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89. 6

카지모도 2016. 6. 2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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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6 1989. 6. 2 (금)


왼쪽을 안대로 가린 애꾸눈으로서도 최선을 다하여 현장을 부딪친다.

많은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또 많은 문제가 새로 발생한다.

특히 한정된 기능인력으로 공사부하의 처리는 골치 아픈 문제이다.

바쁜 틈바구니 속에서 안과에 가서 맺힌 고름을 터뜨린다.

계란을 사 계속 찜질을 해대니까 한결 나아진 느낌.


돌아 와 俊이와 영어공부.

문법의 원칙은 이런데 왜 여기선 적용되지 않는걸까? 이런 경우 아주 조금의 힌트 하나로 탁 트인 해결의 보람을 맛보게 되는 경우의 학습.

이것이 과외의 역할이겠는데 아비짜리는 그런 것을 해 주었는지 모르지만, 俊이는 아빠의 이런 학습 지도를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오늘 BOOM TEST예정, 부대끼는 현장.

내 삶의 중요한 자리를 자꾸 싫다 싫다 하지 말라.


15457 1989. 6. 3 (토)


초여름.

며칠째 물이 나오지 않는다. 탱크 청소한다고.

물이 나오지 않는 아파트는 달동네의 주거환경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다.

어제 저녁, 英이 성적문제로 다소 마음이 어둡다.

그 아이의 지금 나이, 그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상태에서.

아, 주님. 성적 때문에 그 아이의 여린 감수성이 피흘리지 말게 하소서.

성적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말게 하소서.


새벽일어나 俊이와 정말 오래간만에 목욕탕에를 간다.

솜사탕같은 俊이의 몸뚱이를 씻겨주는 재미.

그러나 나의 몸무게는 68KG에 육박.

살이 찐다는 것은 영혼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튀어 나온 배, 개기름, 충혈된 눈.

속되고 천박하게 먹어가는 나이.

중년의 고개마루에서, 불혹의 연륜이라는 40대에서.

나는 과연 불변의 어떤 가치를 완전하게 터득하고 있단 말가.


목욕 다녀와 출군전, 책상 앞 앉아 시편 65 읽다.

하늘에는 붉은 광막.


15458 1989. 6. 4 (일)


어제 형집 다녀온다.

용렬하고, 소심하고, 이기적이고, 좁다.

우리 형제는.

형수의 예수님은.


일요일 아침.

오늘 더위의 징조는 바다를 휘뿌윰하게 만드는 저 광막의 농도로 알수 있을 것이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15460 1989. 6. 6 (화)


북경, 시위군중 탱크와 발포로 수천명 죽다.

이란의 호메이니 죽다.

소련은 800명이 죽은 열차사고.

퇴근 무렵에는 남항동 쪽에서 일어난 화재로 검은 연기가 부산 하늘을 뒤덮다.

어제의 세상은 이토록 어수선한데 나는 술을 마신다.


생각컨데 나는 술마시는 과정의 그 행위를 사랑하는 것일까.

술마신 후에 서서히 마비되어 취해가는 일련의 그 정신적 임상을 즐기는 것일까.

필사적인 의지로서 금주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이미 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 술에 대한 나의 기호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뜸 한뜸 취하여가는 그 안온한 정적, 순간순간의 고 농밀한 생명력.


술은 산문적인 이해가 불가한 대상.

세상은 이토록 산문적이지만.

詩다, 술은.


성하를 향한 태양의 몸짓, 휴일 아침이다.

그러나 곧 회사나가야 한다.

아침식탁에서의 기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함께 고개 숙여 기도하는 광경은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냐.

아내에게 기쁨을, 자신의 생을 사랑하는 기쁨을.

英이 치는 피아노소리,

이것. 내 가정.

세상은 소음이지만 내 가정은 음악이다.


15462 1989. 6. 8 (목)


이제 완연한 초여름의 현장.

땀흘려 근로하는 사람들.


英이 시험치다.

녹음기 앞에서 제 엄마와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부르는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아무리 보아도 좋기만 하다.


드로우잉 아카데미에서 자료 오다.

양질의 도화지와 양질의 연필이 필요하다.

명암을 표현할줄 아는 능숙한 테크닉을 익혀야 한다.

보카시로 명암을 풀어주고, 또 그러테이션에 의해 빛나는 하이라이트가 나타날 수 있도록.


새벽.

커텐을 재치니 비가 내리고 있다.

