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까두 말했지만 소금장수다. 소금 팔러 적가리루 가는 길에 이 아래서
너의 어머니 아버지와 오껴가며 서루 만났다. 너의 어머니가 나보구 진
것이 소금이냐구 묻기에 내가 그렇다구 대답했더니 너의 어머니 말이 우
리 집에두 소금을 받아야 할 테니 내일 오라구 하구 집을 가르쳐 주더라. 내가
적가리 갔다가 다시 내려오지는 못하겠다구 말하구 지금 가는 길에 두구 가랴구
물으니까 너희 아버지는 이담 받자구 말하는데 너의 어머니가 이담 받을 것 없
이 지금 받아두자구 우기구서 나더러 집에 갖다두라고 말하드라. 소금값은 이담
행보에 와서 받기루 했다. 그래 내가 그러마구 하구 저녁밥 한 끼나 먹게 해달
라구 말했더니 너희 어머니 말이 우리 딸 귀련이가 집에 있으니까 가서 내 말
하구 얻어먹으라구 말하더라. 그래 내 말이 거짓말이냐? " 처녀가 막봉이의 거짓
말을 듣고서는 한참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그럼 소금이나 놓구 가지 왜
남의 집 삽작을 부시고 방에까지 뛰어들어왔소? " 하고 물었다. "열라구 소리질
러두 열지 않으니까 떠다밀어봤지. 그러구 소금 짐 진 것을 보면서두 네가 나를
도둑놈으루 여기니까 잠깐 장난으루 그런 체했다. 그게 네 찰못이지 내 잘못이
냐? " "그럼 인제 소금 놓고 얼른 가오. " "저녁밥은 어떻게 하구? " "저녁밥을
지어 주께 그 동안에 삽작이나 고쳐주오. " 처녀는 부엌으로 내려가서 서속밥을
짓고 막봉이는 삽작께로 나와서 삽작문을 고쳐 달았다.
막봉이가 소금짐을 지고 산 밑으로 들어을 때 처녀의 집 근처에서 갈퀴나무하
던 적가리 초군아이 두서넛이 이것을 보고 저희들끼리 서로 지껄였다. "저 외딴
집에 총각 하나가 들어간다. " "총각 진 것이 소금짐 아니냐? " "아마 소금장순
가부다. " "소금장수는 숭물스럽다지. " "사람 나름이지, 소금장수라구 죄다 숭
물스럽겠니. " "소금장수가 남의 집 색시를 잘 놀려댄다더라. 우리 누나는 소금
장수 올 때 내다보다가 할머니한테 야단까지 만났다. " "너희 할아버지가 소금장
수하다가 너희 할머니를 놀려냈다는구나. " "미친 소리 하지 마라. " "저 외딴집
에 처자가 혼자 있을 텐데 소금장수 총각이 가서 일이 없을까. " "그 집주인 내
외가 아까 나갔지. 참말 처자 혼자 있겠구나. " "소금장수 총각이 오래 안 나오
면 그 집 처자는 탈이 나는 게다. " 가장 아는 체하고 말하는 아이는 그중의 나
배기였다. 키는 잔망하여 열두서너 살 된 다른 아이들보다 얼마 더 크지 못하나
나이가 열일곱이라 셈은 다 들어서 다른 아이들이 채 모르는 처녀의 탈나는 이
유까지 잘 알았다. 다른 아이 하나가 "우리 가보까. " 하고 나배기를 돌아보니 "
급히 갈 거 없다. 우리 나무 다 해놓구 가보자. " 하고 나배기는 갈퀴질을 하면
서 "뒷집 김도령 몸집이 나더니 울밑에 개구멍 전보담 서졌네. " 하고 촌노래 한
가락을 불렀다. 나배기는 적가리 머슴방에서 명창으로 치는 것만큼 목청도 좋거
니와 소리 재주가 있어서 노래를 일쑤 지어 불렀다. 나무들을 다 해놓은 뒤에
나배기가 "자 인제 가보자. " 하고 앞장을 섰다. 아이들이 오다가 총각이 삽작문
고치는 것을 바라보고 바로 앞으로 오지 못하고 뒤껼으로 돌아왔다. 막봉이 발
길에 차여서 배창자가 꿰어질 뻔한 개가 뒤껼에 와서 숨어 있다가 울 밖에 인기
척이 나는 것을 듣고 엎드린 채 일어나지도 않고 울 밖을 바라보며 짖었다. 부
엌에서 밥짓던 처녀가 부엌 뒤로 내다보면서 "이 개가 왜 또 짖어? " 하고 개의
눈 가는 곳을 살펴보다가 "웬 사람들이 남의 집을 들여다봐! " 하고 소리질렀다.
