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3권 (14)

카지모도 2022. 11. 11. 06:02
728x90

 

 

10

상가에서 장전에 유명한 무당을 불러다가 넋두리를 시키었다. 그 무당이 고리

짝을 긁으며 망자를 청하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늙은 망자가 내렸다고 넋풀이를

시작하여 저승 사자에게 구박받는 슬픔을 이야기하고 집안 식구를 면면히 찾고

또 이 세상에서 품고 간 원한을 말하는데 그중에 가다가 "내가 죽을 것을 죽은

줄 아느냐? 내가 죽고 싶어 죽은 줄 아느냐? 내가 아들이 없는 사람이냐? 내가

재물이 없는 사람이냐? 그런 내가 죽을 때에 의원 하나를 보았느냐? 약 한 첩을

먹었느냐? 수청 자는 것들이야 살붙이냐? 뼈붙이냐? 잠이 들면 고만이지 죽는

줄이나 알 것이냐? 전후좌우 널려 있던 사람 중에 마지막길 떠날 나를 보내 준

사람이 누구이냐? 어, 허무하지그려! 어, 원통하지그려! 날 잡아간 귀신이 벼개에

있는 것은 누구이고 알았을 리 없지마는 벼개 하나 바로 베어주지 못한 너희들

의 일분 성심 없는 것도 어, 야속하지그려! " 하고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오든 푸

념에 늙은 것들은 "그렇습지요. " "그러시고말고. " 하고 능청스럽게 대답하고 젊

은 것들은 "대감께서 살아오셔서 꾸중하시는 것 같습니다. " "어떻게 들으면

말소리까지 아주 대감이 오셨어요. " 하고 종없이 지껄이었다. 정씨 집의 안식구

들이 베개에 귀신 있다는 말을 듣고 벼개를 없애고 싶은 맘이 있던 차에 둘째

상제 정현이 넋하는 것을 듣고 나서 옆에 있던 늙은 침모를 돌아보며 "대감이

근래 어떤 벼개를 베셨든가?“ 하고 물으니 그 침모가 ”아마 궁수봉황 모 벼개

이겠지요. 갑이가 자세히 알 터이니 불러 물어보시지요. " 하고 대답하는데 이때

갑이는 빈소에 있는지 눈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정현이가 갑이를 부르러 보내려

고 할 즈음에 젊은 침모가 “대감께서 근래 베시던 벼개는 마루방에 치워 둔 이

부자리 속에 든 것이겠지요. 물어볼 것도 없지 않아요. " 하고 말하여 정현이는

곧 계집하인 한 사람을 시켜서 마루방에 있는 벼개를 가져오게 하였다. 안식구

들은 벼개를 그대로 살라 버리려고 하였으나 정현이가 한번 속을 뜯어보고 사르

자고 주장하여 베개의 잇을 뜯고 또 벼개듸 속을 꺼내어 보게 되었다. 베갯속을

꺼내던 계집하인이 "애그머니, 이게 무어야. " 하고 손에서 뿌리쳐 내던지는 물

건이 있어서 여러 사람의 눈이 일시에 한곳으로 쏠리었다. 그 물건이 사람의 엄

지손 마디인 것을 안 뒤에 여러 사람은 다같이 놀랐다. "벼개에 귀신이 있단 말

이 참말이구려. " "유명한 무당이 다르구려. " "그러니 대감이 방자를 받고 돌아

가신 모양이지. " "그렇기에 내가 죽을 것을 죽은 줄 아느냐고 말씀하시지 않아

요. " 하고 침모들과 계집하인들이 서로 돌아보며 지껄이는 중에 정현이가 그 엄

지손 마디를 싸서 들고 여막에 있는 형에게로 쫓아나갔다. 형제간에 의논이 달

랐다. 베갯속의 엄지손 마디를 방자로 보는 것과 방자한 사람을 갑이로 치의하

는 것은 형제 다름이 없었으나, 정렴이는 갑이를 치죄하자면 그 부친에게 욕스

러운 말이 없지 아니할 것을 요량하고 "방자한 것의 소위는 괘씸하나 사람의 생

사가 방자에 달리지 아니하였으니 방자한 것은 유야무야 중에 덮어두고 갑이를

내어쫓자. " 하고 주장하고 정현이는 그 부친이 방자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부모

