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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안해 김씨는 원형에게 소박을 받아서 명색만 내외이지 사실로 남과 같
이 지내었다. 원형이는 난정의 집에서 거처하고 김씨에게 오지 아니하였다. 김씨
가 정실이지마는 원형의 식사 한 때와 옷 뒤 하나를 아랑곳하지 못하므로 정실
이 정실 같지 아니하고 김씨의 집이 큰집이지마는 원형이가 지차이니 제사를 받
들 까닭이 없고 원형이가 사랑을 쓰지 아니하니 손님을 대접할 까닭이 없으므로
큰집이 큰집 같지 아니하였다. 난정이가 원형의 집안 일권을 손에 잡고 휘두르
나 그러나 나라에서 내리는 정부인이니 정경부인이니 하는 부인 직첩은 김씨에
게도 내리고 난정이가 안에섯님으로 마마님 소리밖에 듣지 못하니 이것이 난정
의 맘에 부족하였다. 난정이 골이 날 때는 "제가 무슨 턱에 정경부인인고. " 하
고 김씨를 귀넘어로 욕하며 혀도 차고 "마마님인지 호구별성인지 염병에 가마
귀 소리같이 듣기 싫다.“ 하고 저의 심정을 쏟아놓으며 눈물도 지었다. 김씨의
좌우에도 사람이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을 전하여 주는 사람이 없지 아니하여 김
씨는 들을 때마다 속에서 분이 복받치었다. 그러나 자기의 신세를 돌보아서 줄
곧 참고 지내는데, 어느 날 난정이가 자기를 이년 저년 하며 욕설하더란 말을
듣고 김씨는 눈에서 피가 날 듯이 분하였다. 욕설도 유만부동이지 이년 저년 종
년 대접은 너무 심하였다. "가만히 내버려 두니까 점점 더하는 것이다. " 김씨는
분김에 쫓아가서 야단치려고 맘을 먹었다. 김씨가 난정의 집에 와서 보교 밖에
나오면서 곧 마루에 섰던 난정이에게 손가락질하며 "이년아, 네년이 누구더러 이
년 저년 했니? 이년아, 아무리 기광을 부려도 네년은 관비의 딸년이고 첩년이지
야. 나는 봉치 받고 초례 지낸 양반의 정실이다. 네년이 누구더러 이년 저년 했
단 말이냐? 여우 같은 년, 오장 없는 사내만 홀리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
괘씸한 년 같으니. " 하고 입귀에 게밥을 지며 야단쳤다. 난정이는 얼굴이 새파
랗게 질리고 말 한마디 못하다가 김씨가 돌아간 뒤에 친상의 통부 받은 사람같
이 곡성을 내어놓았다. 원형이가 사랑에서 손과 이야기하는 중에 이것을 듣고 "
웬 곡성이냐? 알아보아라. " 하고 분부하여 난정이의 곡성인 것을 알고 안으로
들어와서 "별안간에 웬일이냐? ” "집안에 까닭없는 곡성이 사위스러우니 울지
말고 말을 해. " 하고 일러서 난정이가 눈물을 거두고 나서 말하였다. "봉치 받
고 초례 지낸 양반의 정실이 관비의 딸년 첩년에게 와서 무단히 야료를 하니까
야속해서 원통해서 분해서 소리가 나오는 줄도 모르고 울었습니다. " 원형이가
전후 사정을 들어서 안 뒤에 곧 하인들을 데리고 김씨에게 와서 안대청 들보가
울리도록 한바탕 호령질하고 김씨의 방에 있는 납채함과 혼인롱을 빼앗아 갔다.
