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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28)

카지모도 2023. 1. 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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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가 영문을 목라서 주춤하고 서자, 장모가 쫓아내려와서 삽작 밖으로 같이

나왔다. 부정하다고 집안에 못 들어서게 한 것을 안 뒤에 오주는 밖에 서서

이야기하는데 일기 좋아 장사 잘 지낸 것부터 대강 이야기하고 나서

“어린것 말 좀 할라구 급히 왔소. "하고 장모를 바라보니 “어린것이 어미의

한세상 났던 표적인데. "하고 장모는 손등으로 눈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였다.

“죽기 전에 그런 말 합디다. 그런 말이 없더라도 잘 길러야 할텐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자네가 형세가 있으니 유모를 대나, 어떻게 하나?”

“아무리 생각해두 장모가 좀 길러주어야겠소. "“내가 젖도 없이 어떻게 기르나?”

“젖을 얻어먹여서라두 길러주시우. 내가 버는 일 년 사경은 모두의 젖값으로 데밀 테요. "

“차차 의논해서 좋도록 하세. "“차차가 다 무어요? 지금 참젖으루 연명을 시키는데

하루가 급하우. " “이 동네 마마가 끝난 뒤에 내가 데려옴세. "“언제 마마 끝

나기를 기다리구 있소. 곧 좀 데려와야겠소. "“집의 마마 배송이나 내야지. "“

언제 배송내우?”“댓새 후에는 내게 되겠네”“그럼 댓새 뒤에 내가 어린것을

데리고 오겠소. "“지금 자네가 데리고 있나?”“어디 맡길 데 있소. 그럼 댓새

뒤에 오리다. "하고 오주는 총총히 장모를 작별하고 돌아섰다. 오주는 안해 죽은

설움보다 어린애 살릴 걱정이 더 많았다. 낮에는 어린애를 폭 싸서 가로 안고

젖 있는 여편네를 찾아다니는네, 한 차례 가고 두 차례 가면 벌써 토심들이 없

지 아니하여 오주는 성정을 참고 비위를 부리었다. 낮은 오히려도 낫지만 밤이

큰 일이었다. 밤에 어린애가 배고파 울면 오주는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오주가

신뱃골 갔다온 후 사흘 되던 날 밤중에 어린애가 자다 깨어서 울기 시작하여 오

주는 어린애를 끼고 누워서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뚜덕뚜덕 달래도 어린애가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여 오주는 일어나서 가로 안고 둥둥이를 쳤다. 어린애가

울음을 그칠 듯하다가 그치지 아니하여 오주는 가로 안은 채 방안으로 돌아다니

며 우애우애 하고 얼러보았다. 전에는 엔간하면 그치던 어린애 울음이 도리어

점점 더 쇠었다. 오주는 젖을 얻어먹이러 나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 밤중에

누가 일어나서 젖을 주랴 돌쳐 생각하고 어린애를 다시 눕혀놓고 숭늉 떠다 둔

것을 조금씩 입에 흘려넣었다. 어린애가 사레가 들려서 캑캑하다가 다시 울음을

내놓으니 오주는 상을 찡그리면서 숭늉 뜨던 숟갈을 내던지고 손가락 하나를 입

에 대어주었다. 어린애가 손가락을 빨아보느라고 잠깐 동안 그쳤다가 또다시 울

음을 내놓는데, 불에 데인 것같이 울어서 오주는 다시 가로 안고 일어서서 정신

없이 들까불었다. 어린애는 악패듯이 울고 오주는 미친 사람같이 중얼거리었다.

