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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19)

카지모도 2022. 11. 17.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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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식은 이름 높은 큰 선비라 나라에서 은일로 불러서 단성현감을 제수하였더

니, 권세 있는 윤원형이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병들리는 때에 사환에 종사할

맘이 없어 조식은 곧 상소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조식의 사직 상소

에 시폐까지 말하였는데 그중에 "자전은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선왕의 한 아

들일 뿐이니 천백 가지 천재를 어찌 다 감당하며, 억만 갈래 인심을 어찌 다 수

습하시렵니까? 나라일이 그릇되고 백성이 병들게 되는 것이 근원이 어디 있는

것을 밝히 살펴서 맹렬하게 고치지 아니하면 나라가 장차 어찌될지 모릅니다.

흰 복색과 슬픈 노래가 늘어 가는 것도 심상한 징조가 아닌 줄로 생각합니다. "

하고 위태위태한 말까지 베풀어 놓았었다. 이때 왕은 나이 십팔구 세라 신하들

의 말을 들을 짐작이 있었다. 왕이 조식의 상소를 보고 좋아하지 아니하여 좌우

에 입시하였던 신하들을 돌아보며 "과부란 말이 홀한 말이 아닌가? “ 하고 물

으니 원형이 앞으로 내달아서 "홀한 말일 뿐입니까? 여항 부녀에게도 조금 대접

하여 말하려면 과댁이라고 하지 과부라고 아니합니다. " 하고 대답을 아뢰었다.

"그러면 조식의 말이 자전께 욕이로군? ” “그렇습지요. 조식을 치죄하여 마땅

합니다. " 하고 원형이 말씀을 품할 때에 차지의 하소연하던 것을 돌이켜 생

각하였다. 원형과 같이 입시사였던 다른 대신이 임금께 괴하는 언사에 이와 같

은 전례가 있는 것을 인증하고 "조식이 국가의 고위한 것을 극진히 말씀하려고

고인의 투를 본받은 것이외다.“ 하고 풀어 말씀을 아뢰었더니 원형이 얼굴에

불쾌한 빛을 나타내며 "고인의 말에는 잘못이 없으란 법이 있소? ” 하고 말다

툼을 시작하려고 하여 "그것도 그렇지요. " 하고 그 대신은 다시 말을 못하였다.

"조식의 말이 과하달 뿐이지 치죄할 일은 아니야. 작은 언사의 잘못을 죄로 돌리

는 것은 국가의 선비 대접하는 법이 아니지? “ 하고 왕이 원형을 돌아보니 원

형은 "하교가 지당합니다. " 하고 말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판관이 서울 와서

묵는 동안에 호반 남치근의 조카 남언경의 집에 주인하였는데, 주인과 손이 서

로 대하여 앉았을 때에 화담주인 서경덕의 이야기가 많이 났었다. 조판관은 서

처사와 친분이 있던 터이고 남언경은 서처사에게 수업한 사람인 까닭이었다. 이

때 서처사는 죽은 지 벌써 육칠 년이라 조판관이 한번 그 무덤에나 다녀온다고

언경과 같이 송도를 가기로 언약 하였는데, 송도길을 떠날 때는 언경 외에 동행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사람은 당대 이인 이지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렴의

아우 정작이었다. 이지함은 조판관과 교분이 두터운 터이고 정작은 조판관의 선

성을 듣고 흠앙하는 터이라 두 사람이 각각 조판관이 서을 온 것을 알고 선후하

여 만나보러 왔다가 송도 간다는 말을 듣고 서처사와 상종이 있던 이지함은 두

말없이 동행한다고 나서고 서처사를 생전에 만나보지 못한 정작이는 여러 선생

의 뒤를 따라서 송도를 구경하고 온다고 좇아나서게 된 것이다, 네 사람 중에서

가장 연소한 정작이도 공부가 숙성하여 경사자집에 능통하므로 네 사람의 이야

기는 대개 학문편 이야기가 많았으나 간간히 다른 이야기도 없지 아니하였다.