김씨는 분한 끝에 자처하려고까지 하였는데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말리어서 죽
지는 못하였으나, 이내 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김씨가 병중에 식혜 생각
이 나서 병구원하는 늙은 할미더러 말하였더니 그 할미가 생각이 없이 "대감 잡
수시는 식혜 한 그릇만 가져오너라. " 하고 아이종에게 말을 일러서 아이종이 식
혜를 가지러 난정의 집에 왔었다. 난정이 이것을 알고 "아무리 원수라도 앓는 것
은 불쌍하다. " 하고 말라며 식혜를 큰 항아리째 갖다가 저의 손으로 조그만 항
아리에 나눠 담고 봉지를 봉하여 아이종을 주었다. 김씨가 속이 타던 끝에 식혜
가 시원하다고 맛도 모르고 한 그릇을 다 먹더니 한 시각이 못 지나서 타던 속
이 짜개지고 찢어지는 것 같다고 하며 자반 뒤집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기진역진
하여 말도 못하고 간신히 손으로 가슴을 가리킬 뿐이었다. 김씨가 죽은 뒤에 손
발 끝이 검푸르고 아래웃니에 검은 피가 엉키어서 누가 보든지 병에 죽은 것 같
지 아니하였다. 그의 친정어머니 강씨가 이것을 와서 보고 식혜 내력을 물어 안
뒤에 항아리에 남은 식혜 속에 은가락지를 넣어보니 은빛이 당장에 시커멓게 변
하였다.
6
강씨가 자기 집에 돌아가서 조용히 아들을 보고 식혜에 은빛이 변하던 것을
이야기하고 형조에 정장할 것을 의논하니 그 아들이 "지금 형조는 윤가의 집 사
가 형조나 다름이 없어요. 그런 형조에 잘못 정장하다가는 도리어 욕보기가 쉬
우니 생각 마십시다. " 하고 그 어머니를 말리었다. "죽은 사람이 불쌍하지 아니
하냐? “ "누가 불쌍하지 않답니까. " "그러면 원수를 갚아 주어야지. " "지금은
윤가의 세력이 충천한 까닭에 할 수 없지만 저도 휘짝 넘어박힐 날이 있을 것이
니까 그때까지 기다리십시다. " 하고 그 아들이 말하여 강씨는 김씨의 수상한 죽
음을 탄하고 나서지 아니하였다. 원형이 상처한 뒤에 속현하지 아니하고 난정을
부인으로 올리었다. 이때 난정의 친정 오라비 정담은 장흥서 관노를 다니었는데
관노 오라비 있는 것이 정경부인의 수치라 원형이 장흥부사에게 기별하여 노적
의 이름을 없이하고 서울로 이사시키었다. 정담은 지각 있는 사람이라 원형과
난정이가 장래 화패 받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원형의 집에 왕래를 끊으니 난정
이 한번 와서 보고 야속하다고 사설하고 또 오괴하다고 백망하였다. 난정이 다
녀간 뒤에 정담은 자기 집 앞마당에 꼬불꼬불하게 담을 쳐서 사람 하나 간신히
드나들게 만들어놓고 들어앉으니 이것은 사인교나 보교 탄 사람을 오지 못하게
막는 뜻이라 난정이 이것을 알고 "남매간이라고 남만도 못하다. " 하고 골을 내
었다. 난정의 골이 저절로 풀린 뒤에 어느 날 원형을 보고 "우리 오빠가 사람은
괴상하지만 나로는 모른다 할 길이 없으니 내 낯을 보아서 택호나 부르게 초사
하나 시켜주시오. " 하고 청하니 원형이 머리를 흔들며 "초사는 어려을 것이 없
지만 일껀 돌보아주어도 제가 싫다고 내빼는 것을 나는 알은 체하기 싫소. 제가
아쉬우면 오겠지. 제가 오거든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 하고 청을 듣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정담은 원형에게 오지 않을 뿐이 아니라 난정도 모르게 슬그머
니 원추로 이사 내려가서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난정이 친동기
에게 의절을 당한 뒤에 자기의 몸에 죄악이 있는 것을 돌이켜 생각하고 저으기
선심이 나서 문간에 오는 중이나 동냥아치를 후히 대접하여 보내게 하고, 또 용
