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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13)

카지모도 2022. 11. 1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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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계놈이가 그 뒤에 틈틈이 갑이를 보고 눈으로 뜻을 말하면 갑이도 두서너 번

에 한 번씩으로 대답하는데, 아리땁고 열기 있는 눈이 말로 하지 못할 말까지

말하는 듯할 때 계놈이는 온몸이 그 눈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계놈이

가 갑이의 혼자 있는 틈을 엿보고 지나는 중에 어느 날 밤에 순붕이 이기와 같

이 윤원형에게 가서 오랫동안 무엇을 공론하고 밤늦게 들아왔다. 아들들의 저

녁 문안을 받고 자리에 누워서 갑이에게 발바닥을 문질리다가 갑자기 "안에 더

운물이 있겠지? “ 하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발을 씻으시렵니까? ” "뒤를

볼까 하고 물었다. 벌써 여러 날 뒤를 못 보았는데 아까 윤판서 집에서 뒤 마려

운 것을 참았더니 지금 다시 마려운 듯하구나. " "하룻밤이라도 참으시면 내일

더 괴로우실 터이니 아주 보고 주무시지요. " "귀찮지만 그래 볼까. " 하고 순붕

이 곧 일어 앉아서 "이리 오너라. " 하고 상노를 불렀다. 계놈이가 엿보던 틈을

얻게 되었다. "사람 좀 살려라. " "누가 죽인다더냐? “ 이와 같은 몇 마디 수작

이 있은 뒤에 계놈이가 갑이의 손목을 쥐고 골방으로 끌었다. "놓아라. 놓지 않

으면 소리를 지를 테다. " "아무리나 해라. 죽기는 일반이다. " 계놈이가 열에 띄

어 정신없이 끄는데 갑이가 소리는 지르지 아니하였다. 갑이가 골방에서 나와서

머리를 쓰다듬고 앉았는데, 계놈이가 쭈그리고 앉아서 얼굴을 들여다보며 "속량

해 나가서 초례를 지내자. " 하고 속살거리니 갑이가 입속으로 두어 번 속량이란

말을 뇌다가 "어서 가서 대감의 쭉지나 치켜들고 오너라. " 하고 계놈이를 떠다

밀었다. 이 뒤로 계놈이는 갑이에게 매어 지내게 되어 갑이가 앉으라면 앉고 서

라면 서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아니 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때 옥사에

관련된 어느 집에서 그 집의 전가보물인 옥잔을 정순붕에게 뇌물로 보내었다.

순붕이 그 옥잔을 얻어가지고 아들들에게 칭찬하고 또 갑이에게 자랑하였다. 갑

이더러 말이 "내가 전에 너의 옛 상전에게서 이 옥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 "

하고 옥잔을 들어 보이며 "이 옥잔이 원나라 공주가 고려 임금에게로 시집 올

때 가지고 나온 것이란다. 옥빛만 보아도 예사 옥과 다르지 아니하냐? ” 하고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유씨가 보물 알아볼 눈이 있는가요? “ "남의 말을 듣고

말한 것이겠지. " "그렇지요. 사람이 몽종하고 쌀쌀할 뿐이었지 무슨 재주가 있

던 사람일세 말이지요. " "너로는 말이 과하다. " "과하기는 무엇이 과해요. 어릴

때 몹시 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는데요. " "원명이가 우리 갑이에

게 득죄한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구나.” (원명은 유인숙의 자다)

하고 순붕이가 실없이 말하며 허허 웃었다. 순붕이가 옥잔을 머리 맡에 놓고 보

다가 미처 간수하지 못하고 출입하였다. 갑이는 옛 상전을 들추어 말하게 된 것

이 옥잔 까닭이라고 생각하고 그 옥잔을 미워하여 혼자 있는 틈에 방바닥에 메

어쳐서 두 조각에 내었다. 갑이가 밖에 사람이 없는 틈을 엿보아 옥잔 조각을

가지고 나가서 쪼각쪼각 모아 가지고 땅을 파고 묻어버리었다. 순붕이 돌아왔을

때 옥잔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여 "옥잔 어디 갔느냐? “ 하고 놀랐다. 찾아보고

물어보고 한바당 야단법석을 내었건만 옥잔 간 곳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

의 의심이 갑이에게로 모이는데 순붕이 역시 갑이를 치의하지 아니할 길이 없었

다. "옥잔이 어디 간 것을 네가 모르느냐? ” "모릅니다. " "네가 혼자 이 방에

있었다면서 모르다니 말이 되느냐? “ "잠간 밖에를 나갔다 온 일이 있으나

있기는 혼자 있었습니다. " "밖에를 나갔다 왔을 때 옥잔이 있더냐? ” "있든

지 없든지 정신차려 보지 아니했습니다. " "무엇에 정신이 빠졌더냐? “ "편지

휴지 정돈했습니다. " 순붕이 한동안 쓴입맛을 다시다가 "옥잔이 없어진 것은 아

무래도 너의 소위이니 사기가 로란하기 전에 내어놓아라. " 하고 눈을 부릅뜨니

갑이가 쪽쪽 울면서 "제가 댁에 온 뒤로 재상가 자녀 부럽지 않게 지내는데 무

엇이 부족해서 도적질을 합니까? 또 제가 옥잔을 훔쳐서 무엇에 씁니까? “ 하고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하여 저고리 앞섶이 흠씬 젖었다. 순붕이 귀에 갑이의 말이

옳게 들리어서 "고만두어라. 우지 마라. " 하고 다시 쓴입맛만 다시었다.