삽작 안에 있던 막봉이가 부엌 뒤로 돌아왔다. 울 밖에서 이팔청춘 큰아기니 총
각낭군이니 하는 노랫소리가 나고 그 뒤에 여컨이 손뼉 치며 웃는 소리가 났다.
막봉이가 처녀를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고 섰다가 우르르 울타리 앞으로
쫓아가며 나는 새같이 뛰어넘는데 높은 울타리의 울짱 하나를 건드리자
아니 하였다. 울 밖의 아이들이 놀라서 와 하고 도망하는 것을 막봉이가
보고 "네 이놈들 다시 왔단 봐라. 다리마둥갱이들을 부러뜨려 놀 테다. "
하고 소리질러 꾸짖고 도로 울타리를 뛰어넘어 들어왔다. "쪼그만 놈들이
큰아기니 총각이니 하구 사람을 놀렸어. " 하고 막봉이가 처녀보고 웃으니
처녀는 얼굴이 발개가지고 말대답이 없었다.
초군 아이들이 적가리 오는 길로 이야기를 퍼치어서 동네 총각들이 알고 공연
히 울분하여 하는 중에 그 처녀와 혼설이 있는 김풍헌의 맏손자가 여럿이 같이
가서 소금장수를 흔구멍을 내어 쫓아버리자고 의논을 돌리니 너도 나도 하고 나
서는 사람이 십여 명이 넘었다. 이때는 벌써 땅거미 지난 뒤라 여러 총각이 홰
들까지 준비하여 가지고 외딴집으로 몰려오는데 기세 사나운 품이 명화적패가
화적질하러 가는 것과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둡기 시작할 때 막봉이가 저녁 밥상을 받게 되었다. 처녀가 밥상
을 갖다 주며 얼른 먹고 더 어둡기 전에 가라고 재촉하였건만 갈 생각이 없는
막봉이는 흩어지기 쉬운 서속밥에 숟갈질을 험히 하여 일변 흘리며 일변 주워먹
느라고 한 그릇 밥을 다 먹는데 한동안이 착실히 걸리었다. 그래도 밖이 아직
환하였다.
"깜깜하기 전에 적가리는 넉넉히 갈 테니 어서 가오. " "먹은 밥이 자위나
좀 돌아야지. " 처녀가 부엌에서 설겆이하는 동안 막봉이는 방에 누워서 처녀가
또 재촉할 때 대답할 말을 생각하였다. 꾀배를 앓을까 비위를 팔까. 꾀배 앓자니
창피하고 비위 팔자니 이면이 있다. 이면을 낭하지 않자면 핑계하는 수밖에 없
으나 꾀배 같은 창피한 핑계밖에 좋은 핑계가 생각나지 아니하였다. 처녀가 많
지 않은 설겆이를 잠깐 동안에 다 마치고 와서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갈 생
각 안 하고 누워 있소? " 하고 골을 내서 말하는 바람에 막봉이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놓고 간다는 소금이나 주고 얼른 가오. " "옳지, 소금을 되어 주아야지.
