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5권 (2)

카지모도 2023. 1. 13. 06:13
728x90

 

 

손가 형제가 본래 광주 분원 사람인데 형은 사기를 구울 줄까지 아는 사람이

고, 아우는 사기짐 지고 다니는 도붓장수로 이골난 사람이다. 형제 같이 송도로

이사 오기는 아는 사람의 연줄도 있거니와 장사 자리가 좋을 줄 믿고 온 것인데

송도 와서 수삼 년 장사를 하는 동안에 형제가 다 딸 하나씩 낳아서 식구가 늘

뿐이지 장삿속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여 고향으로 도로 갈까말까 하던 중에

형이 서흥 사기막 사람 하나를 친하여 그 사람의 주선으로 서흥 가서 사기를 굽

게 되어서 아우의 식구까지 끌고 다시 이사를 가던 길이었다. 형이 죽고 보면

서흥 이사는 파의할 수밖에 없는 사세라 작은 손가가 형수와 의논하고 우선 송

도로 돌아가서 형의 상처를 치료하기로 작정한 뒤 탑고개 동네에 가서 승교바탕

과 사람을 얻어가지고 와서 형은 승교바탕을 태우고 이삿짐은 다른 사람 지우고

작은 손가 자기는 형이 업고 오던 조카 아이를 업고 어린 딸들 업은 형수와 안

해를 데리고 떠났던 송도로 다시 들어왔다.

십여 일 지난 뒤에 큰 손가가 상처는 합창이 되고 음식까지 잘 먹게 되었으나

행보를 잘 못하여 뒷간 출입도 남이 붙들어 주어야 하고 더욱이 총명이 전만 못

해서 모든 일을 선망후실하여 말하자면 정신은 다 빠지고 등신만 남은 것 같았

다. 형이 이 모양 된 것을 보고 작은 손가는 기막히는 중에 형제 벌어서 먹이던

식구를 혼자 담당할 일이 더욱 기가 막혔다. 아무리 이삼 년 살던 곳이라도 타

향인데다가 한번 파산하였던 살림이라 신접과 다름이 없고 또 의약의 소입이 적

지 않아서 이사 밑천을 다 잘라먹었다. 작은 손가가 도붓장사를 나가려고 준비

를 차릴 때 형수를 보고 형의 원수 갚을 일을 의논하였다.

"내가 형님이 죽으면 원수 갚으러 간다구 말했지만 형님이 살기는 살았어두

원수는 갚아야겠소. 우리 집이 망하게 된 것이 쇠도리깨 도적놈의 탓이니까 그

놈을 잡아서 살점을 뜯어먹어두 속이 시원치 못하우. 생각할수록 분해 죽겠소. "

"포도 군사들에게 청을 해서 잡도록 해보구려. " "포도 군사 다 소용 없소. 형님

이 죽을 뻔한 것을 알구 와서 묻기까지 하지 않았소. 그 뒤에 두서너 번 청석골

가서 소풍들 하구 왔는갑디다. " "그러면 어떻게 원수를 갚을 테요? " "나 혼자

는 원수를 갚을 수 없구 동무 몇 사람을 얻어야겠는데 먼저 생각나느니 아주머

니 동생들이오. 이번 장사 나가는 길에 수원 가서 말해 볼 테니 아주머니 생각

에 어떻소? " "글쎄, 큰동생 둘쨋동생은 내가 남에게 맞아죽었대도 원수 갚아 줄

위인이 못 되니까 말할 것 없고, 셋째 넷째는 잘 말하면 올 것 같소. “ "선봉이,

작은봉이는 온대두 성가시우. 내가 가서 말해 보려는 것두 삼봉이, 막봉이 두 사

람이오. 그중에도 막봉이 같은 장사를 붙들어 와야 할 텐데 그 자식이 장사를

나가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소. " "막봉이가 힘이 장사지만 쇠도리깨 도둑놈을 당