왕에게 발원한다고 춘추에 한 번씩 섬쌀로 밥을 지어 강물에 풀게 하였다. 난정
이 정경부인을 바치던 이듬해 구월에 대왕대비가 상국연으로 내연을 배설하고
공신들의 부인을 불러들이는데 전에 없이 과부 된 사람까지 불러 참예하게 하였
다. 대왕대비는 이 때 춘추가 사십이 훨씬 넘었으나 본래 기부가 좋은 까닭으로
왕대비보다 오히려 젊어 보이는 터인데, 이날은 몸을 특별히 치장한 까닭으로
일층 더 젊어 보이었다. 잔치가 벌어져서 중간이 지난 때에 대왕대비가 국화잎
을 따서 넣은 국화주를 서너 잔 마시고 술 뒤의 풍치가 소조하지 않아서 국화를
많이 꺾어오라 하여 손수 한 가지를 뽑아 머리에 꽂고 공신들의 부인을 돌아보
며 꽃을 꽃으라고 권하니 여러 부인들은 차례를 다투어 꽃가지를 뽑는데 홀로
임백령의 부인이 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 대왕대비가 이것을 보고 "공신의
집안은 국가와 한집 같은 터이라 내가 지금 여러 부인들을 한집안 사람같이 보
는 까닭에 나도 미망인의 몸이지만 먼저 머리에 꽃을 꽂았으니 부인도 한 가지
를 꽂아 보라. " 하고 말씀하나 임백령의 부인은 "황송합니다. " 하고 대답하고
여전히 꽃가지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 난정이 자리에 일어나서 임백령 부인의
앞으로 나가더니 "부인이 미망인의 몸으로 꽃을 꽂지 않으시는 것은 예에 합당
하나 부인이 신자의 몸으로 대왕대비의 명을 어기는 것은 예에 합당치 못하니
부인으로는 꽂기도 어렵고 아니 꽂기도 어려우신 터이라 제가 외람히 대비의 명
을 봉행하기 위하여 한 가지 꽃아 드립니다. " 하고 임백령 부인의 머리에 꽃가
지를 꽂아주었다. 임백령 부인의 얼굴에 불쾌한 빛이 현연히 나타났지만, 꽂은
꽃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여 공신 부인들에 꽃 안 꽂은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
니 대왕대비가 대단히 기뻐하여 난정의 재치를 칭찬하였다. 다른 부인들은 칭찬
받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여 "평지돌출로 정경부인 바치는 사람이라 다르구려.“
"그러 고말고요. " 하고 서로 속살거리었다.
7
내연이 파하여 다른 부인들이 물러나갈 때에 난정은 뒤에 떨어져서 대비를 침
전에까지 모시고 왔었다. 대비의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난정이
도 물러나가려고 한즉 대비가 "별로 볼일 없거든 이야기나 더 하다가 나가거라.
" 하고 붙들었다. 대비가 임백령 부인의 엄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고 "숭선의 부
인은 사나이 같드구나. “ (숭선은 임백령의 군호이다. ) 하고 말씀하니 난정이 "
그렇기에 팔자가 거세서 과부가 되었습지요. " 하고 자발없이 대답하고 나서 대
비 존전에 과부란 말이 거침 있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덮으려고 "숭선군씨 살
았을 때 그 부인을 어머니같이 무서워했더랍니다.” 하고 고쳐 말하였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옥매향이를 들여앉히게 가만두었더란 말이냐? “ "그 부인이 첫
아이 낳고는 내소박을 했더랍니다. " "그것은 어째서? ” "아이 낳기가 양반 부
인의 두번 못 당할 욕이라고 남편을 가까이하지 않았답니다. " "별사람이다. " "
괴상스러운 사람입지요. 신 같은 것은 천골이라서 그러하온지 다 큰 자식들이
있건만도 지금 하나쯤 더 낳고 싶은 맘이 없지 않습니다. " 하고 난정이가 해해
