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89. 7

카지모도 2016. 6. 22. 01:09
728x90



15485 1989. 7. 1 (토)


유월은 가고 성하의 칠월이다.

무슨 변화를 기다리는 마음.

세월은 자꾸 흐르는데.. 기도의 성취는.

아, 무엇보다 내가 기다려 얻어야 할 것은 신앙의 굳세짐일 것이다.


꿈- 낯 선 서울거리. 돈이 없어 찾아간곳은 아마 작은 집인 듯하다. 작은 어머니와 사촌 누이들, 어머니 누워 계시고, 媛이도 곁에 있다. 누운채 어머니는 내게 말한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거라. 나는 네가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라고. 뛰처나온 내게 媛이가 지폐를 쥐어주는데 나는 그걸 팽개치고 어두운 거리를 헤맨다. 배는 고프고 피곤하여 뒷골목 하숙방을 찾는데, 돌연 전무 Sh씨 가 나타난다.

꿈 속에서의 그 생생한 느낌은 현실에서도 느낌의 재현이 가능하다.

뼈까지 스미는 절망적인 고독감, 이 천지에 나는 혼자다라는.


기도드리지만 중언부언.

토요일 아침.

흐린 날씨, 바람이 분다.


15486 1989. 7. 2 (일)


토요일은 마음밭이 방만해지는 날.

서과장과 늦도록 마시다.

단체협상 결렬로 또다시 분규의 조짐이 보인다.


일요일, 아이들은 교회 열심히 나가며 엄마 아빠 교회나가기를 그토록 바라고 있으나 부모짜리는 오불관언이다.

전축 스피커의 우퍼가 고장났다.

음악이 그친 풍경.

모차르트가 침묵하는 공간.

얼마나 건조한가.


몹씨 바람이 불어 먼 바다에는 백파가 인다.

마음은 게으르고, 정신의 치열함은 흔적도 찾아볼수 없으며,

육신은 이토록 나태하다.


<밤>

임수경의 부모는 딸이 자랑스러울까?

아니면 가족이라는 무엇보다 이념을 택한데 대하여 슬퍼할까?

어떤 사적인 사무침 이외에 무슨 다른 감정이 있을 듯도 싶다.


英이를 생각한다.

英이가 생각하고 사고하고 고민하는바 그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俊이 역시 그애가 생각하고 사고하고 고민하는바 그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우리는 아이들의 내면에 대한 것은 더욱 미로에 빠져 버릴 것이다.

그 분의 지혜가 아이들을 지배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의 지혜로서 아이들을 파악하여야 한다.


15488 1989. 7. 4 (화)


새벽녘.

英이 방문을 두드려 '잘잤니?'하고 묻는 아비의 인사에 아무런 응답도 없이 차가운 금속적인 얼굴로 아비를 바라보는 英이 표정의 생경함.

등골에 전류가 흐른다.

지금 이 아이는 무엇을 아비짜리에게서 보고 있는 걸까.

아, 미상불 큰일이다.

英이.. 英이..

시편 51 소리내어 읽는다.

기도여. 기도여.


15489 1989. 7. 5 (수)


조선소의 현장은 늘 싸움하는 큰 소리가 난무하는 곳이다.

노사간의 단체협상도 그런 듯. 공갈과 독선이 판을 친다.

결국 쟁의신고한다고 하는 노조측이나 일반론의 공갈만 처대는 사용자측이나 유연치 못한 대화의 테크닉은 매 일반이다.


돌아와 홀로 소주.

오늘 J는 웬일로 동삼교회 피종진 목사의 부흥회에 나간다.

아, 내 아내에게 성령의 불꽃이 내리기를.


15491 1989. 7. 7 (금)


미우라 아야코 '빛을 찾아서'

성서에 나타난 인간의 죄.

그녀는 정말 진지하게 살아 왔고 살고 있으며, 진지하게 예수를 믿어왔고 믿고 있다.

내 관념적인 예수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

그녀가 일본인인 까닭도 큰 요인일 것이다.

일본인은 한국인보다도 모든 면에서 진지할줄을 아는 문화 속에 사는 민족이다.


15432 1989. 7. 9 (일)


본격적인 장마.

어제 장대같은 소나기 퍼붓다.

흠뻑 젖어 집에 돌아와, J가 담궈 놓은 인삼주 마신다.

