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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18)

카지모도 2022. 11. 1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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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명률 조문에 비추어 보면 부모, 조부모가 자손을 죽인 죄는 예사 살인과 달라

서 형벌이 중하지는 아니하나, 역시 인명에 관한 죄인 이상에 아무리 경하게 치

죄한다 하더라도 장일백은 의당향사일 것이고, 또 재상은 소민과 달라서 함부로

치죄하지 못한다 하더라초 법관이 논죄하여 해당한 견전을 물을 일이지마는, 원

형은 두리손을 죽이고 법관에게 논죄를 당한 일이 없었다. 법관이 원형의 죄를 몰랐

다느니보다도 원형을 논죄할 법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도 여

차 일이다. 원형의 하인이 외방에 나서 살인하는 일이 있어도 시친이 하인의 기

세에 눌리어서 관하지 못하고, 수령이 원형의 세력을 겁내서 살옥을 일으키지

못하는 판이며, 또 살인과 같은 죽을 죄를 지은 범이라도 원형의 집에 들어가

있게만 되면 군교 , 포교가 당초에 잡을 생각을 먹지 못하는 판이니, 원형이 저

의 손으로 처 자식을 죽인 것쯤은 죄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원형은 형을 해치

고 자식을 죽이고도 뉘우치는 맘이 없을 만큼 위인이 한독할 뿐 아니라 갖은 악

덕이 구비하여 갖은 악을 다하였는데, 그중에 심하고 심치 않은 것을 갈라 말하

기도 어렵지만, 말하려면 가장 심한 것이 탐심이었다. 이끗에는 친족도 없고 친

구도 없어서 조카에게서 남녀 노비 백여 명을 빼앗고, 동리 친구에게서 전가 보

물을 빼앗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연년이 일어나는

큰 옥사에 번번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얽어놓고서 뇌물의 다과로 형벌

의 경중을 달리하고, 또 각 고을 수령으로부터 각진 무직과 각도 방백에까지 뇌

물을 받고 올리고 옮기고 하여 원형의 집문간에는 뇌물짐이 그칠 날이 없었다.

어느 때 북도의 변지한 사람이 전동 백여 개를 한씸에 묶어 바치었는데, 원형이

전동이란 물목을 보고 "미친 것이로군. 내가 한량인가? 전동은 무엇에 쓰노. "

하고 긴치 않게 생각하여 그 짐을 풀어보지도 아니하고 광 속에 들이뜨려 두게

하였다. 얼마 뒤에 그 사람이 벼슬이 갈리어 서울로 올라와서 원형에게 문후하

러 온 길에 "향자의 전동은 감하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원형이 긴치 않게 여

기던 것을 돌이켜 생각하고 "전동은 그렇게 많이 보내서 무엇에 쓰나? ” 하고

신신치 않게 대답하였다. "전동 속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 "아니. " "대감께

서 전동을 받으셨단 말씀 한마디가 없으시기에 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 "속

에 무엇이 들었나? ” "녜, 지금 좀 갖다가 보시지요. " 원형은 하인을 불러서

그 전동을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하인이 광속에 들어가서 이 짐 저 짐 속에서

간신히 찾아내온 뒤에 짐을 푸르고 전동 뚜껑을 뽑으라 하고 보니 전동 속에서

초피 한 장이 나왔다. 전동 하나에 초피 한 장씩 초피가 백여 장인데 초피나마

여간 힘들여서는 구하기 어려운 극상등 초피이었다. 원형이 맘에 흐뭇하여 싱글

벙글하면서 "그걸 누가 알았나? 자네에게 미안했네. " 하고 사과하듯이 말하고 "

자네 이번에 어디로 옮겼어?“ 하고 이직된 것을 물었다. "위원이올시다. " "자

네가 위원 같은 데를 갈 수 있나? 어디 의주로 옮겨보세. " "황송하오이다. " 그

때 의주부윤이 벼슬자리가 위태한 것을 탐지하고 원형에게 뇌물을 바치었는데,

그 뇌물은 백미 삼백 석에 백미 실은 배까지 바치는 것이었다. 원형이 이미 초

피 백여 장에 허락한 일이 있으나, 백미 삼백 석을 받고 모른다 할 염의가 없어

서 초피를 의주부윤으로 보낼 때에 백미는 좋은 내직으로 부르게 하였다.

