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77 1989. 10. 1 (일)
바둑의 오묘함, 그 오묘함만을 즐기면 최상의 도락이겠는데, 상대에 따라 호승심만이 창궐하게 되면 그것은 도락이 아니라 비천한 품성만이 노정되는 부끄러움이다.
토요일, 개고기, 소주, 맥주.
J는 S형 어머니께. 부디 S형 어머니의 쓰라린 마음밭에 위로가 되는 아내이기를.
가을.
군대, 가을 새벽의 그 투명하고 스산한 회억.
영문 밖 시골의 가을냄새, 개짖는 소리.
그때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새벽.
15578 1989. 10. 2 (월)
일요일 종일 뒹굴며 시간을 죽인다.
스필버그 영화 비디오로 본다.
'인디아나 존스 2편'
기발한 아이디어의 엔터테인먼트의 연속, 놀라키기 시합이다.
남는 것은 별로 없으나 재미는 그만인 영화.
영화는 테크닉과 아이디어만으로 이루어진 예술형태는 아니다. 제 7의 뮤즈.
저녁 큰집에 가야숙모네등 모두 모여, 할머니의 8주기 추모 예배.
오늘 부쩍 서늘해진 날씨.
현장 오작의 눈속임 작업 때문에 선주의 불신감 야기, 나는 선주보는 앞에서 불같이 작업자에게 화를 내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그 상투성을 잘 알고 있는 작업자나 나의 속마음 역시 피식 웃고있을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 이 정도의 캄푸라치는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이른바 조선 에지니어의 양심이 이 정도이다.
S형 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 있을 소년의 어머니, 사랑하는 외아들이 낯선 거리를 떠돌고 있다는 상상은 어머니에게는 실로 견디기 힘든 고문일 것인데.
돌아오너라. 열여섯짜리 소년, S형 아. 돌아 오너라.
15580 1989. 10. 4 (수)
J는 점장이한테 다녀오다.
점장이가 그러더란다. S형 이는 이번 토요일날 돌아온다고.
무사하게 돌아온다면 소년의 가출은 S형 이를 위한 좋은 쪽으로의 어떤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한밤중이겠거니 하고 일어난 시각은 이미 5시를 넘어섰다.
서둘러 서둘러, 화장실, 윗몸일으키기 40번, 목욕, 슈벨트 걸고, 면도.
오늘 2공장 SB-366 진수예정.
아침 햇살은 구름너머로부터 부챗살처럼 퍼져 내리 비친다.
잠시의 기도.
15581 1989. 10. 5. (목)
완연한 가을.
아침에 창문을 열면 무슨 나뭇잎 타는듯한 냄새가 난다.
조락의 냄새, 그래서 그 냄새는 투명하다.
낙엽지는 풍경은 얼마나 투명한가.
가을, 도시의 서정은 어떠한가. 가로수의 헐벗음, 포도의 낙엽.
황혼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스카프 쓴 여인의 하이힐 소리.
가을은 가슴을 스산하게 하는 요소로 가득차 있다.
여름은 찬연하고, 겨울은 침잠이라면 가을은 그 찬연함에서 침잠으로 가는 도정의 쓸쓸함이다.
육체가 아름다웠듯이 여름은 아름다웠으며, 영혼이 아름다웠듯이 겨울 또한 아름다웠으며, 그리하여 육체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영혼의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려는 길목.
그러나 육체를 벗어난 죽음이 슬프듯 가을은 슬프다.
S형 이는 아직 소식이 없다.
15582 1989. 10. 6 (금)
P이사 주재의 공정 회의.
현 공사량은 조선소의 Capacity를 육박하는 과부하이다. 무조건 밀어부치는 구태의연한 발상.
어제 俊 시험, 늘 체육에서 젬병인 모양.
英이 안과, 별 이상없다고.
퇴근길 113번 버스 안에서 아이들 만나다.
회색 빛 승객들 틈에서 발견한 보석 둘.
