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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8)

카지모도 2023. 1. 19.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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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띄우지 않고 행차를 기다리던 사공이 배에 오르는 양반을 보고는 공연히

입을 삐쭉하였다. 배가 물 깊은 중간에 와서 사공이 삿대를 놓고 노를 저으려고

하는데 뱃고물에 앉은 농군 한 사람이 가로 거칠 것을 보고 "비켜 나우. " 하고

불쾌스럽게 말하니 농부가 일어나서 배 안을 둘러보며 "어디 가 설 데가 있어야지. "

하고 대답하였다. 배에 사람과 짐승을 가뜩 태워서 선창 중간에 앉았는 옷 잘

입는 양반의 앞과 옆 외에는 설 틈이 별로 없었다. "저리 못 가우! " 하고 사공

이 양반 앉았는 곳을 가리키며 소리를 왝 지르니 농군은 "양반님네 옆댕이루 어

떻게 가라우? " 하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가라거든 어서 가, 잔말 말구. " "

양반님네 꾸중하면 나는 모르우. " "아따 못두 생겼네. " "잘난 사람은 볼기 맞기

좋수. " "볼기 맞구 살 터지거든 짚신 신은 발루 꽉꽉 밟아줄께 염려 말구 가우.

" 농군이 사공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도 가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는 것을 사공이

또 소리를 질러서 쫓다시피 하였다. 농군이 양반 옆에 가서 거북살스럽게 서 있

는데 옹이에 마디로 배가 뒤뚱거리는 바람에 농군이 넘어질듯하여 엉겁결에 손

을 내밀다가 양반의 어깨를 건드리고 깜짝 놀라 팔을 오그렸다. "이거 봐라, 뒤

루 좀 물러서라! " 하고 양반이 호령기 있게 말하여 농군이 황망히 물러선다는

것이 다른 행인의 발을 밟았다. "이 사람이 눈이 없나! " 하고 행인이 농군을 떠

다밀어서 하마터면 양반이 장기튀김을 받을 뻔하였다. 양반이 벌떡 일어서서 농

군을 발길로 차면서 "이놈 눈깔이 멀었느냐! 어디루 대드느냐. 어 고약한 놈들

다 보겠다. " 하고 큰소리로 호령호령하니 사공이 노질하면서 뒤를 돌아보고 "대

장질해서 밥술을 먹거든 국으루 가만히나 지내지 양반질은 다 무어야 아니꼽게.

" 하고 큰소리로 지껄였다.

양반이 사공의 지껄이는 말을 듣더니 흘저에 기세가 죽으며 슬며시 앉아서 강

산을 돌아보는 체하였다. 사공 가까이 앉았던 막봉이가 이것을 보고 괴상히 생

각하여 사공더러 "저 작자가 양반이 아니구 대장쟁이오? " 하고 물었다. "양반은

무슨 말라비틀어진 양반이야, 대장질해 모아서 밥술이나 먹는게지. " "우리가

송도서 오는 길에 만났는데 꼭 양반으루 속았소. 이 근방 사람이오? " "이 근방

사람은 아닌가베. " "전에 알던 사람이오? " "아니. " "그럼 대장쟁인 줄 어떻게

아우? " "보다 모를라구. " "보구 어떻게 안단 말이오? " "그것두 볼 줄 모르면

구연강에서 사공질하겠나. " "대장쟁이 표가 어디 있소? " "표가 있다뿐이야. 우

선 탑삭부리 수염을 보게. 수염이 왼편으로 쏠렸지? 그것이 왼손으로 수염을 쓰

다듬은 표 아닌가. " "그것만 가지구야 알 수 있소? “ "그럼 또 소매 거드칠 때

팔목을 보게. 바른편이 왼편버덤 훨씬 굵지 않은가. 그것이 바른손으로 마치질한

표 아닌가. " 사공이 한 손으로 노질하며 막봉이를 보고 이야기하다가 실수하여

노가 놋좆에서 벗어졌다. 사공은 놋구멍을 얼른 다시 맞추더니 그 뒤에는 몸을

흔들면서 두 손으로 노를 젓고 "그래 또 다른 표는 없소? " 막봉이가 말을 물어

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막봉이가 꺽정이를 보고 "양반이 아니라두 양반질할 수