" 막봉이가 밖으로 나와서 처녀를 돌아보며 "받을 그룻하구 될 그릇하구 가지구
이리 와. " 하고 먼저 소금짐 앞으로 갔다. 처녀가 소금 될 한 되들이 바가지와
소금 받을 큰 바가지를 가지고 왔는데 막봉이가 닷 말 소금을 놓고 갈 터인데
받을 그릇이 작다고 말하여 처녀는 다시 가서 큰 둥구미를 들고 왔다. 막봉이는
서서 바가지로 소금을 퍼붓고 처녀는 앉아서 등구미에 소금을 고루 폈다. 소금
을 다 된 뒤에 막봉이가 소금 둥구미를 한 팔로 끼어다가 윗방에 있는 중두리
위에 얹어주었다. 인제 밖이 아주 어두웠다. "어두워 어디 가겠나. " "광솔 켜줄
께 들고 가오. " "고만두고 여기서 자구 갈까. " "어디서 자? " "나는 아랫방에서
자구 너는 웃방에서 자면 되지 않아. " "새벽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오시면 어
떻게 하고. " "제삿밥 가지구 오거든 얻어먹구 새벽길을 나서면 십상 좋겠다. " "
나는 좋지 않아. 어서 가오. " "네게 좋지 않을 게 무어냐? 인심 사납게 굴지 마
라. " "인심 노래도 할 때가 있지 고만두고 어서 가오. " "너희 어머니는 제삿밥
얻어주께 같이 갈라느냐구까지 묻더라. 네가 너희 어머니 반만해두 어둔 밤에
내쫓으려구는 안할게다. " "그럼 갔다가 우리 어머니 오신 뒤에 다시 오구려. " "
이애 그러지 마라. " "무얼 그러지 말아. 누가 장난하재. " "아까 아이놈들의 소
리 들었지. 큰애기 총각이 서로 만나서 장난 좀 하기로 어떠냐. " 막봉이와 처녀
가 어둔 봉당에 마주 서서 가거라 못 가겠다 실랑이할 때 난데없는 횃불빛이 울
사이로 보이었다. "아이구 처게 웬 횃불일까? " "글쎄 어디 나가보까. " 실랑이
는 자연히 뒷전이 되었다, 막봉이가 삽작문을 열어젖히고 나서서 바라보니 사람
십여 명이 내려오는데 횃불 너덧 자루가 앞 뒤에 섰다. 막봉이는 화적패로 짐작
하고 앞으로 마주 나가면서 "이놈들아, 이 외딴집에 무얼 바라구 떼를 지어 오느
냐! " 하고 소리를 지르니 십여 명 사람이 우뚝쑤뚝 서는 중에 한 사람이 "너 보
러 왔다. " 하고 맞소리 지르고 나섰다. 이 사람은 곧 김풍헌의 손자다. "날 누군
줄 알구 보러 와? " "누구야 소금장수지. " "무슨 일루? “ "남의 집 처자를 꾀
이러 다니는 놈 버릇 가르치려구. " "오, 그래 실컷 보구 가거라. " 하고 막봉이
가 떡 버티고 섰다. "거센 체 마라, 이놈아! " "너희들이 한둘씩 덤비면 내가 성
가시니 아무쪼록 십며 명이 한꺼번에 덤벼다구. " "주제넘은 놈 같으니. " "누가
주제넘은가 그건 나중 봐야 알지. " 앞선 사람이 먼저 자 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
에 선 사람들이 일시에 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막봉이게로 달려들었다.
여러 총각이 막봉이를 에워쌌다. 주먹질 발길질이 빗발치듯 하였다. 막봉이가
면상을 후려치는 주먹과 아랫배로 들어오는 발길만은 막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
였으나 어깨바디 등줄기와 넓적다리, 견대팔을 여러 주먹에 얻어맞고 뭇발길에
차이었다, 어른이 어린아이들 데리고 장난하는 것처럼 막봉이는 "옳지, 잘 친다.