웃으니 대비도 빙그레 웃으면서 "너도 그저 몸하느냐? “ 하고 묻고 "나는 성가
시어 못 견디겠다. " 하고 말씀하는데 마침 어린 왕이 문안을 들어왔다. "오늘
곤하시지요? ” "대단치 아니하다. " "지금 무엇이 성가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 "아니다. " 자리에 일어섰는 난정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것을 왕이 치
어다보며 "왜 웃느냐? ” 하고 묻는 것을 대비가 가로막고 "아니라니까 그러는
구나. 그러고 저 사람도 전과 달라서 일품명부니까 해라하지 마라.“ 하고 말씀
하여 자전 말씀에 복종을 잘하는 왕이 난정을 바라보고 "잘못했소. " 하고 말씀
하니 난정은 옷깃을 고쳐 여미고 머리를 구부슴하며 "황감하오이다. " 하고 대답
하였다. 난정이 궐내에서 나올 때에 대비가 상급으로 내린 남치마차를 가지고
나와서 원형을 보이며 임백령 부인에게 꽃 꽂아 주고 상급 받은 것을 이야기하
고 "상급뿐인 줄 아시오. 대비마마께서 오늘은 특별히 좋아하셔서 대전께 해라
말라고까지 말씀하셨소. " 하고 상글상글 웃으니 원형이 난정의 얼굴을 향하여
손가락을 까댁이며 "그것이 다 내 덕인 줄이나 알아. " 하고 웃었다. "덕으로 알
고 모르고가 어디 있세요. " "덕은 덕으로 알아야지. " "대비마마의 덕은 무엇으
로 갚으실라오 ? ” "무엇으로 갚아, 충심으로 같지. " "여보시오. 대비마마께서
아직도 아이 낳이하시겠습디다. " "그건 무슨 동에 닿치 못한 소리야? " “글쎄
말이에요. " 난정이는 저 흔자서 무슨 생각을 하다가 "사람이 지위가 높으면 높
을수록 행신하기가 거북합디다그려. " 하고 말하니 원형이는 저의 의사로 난정이
정경부인이 된 뒤에 행신이 어렵다는 말로 듣고 "정경부인으로 모든데 수빠지
지 않기도 쉽지 않겠지만 여편네는 사나이처럼 셈이 많지 않으니까 오히려도 좋
지. 사나이는 벼슬한 계제 한 계제에 셈이 다 각각이야. 대신이 좋은 줄들 알지
만 대신 노릇같이 귀찮은 일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니.” 하고 높은 벼슬에
셈이 많은 것을 길게 말하였다. "나는 그런 말이 아니에요. 비이니 빈이니 하는
귀인들이 여염가 부녀보다 거북한 일이 많다는 말이에요.“ "그거야 물론 그렇겠
지. " "첫째 양반부터 거북한 것이니까요.” "관비가 생각나는가? " "방수에 꺼리
는 말을 마시오. " "왜 방수는?" “내가 관비가 되면 대감은 어떻게 되오? ” "
쓸데없는 소리 다 한다. " "그렇기에 그런 소리 마시란 말이에요.“ "내가 조금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설마하고 원형이는 앞일을 생각하다가 그치고 "술이나
한잔 먹을까? ” 하고 난정이를 돌아보았다.
8
원형이 난정의 방에서 술을 마시는 중에 난정의 소생딸 아가년이 저녁 문안하
러 방으로 들어왔다. 아가년이가 얼굴 바탕은 어미를 닮아서 밉상이 아니나 한
눈은 크고 한 눈은 작아서 짝눈이 보기 흉하였다. 원형이 술김에 "저것이 눈만
아니면 좋은 사위를 얻어 줄 수 있지만 눈이 저러니. " 하고 한구석에 섰는 아가
년을 가리키며 실없이 말하니 아가년은 얼굴을 붉히며 눈을 아래로 깔고 난정은
"사지 병신이면 좋은 사위 안 얻어 줄 터이오?" 하고 성을 내었다. "서출 짝눈이
를 누가 잘 데려가려고 하나. " "서출이 무어요? 내 딸이 서녀란 말이오? “ "골
낼 일도 많다. 혼자 낳은 딸인가. " 난정이가 원형의 말은 대꾸하지 아니하고 아
가년을 바라보며 "네 방으로 가거라. " 하고 포달스럽게 말하여 아가년이가 원형
에게 절하고 돌아서는데 크고 작은 눈에 다같이 눈물이 맺히었다. "실없은 말에