있소? "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왜 갑자기 양반질하구 싶은 생각이 나나? " 하

고 웃었다. 얼마 뒤에 배가 나룻가에 와서 여러 사람이 앞을 다투어 내리는데

양반질한다는 박선달도 섞이어 내려와서 마부를 시켜 길양식하는 쌀로 선가를

치러 주게 하고 곧 말을 타고 서울길로 올라갔다.

꺽정이는 파주 두마니까지 와서 양주길로 갈려 가고 막봉이가 혼자서 서울길

로 올라오는데 혜음병 못미쳐서 박선달의 인마가 멀리 앞에 가는 것을 바라보고

까닭없이 쫓아가고 싶은 마음이 나서 막봉이는 걸음을 재게 떼놓았다.

고개 밑에서 도적 두 놈이 박선달과 마부를 묶어 앉히고 부담을 말께서 떼어내리는 중

에 막봉이가 가까이 올라가며 껄껄 웃었다. 막봉이는 박선달이 도처에 봉패하는

것을 웃었건만 도적들은 수상히 여기었다. 예사 행인 같으면 도망할 것인데 도

망하지 않고 오는 것이 수상하고 오더라도 그저 오지 않고 껄껄 웃고 오는 것이

더욱 수상하여 도적들은 얼른 부담짝을 내려놓고 몽둥이들을 들고 나섰다. 두 놈이

모두 험상궂게 생겼는데 한 놈은 박선달과 같은 탑삭부리요, 한 놈은 채수염이 좋았

다. 채수염이 한두 걸음 앞으로 나와 서서 서너 칸 아래 우뚝 서는 막봉이를

내려다보며 볼멘 소리로 말을 물었다. "지금 껄껄 웃은 놈이 너냐? “ "녜, 저올

시다. " 막봉이가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이 장난조인 줄 모르고 채수염은 가장 틀

을 빼며 "무엇 땜에 웃었노? " 하고 물으니 막봉이가 대답하는 대신 다시 껄껄

웃었다. "저놈이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간이 뒤집혔나? " "저놈이 판순가, 청맹

과닌가. " "저놈 보아 아이놈이 어른더러 욕하지 않나. " "도둑놈이 어른 아이는

찾아 무어할 테냐. 이놈들아, 받은 밥상 차내던지지 말구 얼른 가서 부담이나 뒤

져가지고 가거라. " "저놈이 죽구 싶어 몸살이 난 놈이 아닌가! " "너놈들이 나

죽을 때까지 살아봐라. 자식 손자가 고려장 지내줄게다. " 채수염이 분을 못

이겨서 넉까지 까부르면서도 낫살 지긋한 덕에 막봉이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사람인 줄 짐작하고 탑삭부리 동무를 돌아보니 탑삭부리도 주니를 내서 선뜻 쫓

