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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10)

카지모도 2022. 11. 7.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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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체로 사약할 때 주는 약이 먹고 죽으라는 약이지만 인삼, 부자와 같은 순한

약이지 비상과 같은 독약이 아니므로 약 먹인 뒤에 뜨거운 방에 두거나, 약 먹

인 위에 독한 술을 먹이거나 하여 약기운을 한껏 발작시키더라도 용이하게 죽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도사가 약사발을 연거푸 안기다가 진력이 나면 수건, 말고

삐, 활시위 같은 물건으로 목을 졸라 죽이게 하여 사약이 교살로 변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었다. 이때 도사가 임형수의 소망을 좇아서 약을 술에 타서 한

사발 가득히 부어 주니 임형수가 공손히 받아들고 "이 술은 주인으로 손님에게

권하지 못하는 괴상한 술이라 나 혼자 먹소. " 하고 허허 웃고 나서 한숨에 들이

마시었다. 임형수는 본래 주량이 한정없는 사람이라 한 사발 술로는 술 먹은 기

색도 보이지 않았다. 한사발 또 한사발 약탄 술을 마시는데 옆에 가까이 있던 상

노아이가 어디 가서 포쪽을 가지고 와서 징징 우는 소리로 "안주나 잡수십시오.

" 하고 내어놓으니 임형수가 "에끼놈, 저리 가져가거라. 중놈들이 벌주를 먹을

때도 안주를 먹지 못하거든 이 술이 어떠한 술이관대 안주를 먹는단 말이냐? 철

없는 놈이로군. " 하고 웃고서 도사를 향하여 "사정 쓰려고 약 분량을 적게 타지

않았소? 어째 이렇게 무령하오? 벌써 몇 사발을 먹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구려. "

하고 또 웃으니 도사의 악문 입술도 조금 터지는 것같이 보이었다. 다시 한 사

발 두 사발을 거듭하여 약 탄 술을 도합 열여섯 사발을 먹고 그 위에 막걸리 전

국을 두 사발을 먹었으나, 임형수는 숨결이 조금 가빠졌을 뿐이지 몸 가지고 말

하는 것이 당초에 죽을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도사가 고을 하인에게 분부하여

장작불을 지피어 방을 뜨겁게 하고 몇 시각을 기다리었으나 방안에 누워 있는

임형수가 답답하여 하느니보다 방 밖에 지키고 있는 도사가 더 갑갑하였다. 마

침내 도사가 고을 하인을 불러서 튼튼한 줄을 드리라고 말하여 하인이 얻어온

타락줄을 나졸에게 들리고 방안으로 들어오니 누워 있던 임형수가 이것을 보고

일어나서 도사리고 앉으며 "그 줄은 무엇하시려오? “ 하고 물으니 도사가 "오

래 고생하느니 이것이 나을 것이오. " 하고 대답하였다. "지금 나의 처지에는 나

은 일과 못한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설혹 나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전교 사연에

틀리는 일을 도사 맘대로 하지 못할 것이 아니오? 사약하다 아니 되거든 교살하

라는 전교를 물어 가지고 오셨소? 전교 사연에 없는 일을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니 교살하고 싶거든 서울 가서 다시 전교를 물어 가지고 오시

오. " 하고 임형수가 위엄 있이 말하는데, 도사는 어색하여 입맛만 다시고 있었

다. 임형수가 도사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한번 허허 웃더니 "실없은 말을 노여워

마시오. 죽으라고 하신 전교를 받은 사람이 이 말 저 말 할것이 무엇 있겠소. 그

타락 줄을 이리 주시오. 목을 매리다. " 하고 나졸의 주는 줄을 받아들고 잠깐

들여다보다가 다시 도사를 치어다보며 "내 손으로는 차마 조를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이 잡아다려야 할 터인데 내가 숨이 그치기 전까지 잡아다리는 사람을 보기