의 원수를 갚지 않는다니 말이 되오. 문초를 받아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거든

갑이를 대매에 때려죽입시다. " 하고 고집하여 한동안 형제간에 말이 왔다갔다

하다가 나중에 현이가 분을 내면서 "형님은 고만두시오. 형님은 본래부터 아버지

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 터이니까 원수 갚을 생각도 없을 터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불공대천의 큰 원수를 갚지 않을 수가 없소.” 하고 일어서 나가려는 것을

정렴이가 "잠간만 앉아라. " 하고 붙들어 앉히고 "그 일을 사실하려거든 밤저녁

사람 없는 때 조용히 하도록 해라. " 하고 말하였으나 정현이는 "형님은 상관 마

오. 내 원수를 대낮에 갚든지 오밤중에 갚든지 형님에게 아랑곳이 무엇이오. "

하고 상옷자락에 바람이 차도록 핑하게 여막 밖으로 나갔다. 상주 형제가 여막

안에서 말할 때에 맏상주의 말소리는 한결같이 나직나직하였지만, 둘째상주는

처음부터 그 형과 시비를 차리는 것같이 언성이 높았었다. 계놈이가 마침 여막

밖으로 지나가다가 갑이의 문초 받고 대매에 죽이자는 말을 귓결에 듣고 놀라

여막 아래 앉아 있는 거상 하인에게로 와서 "둘째상제님이 왜 저렇게 떠드시

우?" 하고 가만히 말을 물으니 그 하인이 손을 내어젓다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섰는 계놈이 귀에 입을 대고 "대감이 방자에 죽었단다. 방자한 사람은 갑이인 듯

하고 방자한 물건은 사람의 엄지손 마디란다. 지금 둘째가 방자한 물건을 가지

고 와서 원수를 갚자고 떠드는 판이야. " 하고 일러 주었다. 계놈이가 경겁하여

말도 더 묻지 못하고 공연히 고개만 끄덕이다가 간신히 "큰일났구려. " 하고 한

마디 말을 뒤에 남기고 곧 갑이를 찾아갔다. 빈소 뒤 툇마루에 갑이가 혼자 우두

커니 앉아 있는데 계놈이가 정신없이 앞으로 대어들었다. "이애, 큰일났다. "

"무슨 큰일?" "여기 있다는 죽을 테니 지금 당장 도망하자. " "대체 무슨 큰일이냐? “

"네가 그것을 가지고 대감을 방자했다며? ” 갑이는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리다가

사르르 펴이면서 "나는 무슨 큰일이라고? “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무슨 큰일이라니? 지금 상주 형제가 너를 죽이자고 공론하는 중이야. " "죽이면

죽지, 큰일 될 것 없다. " 하고 갑이는 조금도 겁내는 빛이 없었다. "이애, 그런

법이 어디 있니? 나는 너 때문에 병문도 모르고 죽으란 말이냐? ” 갑이가 둘레둘레

바라보다가 뒤꼍에 있는 나무광 문이 지쳐만 있는 것을 보고 "여기서 길게 이야기

하다가는 남의 눈에 들킬는지 모르니 저 나무광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 하고

