람이라 원로, 원형의 집 말이 간간이 유직강의 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

다. "그것이 무슨 소리야? 지금 조정에 사람이 없단 말인가? 어찌해서 그놈의 형

제를 그대로 두고 본단 말인가? 인중이 자네부터 그런 말을 귀에 담아 두기만

한단 말인가?" 하고 김옥과가 분하여 펄펄 뛰다시피 하였다. "나도 분한 맘이

있기야 하지. 그러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언책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상소장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삼사가 함께 나서서 죽기로 다투어도 윤가 형제를 처치하

실 리는 없으니 우리 성주의 착한 맘만 상할 뿐이 아니겠나. " 유직강의 말이 옳

았다. 김옥과는 길이 한숨을 쉬더니 "하늘이 우리 동방을 돌보시면... " 하고

눈물을 좌르르 흘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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