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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6)

카지모도 2023. 1. 1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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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된 뒤에 여러 장꾼이 한데 몰려서 탑고개를 넘어오는데 고개 마루턱을

넘어섰을 때 벌써 어두컴컴하여 길이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 여러 사람 중에는

공연히 두런거리는 사람도 있고 두런거리지 말라고 쉬쉬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거지반 길 바닥에 송장이 늘비하려니 믿고 오는 까닭에 앞엣 사람이

무춤만 하여도 뒤의 사람은 송장인가 묻고 겁쟁이가 돌부리만 차고 아이구머니

소리질러도 장력 센 사람이 송장인가 어디 보세 하고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송

장 같은 것도 하나 보지 못하고 고개를 다들 내려왔다. 장꾼들 중에 탑고개 동

네 사람이 하나 끼여 있어서 고개를 내려오며 곧 다른 사람들을 작별하고 동네

로 들어왔다. 그 사람의 안해가 늦은 곡절을 물으니 그 사람은 탑거리서 지체한

까닭을 말하였다. "정말 미친 놈은 그 소문을 낸 놈이오. 곽오주가 사람을 때려

죽이는게 다 무어요. 제가 맞아서 죽을 지경이라오. " 하고 막봉이 일행이 곽오

주 잡아가지고 동네 와서 묵는 것을 이야기하여 그 사람은 한동안 벌린 입을 닫

히지 못하다가 나중에 "자네 말두 곧이 듣지 못하겠네. 이번엔 내 눈으루 가보구

오겠네. "하고 곧 막봉이 일행이 묵는 집에 와서 아랫간에 앉은 낯선 사람들과

윗간에 묶여 누운 오주를 눈으로 보고 나서 손님 대접하는 동네 사람을 보고 전

후 이야기를 하여 방안이 갑자기 웃음판이 되었는데 그중의 몇 사람은 웃느라고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였다. 밤에 동네 사람들이 막봉이 일행을 술대접하

는데 살찐 걸구를 일부러 잡아서 안주도 풍성풍성하려니와 술이 몇 동이로 들어

와서 술을 좋아하는 막봉이 형제는 먹기 전부터 마음이 흐뭇하였다. "가까이들

들어 앉으시우. " "손님들은 앉으신 대루 앉아 계시게 하구 우리들은 나이 차례

루 둘러 앉읍시다. " "나는 술을 못 먹으니 차례에 빠질테요. " "나두 빠지겠네.

" "나두 골치가 아파 술을 못 먹겠어. " 동네 사람 서넛은 뒤로 나앉고 그 나머

지 너댓 사람이 나이대로 앉은 뒤에 동네 사람 중에 첫머리에 앉은 사람이 뒤에

빠져 앉았는 나이 젊은 사람을 돌아보며 "자네는 이리 나와서 술시중이나 들게.