오주의 이마에 진땀이 솟았다. 오주의 상호가 험하여졌다. 오주의 입에어 제에기

소리가 한마디 나오자마자 어린애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깩 소리 한번에 어린애

울음이 그치었다. 이튿날 식전 해가 높이 뜬 뒤까지 오주가 집에서 나오지 아니

하였다. 정첨지가 아침밥을 먹을 때 며느리를 보고 "오늘 식전에 오주를 볼 수

없으니 웬일이냐? 밥을 가져갔느냐?" 하고 물어서 며느리가 "아니오. " 하고 대

답한 뒤 "요즈막같이 나무 한 짐 안 해오군 남의 밥 먹기 염체없겠지. " 하고 혼

자 말하니 "그 사람이 그런 염체나 차릴 줄 아나. " 하고 정첨지 아들이 안해의

말 뒤를 이었다. "요새는 어린애 젖 얻어먹이러 다니는 게 일인 모양이야. " "어

린 목숨이 불쌍해서 젖모금 먹여주는 사람도 한두 번 말이지 누가 번번이 먹여

준답디까. " "그러니까 왼동네를 다 돌아다니게 되지.“ ”남에게 간구한 소리

하는 사람이 고분고분이나 해야지요. 아까 돌쇠 어머니가 와서 말하는데 곽서방

이 어린애를 안고 와서 젖을 먹여달라는데 한두 번은 장 먹여주었지만 어제 저

녁때 세번째라나 네번째 왔더래. 그래서 곽서방네 유모요? 내 자식 먹일 젖도

없소 하고 소리를 좀 질렀드래요. 그랬더니 버쩍 앞으로 대어들며 안 먹여 줄

테요? 유모 아니래두 좀 먹여주 하고 어린애를 막 갖다 안기더라오. 안 받으면

곧 주먹다짐을 할 것 같아서 받기는 받아가지고 돌쇠 동생 작은쇠에게 막 다 빨

리고 난 빈 젖꼭지를 한동안 빨려서 돌려보냈다고 하고 웃습디다.“ ”빈 젖인

지 부른 젖인지 젖통만 보면 대번 알 테지만 오주같이 데면데면한 군이야 빈 젖

꼭지라두 오래만 물려 두면 젖을 많이 먹이는 줄루 알구 좋아했을걸.“ 하고 내

외가 받고채어 가며 지껄일 때 정첨지가 ”어린애는 일간 외가에 갖다 맡긴다더

라. 어린애만 맡기구 오면 그 동안 일 못한 오력을 낸다구 말하더라.“ 하고 오

주에게 들은 말을 옮긴 뒤에 ”오늘 이때까지 꿈쩍 아니하면 혹 병이 나서 누웠

는지두 모르니 밥 먹구 좀 가봐라.“ 하고 아들에게 말을 일렀다. ”황소 같은

사람이 무슨 병이 나겠소?“ ”너무 상심되어서 병이 났는지 누가 아니? 잠깐

가봐라.“ ”녜, 가보지요.“ 정첨지 아들이 밥 먹은 뒤에 오주의 집에 와서 방문

을 열고 보니 어린애를 방 한중간에 눕혀놓고 오주가 그 앞에 앉아서 울지도 않

는 것을 뚜덕거리고 있는데 머리는 상투가 풀려서 범벅이 되었었다. 정첨지 아

들이 방문 앞에 서서 ”일어나 앉았네그려.“ 하고 소리치며 곧 ”왜 밥 안 먹

나?“ 하고 물으니 오주가 대답도 없이 흘끗 돌아보는데 눈알이 허공에 달린 것

같았다. ”왜 밥 안 먹어? 배고프지 않은가?“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묻는 말은

대답 않고 별안간 어린애를 끌어안고 일어서며 ”옳지 옳지, 배고프지. 젖 먹으

러 가자. 울지 마라. 젖 먹으러 가자.“ 하고 방문 앞에 와

서 정첨지 아들이 문 막고 섰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발길로 동가슴을 내질렀

다. 정첨지 아들이 마당에 나가자빠진 것을 오주는 본 체 아니하고 휘황스럽게

걸음을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정첨지 아들이 어이없는 중에 오주의 행동을 수

상히 생각하여 오주의 방을 한번 자세히 둘러보니 어린애 덮개, 오주의 머릿수

건, 숭늉 그릇, 숟갈 들이 어질더분하게 널려 있는데 오주 앉았던 자리 앞에는

뜯어놓은 머리털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정첨지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그 아비