이지함은 죽으러 나가는 윤결을 작별한 뒤에 단양 땅에 가서 돌아다니었다고 도

담귀담 상중하 삼선암 경치를 이야기하고, 정작이는 그 백씨가 부친 삼상을 마

치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자기가 미리 죽을 것을 알고 사세가까지 지었다고 그

백씨가 예사 사람과 다른 것을 이야기하였다.

 

14

조판관이 송도 다녀온 뒤의 일이다. 윤원형이 사람을 시켜서 한 번 찾아오면

좋을 뜻을 말하였더니 조판관이 "나같이 산야에서 생장한 사람은 권문세가에 투

족 할 수 없소. " 하고 거절하여 그 사람을 돌려보내고 남언경을 대하여 "제가

찾아와도 내가 볼지말지한데 나더러 찾아오차니, 방자한 일일세.“ 하고 돌탄하

는 중에 이지함이 찾아와서 조판관은 "형중이 오나. " 하고 반겨 맞아들이었다.

"지금 문에 나가는 사람이 누구인가?” "권문의 심부름꾼이라네. " "권문이라니,

윤원형의? “ "그래, 나를 부르러 온 모양이야. " "창피 보았네그려. " "서울 올때

그만 욕은 볼줄알았네. 그러나 이번에 두번째 소조를 당하네 " "한번쁜? ” "서빙고

나루에서 윤씨집 하인에게 봉변하였어. " "호랑이 같은 하인에게 시골 선비가 봉

변하기 쉽지. " "그놈을 나루터에서 회술레를 시켜 보냈네. 무슨 뒷말이 있을 줄

알았더니 아직까지 아무 말도 없어. " "뒷말은 어쨌든지, 그 하인놈이 회술레를

당한 것부터 자네에게 압기가 되었던 것일세.“ 이러한 수작을 하던 끝에 이지

함이 "오늘 일기도 좋고 하니 무계동으로 소창이나 나가세. " 하고 말하여 조판

관은 남언경과 같이 이지항을 따라 소창하러 나갔었다. 이때 부마도위에 여성위

송인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지위가 괴상하여 한만히 사대부와 교유하지 못하

나 사람이 원래 유아한 까닭에 밤으로는 항상 선비을 좋아하여 평소에 경앙하는

조판관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맘이 간절하지만, 자기가 선뜻 찾아가기도 어렵고

또 억지로 맞아오기도 어려워서 주저하고 있던 터에 마침 무계동 소창 나간 소

문을 듣고 갑자기 연수를 차려가지고 장의문 밖에 나가서 송림 속에 포진하고

조판관의 돌아들어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는 소창 나간 일행은 소창할 대로 소창하느라고 돌 위의 이끼를 쓸고,

술도 마시며, 냇물에 발을 담그고 한담도 하여 여러 시각을 보내었다. 이 동안에

여성위는 연통꾼으로 길가에 세워놓았던 하인을 여러 번 송림 속으로 불러들이

어서 번번이 "그저 오시지 않느냐? “ 하고 묻고 나중에는 다른 길로 돌아들어

갔는가 의심하여 먼 빛으로 가보고 오라고 하인을 보내기까지 하였는데 그 하인

이 "냇가에서 발들을 씻으십디다. " 하고 회보한 까닭에 다시 한동안 맘을 놓고

기다리었다. 해가 설핏하여진 때에 길에 세워둔 하인이 두 걸음을 한 걸음으로

뛰어 들어와서 "인제 들어오십니다. " 하고 보하였다. 여성위가 벗어놓고 풀어놓

았던 의관을 다시 정제하며 데리고 나온 청지기를 향하여 "네가 한 걸음 먼저

나가서 내가 술 한잔을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고 말씀해라. " 하고 일러서

