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89. 9

카지모도 2016. 6. 2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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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47 1989. 9. 1 (금)


어제 코모도호텔에서의 회식.

부차장회의 환영식겸 신고식.

신고라니, 원.

그래도 정부장은 반갑다.


어제 돌아와 술에 어린 상태로 늦도록 자니윤 쑈 본다.

Format 자체가 굉장히 아메리카나이즈하다.

보조 MC 조영남의 단구왜소한 육체로 미국적 제스추어를 억지로 연출해내는 모습은 차라리 슬픔이다. 자니 윤의 도발적인 위트는 노련하고... 재미있다.


오랫동안 어머니 격조하다.

내일은 과우회의 송별연이라는데, 그까짓 모임에는 빠저먹고 어머니에게나 갈거나.


15548 1989. 9. 2 (토)


어제 사령장 받다.

줄기차게 쏟아지던 비는 오후들어 멎다.

새벽 3시 깨어 일어나다.

俊이 방에서 신학서적 뒤적이고, 시편을 뒤적이고, 요한계시록을 뒤적거리다.


그리고 소리내어 간절하게 기도드린다.

욕망과 시기... 나의 속성, 더러운 나의 속성을 극복해 줍시사고.

세상의 연을 끊는다는 스님들의 삭발은 도피의 의식이 아니다. 육근을 끊자는 의식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더러운 속성을 잘라버리자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로의 귀의, 그 자아에의 귀의라는 욕망까지도 버리는 경지, 비속비승의 세계.

그 경지에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예수님의 영혼.

불교는 적어도 순전한 정신적인 면에서 기독교보다 한차원 높은 종교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6-


주 예수여 오소서. 이 죄인의 영혼 밭에 오소서.


15549 1989. 9. 3 (일)


어제 모처럼 어머니께 가다.

거실에 앉아 영화얘기, 옛날 어린시절의 얘기, 아버지 얘기등을 두런두런 나눈다.

모자간 이 아니 좋을소냐.

彦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음악들으며 클래식음악 얘기도 들려준다.

彦이는 장남인 탓인지 俊이보다 숙성해 뵌다.

형도 곧 부산으로 전보될 것이라는 소식.

결국 기장의 횟집에서의 과우회모임보다 백배나 더 가치있는 술을 마신 것이다.


Floating Dock에 입거한 SB-355 의 외판 Damage.

카마초와 한참을 실랑이하다.

MR. 페러디의 부인을 소개받았는데 그 미모에 놀라다.

알고보니 왕년의 미스 필리핀이었다고.


가을의 문턱이라지만 아직 한낮의 햇살은 따갑다.

고요한 하늘, 얌전하게 녹색의 표정으로 누워있는 바다.

그리고 그레고리 성가. 세병의 맥주.

이런 것이 행복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타당하다.

2시 넘은 여태까지 아이들 교회에서 돌아오지 않고.


일요일 현장과 나의 방과 교회와 음악과 술과 그리고 고즈넉함.

아침 식탁에서 우리 가족은 기도하였지.

긍정과 기쁨, 소박한 정신, 아름다운 품성.


15551 1989. 9. 5 (화)


새벽의 경건.

어두운 하늘에 보석처럼 별들이 박혀있다.

소리내 읽는 로마서, 뜻이 새롭다.

사도신경을 외고 주님의 기도를 외고.

불꺼버린 어둠에 잠겨 기도.


경건을 위한 수칙 한가지.

머리 속을 비워라. 일상의 앙금이나 일상의 계획등 일상사의 신경줄을 꺼버리고 머리 속을 비워라. 다만 어린아이의 단순함으로 그 머리 속을 채우라. 그리고 어린아이의 단순한 행복감을 느끼려고 노력하라.

아, 주님. 내게 오직 그 세계에서만 살게 하소서.


15552 1989. 9. 6 (수)


온유함을 잃지 않다.

현장에서도 동기부여 가득한 일과, 땀흘려 일하다.

새벽의 경건 유지가 가능한 것은 새벽 주님을 향한 기도 덕분임을 나는 알고 있다.


늦도록 비디오 보다. '한나스 워 (한나의 전쟁)'

2차 대전중의 헝가리. 유태 소녀 한나, 시인.