계놈이를 끌었다. 광 속 나뭇단 뒤에 둘이 숨어 앉아 길게 이야기하고 다시 나을 때에

갑이가 "나의 전후 사정은 네가 이미 다 알았으니까 다시 더 말할 것이 없고

영결로 한마디 말할 것은 내가 정가의 집에 온 뒤 사 년 동안에 꼭 한번 남의 말을

진정으로 기쁘게 들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네가 골방에서

나와서 나를 보고 속량해 나가서 같이 살자고 말한 것이다. 내가 저생에 가서라도

너의 신세를 갚도록 할 터이니 우리 저생에 다서 만나자. " 하고 다정스럽게 말하고

나서 "너 먼저 앞으로 나가거라. " 하고 말하여 계놈이가 얼빠진 사람같이 걸어갈 때에

갑이는 그 뒷 모양을 바라보며 거짓없는 눈물을 흘리었다. 정현이가 여막에서 나오며 곧

거조를 차리려고 할 즈음에 점잖은 조객이 와서 다시 여막으로 들어가 형과 함

께 조상을 받고 '조객이나 또 오면 비편하니 밤까지 참으리라. ' 하고 생각하여

낮에는 말이 없이 지내었다. 그날 밤에 정현이 빈소 앞마루에 등불을 밝히고 앉

아서 갑이를 잡아내어 뜰 아래 세우고 "대감마님을 방자한 엄지손 마디의 출처

는 네가 알 터이니 일호기망 없이 바른 대로 말해라. " 하고 호령하니 갑이는 조

금도 겁내는 빛이 없이 "내가 말을 할 테니 말하는 동안에는 되지 못한 호령을

마시오. 개호령을 겁낼 내가 아니오. " 하고 대담스럽게 말하여 둘러섰던 하인들

은 말할 것이 없고 정현이까지도 놀라지 아니치 못하였다. "자, 말하리다. " 하

고 갑이가 짧게 기침 한번 하고 나서 마루 위를 치어다보며 "너의 집 늙은 것이

우리 상전을 죽인 놈이다. 내가 우리 상전의 원수를 갚으려고 늙은 놈을 벼른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대체 그 늙은 놈이 우리 상전과는 친구로 사귀고 사돈

으로 연혼까지 한 놈이 무슨 원혐이 있어서 그렇게 흉악하게 모함을 한단 말이

냐? 그놈의 심장은 사람의 심장으로 알 수 없지 아니하냐? “ 하고 욕설을 퍼부

을 때 정현이 듣다 못하여 "그년의 주둥이를 비비지 못하느냐! " 하고 하인을 호

령하니 갑이가 "그러면 고만두어라. 너희들도 듣기 시원하게 전후 사실을 자세히

말하여 주려고 했더니 되지 못하게 호령질을 하니 인제 나는 말을 아니할 테다.

너희들 생각대로 해라. " 하고 입을 다물었다.

 

12

갑이는 여러 차례 얻어맞아서 뺨이 부어오르고 쥐어질리어서 입 귀에 피가 흐

르고 또 걷어차이어서 땅바닥에 주주물러앉게 되었다. 그러나 입은 닫힌 채로

떼지 아니하여 아프단 소리 한마디가 없었다. 정현이 이것을 보고 "조그만 년이

괘씸스럽게 얼마나 말 안 하고 배길 테냐! " 하고 소리를 지르고 곧 하인을 호

령하여 물볼기 때릴 거조를 차리게 하였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갑이를 속곳 하

나만 남겨두고 아래옷을 모두 벗긴 뒤에 멍석 위에 잡아 엎지르고 속곳 위에 동

미 물을 들어부으니 속곳이 살에 달라붙어서 올통볼통한 살모양이 드러났다. 매

질이 시작되었다. 값이의 고운 살이 첫매에 부르터지기 시작되어 매 열 개 안에

불그스름한 핏물이 멍석 위에 고이었다. "그 손마디가 어디서 났느냐? “ "그 손

마디를 누가 얻어 주었느냐? ” 하고 매질 사이에 고찰하는 호령은 서리 같으나

갑이는 벙어리 된 듯이 대답이 없었다. 아래웃니가 마주치는 딱딱 소리 외에는

이를 가는 아드득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독한 년이다. 톡톡이 쳐라! " 하고 호

령이 떨어진 뒤 매질이 더욱 무지스러웠다. 매 잡은 하인의 긴 대답이 연해 나

는 중에 계놈이가 어디서 뛰어나와서 뜰 아래에 엎드리며 "매질을 그치라십시오.