그 청지기가 문안을 향하고 오는 일행 앞에 나아가 공손히 문안을 드리고 "어느

나으리께서 조판관 나으리십니까? “ 하고 물은 뒤에 조판관을 향하여 다시 한

번 문안을 드리고 "여성위 대감께서 술 한잔 잡수시게 하려고 송림 속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십니다. 대감께서도 뒤에 곧 마중을 나오실 터입니다. " 하고 말하니

조판관이 "여성위 대감이? ” 하고 다지어 묻는 것같이 말하고 곧 뒤를 이어서

"어른을 길에서 장맞이하는 법이 없는걸. " 하고 말한 뒤에 소매를 떨치고 가는

데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여성위가 송림 밖에 나왔을 때, 그 청지기가

한 말과 들은 말을 일일이 옮기고 나서 "그 양반 성미가 괴상스러운 모양이올시

다. " 하고 말하니 여성위는 "내가 좀 덜 생각했다. " 하고 서운한 모양으로 조

판관 일행의 뒷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원형이 조판관의 찾아오지 않는 것

을 분하게 생각하던 차에 이 이야기를 듣고 "흉악하게도 고연 사람이다. " 하고

용인 갔던 차지를 보고 "네가 조판관같이도 고연 사람에게 걸려서 회술레만 당

한 것도 다행이다. " 하고 웃으니 그 차지가 나와서 다른 차지를 보고 "우리 댁

대감의 권세로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 있데그려. " 하고 뒷공론같이 말하였다.

 

15

사람의 아첨하는 버릇은 아무리 성세에라도 아주 없지 않겠지마는 말세일수록

더 심한 법이라, 윤원형이 당국하였을 때 세상이 말세가 되었다고 한탄하는 사

람이 많더니만큼 사람의 아첨하는 버릇이 심하였다. 대개 말세란 말은 몇백년,

몇천 년을 두고 쓰는 것이니까 그때가 꼭 말세인 것은 아니겠지만, 아첨을 가지

고 말세를 징험하여 틀림이 없다면 그때를 곧 말세라고 하여 좋을 만큼 아첨꾼

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때에 상진 이란 정승이 있었는데 관후장자로 이름난 사

람이라 간특한 아첨을 좋아하지 아니하건마는, 어느 때 여러 아첨꾼들이 대령하

고 있는 자리에서 방귀를 한번 내놓았더니 그중의 약 빠른 자 하나가 낯간지러

운 줄도 모르고 "대감께서는 예사 사람과 다르셔서 방귀에 향취가 있습니다. "

하고 첨하는 것을 상정승이 "내가 궁노루인가? 방귀에 향내가 나게, 에 이 사람,

실없은 말마소. " 하고 나무라서 첨하던 자를 낯뜨겁게 한 일이 있었다. 상정승

과 같이 실상 무력한 재상에게도 이와 같이 첨꾼들이 있었으니 일국의 권세를

손 속에 쥐락펴락하던 윤원형이 첨꾼들 속에 파묻히어 지낸 것은 두번 말할 것

조차 없는 일이다. 원형의 문하에 출입하는 첨꾼들이, 원형이 조판관에 대하여

괘씸히 생각하는 것을 알고 조판관을 갖가지로 헐뜯어 말하였다. "조식이가 빈

이름은 있지마는 실재가 아닙니다. " "조식이가 사직을 잘 했지요. 단성 같은 작

은 고을에 가서라도 불치 소리는 면치 못하였을 것이니까요. " "조식이는 당나귀

턱밑에 다는 방울인지 허리띠에 방울을 달랑 달랑 차고 다닌답니다. " "조식이를

이황이와 같이 치지마는 이황이는 사람이나 온자하지요.“ 여러 자들이 되숭대

숭 지껄일 때 그중에 어기뚱한 자는 조판관을 추어 가면서 원형의 비위를 맞추

었다. "조식이는 높은 선비올시다. 그렇지만 대감 아니시면 조식의 높은 것을 용

납할 수 있습니까? 한 광무가 아니면 엄자릉의 절조를 이루어 주지 못하고 엄자

릉이 아니면 한 광무의 도량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격입니다. " 첨꾼들의 달콤한