영화 대사중 참 좋은 싯구가 있었는데.

훌륭한 구석이 있은 영화 한편 본다는 것은 상상력을 위하여 참 좋은 방법이다.

상상력을 자극시킬 것. 그렇다. 결코 상상력을 잃어서는 안된다.

질척질척한 진흙 구덩이의 수렁 속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라도 상상력이 있음으로 그는 진흙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새벽. 로마서, 시편 38편.

기도.

내 새벽의 나홀로 예배로서 교회 불출석의 어떤 부담이 상쇄되려는지.


오늘 과원들, 직반장들과의 회식.

20여명이 넘는 인원인데 말하자면 승진 턱을 쓰는 것이다.

참 나쁜 전통.


15554 1989. 9. 8 (금)


SB-355 공시운전후, 필리핀 선주사인 발리왕의 초대로 동삼동 횟집에서의 회식. 일본측과 필리핀측 선주감독들과 그 부인들, 그리고 조선소에서는 설계부와 현업의 전 관리자 참석.

카마초 부인의 옆자리 앉아서 어설픈 영어의 농담들. 유쾌한 웃음소리.

카마초와 칼룬소드가 연신 권하는 소주잔을 비우면서 모두들 비싼 회를 실컷들 먹는다. 나중에 보니까 계산은 일본 선주측이 하는데 100만원이 훨씬 넘었다.

카마초 부부와 페러드 부부는 술취한 김에 근처 우리집 처들어 오려고 하였으나, 다음 기회로 미룬다. 언젠가 그들을 초대하리라. 내 업무를 위한 교제라기보다 선량한 눈매들을 갖고있는 필리핀사람들의 품성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카마초와 페러디 부인들 귀국하기 전에.


15555 1989. 9. 9 (토)


어두운 길을 밟아 퇴근하는 길가 숲속에서 가을 벌레의 울음소리.

비가 오다가 개다가 하면서 모든 것을 추연하게 받아들이는 바다에도 추색이 짙다.


민방위훈련 참석을 위하여 급히 목욕하고 발톱깎는 새벽.

책상 앞 앉아 기도.

바람이 불어 수풀이 수런거리고, 바람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카롭게 불고있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15556 1989. 9. 10 (일)


흐린 하늘, 때때로 빗방울 흩뿌린다.

일요일 아침, 푸치니의 오페라가 울린다.

라보엠. 벨 칸토의 테너는 메마른 내 가슴에다 대고 외친다.

일어나라. 꿈을 꾸어라. 상승하여라. 상승하여라. 저 무한한 공간의 아름다운 불을 마셔라. 뮤즈의 날개짓으로 올라가라.


어떤 색감. 어린 시절 만화영화 피터팬을 보면서 나는 그 색감에 정말로 숨이 막힐만큼 황홀하였었지. 그 영화를 보고있는 동안에 나는 내가 아니었다. 황홀 속에 잠긴 마약 중독자였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 다시 본 피터팬은 옛날의 황홀함을 불러다 주지 못하였다.


시인이여. 시인이여. 너 먼데 있는 명공이여. 내가 두드리는 이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러나 날아갈수 없는 새. 날개는 깃털이 빠지다.

무위한 날개여, 차라리 떼어버림 만도 못한 너 날개여.

키위에게는 도시 날개가 필요치 않은 것을!


15557 1989. 9. 11 (월)


추적추적 비내리는 현장. 올해는 참 비가 많이도 내리누나.

공정은 그만 죽을 쑤어버리고 만다.

대만 쪽에서 태풍 사라가 북상하고 있다고, 추석인 14일경 한반도 상륙 예상.

연휴 하루 전.

울긋불긋 포장지에 싸인 선물 꾸러미들.

몇병의 양주와 구두표등을 받는다.

J는 여기저기 선물하기 위한 이런 물건들이 좋다.

어머니께 강정 다섯박스 운반하느라 비를 맞으며 고생하였던 모양.


잠자리 들기전 기도.

소유에 들뜬....

깨끗이 하소서. 소박한 아름다움, 가난의 기쁨이 지배하는 품성, 주님의 덕목만을 기뻐하게 하소서.