아내려가지 못하고 채수염 옆에까지 나와서 막봉이를 내려다보며 벼르기만 하였

다. "이 자식 올라만 와봐라, 대가리를 바디질러 줄 테다. " "오냐 올라가마. 너

희들이 어떻게 바디지르나 구경 좀 하자. " 막봉이가 저적저적 올라오는데 도적

놈이 양편으로 갈라서며 일시에 몽둥이로 내리쳤다. 막봉이가 한 몽둥이는 첫번

에 비키면서 곧 붙잡고, 한 몽둥이에는 어깨바디를 얻어맞았으나 데시근하게도

여기지 않고 두번째 내려칠 때 마저 붙잡았다. 막봉이가 두 손에 각각 잡은 몽

둥이를 한꺼번에 앞으로 들이채니 채수염은 몽둥이를 놓치고 탑삭부리는 몽둥이

를 쥐고 고꾸라졌다. 막봉이가 두 몽둥이를 다 빼앗아 내던지고 한손으로 채수

염의 팔을 잡아 나꾸어 마저 고꾸라뜨린 뒤에 두 놈의 상투를 한손에 하나씩 잡

아 머리만 치켜들고 이마받이를 시키면서 "너희놈이 뉘 대가리를 부신다구 횐소

리냐? " "장사를 몰라뵈입구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

오. " "누가 너희놈을 죽인다니? 혹이 돋칠 만큼 이마받이만 시켜주마. " "죽을

때라 잘못했습니다. " "용서해 줍시오. " "용서해 줄 테니 일어나서 절하구 빌어

라. " 채수염과 탑삭부리가 서로 붙들고 일어나서 코가 땅에 닿도록 절하고 느런

히 꿇어앉아서 손바닥을 마주 비비었다. "너희들 성명이 무어냐? " 탑삭부리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않는데 채수염이 "이놈은 바눌티 사는 정상갑이옵구 저놈

은 호랭잇골 사는 최판돌이올시다. 저희들이 장사 같으신 분을 대장으루 뫼셨으

면 성세가 좀 낫겠습니다만. " 하고 말끝을 다 마치지 않고 머리를 연해 꾸벅꾸

벅하였다. "예끼 미친 놈 같으니! " "장사의 성함이나 들어 뫼셨으면 좋겠습니다.

" "내 성명 말이냐? 나는 수원 사람 길막봉이다. " 막봉이가 박선달의 묶여 앉은

꼴을 바라보며 또 껄껄 웃고 나서채수염과 탑삭부리를 돌아보고 "나는 간다. "

하고 다시 고갯길을 돋우어 밟기 시작하였다.

박선달이 총각의 덕을 볼 줄로 생각하고 있다가 의외에 총각이 자기들을 구해

주지 않고 가려는 것을 보고 몸이 달아서 "여게 총각, 사람 좀 살려주구 가게. "

하고 죽어가는 소리를 하였다. 막봉이가 들은 체 아니하고 걸어가니 박선달과

마부가 번갈아 가며 "여보, 여보! " "여보시오, 여보시오! " 하고 소리질러 불렀

다. 막봉이가 걸음을 돌치어 박선달 앞에 와서 섰다. "왜 불렀소? " "우리를 이

대루 내버려두구 가다니 그런 인심이 어디 있어? “ "상놈이 양반에게 인심을

쓸 수 있소. " "그러지 말구 어서 이 묶인 것 좀 끌러 주어. ” "묶은 사람더러

끌러달라구려. " "제발 좀 끌러놔 주어. " "끌러 줄께 아까 저 사람들처럼 내게다

절을 할라우? " 박선달은 대답을 아니하고 마부가 "끌러만 주면 내가 선달님 대

신 절을 백번 하리다. “ 하고 말하니 막봉이는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마부가

박선달을 돌아보며 "선달님, 절 한번 하시지요. 절하린다구 양반이 떨어지겠습니

까? ” 하고 절하기를 권하니 박선달은 마부에게 눈을 흘겼다. “절할 테요, 안

할 테요? 안한다면 나는 그대루 가겠소. ” 박선달이 고개 끄덕이는 것을 보고

막봉이는 도적을 돌아보며 "둘 다 끌러놔라. " 하고 괴수가 졸개에게 분부하듯

말하였다. 도적들이 박선달과 마부를 끌러놓은 뒤에 막봉이는 떡 버티고 서서 "

자, 어서 절하우. " 하고 재촉하나 박선달은 자기의 다리 팔만 주무르고 앉아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안할 게요? 도루 묶으랄 테니 알아 하우. " 박선달이 막

봉이의 얼러메는 말을 듣고야 가까스로 일어나서 끙 소리 하며 절하였다. 막봉

이가 점잖게 "오냐. “ 하고 절을 받고 나서 또다시 껄껄 웃으니 도적들도 따라

웃고 마부도 웃음을 참느라고 입을 막는데 박선달만은 두 볼이 밤 문 것 같이

부어올랐다. 막봉이가 도적들을 돌아보며 "내가 양반의 절 받은 값을 해야겠으니

부담을 도루 실어주어라. " 하고 말을 일러서 부담이 다 된 뒤에 마부는 말을 끌

고 박선달은 막봉이와 같이 걸어서 가팔지기로 유명한 혜음령을 넘어왔다.