싫을 뿐 아니라 잡아다릴 사람도 목매인 사람 앞에서는 잡아다리기 어려울 것이

오. 그러니 이 벽에 구멍을 뚫고 목을 매인 뒤에 벽구멍으로 줄 끝을 내보낼 것

이니 밖에서 잡아다리게 하시오. " 도사는 일을 얼른 마치게 되는 것만 다행하게

여기어서 "그렇게 하오. 좋소. " 하고 나졸을 시켜서 벽에 구멍을 뚫어놓고 밖으

로 나갔다. 얼마 뒤에 벽구멍으로 두겹진 줄 두 끝이 나왔다. 나졸들이 두 끝을

갈라 쥐고 잡아당기다가 '인제는 아무리 장사라도 숨이 그치었으려니. ' 하고 생

각아며 그만 놓으리까 묻는 뜻으로 도사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도사가 놓으라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졸들이 줄을 놓으며 방안에서 탁 하고 물건 떨어지는 소

리가 났다. 도사가 일 끝난 것이 시원하여 숨을 길게 쉴 때에 방안에서 낄낄 웃

는 소리가 나서 도사는 고사하고 나졸들까지 놀래었다. 도사와 나졸들이 급히

방으로 쫓아들어와서 둘러보니 타락줄로 매인 목침 하나가 방바닥에 떨어졌고

정작 목을 매일 임형수는 벽 건너편 방구석에 누워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도사

가 화가 나서 임형수를 내려다보며 "점잖은 처지에 이것이 무슨 짓이오?“ 하고

책망하니 "처음 당하는 일이니까 잘될는지 몰라서 시험하여 보았소. " 하고 임형

수는 다시 한바탕 기탄없이 웃었다. 임형수가 죽은 뒤에 권발은 삭주 배소에서

소식을 듣고 술을 양껏 마시고서 "이 사람도 죽었구나. " 하고 통곡하였고 이황

은 임형수의 생각이 날 때마다 ”사수같은 희한한 기남자가 죄없이 죽은 것은

아깝고 원통하다. " 하고 긴 한숨을 금치 못하였다.

 

4

익명서 옥사가 있은 뒤에 연 삼년을 두고 연년이 큰 옥사가 있었는데, 처음은

안명세의 옥사이고, 그 다음은 이홍윤의 옥사이고, 또 그 다음은 이해의 옥사이

었다. 유관, 유인숙, 윤임 등의 죽은 일을 사관이 사초에 올리기를 “중종 소상

이 지나지 아니하고 인종 상사 발인하기 전에 위에서는 빈전 옆에서 고명대신

세 사람을 죽이다. " 하고 적었고 또 이기 등의 행동을 사실대로 적었었다. 그때

소위 공신들이 저희의 한 짓을 옳은 일같이 꾸미어 후세 이목까지 속이려고 무

정보감이란 책을 만드는데, 윤인경, 이기, 정순붕 등이 전에 없던 일을 특별히

청하여 사초를 보게 된 까닭으로 사관의 곧은 붓이 드러났었다. 소위 공신들은

사관이 붓을 굽히어 역적을 두둔하였다고 당시 사관이 누구이던 것을 고사하기

시작하는데, 홍문박사 안명세가 자수하고 나서서 그날로 능지처참을 하게 되었

다, 안명세가 조복을 입은 채로 수레에 실리어 새남터로 나가는데 쇠갓 쓰는 사

람으로 유명한 이지함이 죽는 친구를 작별하려고 길거리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금위 군사들의 밀막는 것을 불고하고 수레 옆으로 쫓아나와서 안명세의 손을 잡

고 "욕으로 사는 사람들이 사람일 것 같으면 자네를 부러워할 것일세. 눈감고 잘

가게. " 하고 그 길로 도망하여 이기 등이 이지함을 잡으려고 할 때는 벌써 간

데를 모르게 되었었다. 며칠 뒤에 안명세의 친구 교리 윤결이가 능원위 구사안

의 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술을 먹다가 죽은 친구를 생각하고 "안명세가 무슨 죄

란 말인가? ” 하고 눈물로 옷깃을 적시기도 하고 "세상에 사관 죽이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 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들기기도 하였더니 당시에 대사간으