15558 1989. 9. 12 (화)


전무 Sh씨 가 설처대는 꿈속을 헤매다 눈을 뜬 시각은 4시.

힌두교에 관한 논문을 화장실에서 읽다.

내 방의 커튼을 저치니까 새벽별.


오주혜박사의 책 읽고 소리내어 디모데전서와 요한1서 읽다.


"그리스도인은 역사가 보여주는 것. 교훈하는 것이 결코 운명의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하나님을 향한 운명의 생애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소명의 생애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인간의 운명에 따라붙는 고뇌를 희망으로 존환시켜 예수의 사랑에 의해 인생의 모순을 극복해 낼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균형감각을, 주님께서 문득 비춰주신 그 지고한 실존의 균형감각 속에서 기뻐하게 하소서.

청빈과 복종... 욕심의 극복, 이기주의의 극복.


15559 1989. 9. 13 (수)


추석연휴의 첫날.

종일 잠과 TV의 말초적 일락.

J는 부침개작업에 바쁘며, 이렇게 바쁠때에는 그녀의 신경줄은 팽팽하다.

모름지기 아이들이나 나는 이런 때의 J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 '취급주의 要'

그러나 J의 솜씨와 어머니를 향한 마음가짐은 일품이다.


흐린 날씨. 바람불고 때로 빗방울 듣다.

먼바다는 파고가 높다.

태풍 사라는 저 남쪽에서 대만을 때린 기세로 으르렁거리며 다음 목표물에 대한 작전을 짜고 있다.

내일, 추석.

2천만이 이동하는 명절.

고향... 나의 자궁공간, 그곳은 어디인가.


15560 1989. 9. 14 (목)


한가위 아침.

공들여 목욕하고, 레코드 'WEST SIDE STORY'건다.

뮤지컬, 뮤지컬에서 심오한 깊이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으나, 얼마나 바라이어티하고 에스프리 번쩍이는 예술장르인지.

로버트 와이즈의 영화장면장면이 그대로 떠오른다.


태풍은 북서쪽으로 진로를 틀고 바람은 잔다.

두껍게 깔려있는 구름 사이로 햇님은 때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빛이 마치 라임 라이트처럼 바다의 한 부분을 둥글게 빛나게 한다.

아, 빛과 색의 조화는 얼마나 신기로운지.

인상파 화가가 가장 먼저 그 인상을 경험할수 있었던 풍경은 비 온 뒤 어떤 정경이 아니었을는지.


오늘 명절.

어머니, 형네, 가야숙모네.

장인,장모,처남들네,처제...

명절이 별것이랴. 모처럼 세상의 핏줄들끼리 모인다는 그것이 곧 명절이지.


15561 1989. 9. 15 (금)


가야숙모의 인도로 명절 예배. 어머니, 형부부, 동은이, 彦이,哲이...

그리고 처가. 모두 만난다. 늘 편하고 좋은 처제, S기 의 예쁜 용모....


사직동까지 택시타고 가는데, 택시기사는 아주 엄전한 상전이다. 손님은 손님이 아니고 차라리 은혜를 감지덕지 받는 수혜자다. 이토록 서비스라는 개념을 모르는 무지막지가 있을까. 예의는커녕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친절마저도 갖고있지 못한 인격.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기사에게 분을 발산해 보지만 마음은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로서만 민중이라는게 구성되어 있다면 나는 민중을, 결코 민중이라는걸 사랑할수 없으리라.


15562 1989. 9. 16 (토)


어제 종일 그림그린다.

숙제를 마친 후련한 느낌.

시작이 어렵지, 일단 판을 벌려놓고 보면 곧장 집중할수있은 장점이 내게도 있다.


15563 1989. 9. 17 (일)


어제 비내리는 현장은 쓸쓸하였다.

늘 그렇듯이 명절후 첫날은 출근율 저조. 게다가 토요일이니.

토요일, 돌아 와 어제 그린 어머니 초상화에 보카시를 입힌다. 그러나 완성작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새로 그려야 겠다.


비는 내리지 않으나 후덥지근한 날씨.

일요일, 아이들 願이 있음에도 우리 부부는 오늘도 교회에 나가지 아니한다.