막봉이가 전날 밤에 파주읍에서 자고 새벽에 일찍 떠났건만 두 마니서 꺽정이

와 작별할 때 한동안 지체하고 또 혜음령에서 박선달과 동행할 때 오래 지체한

까닭에 서울 팔십 리를 다 오기 전에 시월 짧은 해가 꼬빡 져서 모래재를 넘을

때는 벌써 땅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하였다. 사대문은 닫힌 지가 오래라

박선달이 문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대문 밖으로 내려와더 객주를 잡아 드는

데 막봉이도 한 객주에 들었다.

박선달은 사처를 치우고 자고 막봉이는 마부와 같이 봉노에서 자게 되어서 마

부를 데리고 이야기하는 중에 박선달이 안성 가사리서 부자로 사는 것과 송도

경력으로 있는 매부를 보러 송도 갔다 오는 것을 알았다. 이튿날 박선달은 문안

으로 들어가고 막봉이는 문안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동작이로 나왔다.

막봉이가 발안이 돌아와서 이삼 일 묵은 뒤에 남양 나가서 소금을 해 지고 안

성까지 가려던 것이 양성서 소금짐이 들나게 되어 다시 와서 소금 두 섬을 한

짐에 지고 안성으로 내려갔다. 안성 와서 박선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박선달은

놋대장이로 치부한 사람인데 누이 하나를 어느 호반의 첩으로 주고 그 덕에 출

신하여 타향에 나가서 양반 행세하는 것은 고사하고 고향에서도 내노라고 곤댓

짓하는 사람이었다. 박선달이 아우가 하나 있는데 그 아우는 사람이 괴상하여

형과 같이 살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이웃해 살지 아니하려고 놋박재 밑

무인지경에 가서 여러 해포 살다가 지금은 인가 근처로 이사 와서 역시 외

딴집을 짓고 살고 정초와 부모 젯날 외에는 형의 집에 오지 않는 것이 형제간에

격난 까닭이라고 안성 사람들은 말하였다. 막봉이가 열다섯부터 소금장사를 시

작하여 지금까지 오륙 년 동안에 안산과 시흥은 문턱 드나들 듯하였고 과천과

광주도 많이 다니었고 또 용인과 이천으로도 여러 차례 나갔었지만 양성을 거쳐

서 안성까지 내려오기는 이번이 겨우 두 행보째요, 전번에 안성을 왔어야 양성

접계만 돌아다니다 간 까닭에 안성읍내서 엎드러지면 코 닿을 만한 데 있는 가

사리 같은 큰 동네도 가본 일이 없었다. 막봉이가 전번 왔을 때 소금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받은 데가 더러 있어서 일일이 돌아다니며 소금 한 섬을 나눠놓고

남은 한 섬을 지고 안성읍내로 들어왔다. 막봉이 오던 날이 이틀 이레로 서는

안성 장날이라 장구경하기 겸하여 소금짐을 지고 돌아다니다가 촌 사람 하나를

만나서 소금 한 말을 곡식 받고 바꾸어 주었는데, 촌 사람이 소금말이 후한 것

을 보고 자기가 구브내 동네 일을 보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구브내를 나오면 많

이 팔도록 주선하여 줄 터이니 내일이라도 곧 오라고 말하여 장 이튿날 막봉이가

구브내를 찾아나오는 길에 어느 동네 앞을 지나다가 동네가 크고 포실해 보여서

길가에 있는 사람에게 동네 이름을 물어보니, 그 동네가 곧 가사리라 여짓 박선달

의 사는 꼴을 한번 들어가 보려다가 소금 팔고 오는 길에나 들러볼까 생각하고

그대로 지나왔다. 구브내를 와서 보니 동네도 작거니와 집도 큰 집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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