하겠소. " "당하다뿐이겠소. 내가 그 동안 도둑놈의 소문을 알아보았소. 쇠도리깨

도둑놈은 남의 머슴살이하던 놈인데 뚝심깨나 쓴답디다. 막봉이가 지금 나이 이

십이 넘었으니까 힘이 더 낫겠지만 그전 힘만 가지구두 뚝심 좀 있는 놈은 어린

애 다루듯 할 것이오. 그러나 댓가지 도둑놈이 쇠도리깨 도둑놈의 한패라는데

그놈이 던지는 댓가지가 활로 쏘는 화살버덤 더 무섭다니 그것이 좀 걱정이오. "

"포도 군사들도 잡지 못하는 도둑놈을 잡으려면 허술히 해서 안 될 게요. " "

허술히 안 헐라구 속으루 끙끙 앓구 있소. 지금 내 맘에 생각하구 있는 사람이

우선 막봉이 형제니까 막봉이 형제를 가보구 잘 의논하지요. 막봉이가 저 같은

장사 동무가 있어서 같이 오게 되면 댓가지 도둑놈두 어떻게든지 처치할 수 있

을 게요. " "막봉이를 끌어올라면 첫째 우리 아버지에게 말을 잘하시오. " "내가

내 말루 할 뿐 아니라 아주머니 말을 할 테요. " "아무리나 하오. 그래 이번 올

때 우리 동생들과 같이 올 작정이오? ” "그건 가봐야 알지요. 막봉이가 만일 장

사 나갔으면 기다려보구 올테니까 이번 행보는 전보다 좀 더딜는지 모르겠소.

그 동안 아주머니 걔 어머니 데리구 방아품이라두 팔아서 연명하구 지내시우. "

"그건 염려 마오. " 작은 손가가 형수에게 부탁할 말 부탁하고 형수의 부탁받을

말을 받은 뒤에 사기짐을 차려 지고 도붓길을 떠났다. 작은 손가가 사기짐을 지

고 이곳 저곳 들러서 당장에 곡식을 받고 팔기도 하고 또 다음날 받기로 하고

외상을 놓기도 하여 사기 한 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수원 발안이장터에 있는

형의 처가를 찾아왔다. 형의 장인 되른 늙은이가 마침 삽작 밖에 나선 것을 보

고 손가는 멀찍이서 사기 지게를 벗어놓는 중에 늙은이가 앞으로 나오면서 "이

게 누군가, 자네 얼마만인가. 장사 재미 보았나, 자네 형의 식구들 다 무고한가?

“ 하고 연거푸 말을 물어서 손가는 녜녜 대답하며 늙은이 앞에 와서 발 아래

코를 박듯이 절하였다. "오래 소식을 몰라서 궁금하더니 자네 잘 왔네. 어서 들

어가세. " 하고 늙은이가 앞서 돌아선 뒤 손가는 사기 지게를 들고 늙은이의 뒤

를 따라서 들어왔다. 늙은이가 손가와 같이 자기 쓰는 방에 들어와 앉은 뒤 "그

래 그 동안에 별 연고는 없었다지? " 하고 늙은이 묻는 말에 손가가 "연고가 없

지 않았습니다. " 하고 대답하니 "무슨 연고? " 하고 묻는 늙은이 얼굴에 놀라는

빛이 있었다. "월전에 서흥으루 이사를 가다가 청석골서 도둑놈을 만나서 형이

죽을 뻔했습니다. " "도둑놈에게 죽을 뻔했어? 자네 형같이 양순한 사람을 해치

는 도둑놈이 있더란 말인가. 그래 죽을 뻔하다 살긴 살았나? " "녜, 자세한 이야

기는 차차 하겠습니다. " "늙은 사랄이 갑자기 놀랄까 봐 죽은 것을 기이는 것

아닌가. 차차 이야기할 것 무엇 있나? " "아니올시다. 형이 죽었으면 죽었다지

살았다구 할 리가 있습니까. " "그럼 내 딸이 죽었나? " "아니올시다. 아주머니

는 도둑놈 낯바대기두 보지 못했습니다. " "이사 가는 길에 도둑놈을 만났다며?