에게 이야기할 때 돌쇠 누이 열댓살 먹은 계집애가 뛰어와서 정첨지를 보고 ”

영감님 우리 집에 큰일났어요.“ 하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 ”왜 그러느냐?“ ”

곽서방이 죽은 어린애를 안고 와서 젖 먹여 달라고 야단치는데 우리 어머니 머

리채 드는 걸 보구 왔어요. 그 동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영감님 좀 가

서 말려주세요.“ ”너의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 ”새벽에 나무 갔어요.“ ”

오냐, 너 먼저 가거라.“ ”같이 좀 가셔요.“ 하고 계집애가 졸라서 정첨지가

계집애를 앞세우고 돌쇠 집으로 가는데 정첨지 아들도 아비 뒤를 따라갔다. 머

리를 풀어 흩뜨린 돌쇠 어머니는 앞서 도망하여 오고 어린애를 한 팔로 끼어안

은 오주는 뒤를 쫓아오는 중이었다. 돌쇠 어머니가 ”미친 사람, 미친 사람.“

하고 정첨지 품으로 대어드는데 오주보다도 돌쇠 어머니가 더 미친 사람같이 보

이었다. 정첨지가 돌쇠 어머니를 한옆에 비켜세우고 앞으로 나서서 ”오주, 이거

웬일인가?“ 하고 소리를 지르니 우뚝 서서 물끄러미 정첨지를 보면서 ”어린것

젖 좀 얻어먹일라구 나왔소.“ 하고 대답하는데 하는 말은 모르겠으되 보는 눈

은 성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우리 집으루 가세.“ 하고 정첨지가 부드럽게

말하며 오주의 손을 끌려고 하니 오주가 손을 뿌리치고 곧 돌쇠 어머니에게로

가까이 가면서 "안 먹여 줄 테야!” 하고 눈알을 부라렸다. 돌쇠 어머니는 간신

히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걷어서 틀어얹는 중에 오주 오는 것을 보고 질색하여

정첨지 아들의 뒤로 몸을 피하였다.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앞으로 대어들며 비

켜 세우려고하니 정첨지 아들이 “이 사람이 참말 미쳤나?” 하고 두 손으로 오

주를 벌컥 떠밀었다. 오주가 황소 영각 켜는 소리를 하고 정첨지 아들에게 덤비

어서 한손으로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정첨지 아들이 머리를 송충이 대가리같이

흔들다가 나중에는 숨이 막혀 캑캑하였다. 정첨지가 보다가 못하여 “여보게, 오

주 고만 놓게. " 하고 말리니 오주가 정첨지를 보며 한번 싱끗 웃고 두어 번 고

개를 끄덕끄덕하고 멱살 쥐었던 손을 탁 놓았다. 정첨지가 이것을 보고 곧 “옳

지, 인제 우리 집으루 가세. 젖을 먹이더라두 길에서야 먹이는 수 있나. 돌쇠 어

머니하구 같이 우리 집으루 가세. " 하고 오주의 눈치를 살피고 “잠깐만 우리

집으루 같이 갑시다. " 하고 돌쇠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오주가 정첨지의 말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정첨지 집으로 올 때 어머니는 치마꼬리에 달라붙어 섰는 딸

을 작은쇠 보아주라고 집으로 보내고 정첨지 뒤를 따라왔다.

오주가 공연히 혼자 중얼중얼하며 정첨지 집을 향하고 오다가 홀저에 돌아서

서 뒤에 오는 정첨지를 보고 “이 애가 어디 병이 났나 보아주시우. " 하고 어린

애를 앞으로 내밀었다. 정첨지가 어린애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가 오주를 덧들

이지 아니하려고 “우리 집에 가서 보세. " 하고 달래어서 집에까지 데리고 왔다.