불과 하룻만에 새끼들 만남이 이렇게 기쁠진데, S형 이는 벌써 열흘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새벽.
시편 90.
기도.
15583 1989. 10. 7 (토)
어제 안성도장 영환의 봉고타고 오륜대 민물횟집.
부산근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숲이있고 호수가 있다.
그 음주로 인하여 곤비한 하루일과.
근로자 해외여행의 포상휴가, 4명 선정하여 추천서 작성하여 올리다.
J의 부탁, 인감증명과 주민등록등본 떼어 J에게 주다.
바삐 움직이는 오늘의 몸놀림은 어제 새벽2시에 술취해 귀가한 푼수로는 제법이다.
그리고 J의 기획, 현실적인 생활력의 센스는 나를 훨씬 웃도니까, 무조건 그녀의 뜻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나는 행복한건가?
하기는 내게 단 일푼의 재산, 단 일푼의 저축도 없으니 무슨 움치고 뛸 재간 있으랴마는.
그저 나의 장기란 그저 찬연한 술마시기가 아니겄는가? 아내여.
퇴근길, 곰곰 생각하여 본 '확률'이란 의미.
확률이란 얼마나 위험한 수학적 명제인가.
벽에 뚫린 바늘구멍, 그 구멍으로 실을 꿴다는 확률.
불가능은 확률의 얘기가 아니다. 확률적으로는 가능하다. 다만 확률적으로 낮을뿐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수학이 아니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획률의 문제로서 성공한 것이지, 결코 기적이나 섭리의 문제가 될 수없다는...
媛이 基와 내려 온다고.
육체의 속은 부대끼지만 정서는 안온하다.
이러한 정서는 결코 악의 쪽은 아니다.
15585 1989. 10. 9 (월)
한글날, 연휴 이틀째이지만 현장은 나를 강박한다.
꿈 속에서 60톤 갠트리 크레인 쓰러지다.
오늘은 그러나 특별한 연락이 없는한 현장에 나가지 않으려고 마음 먹는다.
현장말고도 할 일이 널려있다.
그림숙제 해서 빨리 보내야하고, 媛이와 基가 집으로 온다고 하고.
책상 앞 앉아 기도.
혓바늘.
구강 왕국내의 조그만 반란.
고 좁쌀만한 반란군이 몸뚱이 전체를 곤비케 하누나.
혓바늘은 왜 그토록 자주 내습하는지.
구강내의 지엽적인 학정때문에 일어나는 반란이 아니라, 전체 몸뚱이의 정책이 잘 못되어 일어난 반란일 것이다.
이 놈을 진압하는데에는 연고등을 바르는 국부적인 강제진압이 아니라 몸뚱이 다스림정책의 총체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몸뚱이의 휴식 곧 절주, 영혼의 안정, 경건의 회복...
사랑하는 감정...
15586 1989. 10. 10 (화)
어제 媛이와 基 들렀다.
어머니는 18일경 서울 가신다고.
어제 오전, 드로우잉 아카데미 숙제 완성, 만족한 초상화가 된다.
오후 아이들 데리고 남포동 나가 돈까스 사먹인다.
그리고 책. 김승옥, 이문열, 이문구 선집 3권.
각기 유니크한 특성이 있은 세 작가.
책상 앞 앉아 이문열 읽는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고향, 고향의 모둠살이, 핏줄의 관계, 관계의 아름다움, 이조의 잔영...
오늘 회사의 현장은 온유하였다.
월전 추천한 전접반 권영동씨, 우수기능인 수상결정.
오백만원의 상금, 산업시찰, 청와대 만찬.
작성하기 귀찮은 것 중 하나가 바로 공적조서란 물건인데, 그 상투적인 글만들기 작업이 보람을 느끼게 되었구나.
일본 포상휴가에 추천한 4명도 모두 선발되었으면.
부자란 무엇?
상대적 우월감, 황금이 뒷받침하는 관용, 감각적인 모든 것에 대한 자유, 살이의 여유.
