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길막봉이
곽오주가 탑고개 쇠도리깨 도적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을 때 송도 사기장
수 손가 형제가 서흥 사기막으로 이사 가느라고 식구들을 데리고 청석골을 지나
가게 되었다. 손가 형제의 식구가 어른 아이 모두 일곱인데 어른 넷, 아이 셋이
었다. 큰 손가는 다섯 살 먹은 아들을 업고 형제의 안해 두 동서는 각각 자기의
젖먹이 딸들을 업고 작은 손가는 이삿짐을 졌었다. 청석골 골짜기길을 걸어 나
갈 때 두 동서가 가만가만 이야기하며 길을 걸었다. “형님, 후미진 길이 어째
무시무시하오. ” "이런 데니까 대낮에도 도적이 나지. " "쇠도리깨 가진 도적이
무슨 고개에서 난다지요? “ "탑고개 라네. " "우리가 탑고개를 지나가나요? "
”그럼. " "탑고개를 비키고 다른 길로 못 갈까요? " "다른 길이 없다네. " "쇠
도리깨 도적놈이 흉악하다는데 만나면 어떻게 하오? “ 큰 동서가 미처 말하기
전에 뒤에 오는 작은 손가가 저의 안해의 말을 귓결에 듣고 "그 따위 말 지껄이
지 말게. 호랑이 말하면 호랑이 온다네. " 하고 안해를 나무랐다. "걱정이 되니까
말이지. " "지껄이면 길 늦네. 입 닥치고 어서 가세. " "이야기하며 가야 발 아픈
줄 몰라요. 우리끼리 이야기하는데 왜 참견이오. " 하고 형수가 저의 안해를 거
들어 주려는 것같이 말하니 작은 손가는 증난 말씨로 "그럼 실컨 이야기하시우.
"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만 말에 골낼 것 무엇 있소? ” "누가 골냈소? " "지
금 골내지 않았소. “ 앞서 가던 큰 손가가 안해와 아우의 말다툼하는 소리를
듣고 "무엇들을 그러느냐? ” 하고 뒤를 돌아보니 "이야기들한다고 골을 내고
같지 않은 일에 골낸다고 말하니까 골 안 냈다고 잡아떼는구려. " 안해는 송사하
듯 말하고 "쇠도리깨 도적놈 말 말라구 개 어머니더러 이르는데 아주머니가 공
연히 탄하구 나서시우. " 아우는 발명하듯 말하는데 큰 손가는 이말 저말 다
듣기 싫다는듯이 한번 머리를 흔들고 "그 도적놈 만날까 봐 나두 은근히 속으루
걱정이다. " 하고 말하였다. "누가 아니라우? 만나기만 하면 제일 어린애들 때문
에 걱정이오. " 큰 손가가 아우의 말을 대답하려고 할 때 안해 등에 업힌 어린
딸이 울어서 안해를 보고서 "내려서 젖을 먹여가지구 가세. " 하고 말하여 일행
이 길가에 앉아 쉬게 되었다. "쇠도리깨 도적놈이 어린애 간을 잘 먹는다는구나.
" "간을 빼먹는지는 몰라두 어린애 잘 죽이는 것은 참말인갑디다. " "전고에 듣
지 못하던 흉악한 도적놈두 다 많지. " "송도 포도군사들이 이런 도적놈을 잡지
않구 놓아두니 아마 도적놈하구 통을 짰는지 모르겠소. " "설마 통이야 짰겠니.
놀구 자빠져서 잡으려구 애를 쓰지 않는게지. " "이야기를 들으니까 포도군사들
이 일쑤 도적놈의 등을 쳐서 먹느라구 일부러 잡지 않구 놓아둔답디다. " "그런
일두 많겠지만 쇠도리깨 도적놈은 무서워서 좀처럼 잡을 생의두 못할게다. " "날
구 기는 재주를 가진 도적놈일지라두 포도군사들이 참말 잡으러 들면 못 잡을
리 있겠소. " "작년에 송도 군관들이 댓가지 가진 도둑놈에게 큰 망신을 했다는
데 이때까지 잡지 못하는 걸 보면 참말 잡으러 들어두 별수 없는 모양이더라. "
"댓가지 도둑놈은 인명을 해친 일이 없다는데 쇠도리깨 도둑놈은 한 달 동안에
어린애만 해친 것이 셋이라나 넷이랍디다. " "그런 악착스저운 짓을 하는 놈이
제명에 죽을까. " "셋이나 넷이 다 우리네 같은 사람의 자식인갑디다. 그렇기에
그놈이 목숨이 붙어 있지요. " "왜? “ "양반의 새끼가 하나만 끼였드면 그놈은
벌써 잡혀서 능지를 당했을 것 아니오. " 형제의 도적 이야기가 잠깐 동안이
뜰 때 작은 손가이 안해가 저의 남편을 바라보며 "남더러는 도둑놈 말
말라드니 자기는 신이 나서 지껄이네. " 하고 오금박듯이 말하니 작은
손가는 안해에게 오금박히고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다.