15566 1989. 9. 20 (수)


나의 독서욕구는 크다. 그만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것이고, 독서량 역시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러난 책을 읽어가면서 그 내용의 논리전개를 앞지를만한 상상력이랄까 예지력이랄까하는 측면은 약하다.

회사의 화장실에서 요즘 다시 읽는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주인공 소년의 내적인 독백의 서술에서 그 뜻을 간파하지 못하고 작가의 유려한 문장에 질질 끌려가다가 나중에야 그 뜻을 깨닫고 만다.

또한 주인공의 어머니에 대한 갑정, 그것에는 곧장 나의 경우를 대입하여 상상력을 발휘할수 있다.

감정이입이 아무런 망설임없이 가능하다는 것. 어머니를 향한 유아적집착의 보편성....


회사의 분위기는 바쁜 공정에도 불구하고 요즘 온유하다.

또 필리핀 선주부부 집에 초대하는 문제도 J의 흔쾌한 내락을 얻어냈다.


이제 가을 장마는 그친건가.

가을.

가을의 투명한. 잠자리 날개.


15568 1989. 9. 22 (금)


곤하게 잔 것 같으나 새벽무렵 거친 꿈이 비집고 들어와 깨어난 머리속은 그다지 맑지 못하다.

J는 俊이와 함께 자고 있고, 빈 안방에 책상 펴 앉아 책을 읽는다.

발터 폰 뢰베니히의 논문 '하늘에 계시는 신'

요한복음 7장 소리내어 읽다.

기도.


"신은 '우리의 불완전한 인식을 메우는 역할'을 해서는 안되며 '思考上의 가설'로 전락할수도 없다.

신은 이른바 '궁극적인 물음'이란 이유로 당혹으로부터 도피하는 길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한계상황에 대하여 절망에 빠진 인간이 의지하는 최후의 보루로 이용되어서도 안된다.

본 회퍼는 인간은 현존재의 모든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여 신이라는 '사고상의 가설'에 도움을 구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만족할수 있음을 사실로서 확인한다.

그는 현존재의 불가사의 앞에 불복해버린 사람들을 향하여 상당히 냉혹하게 말한다.

'나는 세계의 성숙성에 대한 기독교의 호교론적 공격을 첫째로 넌센스이고 둘째로 유치하며 셋째로 비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한다."


신을 이 세상의 피안에서가 아니라 이 세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가 만약 여기서 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피안의 신도 우리를 도울수 없다.


15569 1989. 9. 23 (토)


오늘 SB-360 진수예정, 오랜만에 행하는 FAT진수이다.

능숙한 직반장들은 휘하의 일꾼을 지휘하며 착착 그 까다로운 과정을 착오없이 진행시킨다.

그러나 방해꾼은 현장의 낡은 UTILITY이다.

크레인 고장, AIR LINE의 파손.

그리고 이른바 관리자들의 잔소리 역시 직반장들 느끼기에는 방해꾼일시 분명할 것이다.


새벽 3시 기상

안방 앉은뱅이 책상 펴놓고 앉아 최귀라의 찬송 들으며 요한복음 읽다.

예수님을 도무지 파악할수 없었던 바리새인들. 그에 대응하는 예수님의 말씀도 촌철살인의 명확한 자기표현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우회하여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 오늘은 나를 갑동시킨다.

기독교 도그마의 그 비밀한 오의는 결코 단순명료한 논리학의 그것은 아닐터.

불끄고 어둠 속에 잠겨 기도.


오늘 저녁.

필리핀 선주 부부 두쌍을 집에 초대하다.

J의 수고로움,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이를 위하여도 기도.


15570 1989. 9. 24 (일)


어제 SB-360 무사히 진수. 고려해운의 박차장 FAT 진수의 장면에 감격하여 울멍울멍. 코오롱 회장등 VIP 참석하였는데 선주감독의 체면도 섰고하여 정말 감격해 한다.


저녁 카마초와 페르디 부부, 우리 집 안방에 둘러 앉다.

깔끔하고 정성이 담긴 J의 솜씨 칭찬. 마루에 앉아 듣는 음악의 취향도 좋아하고.

페르디 부인은 피아노 전공한 음악도.