구성을 가다듬을수록 어려워지는 단편, 요렇게 짧막한 작품 하나의 창작이 이토록 어려운데, 내 평생 꿈꾸는 장대한 작품의 탄생은 얼마나 요원한가.

진주, 몇십년 조개의 암흑 속에서 익어가는 한알의 진주.


英이는 학교에서 1박의 캠핑.

부디 즐겁고 즐거웁거라.


모처럼 편한 잠 이루다.

천지를 뒤덮은 안개 속을 빗물은 줄줄 흘러내린다.

일요일 아침, 英없는 식탁에서 세식구 기도드린다.

J의 된장찌개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솜씨는 여성스런 여성이다.


15494 1989. 7. 10 (월)


느닷없이 비가 퍼붓는가하면 금새 말짱 개이기도 한다.

여름 장마의 변화무쌍함.

어제 휴일날 계획하였던 꽁트는 완성치 못하였다.

내 의지의 견실치 못함은 월요일 아침 나를 다소 참담한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15496 1989. 7. 12 (수)


어제 때때로 쏟아지는 장대같은 비.

퇴근하여 버스가 동삼동 고갯길을 넘자마자 지척도 분간 못할 안개가 엄습한다.

고개 이 쪽과 저 쪽의 풍경이 이토록 다를수 있다니.

무슨 무수하게 많은 벌레들이 스물스물 움직이듯 안개는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 사이로 어렴풋이 비처 보이는 사물의 모습들.

말할수 없이 안온한 천진함이 어려있다.

동화같은.. 만화영화같은...


어제밤 12시까지 콩트 쓰다.

자꾸만 되풀이되는 개작의 욕심.

소설가들은 소설가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습작을 하였는지 짐작할수 있다.

여하튼 오늘까지는 마처야하고 내일은 발송하여야 한다.


찬물 뒤집어 쓴후 최귀라의 찬송 울리는 안방에 앉아 나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여전히 안개는 온 누리를 꽉 채우고 있다.

俊이 귀.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감사.


15498 1989. 7. 14 (금)


어제 CBS '새롭게 하소서'

경찰 고위간부로 있다가 정년퇴직후 사업의 실패로 몰락한 가정. 늙은 아내는 남의 집 파출부, 아이들은 학업을 중단한채 택시기사등으로. 그러나 그 와중에서 예수를 영접하였다. 지금은 경제적으로는 형편없이 가난하지만 그 가정의 화목함과 행복은 대단하다. 예전보다 몇배나 행복하다는 그들 가족....

예수께서 그 가정에 세상의 안락을 빼앗은 대신 마음의 복락을 주신 것이다.


새벽 로마서 7장.

기도.

어머니는 17일경 오신다고.


15500 1989. 7. 16 (일)


어제 형집에 가 형과 소주.

답답함이 넘실대는 형제 사이에는 그저 소주만이 맛있을 뿐이다.

서울계신 어머니. 딸네가 그렇게 편하신가.


그 옛날, 울멍울멍한 눈을 가진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늘 오두마니 앉아서 산 등에 지는 노을만 바라보고 있었다. 휘파람을 불줄 모르는 아이는 웅얼웅얼 노래같은걸 부르곤 했다. 그러면서 어두워 질때까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하늘 밑으로 어머니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 아이는 거기 앉아서 먼 하늘만 바라본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직 오지 않는다.

英이와 俊이. 아, 정화.

너희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일요일, 비는 내리다가 그치다가 내리다가.

J와 J의 친구집이라는 동삼교회 앞의 깔끔한 집에 가서 개고기 먹다.

개고기, 제법 J는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J의 교제범위는 나보다 넓고 능숙하다.

곳곳에 여기저기서 인사하는 사람들.

"당신, 노가다들과 이 집에 회식이랍시고 몰려오지 말아요. 내 체면이 있으니까"


15503 1989. 7. 19 (수)


그야말로 염천이다.

쨍쨍 삼빡하게 아름다운 더위가 아니라, 습기가 가득차 더움이 몸에 척척 휘감기는 이쁘지 못한 더위이다.

이 더위 속에 어제는 울산 현대조선 출장 다녀오다.

성하의 짙은 녹색의 산야를 차창으로 보는 맛은 나쁘지 않다.


어머니는 28일쯤 내려 오신다고.

媛네와 함께 오시려나?

어머니 생신 8월 8일.


새벽.

실로 오래간만에 俊이와 손을 마주잡고 기도 드린다.