말에 원형은 괘씸히 여기던 생각이 사라져서 조판관이 시골로 내려갈 때 "역마

태워 보내는 것이 국가의 은일 대접하는 법이올시다. " 하고 뒤에 품하기까지 하

였었다. 이기가 죽던 해에 원형이 대배하여 우의정이 되며 상진이 좌의정이 되

고 젊은 왕비의 조부 되는 심연원이 영의정이 되었었다. 아이 왕은 자고로 없는

법이라 어린 왕이 즉위하던 해에 심연원의 손녀를 왕비로 책봉하였던 것이다.

원형이 처음에는 심연원을 꺼리는 맘이 없지 않았었으니 이것은 저의 손에 있는

권세를 나누어 갈까 의심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심정승은 조심 많은 사람이라서

대왕대비의 뜻을 거스르지 못할 뿐 아니라 원형의 말도 거스르지 못하였다. 그

리하여 조심 많은 영의정과 심지가 너그러운 좌의정이 방자한 우의정에게 휘둘

려 지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대왕대비가 불도를 좋아하여 궁중의 불사가 그치

지 아니하매, 영의정 심연원과 좌의정 상진이 참고 참던 끝에 대신 체모로 말

한마디 아니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어느 날 삼정승이 빈청에 모여 앉았을 때 심

정승이 먼저 입을 열어서 "근래 궁중의 불사가 너무 굉장하지 않습디까? ” 하

고 원형을 돌아보는데 상정승이 "불사를 너무 굉장히는 마십시사고 우리 세 사

람이 함께 자전에 품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디다. " 하고 역시 원형을 돌아본즉

원형이 심정승과 상정승을 반반씩 갈라서 바라보면서 "대감 두 분이나 함께 품

해 보시지요. 소생은 참예 않겠소이다. " 하고 말한 뒤에 한동안 있다가 "어지간

하거든 잠자코들 계시지요. " 하고 말하여 상정승은 "대감이 싫다는데 우리 둘이

만은...“ 하고 끝없는 말로 대답하고 심정승은 쓴입맛만 다시었다. 그러나 두 정

승이 다 원형의 말에 끌려서 잠자코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제 6장 보우

 