" "형이 혼자 앞길을 살펴보러 갔다가 도둑놈에게 봉변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자

세자세 이야기하겠습니다. " "이사를 너무 다니면 그런 변두 당해 가지. 송도가

재미 없으면 고향으로나 다시 올 게지, 왜 또 다른 데루 이사를 간단 말인가. 그

렇게 이사를 자주 다녀서야 살림이 되나. " 늙은이의 사설이 더 나오기 전에 손

가가 얼른 "댁에는 아무 연고 없습니까? ” 하고 물었다. "늙은 사람 밥 잘 먹구

어린것들 장난 잘 치구 아무 연고 없지. " "그 동안 큰손자 장가들이셨습니까? "

"제 끝엣삼촌이 아킥 장가를 못 들었는데 제놈이 들 수 있나. " "나이는 장가들

나이 되었겠지요? " "올에 열다섯 살인데 숙성해서 장가들이면 사내 구실 훌륭히

할 겔세. “ "증손 보시기 급하지 않습니까? " "급한 맘이야 고손주두 얼른

보구 싶지. 내가 백 살까지 살면 고손주 볼 수 있으렷다. "

늙은이가 껄껄 웃고 나서 "그래 송도 가서 천량이나 좀 모았나? " 하고 물었다.

"천량이 어디 그렇게 쉽게 모여집니까? " "모았다구 말해두 달라지 않네. "

"모았으면 형은 고사하구 저라두 달라시기 전에 드리겠습니다. " "좋은 말일세.

" "막봉이 여러 형제가 다 어디 갔습니까? " "막봉이만 장사 나가구

그애 형들은 다 집에 있네. " "막봉이가 언제 장사를 나갔습니까? 언제쯤 온다구

말하구 나갔습니까? " "나갈 제 한 달 말하구 갔으니까 일간 들아을 겔세. " "오

래간만이라 보구 싶구 또 보구 의논할 일이 있는데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만

오지 않으면 낭팬걸요. " "의논할 일이 무슨 일인가? ” "삼봉이, 막봉이 둘에게

의논할 일입니다. " "글쎄 무슨 일이여? 나더러는 말 못할 일인가? " "아니올시

다. 먼저 말씀하구 나서 막봉이 형제에게 의논할 일입 니다. " "대체 그게 무슨

일인가? " 하고 늙은이가 다그쳐서 작은 손가는 서흥으로 이사 가게 된 이야

기부터 쇠도리깨 도적놈 원수 갚으려고 수숙간 상의한 이야기까지 일장 다 말하

고 막봉이가 돌아온 뒤에 삼봉이, 막봉이 형제를 데리고 가게 하여 달라고 늙

은이에게 청하였다. 늙은이가 손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한참 있다가 "삼봉이는

덜렁군이라 다른 말이 없겠지만 막봉이는 남이 바루 가라면 짓궂이 외루 가는

사람이니까 잘 갈라구 할는지 모르겠네. " 하고 말하였다. "저두 압니다. 더구나

집의 아주머니가 저더러 부탁합디다. " "무어라구 부탁하든가? " 사돈 어른이 안

드시면 막봉이는 안 올 게니 먼저 사돈 어른께 허락을 얻두룩 하라구 부탁을 합

디다. " "내 허락은 어려을 거 없네. " "막봉이 가구 안 가는 것은 사돈 어른께

달렸습니다. " "보아 가며 나두 자네 말을 거들어 줌세. " "그러면 되었습니다.

삼봉이는 어디 갔습니까? " "제 형들은 나무 갔는데 저는 나무두 안 가구 집에

자빠져 있더니 심심해서 어디 놀러간 모양일세. " 손가가 늙은이와 이야기하는

동안에 해가 저물어서 나무 갔던 선봉이와 작은봉이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에

놀러았던 삼봉이도 돌아왔다. 손가가 형제들이 쓰는 큰방에 와서 저녁들을 같이

먹은 뒤에 삼봉이를 보고 쇠도리깨 도적놈의 원수 갚을 일을 이야기하니 삼봉이

는 대번에 "친형님이나 매형님이나 형님은 마찬가진데 자네가 형님 원수 갚는

것을 우리가 가만히 보구 있으면 의리부동해 못 쓰네. 그러구 우리들이 나서서

그까지 도둑놈의 원수야 못 갚겠나. 걱정 말게. “ 하고 말하면서 팔을 뽐내었

다. "예사 좀도둑놈 같으면 나 혼자라두 어떻게 하지만 쇠도리깨가 유명한 장사

도둑놈인데다가 댓가지 재주 가진 도둑놈이 한패에 있어서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는 까닭에 전위해서 자네 형제들과 의논하러 왔네. " "우리 형님들은 가지두