동녘 바다의 핏빛 아침 놀.

오늘도 더위는 대단하리라.


15504 1989. 7. 20 (목)


어제는 가히 살인적인 더위.

경북의 도시들은 36도를 넘었다고, 습도도 높아 불쾌지수가 치솟고.

하복의 구분이 없는 회색작업복의 용사들.

이 더위 속에서 그들은 진정 용사들이다. 나도 덕분에 용사다.


새벽.

자욱한 안개, 그 틈새를 꼭꼭 채운 더위.

태풍 하나 남쪽에서 음모중.


포기하는 용기, 잃어버려도 견딜수 있는 그것은 용기일까?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게되는 경지, 그것 역시 용기일까?

아니, 용기라기 보다 은혜일 것이다.

신이 사로잡아 버리면 그 은혜는 내려온다.

안개낀 아침.

모처럼 프란치스코를 생각해 낸다.

하나님의 어릿광대, 하나님의 거지.


<밤>

폭발적 위력의 더위.

뭉개구름은 하늘 가녁에 부드러운 곡선의 스카이 라인을 만들고 하늘은 그토록 온화한 녹색인데, 이 무더위는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숨겨 놓은 가열찬 용광로에서 나오는 것 같다.

조선소의 현장은 그대로 하나의 커단란 용광로.

태풍이 온다는데 이 현장에는 빗방울 한방울 듣을 기색은 없다.


나의 육체가 인내하는 비등점은 어디일까?

육체만의 바로메타로서 그 비등점을 측정하기는 불가할 것이다.

기분과의 문제, 정신 정황과의 교호성이 중요하다.

고문자에게 맡겨 놓은 자신의 몸뚱아리를 물건처럼 바라볼수 있는 경지, 박힌 화살 촉을 칼로 후집어 빼는 동안 바둑에 골몰하는 관운장.

육체에서 완전하게 일탈하는 정신.


"자 이번에는 이렇게 합시다. 당신 손톱을 죄다 뽑을테니까 협조를 부탁합시다."

"그래요? 자, 이런 자세면 되겠습니까?"

이것은 언젠가 꾼 굼이다.


아이들 방학.


15505 1989. 7. 21 (금)


CBS '새롭게 하소서'

성한 곳은 오른쪽 다리 하나뿐인 충청도 처녀가 함양의 불구 남편에게 시집간다. 병신부부의 삶, 아들 하나를 얻고, 조그만 도장가게를 차리고 살고있는데, 그여인의 지금 경제적인 꿈은 다만 세탁기 하나 장만하는 일이다. 그 여인의 목소리가 그렇게 영롱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단지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 하나로.

도회지 살진 돼지들에 비하여 한없이 고아한 삶.

들으며 눈물흐르다.


15507 1989. 7. 23 (일)


드디어 스피커 구입하다. 인켈.

J와 같이 나가서 그 무거운 놈을 낑낑거리며 들고 메면서도 자갈치에 가서 회를 먹는다.

J가 생선회를 어찌나 맛있어하는지 마주앉아 소주잔을 비우는 남편짜리 마음이 너무 좋다.


이제 거실에는 음악이 되살아났다.

쇼팽의 폴로네이즈가 엑조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슈베르트가 깊이 침잠하게 만들며, 베토벤은 나를 높이 들어올릴 것이다.

아, 음악.

신이 창조한 태초의 소리는 필경 아름다웠으리라.

그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어쩌다가, 쇠가 긁히는 소리, 깨어지는 소리, 부딪치는 소리, 악쓰는 소리만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

신이 창조하신 소리는 오직 음악 속에서만 남아 연명하게 된 것일듯.


어제밤 전화, 어머니 오시다.

나를 영원히 설레세하는 연인, 그 이름 어머니.


일요일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드리는 기도.

나의 식구들. 사랑으로 충만하라. 정신을 사랑하라. 천박하지 말거라.


<밤>

어머니 뵌다.

화장발인지, 얼굴이 너무 좋으시다.

쌍거풀진 다정한 눈매, 코밑에서 양쪽을 둥글게 입가로 내려운 선, 염색하여 검은 머리.

자세도 정정하시다.

서울얘기를 종달새처럼 즐겨 지저기시는 어머니를 뉘가 70이라 하겠는가.

기쁘다.

형이 돈을 주어 아이들은 英이 인솔로 극장에 보내고,

어머니를 가운데로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다.