양주에 내가 먼저 취해 버리다. 그 외국인들은 기분좋게 J와 포옹하며 늦은 시각 집을 떠났는데, 나는 그도 기억하지 못하다.

어쨌거나 J가 고마웁다.


15572 1989. 9. 26 (화)


카마초, 페르디로부터 진심어린 인사받다.

일간 그들이 우리 부부 호텔로 초대하겠다고.

중공선원으로부터 중공제 우황청심환 한 통 사다.


15573 1989. 9. 27 (수)


어제 어머니께 가 늦도록 앉아있다. 술 마시며.

우황청심환 드리다.

어쨋던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은 가치있는 것이다. 彦이에게 하나의 올곧은 정신에 대하여 피력한것도. 형수와 예수 얘기 나눈 것 역시.


오늘 곤한 육신 이끌고 현장을 견디다.

SB-363 착공식, SB-362 기공식, SB-355 인도식.

그 세레모니가 곤한 것이 아니고 술에 젖은 육신과 뭇 잡스런 생각들이 곤한 것이다.

많은 업무량, 회사에는 오늘 많은 기성금이 들어왔을 것이다.


끈끈한 날씨, 끈끈한 몸뚱이.

英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나서 목욕할참.

기도는 없었다. 참, 아침 식탁에서의 기도.

그것이 나의 오늘을 지켜 준 것이다.


15574 1989. 9. 28 (목)


극도로 발달되어 가는 테크놀러지.

점점 인간은 개인화 되어가지만 그것은 소외된 개인을 뜻하며, 반면 개인화라는 것도 실은 획일화된 형태의 개인화가 아닐는지.

어느 집, 어느 아파트를 가보아도 거의 비슷한 공간배치, 비슷한 살림들.

어느 개인을 접해 보아도 거의 비슷한 가치관, 거의 비슷한 의식구조, 거의 비슷한 오락형태, 거의 비슷한 꿈.

삶의 질, GNP, GDP라던가 개인소득 따위나 기술수준의 향상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동편 하늘은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듯한 검은 구름이 가득 펼처지고, 높은 하늘엔 새털구름, 그 사이로 쪽빛 하늘이 시네마스코프 영화처럼 내비친다.


15575 1989. 9. 29 (금)


어제 잠자리 누운채 '새롭게 하소서' 듣는다.

에비타의 이경애. 나는 여태 그녀가 그런 고난과 갈등을 헤쳐온 크리스찬인줄 몰랐다.

세속적인 성공, 성악가,유학,오페라가수,교수에의 모든 길을 포기하고 숨어 도망다니던 사나이에 대한 사랑. 가난하고 도피적인 삶.

그 상황 속에서 그녀는 홀연히 뒤를 돌아보고, 세속적인 성공과 현실의 그 엄청난 괴리감에 아연하여져서 중얼거린다. "내게 하나님이 없었다면. 내게 하나님이 없었다면."


15576 1989. 9. 30 (토)


J가 들려준 소식.

S형 의 가출. 고등학교 1학년짜리의 논리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 고뇌와 갈등의 질을 그저 치기어린 소년의 질로서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소년의 어떤 용기로서 파악해서도 안된다.

매우 심리적이고 상황적인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사춘기라는 열병.

S형 어머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서울 어느 골목을 떠돌고 있은 외아들에 대한 상상은 S형 어머니에게는 피를 말리는 형벌일 것이다.

S형 어머니의 완벽주의가 아이를 숨막히게 했을거라는 J의 조심스런 견해.

英이를 생각한다.


또하나 놀라운 소식.

주희네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배서방과 주희를 묶어 놓고 금품을 강탈하여 주희네 승용차로 도주하였다고.

그 뉴스를 들은 J는 어머니께 전화.

사람이 상하지 않았으니 불행중 다행.


공부가 하고싶다는 열망은 꿈 속에서 늘 초조한 어떤 상황의 영상으로 나타난다. 성규, 상곤등 등장.


이제 4시 기상은 참 어렵다.

5시 겨우 일어나 화장실에서 어제 빌려온 한수산의 소설 읽는다. 도시적인 서정과 부드러운 문체, 그러나 유치하다.


피빛같은 아침 놀, 동양적 귀귀어린 싯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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