골낼 것이 무어야. " "실없은 말도 대중이 있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 애가 눈이
남만 못해서 분해 죽으려고 하는데 세워놓고 그게 무슨 말이오. " "잘못했소. 실
없은 말이지. 사실로야 내 딸이 사지 병신인들 사위를 못 얻을까. " "그러고저러
고 그 애 혼인을 어디로든지 속히 완정합시다. " "통혼 들어온 데도 많으니까 낭
재를 간선해서 정하지. " 원형이 국가에 공로가 있다고 그 서출 자녀를 통적하여
적실 소생과 같이 하라고 대비가 전교를 내린 일까지 있었으나, 적서를 가르는
관습이 흉악하던 때라 적자를 가지고 난정의 소생 아가년과 혼인하자 할 사람이
적을 일이지만 세력 좋은 원형과 사돈할 욕심으로 통혼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중
에는 누대 봉사에 맏며느리로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아니하였다. "남
의 집 지차 며느리로는 주지 마시오. " ”지차는 어떤가? “ "맏동서에게 쪼들려
지내지요. " "지차도 지차 나름이지. 우리 형수들에게 쪼들린 일이 있나? 자기
일을 생각해 보지. 좋은 사윗감만 고르면 고만이지. " 아가년이는 저의 방에 돌
아와서 종작없이 울다가 나중에 "자기가 낳지 내가 낳나. " 하고 주작없는 말로
아비를 원망하기까지 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아가년이가 저의 방애서 경대를
버티어 놓고 얼굴에 분을 바르다가 경대 속의 짝눈이 전날 밤 아비의 말을 돌이
켜 생각하게 하여 새삼스럽게 눈물을 흘리는데, 그때 마침 원형의 아들 두리손
이 난정에게 아침 문안하고 나가는 길에 "누이 일어났나? ” 하고 방문을 열었
다. "왜 꼭두식전에 울고 앉았어요? “ 아가년이 대답이 없이 손으로 눈을 가리
다가 "오빠, 잠깐 들어오우. " 하고 말하여 두리손이 방으로 들어온 뒤에 아가년
이 부모까지 짝눈을 흥보시 분해 살 수 없다고 사정하니 두리손이 "그렇지, 구렁
이를 구렁이래 맛인가. 아버지 말이 잘못이지. " 하고 허허 웃었다. 아가년이는
뺨 맞고 하소연하다가 볼기 맞은 셈이라 입술을 악물고 돌아앉았다. 아가년이가
머리를 싸고 드러누워서 죽네 사네 하니 난정이가 처음에는 "지각없이 굴지 마
라, 너의 아버지가 약주가 취하셔서 실없은 말씀 하셨거든 무엇이 그리 야속해
서 죽네 사네 한단 말이냐. " 하고 아가년을 나무라다가 두리손과 말다툼하였다
는 아이종의 말을 듣고 "그놈이 볼기가 가렵든가 종아리가 가렵든가 어디 보자.
" 하고 두리손을 별렀다. 두리손은 원형이 외입하여 낳아 온 자식이라 난정이 사
랑하는 맘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날 저녁때 원형이 안에 들어와서 난정의 참소
를 받고 곧 두리손을 불러들이어서 앞에 세워놓고 "네가 아가년이를 어떻게 했
기에 아가년이가 죽네 사네 하냐? 조금이라도 기일 것 같으면 다리뼈를 분질러
놓을 테니 바른 대로 말해라. " 하고 어르니 두리손은 눈이 휘등그래졌다. "별말
한 일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짝눈이라고 흉보시더라고 사정하기에 아버지 말씀
이 잘못이라고 위로조로 말했을 뿐입니다. " "무엇이 어째? “ 하고 원형이 옆에
놓였던 여의를 들어 두리손을 내리쳐서 두리손은 해골이 깨어져 당장에 즉사하
였다. 원형이 본래 죽일 맘이 있던 것이 아니지만 손에 살이 있던지 죽여놓고는
"그까짓 놈 죽어 싸다. " 하고 그날 밤으로 하인을 시켜 두리손의 시체를 강물에
갖다 띄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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