로 있던 진복창이 구사안에게서 이 말을 듣고 윤결의 형제를 안명세의 동류로 몰아

서 금부로 잡아 가두고 단련하게 되었다. 진복창은 독사라는 별명이 있던 위인

인데, 윤결과 사혐이 있어서 평일에 미워하던 까닭에 국문할 때 형장을 혹독히

써서 한번 국문에 혈육이 낭자하게 되었다. 진복창과 같이 추관으로 있던 민제

인이 이것을 보고 상을 찌푸리며 "옥이 부서진다. " 하고 탄식하는 것을 진복창

이 듣고 역적을 비호한다고 탄핵하여 민제진까지 찬배를 당하였다. 안명세를 죽

인 이듬해에는 이홍윤의 옥사로 충주를 도륙내었다. 이홍윤은 이약빙의 아들이

요, 윤임의 사위라 그 부친이 비명에 죽은 것을 원통하게 여기고 그 장인이 참

혹히 당한 것을 분하게 생각하여 간신의 무리를 일망타진하고 싶은 맘이 없지

아니하므로 그 맘이 간혹 언사간에 발로될 때가 있었다. 홍윤은 충주에 귀양 와

서 있고 그 형 홍남은 영월에 귀양 가서 있어 형제가 서로 만나지는 못하나 연

신이 잦았는데 홍남의 위인이 불사한 것을 홍윤이 모르지 아니하지만 그래도 형

이라고 믿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못할 만한 시휘에 걸리는 편지도 없

지 아니하였다. 홍남이 저의 처남 원호변과 저의 동서 정유길에게 편지하여 아

우의 일을 걱정한 것이 실상은 아우가 역적모의한다고 고변한 것이나 다름없었

다. "아우가 위인이 완패하여 역모에 뜻을 두는 모양이니 만일 누가 고변이나 하

게 되면 일문이 멸망할 터이라 이것을 어찌하면 좋으랴? 나는 눈물로 날을 보내

는 중이노라. " 원호변과 정유길이 이 편지를 본 뒤에 사정이 덮어둘 수 없는 것

을 공론하고 편지를 정원에 바치어서 마침내 옥사가 일어났다. 홍윤과 및 흥윤

에게 가까운 사람들이 능지처참을 당한 것은 말할 것이 없고 홍윤과 같이 있던

홍윤의 아우가 지각이 없어서 함부로 분 까닭으로 충주 사람이 거의 도륙을 당

하다시피 많이 죽었다. 충주는 역적이 난 까닭으로 유신현으로 등이 내려지고

충청도는 충주가 없어진 까닭으로 청홍도로 이름이 변하였다. 이홍윤의 옥사가

나던 이듬해에 유신현의 최가 한 사람이 고변에 수 생길 것을 바라고 유신현에

사는 양반들의 계 문서를 가지고 역적도록이라고 고변하러 서울로 올라가려다가

유신현에 붙잡히었는데, 현감 이치가 감사 이해에게 이것을 보이였더니 이해가

추문하라고 명하여 최가가 형장에 맞아죽게 되었다. 이홍남이 이것을 알고 이해

와 이치가 역적을 두호할 맘으로 증거를 인멸하였다고 몰아서 이해와 이치는 함

께 금부로 잡혀와서 형장 아래 맞아죽었다.

 

5

이해가 처음 금부에 잡혀와서 국문을 당할 때에 정강이뼈가 부서지도록 모진

형장을 맞으면서도 오히려 자기의 죄없는 것을 주장하였었다. 금부 나졸 한 사

람이 불쌍히 보고 밤에 틈을 타서 "죄없다고 발명해야 소용이 없고 잘못하다가

맞아죽게 될 뿐이니 추관들이 묻는 대로 했다고 대답하시오. 한껏해야 귀양밖에

더 보내겠소. 또 죽더라도 형장 아래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울 것이 없소. " 하고

국문당할 방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이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면서 "내가 구구히