" "아이구 아프구나. " 하고 놀리면서 한동안 손을 대지 아니하다가 앞에 있는
김풍헌 손자에게 복장을 걷어차고 흘저에 벼락 같은 소리을 지르며 내달아서
김풍헌의 손자를 잡아 동댕이치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에는 손에 잡히는 대로
동댕이를 쳤다. 아이쿠지쿠 하고 삼사 명이 나가자빠진 뒤에 홰꾼들이 홰를
가지고 두들기려고 대어드니 막봉이가 얼른 총각 하나를 붙들어서
이리위 저리위를 시키며 홰를 막았다. 홰꾼 하나가 뒤로 돌려고 하는 것을
보고 막봉이가 홰막이 총각을 들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가는 중에 뒤에 있는
총각에게 오금을 걷어차이고 옆에 있는 총각에게 옆구리를 쥐어질리었다. 쥐어
지른 총각이나 걷어찬 총각으로 홰막이를 바꾸려고 막봉이는 들고 오던 총각을
손에서 놓았다. 홰꾼이 이 틈을 타서 일시에 악 소리들을 지르며 뛰어들었다. 막
봉이가 급히 앞에 홰꾼들을 피하다가 뒤로 돌려던 홰꾼의 홰 끝에 머리털을 그
슬렸다. 막봉이가 일변 한손으로 머리를 떨면서 일변 뛰어가서 한손으로 옆구리
쥐어 지른 총각의 멱살을 잡았다. 총각이 막봉이의 멱살 잡은 손을 뿌리치려고
애쓸 때 다른 총각 하나가 동무를 도와주려고 대들어서 막봉이가 머리 떨던 손
으로 마저 그 총각의 뒷고대를 잡았다. 한 총각은 앞으로, 한 총각은 뒤로 막봉
이가 뺑뺑이를 돌리면서 홰를 피하다가 눈결에 두 손을 다 놓으며 곧 두 총각을
한 다리씩 잡아서 번쩍 치켜들고 내둘렀다. 홰꾼들이 도리어 쫓겨가는 것은 말
할것도 없고 다른 총각들까지도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막봉이가 "이 못생긴 놈들
아, 동무들은 내버리구 너희들만 도망할 테냐! 뒤에 남은 놈들을 칠 사람이 없으
니 너희들이 다 데리구 가거라. " 하고 치켜들었던 두 총각을 내려놓으니 두 총
각은 한바탕 몹시 내둘린 까닭으로 모두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어서들 와서 다
데리구 가거라. " 하고 막봉이가 뒤로 물러서서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는 총각들
을 바라보고 "너희들 같은 조무래기에게 손찌검하는 것이 점잖지 못하지만 어린
애 매두 많히 맞으면 아픈 까닭에 본보기를 보인 게다. 인제 영문을 알았거든
지체 말구 어서들 가거라. "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동댕이쳐서 나가떨어진 총
각들 중에 김풍헌 손자는 한편 팔을 접질렸고, 다른 총각 하나는 뒤통수를 조
금 깨었을 뿐이라 제대로들 걸어가고 내둘린 두 총각은 걸음을 걷지 못하펴 동
무들이 붙들고 갔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횃불만 보이도록 총각들 가는 것을 바
라보고 있다가 막봉이가 삽작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아랫방 문을 열고 보니 사
람 없는 빈방이다, 처녀가 윗방에 있는가 하고 다시 윗방 문을 열어보았다. 윗방
은 불이 없어 캄캄한 까닭에 손을 들이밀어 더듬어보니 역시 빈 자리다. 처녀가
어디 있을까? 다시 봉당 구석을 살펴보고 마당 안을 둘러 보았다. 처녀가 어디
로 갔을까 집안을 한번 돌아보려고 아랫방 등잔걸이 바탕에 있는 관솔에 불을
당겨가지고 나와서 뒤껼으로 돌아가는 중에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얼른 와서 부엌안을 들여다보니 풀어놓은 잎나무 더미 속에 개가 꼬부리고 누웠
다가 놀라 일어나서 몸을 훌훌 떨며 곧 밖으로 나갔다. 막봉이가 쓴입맛을 다시
고 다시 가서 앞뒤를 다 돌아보았으나 마침내 처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아니하였
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5권 (12) (0) | 2023.01.23 |
---|---|
임꺽정 5권 (11) (0) | 2023.01.22 |
임꺽정 5권 (9) (0) | 2023.01.20 |
임꺽정 5권 (8) (0) | 2023.01.19 |
임꺽정 5권 (7) (0) | 2023.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