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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16)

카지모도 2022. 11. 1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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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형이 원로를 미워하는 맘이 뿌리 깊이 박히어서 서로 대면하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원로가 이 눈치를 알고는 짓궂이 하루돌이로 원형을 찾아왔다. 원형이

한번 하인들을 불러서 "누가 찾아오든지 내 말 듣기 전에 들이지 마라. 큰댁 영

감이 오시더라도 거래하고 들어오시게 해라. " 하고 일러 둔 까닭에, 어느 날 하

인들이 상전의 분부대로 원로의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고 거래하려고 하였다. "무

슨 일이냐? " "대감마님 분부에 누가 오시든지 거래하라셨습니다. " "너희가 눈

이 멀었느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 "아니올시다. " "아니라니? 내가 이 집

에 손님이냐? " "아니올시다.“ "괘씸한 것들 같으니.” 하고 원로는 상전과 하

인을 휩쓸어 꾸짖고 앞 막아선 하인을 밀치고 들어와서 곱지 않은 눈으로 원형

을 보며 "대감 말 좀 물어보세. 형이 아우의 집에 와서도 거래해야만 들어오는

법인가? “ 하고 곧 뒤를 이어서 "내가 요전에도 대감더러 한 말이지만 나도 대

감을 바치고 싶으니 남행판서 한 자리를 벌어내게. 내가 대감에게 자주 오는 것

이 나로는 근사를 모으는 셈인데 대감댁 하인이 서슬이 푸르러서 근사모으러 다

니기도 비편할 모양이니 지금 아주 단단히 청해 두네. 그것도 오래는 기다릴 수

없네. 대감이 하려고만 들면 오늘 내일로도 될 수 있을 줄 알지만 아주 넉넉히

한 달만 참고 기다림세. " 하고 말하는데 비위 파는 것도 같고 유세 부리는 것도

같았다. "사람이 성가시게 왜 그러시오. "

"대감이 못해 주겠단 말인가? “ "남행판서고 백의정승이고 대비전 처분을 물으

시오. " "속담에 중이 제 머리 깎느냐는 말이 있지. 대비전 처분을 대감이 물어

주게나. 나는 대감만 믿네. " 며칠 뒤에 원형이 대왕대비께 문후할 때 원로를 꺾

어 말씀하되 "신이 정경이 된 뒤로 형은 남행판서가 못 되어서 원망이 대단하오

이다. 신을 원망하는 것은 오히려 모를 일이오나 어느 동기는 동기가 아니냐 마

냐 하고 함부로 마마를 원망하오니 실로 딱 한 일이외다. 그리 말라고 신이 말

씀하온즉 너는 대비의 긴목이라 말이 다르다고 조롱하듯 말하옵니다. 마마께서

한번 불러 이르시는 것이 좋을 듯하외다. " 하고 그럴싸하게 말씀하여 대비는 "

이르기는 무어를 이른단 말이야. 내버려 두지. 원망도 하다 지치면 아니하겠지. "

하고 화를 내었다. 그 뒤에도 원형이 대비를 뵈을 때마다 번번이 원로의 말로

대비의 화를 돋아서 대비까지 원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원형이 종질 되는 병조

좌랑 윤춘년을 시켜서 원로를 몰아 상소하게 하였는데, 그 상소의 대지는 아래

와 같았다. "대왕대비께옵서 여희 같다는 악명을 쓰시게 된 것은 윤임이 일을 얽

었다느니보다 원로가 말을 만들었다 하올 것이 원로가 인종께 이롭지 못한 말과

해로운 짓을 하되 언언사사에 내지라고 자탁하였사온즉 윤임이 인종의 지친으로

내지라는 말 듣고 의심 없기가 어려웠을 것 아니오니까? 원로가 신에게 이르는

말이 오늘날 공신이란 것이 오래 갈 줄 아느냐? 대비만세 후에 변복이 되지 않

을 줄 아느냐? 하고 횡설수설하는 것이 모두 신자의 도리로는 입에 올리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원로가 국사를 그르치고 종사를 위태케 할 위인인 것을 아는 사

람이 신 한 사람 뿐이 아니올 것이나, 원로의 흥한 심사를 잘 아는 사람은 신만

한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외다. 대체로 말씀하오면 윤임은 천하의 역적이요, 원

로는 인종의 역적이외다. 신은 원로를 버릴망정 전하를 마저 버리지 못하와 원

로의 죄상을 들어 말씀하오니 전하는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 " 대왕대비가 춘

년의 강소를 대신에게 보인 뒤에 대신의 말을 좇아서 원로를 파직하고 양사 의

론을 좇아서 원로를 원찬하였다가 다시 사약을 내리었다. 원로가 죽은 뒤에 상

소 이허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춘년이가 당숙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형이가 친

형을 죽이었다. "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상소 문구를 들은 사람 중에는

"원로가 인종의 역적이면 원형이는 무엇인가? 원로와 원형이가 처음부터 갈렸던

가? “ 하고 공론하는 사람도 있었다.