목숨을 보전하려고 짓지 아니한 죄를 지었다고 무복할 사람이 아니다. " 하고 고

집을 세워서 그 나졸이 혼잣말로 "고지식한 양반일세. " 하고 혀를 찼었다. 이

해가 금부에서 상소를 올리어 원통한 사정을 하소연하려고 하였으나, 추관들이

이기를 꺼려서 그 상소를 받아올리지 아니하였다. 이기는 이해에게 탄핵당한 혐

의가 있는 터이라 이해를 죽이려고 작정하고 일변으로 추관들을 시켜서 국문을

혹독하게 할 뿐이 아니라 또 일변으로 양사 간관을 충동이어 하루에 육칠 차 연

거푸 죽이자고 계청하게 하였다. 대왕대비는 무슨 맘이든지 간관에게 청을 좇지

아니하고 이해와 이치를 모두 감사정배하라고 처분을 내리었다. 그러나 그 처분

이 구경은 빈 처분에 지나지 못하였다. 이치는 장하에서 기절한 채로 소생하지

못하였으니 말할 것도 없고 이해는 목숨이 실낱같이 붙어 있었으나 죽은 사람이

나 다름이 없었다. 귀양 갈 사람이 아무리 다 죽게 되었더라도 목숨 지기 전에

는 귀양길을 아니 떠나지 못하는 법이라 압송도사가 이해를 승교바탕에 담아가

지고 배소로 작정된 갑산 길을 떠났는데 첫날 양주읍이 숙소참이었다. 이때 칠

팔월 늦더위가 심하여서 성한 사람도 길에서 병이 날 것 같았으니 이해가 양주

숙소에 와서 죽은 것은 도리어 오래 부지한 셈이다. 압송도사는 갑산까지 안 가

게 된 것을 다행히 생각하며 양주 관아에 들어가서 목사를 보고 이해의 시신을

목사에게 맡긴 뒤에 서울로 회정하여 금부당상에게 사유를 보하였다. 양주목사

는 팔자에 없는 송장 맡게 된 것을 불쾌히 생각하여 "그 시체를 찾아갈 사람이

오기까지 잘 맡아두게 해라. " 하고 만만한 아전에게 이르고 아전은 "시체를 찾

아갈 사람이 오기까지 잘 맡아두게 해라. 관가 분부다. " 하고 성명 없는 객주

주인에게 일렀다. 객주 주인이 무슨 정성이 있어서 이해의 시체를 잘 보아 줄

것이랴. 시체가 썩기 시작하여 시취가 집안에 풍기고 시즙이 방안에 흐르니 객

주 주인이 시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서 공석으로 싸고 새끼로 동이어서 상

여 곳간 근처에 내다두었다. "귀양 가는 길에 죽은 사람이 어디 감사를 지낸 양

반이라지. " "충청감사로 있다가 죄에 걸렸다데. " "실상은 죄없는 양반이라네. "

"객주 주인이 송장을 내다버렸어. " "여우밥이 되겠지. " 하고 양주읍내 사람들의

떠드는 말이 꺽정의 귀에 들어가자, 꺽정이는 불쌍한 사람의 송장이 여우의 밥

이나 되지 않게 해주려고 그 부친을 보고 의논하였다. "관 하나를 짜이어서 송장

을 넣어 둡시다. " "적선하려다가 득죄하지 말란 법 없지. 고만두어라. " "아무

죄도 없이 애매하게 간신들에게 맞아죽은 사람이니까 관 하나쯤 아까을 것이 없

소. " 하고 꺽정이가 우기어서 어느 날 꺽정이 부자가 관과 상포를 가지고 와서

손을 댈 수 없이 된 시체를 둘둘 말아서 관에 넣어서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이

해의 아우 이황은 안명세의 옥사가 났을 때 또다시 삭탈관직을 당하고 예안 고

향에 가서 있던 중인데 그 형의 옥사가 났다는 기별을 듣고 하루바삐 서울로 올

라왔으나, 기별을 늦게 들은 까닭에 그때 그 형이 죽은 뒤 십여 일이 넘었었다,

이황이 그 형의 시신을 찾으러 양주로 내려갔을 때 백정의 아들에게 은혜진 것

을 알고 불러보려고 하다가 그 백정의 아들이 오란다고 올 사람이 아니라서 마

침내 불러보지 못하고 운구하여 떠나던 전날 밤에 이황이 하인 하나만 앞세우고

그 백정의 집을 찾아와서 문간에서 백정의 아들을 만나보았다. "나는 너에게 은

혜를 입은 사람이라 특별히 찾아왔다. " 하고 찾아온 것을 은언이나 내리는 것같

이 말하니 그 백정의 아들이 "누가 찾아오랍디까? 창피한데 오래 섰지 말고 어

서 가시오. " 하고 거슬거슬하게 대답하여 이황이 속으로 '백정의 아들로는 완패

막심하다. ' 하고 생각하며 그 백정의 집 문앞에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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