" 하고 말하니 그 사람이 "나더러 술장사 노릇하란 말씀이오? " 하고 웃으며 가

운데로 들어앉았다. "사발이 모두 몇 개나 되나? “ "꼭 세 개요. " "손님들

앞에서부터 돌려놓게. " 젊은 사람이 사발을 돌려놓고 구기로 술을 떠 부으려고

할 때 손으로 끝에 앉은 손가가 주인으로 첫머리에 앉은 동네 사람 앞에 사발을

밀어놓으면서 "손에게 술을 권하자면 주인이 먼저 맛을 보셔야지. ” 하고 말하

니 그 사람은 "촌사람이 술 권하는 법이나 아우? 자 내가 먼저 맛보겠소. “ 하

고 사발을 집어들고 구기 잡은 사람에게로 내밀면서 "내게 먼저 부어주게. " 하

고 말하였다. 그 사람이 술을 들려고 할 때 다음 자리에 앉았는 사람이 "그럼 우

리 이렇게 합시다. 우리는 이 사발 하나루 돌려먹을테니 손님들은 그 사발 둘루

돌려 잡수시오. 그래서 우리 하나에 손님 두 분씩 같이 먹읍시다. " 하고 손에게

술을 더 먹일 공론을 내었다. "우리는 곱배기루 먹는 셈이 되라구요. 꼭같이 돌

립시다. ” 하고 손가가 딴소리 하는 것을 "취하두룩 먹으면 고만이지 아무렇게

나 얼른 먹읍시다. “ 하고 막봉이가 가로막아서 술을 먼저 공론대로 먹게 되었

다. 주인 된 동네 사람들이 한 차례 돌려먹기 전에 윗간에서 오주가 "나두 한

사발 다우. " 하고 소리지르니 뒤로 나앉았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윗간을 내려다

보며 "네놈 줄 술이 있으면 개를 주겠다. ” "우리가 네놈의 살점을 얻어먹구 싶

은데 술을 줄 듯하냐. “ 하고 각기 꾸짖는데 술자리 첫머리에 앉은 동네 사람

들이 막봉이를 바라다보며 "아까는 다 죽어가던 놈이 그 동안에 술 생각을 하는

구려. ” 하고 웃었다. "저녁두 못 먹은 놈이니 술 한 사발 먹이시우. " 하고 막

봉이가 말하여 동네 사람들이 일부러 먹이지 말자고 우기다가 나중에 못이기는

체하고 뒤에 앉았는 사람 하나에게 술 한 사발을 주어서 갖다 먹이게 하였다.

오주가 입에 대어주는 술을 한 사발 다 마시고 나서 "한 사발만 더 다우. " 하고

말하여 그 사람이 "이거 보게, 냥냥해서 한 사발 더 달라네. " 하고 핀잔 주는

것을 삼봉이가 듣고 "이왕이면 우리 셋의 몫으루 세 사발만 먹입시다. " 하고 말

하였다. 두 사발을 갖다 먹이고 세 사발째 가셔가려고 할 때 손가가 "내 몫은 고

만두우. " 하고 말하는 것을 "고만두는 건 다 무어요. " 하고 막봉이가 가로막아

서 세 사발까지 갖다 먹이게 되었다. 술기운이 돌아서 흥들이 난 뒤에 삼봉이가

웃으면서 구기 잡은 사람보고 실없은 말을 걸었다. "소리나 하나 하우. " "나를

아주 술장사 기집으루 여기시는구려. " "기집만 소리하우, 내 먼저 하나 따리다.

" 삼봉이와 구기 잡은 사람이 각각 한마디씩 하고 나서 다른 사람 들을 졸라

소리가 토막돌림이 되었다. 뒤에 앉아서 슬 안 먹고 고깃념이나 먹던 사람들까지

모두 소리를 하고 한밤중이 지나도록 서로 웃고 떠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돌아간 뒤 삼봉이와 막봉이는 고만 쓰러져서 코를 곯았지만 손

가는 도적이 결박지운 것을 풀을까 염려하여 참참 이 윗간을 내려다보느라고

잠도 변변히 자지 못하였다. 날이 밝아서 밖에 사람 소리가 날 때 일찍 일어나

는 버릇이 있는 삼봉이가 번쩍 눈을 떠서 벽에 기대어 앉았는 손가를 바라보고

"벌써 일어났나? “ 하고 물으니 손가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통히 잠을 못

잤네. " 하고 대답하였다. "왜 그랬어? ” "우리가 잠든 동안에 도둑놈이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르니 맘놓구 잠을 잘 수가 없데. " "결박지운 것을 끊구 도망할까

봐서? " "도망질치는 것 버덤두 우리를 와서 죽일는지 누가 아나. " "곤달걀 지구

성 밑은 못 가겠네. " "자네 일어날텐가? 일어나면 내가 잠깐 눈을 붙이구 일어

남세. " 하고 손가는 누우며 곧 잠이 들어서 해정술 먹으라고 깨울 때도 일어나

지 않고 한숨을 실컷 잤다. 해정술은 동네 사람들이 장사들 대접하려고 특별히

구하여 왔다고 말하느니만큼 맛이 희한하게 좋아서 삼봉이 형제는 해정술에 다

시 취하여 배고픈 줄을 모르고 자는 손가가 제풀에 일어나도록 아침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었다. 늦은 아침밥이 끝난 뒤에 손가가 떠나자고 말을 꺼내어서 삼