않을 게구 또 가두 소용이 없을 게니 말할 것 없구 막봉이는 가야 좋을 텐데 그

녀석이 무슨 딴소리나 아니할지 모르지. " "자네 형제만 같이 가두 넉넉하겠지만

도둑놈이 워낙 유명한 놈들이니까 튼튼히 차리자면 막봉이 외에두 몇 사람 더

있는 것이 좋지 않겠나. 어디 같이 갈 만한 사람이 또 있겠나 자네 좀 생각해보

게.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해 봐두 같이 갈 만한 사람이 "자네 형제는 장사루

이름이 났으니까 장사 친구들이 더러 있을 터이지. “ "힘꼴 쓰는 사람으루 말하

면 나두 더러 알지만. " "자네 아는 사람 중에 자네 아우만한 장사가 또 있나? "

"내가 힘을 겨뤄본 사람에는 내 아우만한 사람이 없어. 그런데 내 아우가 작년까

지는 적수가 없다구 흰소리를 하더니 올 정월 이 후루는 그 흰소리가 쑥 들어갔

으니. " "그건 어째서? " "정월에 양주를 갔다가 저의 윗수를 만났다네. " "그게

누구야? "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라나 천하 장사라데. " "힘을 겨뤄봤다나? " "

힘두 제법 겨뤄보지 못하구 고패를 뺀 모양이데. " "힘두 겨뤄보지 않구 어떻게

윗수인 줄 알았나? " "내 아우가 장기 둘 줄 아는 것은 자네두 알지. 작년 겨울

에 내아우가 과천으루 소금 지구 나갔다가 어느 집에서 장기 잘 두는 사람을 하

나 만났는데 그 사람이 황 무슨동이라나 임꺽정의 처남 되는 사람이래. 내 아우

가 그 사람과 서루 친분이 생겨서 장기 두구 놀이 겸 임꺽정이를 만나볼 작정

으루 을 정월 보름께 양주를 갔더라네. 내 아우가 힘 이야기를 자꾸 자아내어두

임꺽정이는 대꾸두 잘하지 않더라네. 그래 내 아우가 힘을 좀 자랑해 보려구 맘

을 먹구 있는 중에 부럼으로 밤 호두를 내왔더래. 그 호두를 한 개 씩 집어서

두 손꾸락으로 눌러 깨었더라네. 임꺽정이가 이것을 보더니 한번 빙긋이 웃구

호두와 잣을 있는 대루 내오라구 해서 호두, 잣 한 반가지를 앞에 놓구 아우와

같이 호두를 한 개씩 집어서 깨는데 나중에 아우는 손꾸락이 아파서 깨는 것이

처음 같지 못하건만 임꺽정이는 처음이나 조금두 다름없이 빨리 깨드라네. 아우

가 와서 혀를 내두르데. " "그런 사람을 하나만 데리구 갔으면 쇠도리깨 도둑놈

은 손꾸락으루 눌러라두 죽이겠네. " "막봉이 오거든 의논해 보게. " 손가는 여

러 날 동안 삼봉이와 같이 놀면서 막봉이 오기를 기다리었다. 선봉이는 남의 밭

마지기를 얻어서 농사짓는 외에 집안에서 살림하고, 작은봉이는 형의 여름일을

거들어 주는 외에 삯 받고 품을 팔고, 삼봉이는 등짐장사하고, 막봉이는 소금장

사하여 사형제가 다 놀지 않고 벌어들이나 식구가 많아서 쓰임쓰임이 과할 뿐

아니라 오부자가 모두 술꾼이라 밥을 굻어도 술은 안 먹고 못견디는 까닭에 지

내는 형편이 항상 구차하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5권 (4)  (0) 2023.01.15
임꺽정 5권 (3)  (0) 2023.01.14
임꺽정 5권 (1)  (0) 2023.01.12
임꺽정 4권 (29,完)  (0) 2023.01.11
임꺽정 4권 (28)  (0) 2023.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