소인이 말씀을 아뢰겠습니다, 그 손마디는 소인이 얻어 준 것이올시다. " 하고

말하여 갑이를 제치어 놓고 계놈이의 문초를 받으려고 할 즈음에 갑이가 감았던

눈을 뜨고 계놈이를 보더니 "저 얼뜬 자식이 내게 속은 것도 분하지 아니한가. "

하고 비로소 입을 떼어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다 말할 것이니까 계놈이

같은 얼뜬 자식에게 물을 것이 없소. 내가 상전의 원수 갚을 꾀를 생각하고 말

안 내고 심부름해 줄 사람을 구하는 중에 계놈이가 내게 부니는 눈치가 뵈입디

다. 그래서 이 자식을 한번 놀려서 심부름꾼을 만들어 보리라 작정했소. 내가 저

에게 끌리는 체한 것이 실상은 내가 저를 끈 것이오. " 하고 말하여 가다가 "말

할 것은 많은데 목이 타서 말을 못하겠으니 물 한 모금 먹여 주시오.“ 하고 말

하여 정현이는 갑이의 말을 들으려고 물을 먹이어 주게 하였다. 값이가 물 몇

모금을 받아 먹은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계놈이를 내 손에 넣게 되었소.

옥잔 야단이 났을 때 옥잔은 내가 없이 한 것이오. 옥잔을 가지고 우리 상전을

들추는 것이 괘씸해서 내가 깨뜨려버렸소. 깨뜨린 것은 뒤꼍 굴뚝 옆에 묻었으

니 궁금하거든 나중에 파보시오. 그래 옥잔 까닭에 치의받아서 죽을 곡경을 치

를는지 모른다고 계놈이를 혼동하고 옥잔 훔쳐간 사람을 방자한다고 초빈 송장

의 뼈마디를 얻어달라고 했소. 그 뒤에 뼈마디 방자가 잘 안 된다고 또 산도야

지털을 얻어 달라고 했소. " 하고 말하는데 정현이가 "산도야지털은 무엇에 썼느

냐? “ 하고 물었다. 갑이가 무심결에 몸을 움직이려다가 아픔을 참느라고 한동

안 입을 악물고 있는 것을 "무엇에 쓴 것을 바로 대라. " 하고 정현이가 호령하

니 갑이가 고개를 들고 치어다보며 "호령 마시오. " 하고 타박한 뒤에 또다시 말

을 이었다. "그 도야지털은 늙은 것이 술취해 곤드라졌을 때 배꼽 속에 박았소.

미심하거든 염한 것을 풀고 보시오. " 하고 다시 물을 좀 먹여 달라고 하인에게

손짓하는 것을 정현이가 보고 "말을 더 들을 것이 없다. 물 먹여 주지 마라. "

하고 이르는데 옆에서 보던 정작이가 그 형에게 "내가 몇 마디 물어볼 말이 있

으니 물을 먹이라고 하시오. ” 하고 말하여 갑이는 다시 물 몇 모금 얻어먹게

되었다. "네가 유씨만 상전이라고 말하니 우리는 너의 상전이 아니란 말이냐? “

"상전의 원수이지, 상전은 무슨 상전이오? 우리 상전이 나를 친자녀같이 기른 은

공을 말하면 상전이요 부모이니까 우리 상전은 예사 상전과도 다르지요. " ”대

감 돌아가신 뒤에 네가 설게 운 것은 작죄한 것이 무서워 운것이냐? “ "여보,

어린애 소리 고만두시오. 나는 내 설움에 울었지 당신네 집 초상에는 상관도 없

소. " 하고 갑이는 정작이의 묻는 말을 웃첬다. 정현이 그 아우를 돌아 보며 그

만두라고 말하고 작도를 들이라고 하여 갑이를 공석에 두루루 말아서 작도에 넣

고 목을 자르게 하였다. 계놈이까지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정작이가 죄의 경중

을 분간해 말하여 계놈이는 죽도록 매만 맞았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3권 (16)  (0) 2022.11.13
임꺽정 3권 (15)  (0) 2022.11.12
임꺽정 3권 (13)  (0) 2022.11.10
임꺽정 3권 (12)  (0) 2022.11.09
임꺽정 3권 (11)  (0) 202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