봉이, 막봉이 형제가 대접하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떠나겠다고 말하니 여러 사

람들은 갖은 말을 다하여가며 붙들었다. 일부러 사온 술을 다 먹고 가라는 말

에 삼봉이와 막봉이가 마음이 끌리고 떡하려고 떡쌀 담갔다는 말에 손가까지 마

음이 솔깃하였으나 더 묵어 가라는 말에는 셋이 다같이 안되겠다고 고집을 세우

고 겨우 점심 먹고 떠날 것을 허락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점심 시킨다고 드나들

때 몰래몰래 딴 집에 들어앉았는 오가에게 와서 점심 뒤에 붙들 꾀를 공론하였

다. 해가 한낮이 기운 뒤까지 점심상이 오지 아니하여 동네 사람들이 서로 돌아

보고 한 사람을 점심 재촉하러 보내더니 그 사람이 갔다 와서 떡이 인제야 김이

오르기 시작하더라고 말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점심이 너무 늦어서 손님께 미안

하다고 그 사람더러 가서 지키고 서서 재촉하라고 말하는데 손가는 속으로 떡을

설릴까 겁이 나서 도리어 늘어지게 송도 부중을 해지기 전에 들어가면 고만이니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다시 한 식경이 지난 뒤에 겨우 점심상이 들어

와서 막봉이 형제는 술을 실컷 먹고 손가는 술보다도 떡을 달게 먹었다. 상이

거의 끝나갈 때 젊은 사람 하나가 방문 밖에 와서 좌중에 앉았는 사람 하나를

불러냈다. 그 사람이 나가서 한동안 젊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들어오는데 얼굴

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무슨 걱정이 생겼나? “ "지금 왔던 우리 집 머슴이 금

교 뒷장을 보러 갔다 오는 자를 만났는데 오가 말이 우리의 원수를 후대하는 놈

들은 곧 우리의 원수니까 오늘 밤에 우리가 가서 몇몇 놈은 식구까지 죽여 없앤

다구 벼르더라네. " 여러 동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근심하는 중에 전날

저녁때 길에 나왔던 사람들이 더욱 근심하였다. "몇몇 놈이란 건 우리들 말인게

지. " "염탐꾼 놈이 우리네 성명을 알아다 바친 겔세. " "이거 큰일났네. "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은가? " 삼봉이가 근심하는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며 "오가가 쇠

도리깨 도둑놈과 한패요? " 하고 묻고서 "그놈의 패가 오늘 밤에 와서 여러분

집안을 도륙낸다구 벼르더란 말이지. 그러면 우리두 가지 않구 여기 있다가 여

러분과 죽구 사는 것을 같이 하겠소. " 하고 말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

뛰다시피 하는 중에 "장사들만 기셔 주면 우리네가 다 살았네. " 하고 말하는 사

람도 있고 "우리네 안식구는 이 집 안으루 모아놓구 우리는 이 방에서 장사들

뫼시구 밤을 지내세. "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막봉이 일행이 탑고개 동네

에서 하룻밤을 더 묵게 되었다. 오가 도적이 오려니 생각들 하고 밤에 동네 사

람들과 같이 술을 먹으며 도적 오기를 기다리는데 한밤중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손가가 막봉이를 보고 "오지두 않는 도둑놈을 기다리다가 오늘 밤도 잠 못 자겠

네. ” 하고 원망같이 말하니 막봉이가 "자구 싶거든 자구려. 누가 자지 말라우?