 

8

계놈이는 옥잔이 없어진 줄을 안 뒤에 갑이가 벌을 받게 되지 아니할까 은근

히 걱정하여 맘이 조마조마하였다. 갑이가 종아리를 맞게 될까, 또는 물볼기를

맞게 될까? 물볼기를 맞는다면 그 꼴을 어찌 볼까? 갖은 생각으로 속을 태우며

윗간 영창 밖에 붙어서서 방안 동정을 살피는 중에 갑이의 발명하는 말과 순붕

의 용서하는 말을 모두 엿듣게 되었다. 계놈이는 혼잣말로 '그러면 그렇지. 갑이

가 그까짓 옥잔을 훔칠 리가 있나. ' 하고 갑이의 말을 역성들기도 하고 또 '갑

이가 아니었어 보아. 악지공사로라도 벼락을 내렸을 터이지. 바로 용서성이나 있

는 듯이, 고만두어라야. ' 하고 대감의 말을 비웃기도 하였다. 그날 저녁에 이기

가 정순붕을 찾아와서 윤결의 옥사를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언평에게로 가서 같

이 이야기합시다. " 하고 윤원형에게 가자고 말하여 순붕이도 "그렇게 합시다. "

말하고 곧 갑이를 불러서 출입옷을 내어놓으라고 이르게 되었다. 갑이가 순붕의

옷을 갈아입힐 때 순붕이가 "또 무엇이나 잃어버릴라. 똑똑히 방을 지켜라. " 하

고 넌지시 말하는 것을 이기가 귓결에 듣고 "대감, 무슨 실물하셨소? " 하고 물

어서 순붕이가 옥잔 없어진 일을 대강 이야기하고 그 옥잔이 오래 전부터 집에

전하여 오는 귀한 물건이라고 말한즉 이기가 "옥잔이 우화했구려. " 하고 허허

웃는데 순붕이도 "글쎄요, 우화했나 보이다.“ 하고 웃었다. 순붕이 나간 뒤에 갑

이가 계놈이와 붙어앉아서 서로 속살거리게 되었다. "사람이 분해 살 수가 없다.

" "대체 옥잔이 어떻게 되었을까? ” "그걸 낸들 아니? “ "너나 하니까 벌을

아니 받았지, 다른 사람이었더면 목숨이 위태하였을 것이다. " "고만둔다는 것이

의심이 풀린 것이 아니니까 나도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 " ”설마. " "설마가 사

람 잡아. " “그러면 어떻게 할 테냐?" "어떻게 하기는 어떻게 해? 당하는 대로

당하지. ” "애매히 죄를 당해? “ "당하지 않는 수가 무어야? 내가 고초를 받다

받다 못 견디면 너도 끌어넣게 될는지 모르니 이것만은 미리 알아두어라. " "공

연한 사람을 어떻게 끌어넣니? ” "훔치지도 아니한 것을 훔쳤다고 매질하며 대

라면 훔쳐서 너를 주었다고라도 말했지 별수 있니. " "나는 어떻게 하라고. " "죽

더라도 같이 죽지. " "같이 죽는 것은 좋지만 네나 내나 그런 얼뜬 죽음이 어디

있니? “ "나라 옥사를 생각해 보아라. 유명한 인물들도 모두 얼뜨게 죽는 세상

이니 우리야 말할 것이 있니. " "그래도 얼뜨게 죽을 까닭이 없다. 우리들이 오

늘 밤으로 도망하자. " "정신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 도망한다고 하여 십리 밖도

나가기 전에 붙잡힐 걸 도망한단 말이냐? ” "그러면 어떻게 하니?“ 하고 계놈

이가 조바심을 하는데 갑이는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한동안 말이 없다가 "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수가 있다. 옥잔을 훔쳐간 사람이 옥잔을 도루 갖다놓으면

우리는 살 것이다. " 하고 말하였다. "누가 훔쳐갔는지도 알지 못하며 어떻게 도

로 갖다놓게 하니? ” "내가 방자하는 법을 아니까 도루 갖다놓도록 방자해 보

면 어떨까 말이다. " "어서 해라. 훔쳐간 사람이 당장에 급살맞을 방자라도 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먼저 살고 보아야지. " "그런데 방자를 하라면 갓죽은 송장의

뼈마디가 있어야 한다. " "아이구, 그것을 어떻게 구하니? “ "팔 한 마디나 다

리 한 마디가 있으면 제일 좋고 손가락이나 발가락 마디 하나만 있어도 쓸 수가

있다. 네가 구해 줄 수 있겠니?” "그것을 어디 가서 구하니? “ "수구문 밖을

나가 보면 구할 수 있을 게다. " "송장이 있기로 어떻게 만지나" 하고 계놈이가

허락하기를 꺼리다가 갑이의 호들갑에 맘을 굳게 먹게 되어서 "내일 어머니 보

러 간다고 하고 수구문 밖에 나서서 구해 보마. " 하고 말하였다. 갑이가 뼈마디

구해 준단 말을 들은 뒤에는 계놈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뱅글뱅글 웃기도 하고

계놈이는 어깨에 입을 대고 옷 위로 자근자근 물기도 하였다. 계놈이는 꽃향기

에 취하는 나비와 같이 갑이의 냄새에 취하였었다.