 

10

충주 부자에 고비란 사람이 있었으니 위인이 다랍게 인색하여 자린고비로 유

명하였었다. 고비의 큰아들 고치는 그 아비와 딴판 달라서 잘 먹고 잘 입고 기

생 외입까지 할 줄 알아서 고비가 죽는 날까지 개미 금탑 모으듯 모아놓은 재물

이 차차로 줄어들었다. 한있는 재물은 줄어들고 한없는 씀씀이는 늘어나가서 장

자 칭호를 듣던 고치가 겨우 견딘다는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거지 다 되었다는

소문까지 나게 되었다. 고비의 모아놓은 재물이 워낙 엄청나게 많아서 거지 되

었다고 소문났을 때도 고치의 집안 식구 먹을 것은 넉넉히 끼쳐 있었다, 그러나

재물이 빠진 뒤로 남들이 사람을 넘보아서 친하게 상종하던 친구들까지 예사로

고치를 앉혀놓고 고비의 행사를 흉보았다. "저 사람의 집에 지금도 썩은 조기가

남아 있을걸. 전에 조석 반찬으로 매달고 치어다보던 조기가 어디 갔을라구. "

하고 한 사람이 고치를 가리키면서 웃으면 "이 사람, 자네 선장이 쥘부채를 한

쪽씩 펴서 부치다가 전주 자린꼽짝이를 만나서 부채는 펴서 쥐고 고개만 흔드는

법을 배웠다니 참말인가7" 하고 다른 사람이 웃으면서 고치에게 말을 붙이다가

고치가 "미친 사람들. " 하고 꼴을 내며 일어서면 "고만두게 . " "잘못했네 . "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이 함께 고치를 붙들어 앉히고 얼마 아니 있

다가는 또다시 슬금슬금 조롱하였다. 고치가 친구들에게 조롱받는 것이 속상할

뿐 아니라 저의 아비 생전에 부자인 체도 못하던 김개의 집에서 세간이 늘어서

부자로 기광을 부리는 것이 눈꼴이 사나워서 구사한다고 핑계하고 서을 와서 유

경하고 집에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충주 부자 김개의 아들이 초사하려고 연줄을

얻어서 원형에게 청질하였더니 원형이 "김개라면 팔도에 이름난 부자인데 그 아

들이 빈 청질로 초사하려는 것은 잘못 생각이지. " 하고 말하여 김개의 아들이

이 말을 듣고 누에고치 이백 석을 뇌물로 바치었다. 이때 원형이 겸이조판서로

있어 이조일을 총찰하던 때라 어느 날 각릉 참봉의 궐난 자리를 보충하게 되어

좌랑이 붓을 들고 원형 앞에 앉아서 원형의 부르는 이름을 받아쓰게 되었는데

너댓 사람의 이름을 적은 뒤에 좌랑이 “양주 현릉이올시다. " 하고 기다리다가

원형이 너무 오래 끄는 것을 괴상히 생각하여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들고 쳐다

본즉, 원형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원형이 전날 밤에 새로 들어온 약방 기생

하나를 불러다가 수청들이고 밤잠을 잘 자지 못한 까닭에 몸이 노곤하였던 것이

다. "현릉이올시다. 누구로 내시렵니까?” 하고 좌랑이 조금 소리를 크게 한즉

원형이 여전히 졸면서 "현릉?“ 하고 능 이름을 한번 받아 옮기고는 다시 말이

없었다. ”녜.“ 하고 좌랑이 대답하고 다시 한동안 기다리다가 "누구입니까? "