그러나 속된 그 무엇, 바늘 귀를 통과하는 낙타.
그러나 내가 지금 가장 되고 싶은 것, 그것은 부자이다.
또한 한켠 프란치스코를 닮은 거지에의 욕망도 없지 아니하나 그 감정모체는 미약할 것.
15588 1989. 10. 12 (목)
모처럼 의도된 결근.
뿌연 광막에 싸인 아침의 저 공간.
英이는 소풍간다고 설레이는 아침.
그리고 S형 이는 제 친구에게 전화하였다고.
일단 크게 안심하여도 좋게 되었으니 다행.
J는 어제 수영만 대우아파트 청약 접수. J의 경제적인 감각과 행동력은 나보다 훨씬 웃길이다.
금각사 완독.
미쪼구찌의 내면세계는 참으로 나와 유사하다.
이해받지 못하는 자아, 세계와 동화되려는 심리세계의 묘사는 대단하다.
이 책을 쓴 서른살 때의 미시마 유키오는 천재일시 분명하다.
인식 하는것과 행동 하는 것.
"이 세상에서는 나와 금각사만이 공통의 위난에 처해있다는 생각이 나를 격려했다. 美와 나를 결부시키는 매개물이 발견된 것이다.
나를 거절하고 나를 소외하고 있는 것 처럼 생각되었던 것과의 사이에 다리가 놓여진 것이다.
나를 태워 없앨 불은 금각도 태워 없앨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나를 거의 미칠 지경으로 만들었다.
같은 재화, 같은 불의 운명 밑에서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같은 차원에 속하게 되었다.
나의 연약하고 흉한 육체와 같이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타기 쉬운 탄소의 육체를 갖고 있다.
그렇게 생각되자 때마침 도주하는 도적이 고귀한 보석을 삼켜서 감추듯이 내 살 속이나 조직 속에 금각을 감춰 가지고 도망칠수도 있을 것 같이 여겨졌다."
15590 1989. 10. 14 (토)
선듯한 가슴.
설렁설렁 바람이 드나드는 가슴.
오늘, 가을은 좀 달콤한 비애이다.
10월, 군대의 10월의 그 들판이 생각난다.
새벽 기상하여 아침 점호를 취할때면 어둠 속에서 풋풋이 느껴지는 냄새.
그걸 나는 아주 달콤한 비애로서 회억하고 있다.
그날 아무리 격렬한 훈련이 있을지라도 그 가을 새벽의 어둠 속 풋풋한 느낌은 분명히 달콤하였었다.
년전의 일본, 그 때의 시월.
우에노공원. 까마귀는 그 고즈넉하고 고풍 짙은 박물관 경내에서 노냥 울어 옛는데,
남쪽, 나카사키의 언덕, 일본 최초의 서양식 정원과 저택, 그 곳에서도 까마귀는 울었었는데.
그 까마귀 울음소리도 음울한 음색에 비하여 내 귀는 달콤함으로 또 비애로서 기억하고 있다.
15591 1989. 10. 15 (일)
어제 어머니께 다녀오다.
서울가시기 전.
이제 가을의 추위를 타시고, 외로움을 타시는 노파.
어머니가 이제, 이 세상의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가치에 탐닉하지 마시고, 음전한 늙은이로서 영원한 소망에 가치를 기울이시기를...
15592 1989. 10. 16 (월)
어제 근 서너시간을 J와 마주앉아 고스톱을 친다.
노름을 할 때, 돈을 안주려 한다던가 하며 나는 참 추접은 편인데 J는 반듯하고 분명하다.
나의 비천함에 비하여 이 점 역시 돋보이는 J의 품성이다.
초저녁 잠자리들다.
꿈, 웬 산골짜기에서 건조하는 선박. P이사와 그 현장을 돌다가 낭떠러지에 매어달린다.
또 시시껄렁한 현장의 꿈.