 

9

계놈이가 무서움을 타는 까닭에 만일 갑이에게 흘리지 아니하였던들 초빈 송

장의 뼈마디를 훔치러 가려고 생의도 못하였을 것인데, 값이가 딴 기운을 주어

서 수구문 밖에 나가서 어느 거적 송장의 엄지손마디를 잘라오게 되었다. 갑이

가 남모르게 그 뼈마디를 받아 두었다가 순붕의 베갯잇을 고쳐 시칠 때에 슬그

머니 베갯속을 뜯고 집어넣었다. 순붕이가 밤메 꿈자리가 사나워서 식전 자리

속에서 갑이를 보고 "요즈막 신기가 좋지 못한 까닭인지 꿈자리가 괴악하다. "

하고 상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갑이가 뼈마디로 방자할 때 사나운 꿈자리를 바란

것이 아니므로 사오 일 된 뒤로는 다른 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이가

계놈이를 보고 "옥잔이 나오지 아니하니 달리 방자를 해보겠다. " 하고 말하니

계놈이는 "우리가 탈만 아니 당하면 고만이지 구태여 옥잔을 찾으려고 애 쓸 것이

없다. " 하고 갑이를 말리다가 갑이가 "옥잔 까닭에 치의 받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분해서 못살겠다. 내가 방자를 아는 대로는 골고루 해볼 테다. " 하고 고집을 세워서

계놈이도 "네 맘대로 해보려무나. " 하고 마침내 동의하게 되었다. "산도야지의

등성마루털이 있어야 할 터인데 네가 얻어 줄 수 있겠니?“ "사냥질 가면 얻어 줄 수

있지. " "남은 진정으로 말하는데 실없은 말이 무어냐. 너까지 내 속을 상해 줄 터이냐? ”

"아니다. 골내지 마라. 그러나 산도야지털을 어디 가서 얻어 오니? 집도야지털은

못 쓰겠니? “ "그건 나도 모른다. 나도 산도야지털만 쓴단 말만 들었다. " "그걸 어디

가서 구하나? 네 방자는 예사 방자가 아니로구나. 어째 그렇게 괴상한 물건만 찾느냐?”

"예사 방자거나 아니거나 얻어 달라는 거나 얻어다오. " "어디 물어서 구해 보마. " 하고

갑이에게 허락한 계놈이는 의심 사지 아니할 사람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는

중에 친한 별배에게서 갖바치들에게 가면 산도야지털이 있단 말을 듣고 그 별배

에게 얻어 달라고까지 부탁하여 며칠 뒤에 산도야지의 등성마루털 서너 낱을 갑

이 손에 쥐어주게 되었다. 순붕이 꿈자리 사나운 것을 성가시게 여기어 갑이를

보고 한걱정할 때에 갑이가 "약주를 좀 잡수시고 주무셔 보시지요. " 하고 말하

여 술취한 김에 별로 꿈이 없이 하룻밤을 지내고 그 뒤로는 잘 자리에 술을 먹

게 되었는데 "술도 하루이틀 먹어 버릇하니까 처음만 못해서 먹으나 안 먹으나

꿈자리가 사납기는 일반이니 술을 고만두고 싶다. " "한번 취하도록 잡수셔 보시

지요. " "글쎄. " 순붕이는 한번 폭취해 보려고 작정하고 갑이의 권하는 대로 술

을 받아 먹다가 나중에는 망양이 되어 자리에 꺼꾸러졌다. 갑이는 청지기와 상

노의 손을 빌어 순붕을 자리 속에 뉘인 뒤에 전과 같이 혼자서 수청을 잤었는

데, 밤중에 순붕의 몸을 흔들어서 정신 모르는 것을 보고 흔잣말로 "옳다, 되었

다. " 하고 일어나서 산도야지털을 순붕의 배꼽 속에 비비어 박았다. 겉으로 보

면 털이 박힌 것 같지도 않을 만큼 깜쪽같이 박았다. 순붕이 그날 밤 술에 취하

여 자리에 꺼꾸러진 채로 다시는 영영 일어나 보지 못하였다. 발상한 상제들은

경황 없는 중에도 그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허무한 것을 의심하여 시체도 자세

히 살펴보고 먹다 남은 술도 맛보았으나 수상한 흔적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정

렴이와 정작이 형제는 미리 짐작이 없지 아니한 터이므로 갑이의 동정을 유심히

살펴 보는데, 갑이가 조금도 수상한 거동이 없을 뿐 아니라 때때로 슬피 통곡하

는 것이 친자녀에서 지나면 지나지 못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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