1

고려 때 불교를 숭상하던 풍습이 뒤에 남아서 국초 적에는 사대부 명색들도

불도를 좋아하였다. 초상이 나면 중들을 청하여 빈소에서 경을 읽히었는데, 이것

이 이름이 법석이니 중과 속인이 뒤섞이어서 짝없이 수선을 따는 까닭에 수선

떠는 것을 법석 벌인다고 말하게까지 되었고 집에서 법석을 벌일 뿐 아니라 식

재라고 절에 가서 재를 부치는데, 칠일부터 사십구일까지 일곱 번 식재에 일칠

일 첫재와 사십구일 끝재가 가장 굉장하여 친척과 친구들까지 포목을 지워가지

고 나가서 중에게 시주하였고, 또 기제날은 승재라고 중을 맞아다가 한밥을 먹

인 뒤에 염불로 흔령을 인도하는데 중의 인도가 아니면 혼령이 운감하지 못한다

고 생각하여 제주부터 승재에 정성을 들이었다. 이 외에도 시주와 불공이 많아

서 민간의 재물이 절로 흘러들어가더니 성종대왕 시절에 대간이 그 폐단을 논계

하여 유교 숭상하던 대왕이 민간의 불사를 일체로 금하고 대왕께 어머님 되는

인수대비가 노산군 부인 송씨의 출가하였던 정업원에 새로 불상을 조성하였을

때 어느 유생이 짐짓 그 불상을 태워버린 까닭에 대비는 화가 충천하게 섰으나

대왕은 그 유생을 죄주지 아니하였었다. 성종대왕 이후로 재상의 집이나 선비의

집에서는 법석도 못 벌이고 식재도 못 부치고 승재도 못 올리고 다른 불공도 드

러내놓고 못하였었는데, 이때 대왕대비가 후생 길을 닦으려는 의사로 부처를 위

하기 시작하여 정업원 터에 새로 인수궁을 이룩하고 자주 거동하여 친히 불공을

올리게 되니 민간에서 금법을 지킬 까닭이 없어 재팔 소리, 목탁 소리가 도처에

낭자하게 되며 죽치어 들어앉았던 중들이 다시 한세월을 만나게 되었다. 대왕

대비가 인수궁에서 무차대회를 건설하려고 명승을 팔도에 구하니 영변 묘향산

보현사에는 청허당 휴정 이란 젊은 중이 공부가 놀라웠고, 안성 칠현산 칠장사에는

병해라는 늙은 중이 도술이 놀라워서 각각 유명하였으나 두 중은 모두 서울 오지 아

니하고 춘천 청평산 문수사에 있는 보우란 중이 강원감사 정만종의 천거로 서울에

오게 되었는데 보우는 신수 좋고 언변 좋고 무차대회에 익숙하여 대회를 한 번 치르고

곧 대비의 눈에 들었다. 보우는 금강산에서 병해대사를 해치려던 중이니, 그때 곧

경산으로 오지 못하고 전에 있던 안변 황룡사로 나와 있다가 계림군이 황룡사

토굴에서 잡지어 나갈 때 석왕사로 옮기고 얼마 뒤에 또다시 춘천 문수사로 옳

기어 몇 해 동안 눌러 있었던 것이다. 대왕대비가 보우의 설법에 반하여 처음에

는 인수궁에 거처하게 하고 나와서 보다가 나중에 경복궁 안으로 불러들이어 특

별히 거처할 처소를 정하여 주었다. 어느 날 대왕대비가 난정과 및 여러 궁인을

데리고 보우의 처소에 와서 설법을 듣는데, 보우는 비단 보료 위에 비단방석을

곁깔고 앉아서 앞에 앉은 대비를 바라보고 "대왕대비의 존귀하신 몸이라도 부처

님께 바치신 바에는 불가의 심법을 아셔야 합니다. 불가에서는 사민평등에 귀천

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같이 설법을 듣는 자리에 앉았는 사람과 섰는 사람이 달

라서는 설법 듣는 보람이 없습니다. " 하고 손을 들어서 대비 뒤에 둘러선 난정

과 여러 궁인들을 가리키니 대비가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며 "거기들 앉아라. 이

자리에서는 나나 너희들이나 다같이 대사의 제자이니 어려워들 말고 앉아라. "

하고 말씀하여 여러 사람이 둘러앉은 뒤에 보우는 미타경을 가지고 극락세계의

장엄한 것을 말하여 들리었다. 대비가 "우리가 무슨 공덕을 쌓아야 극락을 가게

될까요? 나는 나이 벌써 오십이 가까웠으니 속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 " 하고 보