 

3

원형은 본래 삼사 형제라 원로 외에 원량이란 형이 있고, 또 도손이란 서제가

있었다. 원량은 위인이 영발치 못하여 아우들의 지실받이로 늙은 까닭에 원형에

게 형 대접을 받지 못하고 도손이는 형제의 셈 밖이었다. 원로의 초상을 치를

때, 원로의 아들 백원이가 모든 절차를 융숭히 하려고 하였더니 인형이 이것을

알고 백원을 불러다가 "국가 죄인의 초상이라 그리 못하는 법이다. " 하고 금하

였다. 백원이 원량을 보고 "큰아버지, 다른 것은 어쨌든지 상여나 구정 겹줄을

쓰게 해주시오. 남의 이목도 있지 않습니까? 마주잡이는 너무 초라합니다. 작은

아버지를 보고 말씀 좀 하세요. " 하고 청한즉 원량은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내

말을 듣나. 말해 소용없어," 하고 방색하다가 "그래도 한번 말씀해 보세요. " 하

고 백원이 우기는 바람에 "아무리나 한번 해보지. " 하고 마침내 허락하였다. 원

량이 원형을 와서 보고 "여보 대감, 상여만은 조금 좋게 쓰도록 하세그려. 남의

이목이 있지 아니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길 떠나는 동기를 마주잡이로 거들거

들 내보내면 첫째 대감에게 창피하지 않겠나. " 하고 간곡히 말하였더니 원형이

증을 내며 "죄인으로 죽은 것은 생각지 못하오? 지각 없기가 백원이나 다름없구

려. " 하고 우박을 주어서 원량이는 다시 두말을 못하였다. 처음 배소에서 운구

하여 오던 날 원형이는 잠깐 상가때 와서 보고 다시 오지 아니하더니 발인날 식

전에 온다는 선통이 왔었다. 원형의 오기를 기다리느라고 발인 시각이 한없이

늦어졌다. 하인들이 몇몇번 왔다갔다 한 뒤에 원형이 와서 견전에 참예하게 되

었는데 영결 종천의 축문이 끝이 나며 상준 이하 비복들까지 일제히 곡소리를

내어 애고지고 하는 판에 원형이 몇 마디 어이어이 하다가 슬그머니 그치고 "곡

들 그치래라. " 하고 말하였다. 원형의 말 한마디에 상주까지 곡을 그치어서 곡

소리가 소낙비 쏟아지다 그치듯이 뚝 그치게 되니 진정으로 곡하던 사람들은 고

사하고 체면으로 곡하던 사람까지도 어이없어 하였다. "벌써 늦었다, 어서 떠나

거라. " 하고 원형이 재촉하여 마주잡이 상여는 장지로 떠나갔다. 도손이는 나이

는 젊으나 선천부족으로 시름시름 앓던 터이라 수상하지 못하였는데, 원형이 이

것을 보고 "너 어째 산하에까지 가지 않느냐? 나는 국사에 몸이 매여서 잠시 서

울을 떠나지 못하지만 너야 아무것도 않고 노는 사람이 어째 산하에까지 가지

않느냐? 젊은 아이들이 몸 좀 아프다고 형님 장사를 가보지 않는단 말이냐? 그

럴 도리가 어디 있을꼬? 큰형님이나 백원이는 일의 두서를 차리지 못할 것이니

네가 가서 장사를 보고 오너라.“ 하고 이른 뒤에 곧 도손이를 말을 태워 상행

을 뒤쫓아 보내었다. 그날 저녁때 원형이 예궐하였다가 나오는 길에 도손의 집

을 들러서 계수를 보고 "그 아이가 병을 자세하고 산하까지 아니 가는 것을 내

가 쫓아 보내다시피 하였소. 갔다 온 뒤에 혹시 병이 더치더라도 원망은 마시오.

” 하고 허허 웃으니 도손의 안해는 "천만에. " 하고 고개를 숙이었다. 도손의

안해는 세동이 알맞아서 맨드리에 태가 나고 가죽이 얇고 빛이 희어서 얼굴이

돋보이는 중에 너글너글하고도 어여쁘게 보이는 두 눈이 사람 끄는 힘을 가졌었

다. 원형은 "그 아이가 요사이 뉘 약을 먹소?“ "약도 별로 먹지 않습니다. " "

약을 먹어야지. " "약에 녹용이 들어서 이루 먹기 어렵다고 하와요. " "내 아우가

되어 가지고 용이 없어서 약을 못 먹는단 말이오? 지금 집에 있는 것만 해도 저

는 먹고 남을 게니 먹는 대로 갖다 먹으라고 하시오. " 하고 원형이가 말거리가

궁하여서 잠깐 말이 없이 두이번거리다가 옆으로 제쳐놓은 바느질감을 가리키며

"무슨 바느질 하셨소? 침모를 두시구려. 사람이 마땅한 것이 없거든 내게서 하나

데려가시오. " 하고 원형이 그 계수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그 어여쁜 눈이 말 대