"여편네가 입이 싸면 못쓰는 법이야. " 남편은 안해를 나무라고 "사내
는 쓰는 법인가. " 안해는 남편을 뒤받아서 내외의 아귀다툼이 시작되었다. 큰
손가가 "고만 쉬구 일어나지. " 하고 먼저 아들을 업고 일어서서 아우 내외가 아
귀타툼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아우를 자기 앞에 내세우고 제수는 안해와 같이 자
기 뒤를 따르게 하였다. 일행이 한동안 말이 없이 길을 걸어서 탑고개 밑에까지
왔을 때 "인제 탑고개 다 왔소. “ "여기서 또 좀 쉬어가자. " "아무리나 합시다.
그런데 나는 아까부터 공연히 맘이 서먹서먹하오. " "쉬는 동안에 내가 한번 고
개 마루턱까지 올라가 보구 오마. " "형님 여기 있소. 내가 가보구 오리다. " "내
가 얼른 갔다 오께 그 동안 또 말다툼이나 하지 마라. " 형제가 의좋게 서로 말
한 뒤에 큰 손가는 아들을 내려놓고 홀몸으로 고개를 올라갔다. 고개 마루턱까
지 두어 행보 할 동안이 지나도 올라간 사람이 내려오지 아니하였다. "형님이 왜
이렇게 오래 아니 올까 내가 가봐야겠군. " 앉았던 작은 손가가 벌떡 일어서니 "
무슨 변고가 났으면 어떻게 하오. " 형수는 조바심을 하고 "마저 가서 아니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오? " 안해는 울상을 하였다.
작은 손가가 차츰차츰 고갯길을 올라오며 앞을 바라보니 길 한 중간에 머리를
이리 두고 엎어져 있는 사람이 곧 저의 형이라 한 달음에 뛰어와서 형의 머리맡
에 주저앉았다. 갓 부서이고 망건 짜개진 건 말할 것 없고 뒤통수가 깨어져서
골까지 비쭉이 드러났는데 목숨만은 다행히 붙어 있었다. 작은 손가가 형님의
깨어진 머리를 수건으로 싸 동이면서 "형님 형님. " 하고 불러보니 형의 대답하
는 소리가 다 죽어가는 사람의 소리와 같았다. "이거 웬일이오? " 하고 형에게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도적놈 쇠도리깨에 얻어맞은 것을 십분 짐작하고 작은 손
가는 머리를 들고 좌우쪽 언덕을 둘러보니 바른쪽 언덕 위에 나섰는 도적놈들
중의 하나는 늙은 도적이고 하나는 젊은 도적인데, 젊은 도적이 사람도 우악스
럽게 생겼거니와 짚고 섰는 쇠도리깨가 무지하게 굵었다. 작은 손가가 분이 복
받치고 악이 올라서 무서운 생각도 다 잊어버리고 앞으로 뛰어나가 언덕 아래에
서 두 도적을 손가락질하면서 "어떤 놈이 우리 형님을 쳤느냐? " 하고 소리를
지르니 쇠도리깨 가진 도적이 아래로 쫓아내려오려고 하는데 늙은 도적이 붙들
고 귓속말을 수군수군하여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서서 "내다. 어쩔 테냐? “ 하
고 맞소리를 질렀다. "쇠도리깨 도적놈아, 내 말 들어라. 죄없는 어린애와 죽지
못해사는 우리 같은 사람이나 손쉽게 죽이구 가난뱅이의 장볼 밑천이나 떨어먹
는 너 같은 도둑놈은 개같이 더러운 도둑놈이다. 이놈아 세상에 죽일 만한 사람
이 씨가 져서 악착스럽게 어린애를 죽인단 말이냐. 세상에 빼앗을 재물이 그렇
게 없어서 가난뱅이 밑천을 빼앗는단 말이냐. 너같이 못된 도둑놈이 천하에 또
어디 있느냐. 이놈아 이왕 도둑놈이 되었거든 된도둑놈 노릇을 해라. 우리 형제
는 행세두 못하구 천량두 못 가진 사람이다. 우리 형님을 무슨 까닭으로 해치느
냐 이놈아. " 작은 손가가 하늘이 얕다고 펄펄 뛰며 욕질하는데 늙은 도적이 젊
은 도적의 앞을 막고 나서서 "여게 자네 훈계 잘 들었네. 자네 형님은 서라구 하
는데 서지 않구 도망하다가 도리깨 한번 얻어맞았네. 가엾세. 얼른 자네 형님 데리구
가서 치료해 주게. " 하고 웃으며 말한 뒤 뿌루통하고 섰는 젊은 도적의 손목을 끌고 돌
아섰다. 작은 손가는 도적들의 뒤를 바라보며 "우리 형님이 죽어만 봐라, 원수
갚으러 올 테니. " 하고 벼르고 도적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곧 누워 있는
형 에게 와서 형을 업고 고개 밑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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