전태일과 이소선.

그 모자관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분신하여 죽은 아들의 이념이 고스란히 무식한 어머니에게 전이되었던 그 관계는 무엇이었을까가 궁금하다.


15508 1989. 7. 24 (월)


현장의 열기.

며칠후로 다가온 휴가, 그 설레임으로 이 더위를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휴가를 맞이하기전의 설레임은 이러한데 막상 닥치고보면 참 보잘것없이 그 황금시간을 보내고 만다. 기획도 없을뿐더러 실행도 없는 휴가.

이번 휴가는 무언가 기획하고 실행하자.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들의 행사로.


현장의 노동자들.

나는 노동자의 본질을 이해하는가. 늘 그들과 함께 있지만 나는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가.

아닐 것. 나의 의식구조는 부르조아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애정을 표방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감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일 것이다.


15510 1989. 7. 26 (수)


어제 큰 비 내리다.

영호남에서 60여명이 호우로 숨지다.

퇴근 길, 내키지 않는다면서도 술 마시다. 시작이야 어쨌든 급기야는 취하고 마는걸.


모레부터 여름 휴가, 봉고를 빌려서 어머니 모시고 형네와 내원사 계곡에 갔다오기로 작정하고 박사장 공장의 봉고를 수배하여 놓다.


15512 1989. 7. 28 (금)


태풍경보.

주디라는 예쁜 이름의 태풍의 마왕이 상륙하였다.

지금 3시의 저 어둔 밖에서는 태풍의 전령들이 기세좋게 돌아다니고 있다.

아우성치는 저 바람소리.

척후병으로 내리는 비, 선전포고는 이미 발효되었다.

그리고 거대한 기갑사단, 해일이 해변을 덮친다.

태풍을 기다리는 침묵의 단계는 지나갔다.

이제 영향권이다.

저 바람 소리 속에서 나는 히이스 광야의 바람소리를 듣는다.

캐서린, 히스크리프.

"캐시! 죽음이라도 돌아오라!"


15513 1989. 7. 29 (토)


어제 태풍 주디 지나가다.

휴가 첫날 현장에서 비상 근무.

한반도 동쪽에는 많은 비만 퍼붓고 전라도 쪽으로 비켜 북상하였다.


오늘 휴가 이틀째.

내일 야유를 위하여 J는 부산하다.

지지고 볶고 챙기고.

이정항 '샛강' 읽다.

건강한 가난함, 그 낙천적인 가난 속에는 섹스조차 비린내가 나지 앟는다.

내게도, 나의 가족들에게도 그런 건강함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 안정이여, 균형감각이여, 내 주님의 평강이여.


15515 1989. 7. 31 (월)


내원사 계곡.

골짜기 골짜기마다 빼곡히 들어 찬 피서 인파.

어머니, 형, 彦이, 哲이, J 그리고 나.

형수는 빠졌다.

차거운 숲 속의 냇물.

물놀이.

늙으신 어머니는 텐트 속에서 누워 계시기도.

J가 작정하고 장만한 음식들은 주도면밀하고 풍성하고 맛이 있다.

어머니도, 형도, 아이들도 맛있게 먹고 마신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짐들을 쌌으나 김기사의 봉고는 오지 않는다.

걸어내려 오는데 장사진의 차량, 사람들.

중간에 봉고만나 차 속에서 형과의 술.

아, 어머니를 중심한 하루의 야외 모임과 놀이.

그래, 내 허영의 만족이 아닌,

어머니의 기쁨, 가족의 기쁨이었기를.


여름은 오르가즘을 향해 치닫는다.

많은 빨래와 설거지등 뒤치다꺼리를 마치고 몸저 누운 J.

물놀이로 피곤하여 곯아떨어진 아이들.


형해화된 위대함, 구조화된 권위.

늘 새살처럼 말랑말랑할 것. 俊이 볼처럼.

그것은 늘 사는 것. 새롭게 사는 것.

또한 긍정하는 것.

그것은 그렇지, 감사하는 것.

어떤 근원을 찬양하는 것.

그리하여 그를 향해 기도하는 것.

실존을 소망을 갖고 견디는 것.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 > 部分'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9. 9  (0) 2016.06.22
1989. 8  (0) 2016.06.22
1989. 6  (0) 2016.06.22
1989. 5  (0) 2016.06.22
1989. 4  (0) 201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