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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7)

카지모도 2023. 1. 1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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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봉이 형제와 동네 사람들은 아직 잠이 깨지 아니하고 손가만 일어나서 오줌

을 누러 밖에 나와서 오줌장군 앞에 돌아섰다가 삽작문 열어젖히는 소리에 고개

를 돌이켜 보니 삽작 안에 들어선 사람이 낯이 설었다. 그러나 손가는 동네 사

람으로만 여겨서 "아직 다들 안 일어났소. " 하고 오줌 누며 말하였다. "이놈아!

" 하고 호령하는 소리에 손가가 깜짝 놀라서 다시 고개를 돌이켜보니 그 사람이

적의를 가진 것은 목자만 언뜻 보아도 알 수가 있었다. "알지두 못하는 사람더러

이놈 저놈 하는 게 누구야! " 손가가 겉으로는 거센 체하면서도 그 사람이 조그

만 쇠끝을 손에 든 것이 댓가지 재주 가진 도적인 성싶어서 속으로 겁이 났다.

손가가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막봉이 형제를 깨우려고 생각하고 괴춤을 치켜들

며 슬금슬금 옆걸음을 쳐서 방문 앞으로 가까이 들어갔다. "게 섰거라, 이놈아.

" 손가가 말을 듣지 않고 별안간 돌쳐서서 화닥닥 방문을 열어 젖히다가 문지방

에 윗몸을 걸치고 고꾸라지는데 입에서 "댓가지 도둑놈! " 하고 외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막봉이 형제가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깨고 외치는 소리에 벌떡 일

어났다. 앞으로 고꾸라진 손가는 머리 뒤에 피가 흐르는데 피 솟는 곳에 쇠끝이

박혔고 동네 사람들은 잠이 곤히 들었는지 겁이 지레 났는지 쥐죽은 듯이 누워

서 눈도 떠보지 아니하였다. 막봉이가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쇠도리깨를 집어들

며 곧 손가 옆으로 뛰어나와서 삽작 안에 섰는 사람을 보고 말도 묻지 않고 쫓

아가려고 할 즈음에 그 사람이 손을 한번 날리더니 쇠끝 한 개가 도리깨 쥔 팔

에 와서 박혔다. 막봉이가 도리깨를 내던지고 또 쇠끝을 뽑아버리고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나갔다. 그 사람이 일변 삽작 밖으로 뛰어나가며 일변 또 쇠

끝을 던지려고 뒤를 돌아볼 때 어떤 사람 하나가 앞에 와서 그 사람의 손을 붙

잡았다. "형님이요, 왜 붙잡소? “ "잠깐 참아라. " 두 사람이 말하는 동안에 막

봉이가 쫓아와서 주먹을 두르며 쇠를 던진 사람에게 달려드니 손 붙잡은 사람이

"총각두 좀 가만 있게. ” 하고 중간을 가로막고 나섰다. 분이 꼭뒤까지 난 막

봉이가 "이놈은 또 웬놈이냐! " 하고 주먹으로 그 사람의 복장을 내지르니 그 사

람은 "이 사람이 눈이 없나? “ 하고 막봉이의 무지한 주먹을 한손으로 장난같

이 받아 막았다. 막봉이가 주먹 막는 것을 보고 한번 다시 보니 곧 양주 임꺽정

이라 "이거 웬일이요, 여기 어째 왔소? 뒤에 섰는 놈이 도둑놈이오. 저리 좀 비

켜나우. " "내가 오기는 자네 보러 왔구 자네가 도둑놈이란 사람은 내 동생일세.

" "동생이라니 도둑놈 동생이 있단 말이오? " "있구말구. 동생 하나는 자네들에

게 잡혀와 있네. " "쇠도리깨 도둑놈두 동생이오? " "그래. " "당신이 도둑놈의

접주요? " "접주라면 나까지 잡아갈텐가? " 꺽정이는 껄껄 웃고 막봉이는 셈판

을 몰라서 눈만 두리번거리었다. 꺽정이 뒤에는 유복이와 오가가 둘러서고 막봉

이 옆에는 뒤쫓아나온 삼봉이가 붙어서서 다같이 두 사람의 수작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여러 사람의 얼굴에는 깡그리 괴상히 여기는 기색이 나타났다. 꺽정이가

여러 사람의 얼굴을 돌아본 뒤에 막봉이를 보고 "우리 들어가 앉아서 이야기하

세. " 하고 손을 끌고 앞을 서니 다른 사람도 다 그 뒤를 따라왔다.