바람이 없어 수직으로 내리는 빗줄기.


기도.

기도드리는 심령을 정결케 하십시오. 모든 육체의 때, 일상의 거치른 감정의 때를 씻어주시고, 기도의 말들이 주님께 합당한 언어가 되게 하십시오. 아내의 못마땅한 것이 눈에 띄기 전에, 아내의 가엾은 것들에 먼저 가슴 아파하게 하십시오. 여자로서 자신의 일생을 못난 내게 의탁하여 과연 무슨 기쁨과 보람을 얻었는가를 가슴 아파하게 하십시오. 이제 40이 넘어 거친 손마디와 좋지 않은 혈색의 얼굴을 가여워 눈물흘리게 하십시오. 가정, 이 가정. 주님의 풍요로움을 끼처 주심시오. 주님의 평강을 끼처 주십시오.

아, 무엇보다 주님, 주님의 사랑을 끼처 주십시오. 주님의 피흘림을 깨닫게 하십시오. 주님이 주장하시는 삶의 주체가 나와 아내이게 하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5463 1989. 6. 9 (금)


어제 하루 종일 비 내리다. 가뭄의 대지는 해갈하였다고.

집에 돌아와 창을 때리는 빗소리 들으면서, 바닥을 범람하는 빗물을 시내삼아, 책상 앞 앉아 소주 마신다.

초상화 터치 연습을 하면서.

예전 내가 흑백으로 찍고 암실에서 뽑았던 사진, 어머니가 진료실 의자에 가운 입으시고 어린 英이와 彦이를 양 팔로 안고 찍었던 사진을 옆에 놓고, 어머니를 그려 보지만 잘 되지 아니한다.

英이 彦이는 쉽게 그 모습을 그려 낼수 있으나, 어머니를 그리기는 무척 어렵다.

어머니의 주름은 그 난해함이 내 솜씨를 저만치 넘어서 있는걸까.


다소 늦잠, 비는 그쳤으나 회색구름이 온통 하늘을 덮고 뒷산의 소나무 숲은 바림이 부는대로 수런거린다.

아침 식탁, 네 식구 둘러앉아 기도.

아, 나의 하나님. 이 기도가 참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대가 자유를 찾아서 떠나려고 하거든 욕망과 그대의 지체가 그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않도록 먼저 그대의 감각과 영혼을 훈련하는 것을 배우라.

정신과 육체를 정결케 하고, 그대에게 정해진 목표를 찾아 거기에 복종하고 또 순종하라.

자유의 비결을 맛본 자는 없다 그것은 다만 훈련에 의할 뿐이다" -본 훼퍼-



15464 1989. 6. 10 (토)


퇴근하며 J를 나오게 해 미장원 가 파마하다.

낮에는 점심시간에 강당에 벌려 놓고 할부 판매중인 텐트서껀 캠핑 장비에 눈독들인다. 아내와 아이들, 어느 숲 속 계곡, 자연 속에 몸과 마음을 잠겨 캠핑 송을 부르는 네 식구.


대우조선 폐업 결정 소식, 과연 폐업이야 할까마는.

앞뒤없이 냅다 큰소리만 질러대는 문제의 근로자들.

사상적 색채는 모호하고 무정부주의자 흉내를 내지만 도무지 무책임한 무리들.

이런 단세포적인 파괴주의자가 군중심리를 이끌 때 문제는 커진다.

민중이란 얼마나 수사적인 단어인지.


15465 1989. 6. 11 (일)


어제 캠핑 장구들 할부로 구입하다.

안방에다 텐트 처놓고 나는 俊이와 그 안에 들어가 잔다.

이런 소도구들이 이 가족의 화목에 일조하기를.

텐트 속에서의 늦잠.

아침 식탁에서의 가족기도.

이 관계가 그 어떤 이기주의에 부대낌없는 내 가족이게 하소서.


중국의 등소평, 강경함으로 급선회하여 철권을 안정 찾는 듯.

노대통령은 보수대연합을 꿈꾸고.

주가는 곤두박질 치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어느 날 나는 나의 무덤에 닿을 것이다.

棺증 속에서 행복한 구더기들을 키우며

비로소 말갛게 깨어나

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것이다"


무신론의 끝닿는데, 그 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반드시 신의 존재일 것이다.


15466 1989. 6. 12 (월)


안으로 옴츠러 든 삶의 양태.