하고 목소리를 크게 하여 물은즉 원형이가 "고치, 고치.” 하고 엉절거리듯이 말

하였다. "고치에요?“ "응. " "어디 고치입니까?" "유신현.” 하고 원형은 고개를

끄드럭거리었다. 고치가 다년 유경하던 끝에 영문 모를 참봉 초사를 얻어 하고

원형에게 문후하러 왔다. 원형은 참봉쯤이 와서 쉽게 볼 수 없는 사람이라, 고치

가 육칠 차 허행한 뒤에 원형의 집사람 한둘을 술잔 대접하고야 원형의 얼굴을

얻어보게 되었다. "성명이 고치라지?" "고향이 어디? 유신현이야? “ "김개라는

부자와 한고향이겠군? ”원형이 김개의 아들을 초사시킨다는 것이 잠결에 사람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뇌물로 온 고치를 불러서 사람 고치가 움 안에서 떡을 받

게 된 터이라 원형이 발설은 아니하였으나 속으로 고치가 운수 뻗친 놈이다 생

각하여 "꿈 잘 꾸었네. 가서 능 수호나 각근히 하게. " 하고 고치를 현릉으로 보

내었다.

 

11

원형이 벼슬장사에 날도적까지 겸하여 불과 오륙 년간에 긁어 모은 재물이 벌

써 일국의 으뜸 될 만하였다. 서을 안에 있는 큰 집이 열여섯 채요, 팔도에 널려

있는 전답이 만여 두락이요, 드난하고 거행하는 종이 백여 명 외에 나가 살며

몸세 바치는 종이 사오백 명이요, 시골 각처에 나눠놓은 소가 칠팔백 필이요, 집

안에 쟁여 있는 상목이 팔구천 동이요, 다락과 벽장에 능라주단과 금은보옥이

쌓여 있건마는 원형은 오히려도 부족하여 북경 사신 편에 중국비단을 사들이고

동래 왜관에서 왜국은을 사올렸다. 원형의 외람하고 방자한 것이 한이 없어 조

석 식사를 궁중과 같이 수라라 이름하여 수랏간에 사나이 숙수를 두고 궁중에서

도 귀하게 여기는 타락죽을 아이들까지 배불리 먹이고 임금이 거동할 때 소연을

대연으로 바꾸듯이 출입할 때 중문간까지 소여를 타고 나와서 사인교나 평교자

를 바꾸어 타고 임금이 신하의 조의를 받듯이 식전에는 대청에 놓인 주홍교의에

나앉아서 하인들의 문안을 받되 요란한 긴 대답소리 속에 이백여 명이 한결같이

진퇴하게 하고 또 하인들도 궁중과 비슷하게 소임을 따라서 명칭을 달리하여 사

환하는 계집하인을 시녀라 하고 일 맡은 계집하인을 감찰이라 하고, 사환하는

사내하인을 사약이라 하고, 일 맡은 사내하인을 차지라 하였다. 도차지는 고사하

고 차지쯤만 되어도 외방에 나가서 수령까지 눈에 두지 않고 마음대로 기세를

부릴 수 있었다. 어느 때 용인 땅에 나눠 먹이던 소 삼십여 필에 이십오륙 필이

우역에 축이 나서 도차지가 차지 하나를 내보내게 되었는데, 그 차지가 용인서

어느 동네의 큰 집을 치우고 앉아서 소 먹이던 농군들을 불러다 놓고 소들을 물

어놓으라고 땅방울같이 얼렀다. 그중의 똑똑한 농군 하나가 여러 사람의 앞으로

나서서 "우리들이 잘못 먹여서 죽은 것 같으면 물어놓아도 원통치 않지만 우역

에 죽은 것은 물어놓을 수 없습니다. " 하고 말마디를 하다가 골이 난 차지에게

사재로 얻어맞아서 얼굴에까지 생채기가 나게 되었다. 조정암 집 산지기 한 사

람이 원형의 소를 농우로 먹이다가 죽이고 불려와서 여러 농군들 틈에 섞여 있

다가 차지의 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서서 "저도 양반댁 산지기를 거행합니다