그러나 중요한 것 하나를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내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置之度外하여 그 가치를 두지 않으려 하여도 직장이라는 것은 내 의식, 무의식 속에서 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내게 숨어 있을 법한 고루한 관념 한토막.
선비는 장사꾼보다, 순수예술가는 대중예술가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이 우스꽝스러움이 분명 내게는 있다.
새벽.
요한복음, 시편51.
기도.
15593 1989. 10. 17 (화)
어제 북한과의 축구시함, 남쪽이 1:0으로 이기다.
국제무대에서 부끄러운 동족끼리의 경기.
새벽. 요한복음.
예수님 못박히시다.
빌라도가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죽음을 인식하는 사람들, 유한한 목숨의 의미를 깨달아 실존의 진실을 눈치챈 사람들.
그래서 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진리를 아는데 가깝다.
이것이 지천명의 의미는 혹 아닐는지.
저자거리의 군상들, 부대끼며 소리치는 저들, 열락에 잠겨 환호하는 저들은 늘 빌라도처럼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새벽 놀, 처연하게 동쪽 중천을 물들이고 있다.
S형 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S형 어머니는 S형 이 일하고 있다는 서울로.
기온 뚝 떨어지다.
15594 1989. 10. 18 (수)
어제 신입사원 받다.
해양대학교 출신, 이 종숙.
얌전하고 내성적으로 보인다.
공정회의, 이토록 과부하의 공사량.
윗사람의 정책적인 배려를 기대하기 보다는 직반장들의 최선을 기대할 뿐이다.
꿈.
꿈의 상상력은 무궁무진, 꿈 속에서야 무언들 될 수 없으며 무언들 할 수 없으랴.
기억은 못하겠지만, 상상력이라는 단어만이 엑기스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어제 밤.
전에 오세건이 녹음하여 준 '라 트라비아타' 들으며 고량주 마시다.
오세건, 매니아적 풍모 넘치던 녀석. 함께 참 많은 음악회도 다녔는데 녀석은 요즘 소식이 없다.
그저 감상에 젖어 상상할 때에는 그리워지지만 막상 만나서 살갗에 닿았을때는 싫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오세건은 그렇지 않은 녀석이다.
15595 1989. 10. 19 (목)
모처럼 3시30분 이른 새벽 일어나다.
새벽의 냉기가 오히려 맑은 경건을 자아낸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까지 읽다. 예수님 부활하시다.
기도.
합성물에 있어서 절대순수란 하나의 이론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
혼합은 앙상블의 아름다움은 인정될지언정, 본질적인 그 생성원자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인정될수 없다.
음악- 오직 음악의 순수함만 들을수 있는 귀는 없을거나?
연주회장의 화려함, 오디오 시스템의 번쩍거림, 음향기기의 품질같은 걸 모두 빼버리고 음악의 순수함만을 들을수 있는 귀.
그림- 오직 그림의 순수함만을 볼 수 있는 눈은 없을거나?
전시회장의 고상함, 화첩의 인쇄상태, 선입되는 비평의 권위같은 걸 모두 빼버리고 그림의 순수함만을 볼수 있는 눈.
술- 곤비한 육체, 방탕된 감정상태, 허영, 허세 모두 빼버리고 오직 술의 그 순수함만을 마실수 있는 목구멍은 존재할수 없을거나?
주님께서는 모든 있어야 할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반대의 개념도 가능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진정 순수한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시청각 모두를 활용하기 보다는 모든 곳을 닫아버리고 오직 순수에 목타는 단 한 곳만을 열어 놓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15598 1989. 10. 22 (일)
P이사의 공정 독촉, 조아부치는 수법.
권영동씨, 이번 수상은 그에게 커다란 의미, 내게 억지로 건내주는 봉투하나, 완곡히 사양하고 그의 저녁초대만을 응한다.
15599 1989. 10. 23 (월)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
S.F소설, 종횡무진한 상상력의 발휘, 드넓은 공간의 환타지.