밖으로 내뻗지 못하는 생의 형식.

고작 독작으로 감상을 반추하며, 혹은 J와의 날카로운 겨루기로의 피흘림.

부디,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양태와 형식들을 답습케 말라.

밖으로, 푸른 창공으로 날게 하라.


15468 1989. 6. 14 (수)


어제 퇴근 길, 서과장등과 어울려 좀 마시다.

모처럼의 결근, 게으름 속에 잠긴다.

비는 내리는데 사생대회에 간 俊이는 어쩔거나.


이문열.

난삽한 사유의 세계로 침몰시켜 지식인에게서 기운을 빼버리는 모수주의의 첨병이라는 평가. 무이념의 이념이라는 그의 소설, 진보주의자의 아들이 대표적인 보수꾼이라는 빈정거림. 현실과 역사로부터의 관심의 영역을 엉뚱하게도 실존문제로 돌린다는 대학생들이 그를 보는 시각.

이러한 평가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러하다.

어떤 운동의 대의나 이념 그 자체보다는 그들의 행동양식이나 의식 정황에 대한 냉소, 즉 유사의식인 '들뜸'에 대한 혐오.

완성된 이념가를 자처하는 '들뜬 아이들'에 대한 냉소.

이문열이 추구하는 바 그것은 사회의 한 현상이기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실존 쪽인 것이다.

나의 성향은 이문열에 가깝지만 소설을 읽으면 어떤 상투성같은 이상스런 껄끄러움이 느껴진다.

황석영은 무조건 파묻히는데.


추적추적 비내리는 오후 한떄.

소인의 무위로움.

아, 주님.


15469 1989. 6. 15 (목)


J와 내가 성격이나 취향이 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때로 든다.

나는 다소 섬세하고 정리정돈에 대한 강박이 있는 반면 J는 다소 거칠고 대범하다.

책일기와 음악등을 좋아하는 점은 같으나, 나는 깊이 천착하는 편이고 J는 다소 가볍게 스쳐가는 편이다.

나는 감상적이면서도 논리적이지만 J는 윤리적이면서도 즉흥적이다.

나의 동정심은 표면적이나 J의 동정심은 깊다.

나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태도는 자기중심적이지만 J는 관계 자체의 신의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같은게 좋았던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으로서 상호 보완적이어서 오히려 이것이 더욱 좋은 게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 이 가시버시의 관계를 자꾸 꺼끄럽게 만드는 걸까?

정말 이 문제는 깊이 숙고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명제이다.

신앙한다는 것은 성낸다는 것과 정 반대의 것이다.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결코 성을 내서는 안된다.

아내여. 너와 내가 하나씩의 소나무로 서서, 두그루의 나무이며 또한 하나의 숲이 되도록 하자꾸나.


기도.

모처럼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 오르는 눈물 한줄기 뜨겁게 뺨을 흐른다.


개짖는 소리.

산 것들이 수런수런 꺠어나는 소리.

유월 아침.


15473 1989. 6. 19 (월)


어제의 일직근무.

작업 거의없어 조용한 현장.

사무실 책상앞 앉아 구상한 단편의 골격 거의 만들어 본다.

'고루 갖추기' 쯤의 제목이 어떨지?


일직사무실로 세계일보의 구독을 권유하러 온 두 일본여인.

통일교는 도대체 어떤 마력이 있길래 이토록 기품있는 이국여인을 종교에 헌신하게 만드는 걸까?


15474 1989. 6. 20 (화)


가위 눌린 듯 회색수면.

또 무엇이 심리적 동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나의 휴식을 괴롭히는 것인지.

현장의 여러 문제들? 이런 일상적인 문제들이 강박이 될 수도 있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나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심층심리에 구축되어 있는 그 구조물 자체가 몹씨 비정상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전인자,성격,성장과정,환경....

나의 역정이란 모든 것은 분명 정상쪽은 은 아니었다.

진실, 사랑, 쾌락, 갈등, 포장된 것, 의례적인 것.

소년시절 Phobia적인 감정체계도 있었고, 갈등의 피흘리는 고통도 있었고, 황량한 허무의 생명도 경험하였을 것이다.

바람부는 교정, 하늘을 올려다 보며 흘린 눈물은 결코 작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천성적인 나약한 의지는 훈련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채, 그저 나약함으로 나의 존재를 지배하여....

나는 분명 비정상적인 가시를 품고 있다.