우리는 술이나 더 먹구 닭 울 녘까지 기다려 볼테요. " 하고 볼멘 소리로 말하

였다. 손가는 그 뒤에 바로 한구석에 누워서 잠을 자고 막봉이 형제는 동네 사

람들을 데리고 앉아서 닭을 두서너 홰 울리었다. "도적놈이 이제는 안 오는 게

지. " "도둑놈두 오지 않는데 건밤 새울 것 없소. " "그럼 고만 잡시다. “ "우리

가 여기서 다 잘 수는 없으니 우리들 몇은 다른 데루 가겠소. " 다른 데로 갈 사

람이 간 뒤에 막봉이 형제는 남아 있는 두어 사람과 같이 잘 채비를 차리고 누

웠다. 막봉이가 자다가 잠결에 도적이 왔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앉아 보니 동네 사 람들은 한잠이 들어서 코들을 고는데 손가가 잠꼬대로

소리를 지르며 사지를 옹송그리었다. 막봉이는 혀를 끌끌 차다가 삼봉이가

눈뜬 것을 보고 "형님두 잠이 깼소? 나는 못생긴 사람 잠꼬대에 속았소.

" 하고 다시 누웠다. 막봉이 형제의 기다리는 오가는 동네 딴 집에서 묵으면서

사람을 기다리었다. 오가의 기다리는 사람은 황천왕동이였으니 천왕동이의 걸음

으로는 양주서 점심때 떠나더라도 밤 들기 전에 들어오려니 믿고 동네 개만 짖

어도 사람을 내보내 보았다. 천왕동이는 오지 않고 밤은 점점 깊어가니 양주 보

낸 사람이 일을 낭패시키는 줄로 생각하고 밤새도록 손바닥을 비비며 고시랑거

리다가 다 샐녘에 드러누워서 잠이 들었었다. "주무시오? 고만 일어나시오. " 깨

우는 소리에 오가가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양주 보냈던 집주인이 방 밖에 와

서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혼자 왔나? " "왜 혼자 오기는. 박서방두 오시

구 박서방 가셨던 집 주인 어른두 같이 오셨소. " "다들 같이 왔어? 어디들 있

나? " 하고 오가가 벌떡 일어나서 내다보니 박유복이가 임꺽정이와 같이 봉당

위에 올라섰다. "박서방 왔나! 임서방두 오실 듯 싶더니 잘 왔소. " 유복이가 방문

앞으로 들어서며 "오주가 죽지 않았소? " 하고 묻는데 오주 일에 열이 나서 눈

에서 불이 나는 것이 밤새도록 길을 걸어온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인제는 오주

가 죽지 않았네. 어서 들어와서 이야기 좀 하세. " "언제 이야기하구 있겠소. 곧

가서 오주를 봐야겠소. " "이야기나 좀 하구 가세. 그놈들이 셋인데 둘은 천하

장사라네. " "오주가 봉변한 걸 보면 힘꼴이나 좋이 쓰겠지. 그렇지만 염려 없소.

" "천왕동이는 어째 아니 왔나? " 어디 가서 같이 못 왔소. " 유복이가 오가와

수작하던 것을 그치고 그 집주인을 돌아보며 "그놈들 묵는 집이 어딘가 나하구

같이 가세. " 하고 말하니 "내가 떠난 뒤에 왔으니까 나두 모르지요. " 하고 유

복이에게 대답하고 "뉘 집에 들었나요? ” 하고 오가에게 물었다. 오가가 유복이

를 보고 "잠깐 들어와서 공론하구 같이 가세. " 말하고 또다시 꺽정이를 향하고

"어서 먼저 들어오시우. " 말하여 꺽정이가 유복이를 돌아보며 "인제 급할 거 없

지 않으냐, 잠깐 들어가자. " 하고 먼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유복이

는 따라 들어가려다가 말고 "오주 산 것을 내 눈으로 보기 전엔 편하게 방에 들

어앉았을 수 없소. 내 먼저 갈 테니 형님은 차차 오시우. " 하고 돌아서며 곧 밖

으로 나와서 동네 사람에게 집을 물어보고 한 달음에 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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