신으로 고맙다는 뜻을 말하였다. 원형이 수숙의 체모를 보아서 뜰에 서서 말하

다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4

도손이는 산하에까지 휘달려가서 몸이 삐친 끝에 하관 시간이 밤중인 까닭으

로 산상에서 야기를 쏘이고 병이 갑자기 더치었다. 두통신열은 고사하고 제일로

해소가 심하여서 산하에서 지내게 된 초우제에도 참예하지 못하였다. 도손이

가 서을 온 뒤로 몸져 누워 앓게 되었는데, 의약 구호가 부족한 것은 아니되

병은 조금도 감세가 없었다. 도손이가 본래 심약한 사람이 가래에 선혈이 섞여

나오는 것을 보고는 병이 고황에 들어서 할 수 없거니 생각하여 죽을 것을 자기

하고 약도 정성스럽게 먹지 아니하였다. 병은 중병이건마는 구미를 젖히지 아니

하여 먹을 것을 갖가지로 다 찾는데, 어느 날은 평상시에 좋아가는 저육을 먹겠

다고 도야지의 업진 하나를 거의 다 먹다시피 하더니 이것이 체하여 마침내 젊

은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도손이가 앓는 중에 원형이는 자주자주 와서 보는데,

석후에 와서 밤 늦도록 있을 때가 많았었다. 원형의 첩 난정이가

원형을 대하여 "대감이 갑자기 우애가 놀라워지셨습니다그려. " 하고 기롱으로

말을 한즉 "도손의 병은 내가 더치어 준 셈이라 무안하지 아니한가. " 하고 발명

같이 말하다가 "그래, 대감이 무안풀이로 자주 가십니까? “ 하고 가시로 찌르듯

이 묻는 말에 원형이는 "그것도 있지.” 하고 모호히 대답하고 말을 달리 돌리었

었다. 도손이 죽어 초종이 지나고 졸곡이 지난 뒤에 원형이가 원량을 보고 도

손의 집 일을 의논하였다. "도손의 안해를 어떻게 할까요? “ "어떻게 하다니?

” "젊은 부녀를 혼자 살림하라고 내버려 둘 수가 있어요? " "그러면 어떻게 하

나? “ "이 동리에 집이 한 채 있으니 그 집으로 이사를 시키고 돌보아줄까 하

오. " "그러면 더 말할 것이 없지. " 하고 원량이는 원형의 뜻을 동기간의 우애

로 알고 자기가 받는 것 같이 좋아하였다. 원형이가 도손의 안해를 가까이 이사

시키고 일동일정을 돌보아 주는데, 돌보아 주는 것이 너무 과할 뿐 아니라

수숙간에 혐의 없이 구는 것이 집안 이목에까지 거슬리었다. 난정이가 이것을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체하고 있다가 어느 날 밤 조용히 원형이를 대하였을 때 "

세상에 계집이 씨가 졌소? 대감의 행세가 무슨 행세요? 하고 토죄하니 원형이는

"종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 하고 도리어 화를 내었다. "내가 종이 없세요?

“ "그러면? ” "내가 종이 없더라도 대감같이 종없지는 않을걸요. " "발칙한 것

이로구나. " "인제는 별소리를 다하는구려. " "그리하다가는 뒤가 좋지 못할 게니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 " "자식새끼 낳아 가며 몇몇 해를 살다가 인제 쫓겨나

는가 보오그려. " "그예 무슨 일을 내바고 화를 돋우는 세음인가? “ "대감이 지

금 내게 화내시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전후 사정을 대비전에 품하여 볼 터이오.

" 하고 난정이가 대비를 내세우니 원형이는 갑자기 풀이 꺾이면서 "당치 않은

소리를 말아. " 하고 난정이의 눈치를 보았다. 난정이는 장흥 관비의 딸로 원형

의 첩이 되어 들어온 뒤 근 이십 년 동안에 원형의 일을 도와준 것이 많을 뿐

아니라 사람이 영리하여 대왕대비의 총애를 받는 까닭으로 원형이도 함부로 대

접하기 어려운 터이었다. "대감, 나를 샘바른 계집으로만 알지 마시오. 내가 이런

말씀 저런 말씀 하는 것도 모두 대감을 위해서 하는 말씀이오. " "그건 나도 알

아. " "그걸 아시면 왜 화를 내시오?” "화를 내게 말하는 것이 잘못이지. " "화

를 내는 것이 잘못이지. " 하고 난정이가 흉내를 내듯이 말하고 상긋 웃으니 원

형이 "입도 싸다. " 하고 난정의 등을 툭 치고 빙그레 웃었다. "대감 조처할 도

리를 생각하시오. 하인들이 창피하오. " "그래 그래 잘 알았다. 잘 알았어. 내가

조처할 게니 걱정 마라.“ "대감 믿습니다. 말이 왜자하게 나기 전에 조처하십시

오. " 그 뒤에 며칠 지나지 아니하여 원형이는 도손의 안해를 문밖 암자로 내보

내어 승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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