댓가지 도둑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난 뒤부터 곽오주는 묶인 밧줄을 끊고 일

어나려고 용을 썼다. 그러나 워낙 무지스럽게 결박 지운 것을 기운 빠진 사람이

끊으려고 하니 잘 끊기지 아니하였다. 삼봉이가 손가의 머리 뒤에 박힌 쇠끝을

뽑아주고 방안에 끌어들여 눕힌 뒤에 곧 막봉이 뒤를 쫓아나가서 형제가 다 없으니

그제야 동네 사람들이 일어나서 피신들 하러 나가는 길에 곽오주의 묶인 밧줄을

장도로 모조리 끊어주었다. 임꺽정이와 막봉이가 여러 사람의 앞을 서서 삽작

안으로 들어을 때 곽오주가 비슬거리며 마주 나오는데 피투성이 된 얼굴을 씻지

못하고 풀어진 머리를 거두지 않은 까닭에 꼴이 흉악한 귀신과 같았다, 꺽정이

가 보고 "오주야! " 하고 소리칠 때 뒤에 오던 박유복이가 앞으로 쫓아나와서 오

주를 얼싸안고 사내 울음을 내놓으니 오주 역시 어린애 울음으로 엉엉 울었다.

오가가 와서 둘의 울음을 그치게 한 뒤 유복이와 같이 오주를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아랫간 아랫목에 눕히고 동네 사람 하나를 불러서 수건에 물을 축여다

가 얼굴을 씻어주고 또 머리털을 거두어서 시늉만이라도 상투를 쪼저주게 하였

다. 아랫간에 누워 있던 손가는 윗간으로 옮겨 눕히게 되었는데 삼봉이가 가서

버선복의 솜을 뽑아 상처를 누르고 수건으로 동여주었다. 꺽정이가 삼봉이를

불러서 인사한 뒤에 자기가 중간에 앉고 한편에는 오가와 유복이를

앉히고 또 한편에는 삼봉이와 막봉이를 앉히고, 양편을 돌아보며 인사를 붙이어

서 서로 성명들을 통하였으나 양편이 똑같이 소 닭 보듯 하는 중에 유복이는 오

주를 돌아보다가 막봉이 형제를 노려보고 막봉이는 표창 맞은 팔을 만져보면서

유복이를 흘겨보았다. 꺽정이가 먼저 막봉이 형제를 돌아보며 곽오주와 싸우게

된 까닭을 물으니 막봉이는 "어린애 죽이는 무도한 도둑놈을 버릇 가르치려구

일부러 벼르구 왔소. " 하고 간단하게 대답하는데 삼봉이가 자기 형제의 벼르고

오게 된 전후 사연을 대강 이야기반 끝에 꺽정이의 조력을 청할 의논이 있어서

양주를 들러 올 뻔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하였다. 꺽정이가 삼봉이의 이야기를

듣고 막봉이더러 "자네가 나하구 같이 왔더면 바루 적굴을 들이쳤지. “ 하고 허

허 웃고 나서 ”어린애를 죽이는 것이 악착스러운 짓이지. 그렇지만 속을 알구

보면 그렇게 미워할 수도 없느니. " 하고 곽오주의 행력을 한동안 꺾꺾거리며 이

야기하다가 갑자기 오가를 돌아보고 "내 대신 이야기 좀 하우. " 하고 말하여 오

가가 꺽정이의 뒤를 받아서 구변좋게 이야기하였다. 밤중에 배고파 우는 갓난

애를 홀아비가 안고 달래다가 화가 치미는 바람에 눈이 뒤집혀서 안은 애 태기

치는 광경을 그려내듯이 이야기할 때 아랫목에 돌아누웠던 곽오주가 홀저에 황

소 영각 켜는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 일어나니 오가는 이야기를 그치고 유복이는