우를 치어다보니 보우가 "환희불이 육신성불하는 비밀법문이 있으니 이것이 극

락 가는 데 가장 속한 길이올시다. " 하고 한번 허허 웃었다, 이후로 대왕대비는

보우에게서 그 법문 전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난정과 여러 궁인들이

감히 참예하지 못하였다. 보우는 저의 말이 득도하였다고 하나 대왕대비부터 득

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여 그때 성균관 대사성으로 있던 윤춘년이 문후

하러 들어왔을 때 "득도한 사람은 어디가 예사 사람과 다르냐? “ 하고 하문하

였다. 윤춘년은 다소 공부가 있는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체하는 사람이

라, 대비의 하문을 받고 "황송하오나 먼저 하순하시는 뜻을 알고자 합니다. " 하

고 대비의 말씀으로 보우가 자칭 득도하였다고 하는 것을 알고 "득도한 사람이

라고 밥 안 먹고 잠 안 자는 것은 아니옵지만, 물욕 없는 것이 예사 사람과 다

르외다. " 하고 대답을 아뢰었다. "너 같은 공부 있는 사람은 알는지 모르나 나

는 득도한 지 아니 한 지를 분간할 수가 없더라. " "신인들 용이히 안다고야 할

수 있사오리까만 몇 마디 수작해 보면 짐작은 할 수 있을 듯하외다. " "내가 알

고 싶으니 너 한번 보우선사와 수작해 보아라. " 하고 대비는 춘년의 대답도 듣

지 아니하고 곧 궁인을 보내어 보우를 청하였다. 보우가 들어와서 대비께 향하

여 합장배례를 드리고 "소승을 부르셨습니까? ” 하고 말하니 대비가 앉은 건너

편 방석을 보우에게 권하였다, 보우가 앉은 뒤에 대비는 "혼자 심심하시지?

“ 하고 묻고 나서 춘년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나의 친족인데 유식하다고 칭찬

받는 사람이니 데리고 이야기해 보시오. " 하고 말씀하여 보우가 밤간 몸을 일으

켜 춘년을 향하여 합장하고 다시 앉으니 "대사의 공부 놀라우신 것은 말씀을 듣

자웠소. " 하고 춘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부가 놀라운 것이 아닌 줄을 아시

겠지요? ” 하고 보우의 말이 윗손을 치는데 춘년이 슬그머니 화가 나서 대번에

기세를 꺾어보려고 "누가 문자만을 공부라 하겠소. 황매산의 절구질도 공부이지

요. " 하고 말하였더니 보우가 빙그레 웃고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웃는 것이 역

시 윗손치는 거동으로 보이었다. 춘년이 보우와 수작하는 동안에 말이 유교와

불교의 다른 점에 미치었더니 보우는 도도한 변설로 서서히 차별하여 말하는 중

에 "공자, 맹자의 유교가 정자, 주자의 유교와 다른 것을 구별할 줄 아실 터이지

요? “ ”정자, 주자의 유교는 불교와 같은 점이 많은 것을 아실 터이지요? “ "

공자가 부처님 출세하신 것을 알고 서방에서 큰 성인이 나셨다고 말씀하셨으니

성인 값이 있습니다. " 이와 같은 말로 춘년의 말문을 막아서 나중에 춘년이 "대

사의 공부가 참말로 놀라우시오. " 하고 칭찬하여 보우보다 대왕대비가 대단히

좋아하였다. 보우가 처소로 나간 뒤에 대비가 "득도한 중이지? ”하고 춘년에게

물으니 춘년은 "득도는 모르겠소이다만 유식한 것은 의심없소이다. " 하고 대답

을 아뢰었다. 이때 경복궁 안에 도깨비 장난이 심하였다. 밤저녁에 모래를 뿌리는

것과 사람은 없는데 나무신을 신은 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은 예삿일이고, 궁인들이

옷상자에 불이 나는 것들 허둥지둥 끄고 보니 불탄 자욱이 없이 아무렇지 않은 일도

있고, 무수리가 빨랫가지를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찾으려니 바람이 분 일도 없었는데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걸치어 있는 일도 있고, 나이 어린 궁인이 도깨비를 탓하여

욕설하다가 난데없는 흙덩이가 입으로 튀어들어온 일까지 밌었다. 도깨비 장난이

사정전 귀가 제일 심하여 밤만 되면 아무리 장력 있는 궁인이라도 사정전 뒤에는 갈

생각을 먹지 못하였다. 대비가 이것을 보우에게 말씀한즉 보우의 말이 백신이 수호하는

궁궐 안에 이매망량이 장난하다니 무엄한 일이라고 하고 며칠 밤을 두고 사정전 뒤로부터

도깨비 장난한다는 곳을 빼지 않고 돌아다니며 호령질하더니 그 장산이 일시에 지식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보우가 득도한 중인 것은 대왕대비가 믿을 뿐 아니라 여

러 궁속들까지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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