만 양반의 댁 일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잘못 먹여서 죽었더라도

용서하실 터인데 우역에 죽은 소를 물어놓으라실 수가 있습니까. " 하고 말하는

중에 차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보고 있다가 "이 자식, 양반의 댁 묘리를

잘 아는구나. 경칠 자식 같으니. " 하고 데리고 온 사람들을 시켜서 그 산지기를

여러 차례 끄들렸다. "용인놈들이 천하 괴악한 놈들이다. 내가 부처님이라도 용

서할 수 없다. 사흘 안으로 부정지속이라도 팔아서 물어놓아라, 없는 놈들은 족

징을 시킬 테다. " 하고 호령하여 농군들을 돌려보내고 말한 대로 사흘 안에 이

십오륙 필 소를 모두 물리는데 밭뙈기라도 있는 사람은 당자에게 물리고, 물 것

이 없는 사람은 일가에게 물리고, 일가도 없는 사람은 동리에 물리었다. 이때 조

정암 집에서 원형의 하인이 행착한다는 말을 듣고 징치하라고 용인현령에게 기

별하였더니 현령이 그 차지를 잡아오지는 못하고 보자고 말하여 관가로 불러들

이었다. "우역에 죽은 소를 물린 것이 참말인가? “ "그건 왜 물으시오. " "먹

이던 농군이 잘못해서 죽인 것도 아니고 우역에 죽은 것을 물리는 것이 너무 억

울하지 아니한가? ” "이번 우역에 용인 일읍 소가 다 죽었나요? 다른 사람은

죽이지 않는데 죽인 것만도 잘못 먹인 죄이니까 물려 싸지요. " "그러나 그건 너

무 심한걸. " “심하고 안 심하고 간에 우리 대감댁 일에 원님이 무슨 참견이오.

" "원이란 것이 백성의 억울한 것을 보살필 직책이 있으니까 일부러 불러서 말

하는 것이야.” "그 직책을 다른 데다 쓰시오. " "대감이 물리라고까지 분부하셨

을 리는 만무한 일인즉 정녕코 중간 작폐이지. " 하고 원이 차지 대답에 화가 나

서 언성을 높이니 차지는 냉소하면서 "여보시오, 원님은 우리 댁 대감이 조선 일

국을 전제하시는 줄 모르시오. 공연히 그러지 마시오. 나는 오늘 할 터이니까 곧

나가겠소. 더 물으실 말씀 없지요. " 하고 그 차지가 돌아서 나가는데, 용인현령

은 관속 보기 부끄러울만큼 무료하였다.

 

12

원형의 차지가 축난 소를 채워놓을 뿐 아니라 용인현령까지 망신 주고 의기양

양하여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서빙고 나루에 당도하니 마침 나룻배가 사람과 마

소를 실을 만큼 싣고 빨랫줄 두어 길이쯤 떠서 나간 때다. "사공아. " "사공아,

배를 돌려라. " "배를 도로 대지 못하느냐7" 사공이 노질하던 손을 쉬고 "한 배

만 기다리시오. " 하고 맞소리를 치니 "사공놈 머리가 둘이냐? 잔소리 말고 배를

도루 대어라. " 하고 호기 부리는 것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 눈에는 행악 잘하는

양반의 행차같이 보이었다. 사공이 "제기 사공질도 못 해먹어. 비위가 아

니꼬워 살 수가 있나. " 하고 중얼거리면서 뱃머리를 돌리었다. 이때 영남 양반

한 분이 고물편에 타고 있었는데, 이 양반이 노질하는 사공에게 말을 물었다. "