다소 유치한 구석도 많지만.
어제 일요일의 회사.
뚱집에서의 오후.
전도지 나누어 주는 한 청년.
빛나는 얼굴, 진지한 자세, 온유한 표정.
술잔을 앞에 놓은 나는 부끄러웠고.
15601 1989. 10. 25 (화)
어제 탱크 검사의 꼼꼼함과 까다로움.
검사마치고 카마초와 칼룬소드와 어울려 늦도록 마신다.
결국 카마초와 이종숙과 1시 넘어 집에 까지 와서야 그 화려한 술마시기 역정을 끝낸다.
술에 찌든 육체, 작취미성인채로 현장을 견딘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부터 쓰려오는 밥통.
견딜수없어 퇴근하여 몇잔의 맥주로 마비시킨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버스안.
英이 만난다.
'붉은 수수밭' 관람후 돌아오는 여고1년생, 내 딸.
아비 닮아 영화광의 풍모 약여하다.
15604 1989. 10. 28 (토)
일반 보수적인 신문과 한겨레신문의 논조는 어찌 그리 다를수 있는지?
분명 하나의 사실은 객관적으로 사실일뿐인데도, 언론이라는 휠터를 통하여 여과된 사실은 엄청나게 다르다.
닫힌 사고와 열린 사고가 만들어 내는 작위라고만 단정할수 있을까?
사실에다 첨가하는 사상이라는 것, 그것이 사실을 다른 맛으로 가공하는데.
15605 1989. 10. 29 (일)
어제도 2시까지 필리핀 친구들과 마시다.
필리핀 초청, J와 함께.
일요일 아침.
俊이의 기특함.
꼬불처 놓았던 8000원을 제 엄마에게 내어 놓으면서 청거북 어항 사라고.
나는 그 자상함에 정겨운 내 아들을 느끼고, J는 그 여린 마음이 세상살아가기 힘들다고 안스럽다.
현장 달려가야하는 휴일.
나의 교회는 어디쯤 있을는지?
<저녁>
가을 바다는 저토록 찬연한데.
그 푸르름은 마치 아프로디테의 하얀 나신이라도 불쑥 솓아오를 것 같은 찬연함인데, 이토록 찌들리며 찌들리고자하는 육체의 소욕이란 어인 일인가.
현대문으로 쓴 성경 사다.
생명의 말씀사 책 '현대인의 성경'사다.
15606 1989. 10. 30 (월)
아마 내 육체의 세포조직을 분해하여보거나, 내 심층 심리의 정체를 분석해 본다면, 영과 육 공히 술의 흔적이 발견될 것이다.
나의 음주인지, 애주인지의 도는 지나친바 있다.
내가 아무리 변명하거나 자기합리화 하더라도 지나치다.
영혼의 위로, 일상의 휴식, 비기독교적 앙금의 청소, 정신의 고양... 등 표방하는 그 열망의 정체는 다만 술마시고자하는 욕망이외 아무 것도 아닐수도 있다.
어둠 속 개짖는 소리.
가을은 깊어가고, 중천에 뜬 별.
15607 1989. 10. 31 (화)
어제 오후부터 서서히 엄습해 오는 몸살끼.
밤새 끙끙거리며 뒤척이다.
꿈과 더불어.
서울거리, 옛날 걸었음직한 어느 거리, 도시는 어둠에 잠기고 나는 찾아갈곳이 없다. 철수 영회등이 떠오르지만 나는 그들의 거처도 모르고, 여비도 없고.그저 배회하는 자하문 밖의 풍경화.
억지로 억지로, 5시 일어나다.
월말의 외주 기성 정리와 내일 SB-365 진수라는 업무의 강박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이문구 '관촌수필'
내 방에 앉아 현대문의 에레미아.
기도.
英이 俊과 함께 공부.
俊이 준 돈으로 J는 청거북 어항 사오고 俊이는 흐뭇하다.
J,고추장 담다. 다 자란 예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