오주가 어린애를 돌쇠 어머니에게 안겨주려고 하는데 정첨지가 가로 나서서

“거기 놓게. 무슨 병이 났나 어디 좀 보세. " 하고 말하여 오주가 곱게 내려놓

는 어린애를 구부리고 들여다보는체하다가 “어린애 병이 급한 병일세. 지금 시

각이 위태한걸. " 하고 섰는 오주를 치어다보았다. 오주가 말을 뇌듯이 “급한

병 급한 병. " 하고 중얼거리며 어린애 옆에 주저앉았다가 별안간 정첨지의 소매

를 잡고 매어달리며 “영감, 내 아들 살려주시우. " 하고 전신을 불불불 떨었다.

정첨지가 한동안 미간에 주름을 잡고 생각하다가 “오주, 나 하라는 대루 할텐

가? 그러면 내가 자네 아들을 살려줌세. " 하고 말하니 오주는 정첨지의 얼굴을

뻔히 치어다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지금부터 자네 아들을 내게 맡기구

자네는 다시 아랑곳 말게. 내가 자네 아들을 살려서 이 돌쇠 어머니더러 신뱃골

외조모에게 데려다 두라구 할 텔세. 어떤가? 그렇게 할 텐가? 여기 있는 동안

자네가 보자든지 외조모에게 보낼 때 자네가 같이 가자든지 하면 자네 아들을

살릴 수 없네. " 하고 정첨지가 소리를 꽥꽥 질러 말하니 오주는 멍하고 있었다.

정첨지가 “내 말대루 할 테면 어린애는 여기 두구 자네는 저 방에 들어가있게.

"하고 일변 오주에게 말하며 일변 옆에 섰는 자기 아들에게 눈짓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오주를 앞세우고 머슴방에 들어가서 슬슬 달래어 쓰러 눕히고 나온 뒤에

정첨지는 급히 사람을 불러서 죽은 어린애를 갖다 묻게 하고, 또 늙은이의 다심

으로 오주 장모에게 사람을 보내서 어린애 죽고 오주 상성한 것을 자세히 기별

하고 이 다음 혹시 오주가 가서 어린애를 보자고 하더라도 말을 잘 꾸며서 속이

라고 부탁하여 두었다.

오주가 병이 났다.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고 인사 정신을 못차리고 앓는 중

에 “우네. "“아이고 또 우네. " 하고 가끔 앞을 더듬을 뿐 아니라 “자꾸 우네.

젖 얻어먹이러 가야겠다. " 하고 여러 차례 뛰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십여 일

동안 오주가 되게 앓고 머리를 들고 일어난 뒤에도 오주의 귓속에는 가끔 어린

애 울음소리가 징하게 울려서 남이 보기 괴상하도록 오만상을 찡그렸다. 다른

사람은 이것을 보고 오주의 병이 아직 다 낫지 아니했거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주는 병 후에 본정신이 완구히 돌아서 정첨지보고 어린애 말을 묻지 않을뿐더

러 신뱃골 장모를 보러가서도 어린애 이야기는 입밖에도 내지 아니하였다. 오주

의 언어와 동작은 성한 사람이 다 되었으나 전에 없던 성미가 한 가지 새로 생

겨서 어린애를 좋아 아니하고 더욱이 우는 어린애를 싫어하였다. 어린애 우는

소리가 멀리 들릴 때는 상을 찡그리고 귀를 막을 뿐이지만, 어린애 우는 것을

눈앞에 볼 때는 곧 상열이 되어 가지고 눈이 뒤집혔다. 어린애를 태기치려고 팔

이 절로 움직움직하였다. 오주 자기도 흉악한 일로 알고 억제하려고 맘을 먹건

만 어린애 우는 소리가 귀에 들리기만 해도 맘이 수상스러워지는데 더구나 우는

상호가 눈앞에 보이기까지 하면 오주의 먹은 마음은 홍로점설같이 사라지고 미

친 마음이 왈칵 나왔다. 오주는 우는 어린애를 멀찍이서 보면 휘황스럽게 달음

박질을 쳐서 다른데로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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