저 호기 있는 양반이 성씨가 누구인 것을 사공이 짐작하는가? “ "양반이 무슨

양반이에요. 양반의 집 하인이랍니다. " "양반의 집 하인? ”하고 영남 양반의

얼굴에 놀라는 빛이 나타났다. "윤 무슨 군 집 하인이랍니다. 그 집 개새끼도 지

금은 양반보다 무서우니까요. " "응, 윤원형의 하인이로군. " "며칠 전에 시골

내려갔었는데 가까운 시골을 갔다 오는구먼요.“ 배가 사장에 닿으며 그 차지가

사공을 보고 "배를 돌리라면 빨리 돌릴 것이지, 기다려라 말아라 잔소리가 무어

냐? ” 하고 개 꾸짖듯 꾸짖고 나서 배에 오르더니 고물 근처에 물기가 적은 것

을 보고 여러 사람을 비키고 와서 영남 양반에게 가까이 서 있었다. 배가 강물

한중간을 지나 건너온 때에 섰던 차지가 다리가 아프든지 영남 양반의 옆에 와

서 앉으려고 "자리 좀 비키시오. " 하고 그 양반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

고는 "귀가 먹었나, 저리 좀 비키오. " 하고 떠다밀려고 하였다. "이게 무슨 짓이

니? “ "무어요? ” "내 옆에는 너의 앉을 자리가 없다. " 하고 호령기 있게 말

하며 차지를 치어다보는데, 그 양반의 기상이 심상한 사람과 같지 아니하였다.

차지가 떠다밀지는 못하고 "별 사람도 다 보겠다. " 하고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배가 이편 나루터에 닿아 사람과 짐승이 모두 배에서 내린 뒤에 영남 양반이 데

리고 오던 하인을 돌아보며 "저기 저 사람을 이리 좀 데려오너라. " 하고 그 차

지를 가리켰다. 차지가 속으로 '우스운 꼴을 다 보는 게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 양반 앞에 와서 섰다. "네가 윤원형의 집 하인이라지? “ "그건 물어서 무어

할 테요. " ”이놈, 남의 집 하인놈이 양반을 몰라보느냐? 너 같은 놈은 버릇을

좀 알려야 한다. " 하고 곧 옆에 섰는 하인을 보고 "이놈을 끄들러라. " 하고 호

령하여 무식한 시골 하인이 차지의 뒤통수를 쳐서 갓 탕건망건을 한꺼번에 벗기

고 상투를 잡고 회술레를 시켰다. 뱃사공과 나루터에 사는 사람들이 속으로 시

원히 여기면서도 "물계 모르는 시골 양반이 범의 아가리에 손 집어넣네. " "저

양반이 뒤탈을 안 당할 리 만무하지. " 하고 서로 수군거리었다 영남 양반이 그

차지를 꿇어엎어 놓고 "나는 영남 사는 조판관이다. 너의 상전에게 하인 버릇 잘

가르치라고 내 말로 말해라. " 하고 이른 뒤에 나귀를 타고 하인에게 견마 들리

고 문안으로 들어 갔다. 그 차지가 부서진 갓에 찢어진 망건을 쓰고 진흙 묻은

옷을 입고 원형의 앞에 와서 "서빙고 나루터에서 시골 양반에게 욕을 잔상히 보

았소이다. 대감댁 하인이라고 소인을 욕보이는 것이 거심은 괘씸하오나 양반 명

색을 어떻게 할 수 없사와서 욕을 당하고 왔소이다. " 하고 하소연하니 원형이 "

내 집 차지를 욕보인 양반놈이 누구란 말이냐? “ 하고 화를 내다가 "영남 사는

조판관이라고 하옵디다. " 하고 차지의 말하는 것을 듣고는 "조식이로구나. 네가

잘못 걸렸다. 아무 소리 마라. 그자는 나도 꺼리는 터이다. " 하고 하인에게 분풀

이해 줄 수 없는 것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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