회색수면-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그 가시의 정체를 정면으로 확인하는 길 뿐이다. 이게 바로 정신분석적 치료의 요체가 아니겠는가.


15476 1989. 6. 22 (목)


어제 곤한 하루 일과.

SB-350 Hatch Cover 공사는 영 순조롭지 못하다.

낮시간의 정신적인 여유를 현장은 도무지 용납지 않는다.


퇴근하여 9시 전에 쓰러져 잠이 드는데.

꿈 꿈 꿈.

회색수면.

육체의 상태도 회색수면의 큰 원인일 듯.

위장의 상태- 저녁밥을 지나치게 먹지 말아라. 모자란듯한 기분에서 숟가락을 놓아라. 위장에 부담이 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숙면을 바라지 마라.


15477 1989. 6. 23 (금)


어제 퇴근하여 서과장과 한잔 걸치고, 구강암으로 의기소침한 구자탁과장 집 방문.

노정춘씨집도 들렀는데 옛날 부인이 아니고 전혀 낯선 얼굴의 부인이 있어 놀라다.


드로우잉 아카데미 교재 도착.

그렇겠지. 무슨 중뿔난 기발한 기법이 있을려고.

꾸준한 노력과 집중력으로 숙달되는 방법만이 최상이다.


15479 1989. 6. 25 (일)


어제부터 장마.

그러나 일요일 오후는 말간 하늘이 얼굴을 내비치고 바다는 쪽빛 푸르름이다.

수평선 위로 흰 성벽을 쌓아놓은 듯, 혹은 산맥의 연봉처럼 켜켜히 구름이 피어 오른다.

오후 내내 안방에 상펴놓고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

역시 모든 일이란 집중하여 빠져들면 흥미는 뒤따라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명암의 Detail을 표현하기에는 연필을 능숙하게 놀리기에서 역부족이다.

이 재미와 노력이 상호작용하면 곧 실력은 상승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저녀무렵 俊과 목욕하고 약방찾아 청학동까지 간다.

휴일이면 문을 닫아버리는 약방, 이것은 횡포다.

약방은 일반 장사와는 틀린 것이다.


15481 1989. 6. 27 (화)


어제의 우울함.

월요일인 탓이었고, 현장의 무더위 탓이었고, 공정의 부대낌 탓이었으며 한 유치한 인격이 괴롭힌 탓이었다.

파김치되어 돌아와 9시30분 경 자리에 누웠으나 편한 잠은 이루지 못하다.

잠결에 J의 큰소리가 틈입한다. 공부하다 꾸벅꾸벅 조는 英이를 나무라는 소리치고는 너무나 큰 목소리.

J의 성대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너무나 크다.


안개 자욱한 아침바다.

겨우 교회의 첨탑만이 모일뿐 구름의 바다이다.

에베소서.

기도.


15482 1989. 6. 28 (수)


어제 오후부터 추적거리며 비 내리다.

비는 내려도 현장은 북새기 통.

SB-350의 부산함속에서 필리핀 사람들의 순박함.

한국인의 교활함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속속들이 모를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의 순박함이 더 돋보일 것이다.

퇴근 길.

최민종등과 술.

현장에서의 갈등을 피력하지만 그 갈등이라는 것에 아주 단순한 논리구조를 적용시키는데, 사고력이 부족한 요즘 엘리트라는 친구들의 경박함을 발견한다.


15483 1989. 6. 29 (목)


어제는 또 조선부의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려 늦도록까지 고기와 술을 먹다.

회식이란 참 싫은 문화의 폭력이다.

단합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려 헛웃음, 헛소리에 즐거운척 껄걸 웃어대면서 지글지글 고기 먹어대고, 먹기를 마치면 또 아주 싫은 문화를 접해야 하는데, 천박한 색채의 조명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슨 나이트라는 맥주집. 이런 곳에는 세련된 음탕함마저도 없다.


본격적인 여름에 진입한 듯.

아침 안개 속의 뿌연 하늘에 떠오른 붉으스름한 태양은 한낮의 찌는 더위를 예감케 한다.


책상앞 앉아 기도.


15484 1989. 6. 30 (금)


독선과 아집의 조선소 현장.

조선소의 기술자라는 사람들, 특히 위로 올라갈수록 구사하는 독선은 거의 발악에 가깝다.


어제 오랜만에 형수에게 전화드리다.


안개 낀 새벽.

기도.

모처럼 어머니를 부르며 눈물 떨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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