오주를 붙들어 다시 눕히었다. 막봉이가 곧 오주를 돌아보며 "내가 공연한 짓을

했소. " 하고 사과하는 의사로 말하니 오주는 대답이 없었으나 유복이는 마음이

좀 풀렸다. 유복이가 막봉이를 보고 "팔을 과히나 다치지 않았나? " 하고 물어서

막봉이가 "댓가지를 잘 던진다더니 댓가지가 아니라 쇠끝입디다그려. " 하고 대

답한 뒤 꺽정이가 막봉이 형제를 보고 이번에 같이 산속에 들어가서 며칠 놀다

가자고 말하여 탑고개에서 아침들을 먹고 청석골 오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

는데, 곽오주는 쇠도리깨를 짚고 걸어가고 손가는 삼봉이에게 업혀갔다.

오가가 뒤로 답고개 동네 사람들에게 상급을 후히 준 것은 다시 말할 것 없고

유복이가 삼봉이의 청을 받고 손가 형제를 탑고개 동네로 이사시키고 사는 것을

돌아보아 주마고 허락하여 작은 손가도 머리 뒤 상한 값에 일이 해롭지 않게 되

었다고 좋아하였다.

막봉이 형제는 손가가 제 발로 걸음 걷게 되기를 기다리느라고 청석골서 사오

일 동간을 묵고 떠나는데 임꺽정이도 함께 떠났다. 송도 와서 손가의 집에 들를

때 꺽정이는 바로 가려고 하는 것을 막봉이가 누님을 잠깐 보고 같이 가자고 끌

고 들어왔다. 손가가 집에 오는 길로 형수를 보고 탑고개로 이사 가자고 의논하

고 막봉이 형제더러 이왕이면 이사까지 보아주고 가라고 청하니 삼봉이는 손가

의 청보다도 누이의 말을 떼치지 못하여 허락하고 막봉이는 동행을 끌고 온 까

닭에 곧 가야 한다고 누이의 말도 듣지 아니하였다. 구차한 손가의 집에서 하룻

밤들을 같이 묵은 뒤에 삼봉이는 뒤에 떨어지고 막봉이는 꺽정이와 동행하여 떠

났다. 송도 부중에서 얼마 아니 나왔을 때 뒤에서 "에라, 비켜서라! " 하고 길 잡

는 소리가 나서 꺽정이와 막봉이는 길 한옆에 비켜섰다. 탕건 쓴 양반 하나가

부담마를 타고 지나가는데 마부 이외에 선배 후배가 하나도 없어서 행차 기구는

좋지 못하나 양반의 의관이 번지르한 것은 호사하는 재상만 못지 않았다. 주홍

코와 탑삭부리 수염에 풍신없는 양반이 공연히 율기하고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

위에서 끄덕거리고 가는 조격이 하도 우스워서 막봉이가 뒷생각 없이 소리를 내

서 웃었다. 양반이 마부 시켜 말을 세운 뒤에 막봉이를 가리키며 "저 총각놈 이

리 불러오너라. " 하고 마부를 보냈다. "총각, 저리 좀 가세. " "왜 오라우? " "박

선달님께서 불러오라시네. " "박선달이구 박첨지구 알지 못하는 사람을 왜 오라

우? " 막봉이의 말소리가 굵어서 말 위에 있는 양반의 귀에 다 들렸다. "그놈을

이리 잡아오너라! " 양반이 호령하며 마부가 덜미를 짚으려고 손을 내어미니 막

봉이 "뉘게다 함부루 손을 대려구 이래! " 하고 예사로 떠다밀었는데 마부가 뒤

로 나가자빠지며 "아이쿠머니!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양반이 이것을 보고 "양반

의 하인을 치다니 저런 놈이 어디 있단 말이냐! " 막봉이에게 불호령하고 또

다시 "못생긴 놈 같으니! 얼른 일어나서 그놈을 못 잡아온단 말이냐! " 마부에게

강호령하였다. 이때까지 가만히 보고 섰던 꺽정이가 말썽이 더 되기 전에 혼구

멍을 내어 쫓으려고 생각하고 자빠져 있는 마부에게 가서 두 손을 밑으로 집어

넣어 치어들어서 가로 떠받들고 섰다가 한번 공중에 치뜨리고 다시 받아서 일으

켜 세우며 양반 듣거라 하고 큰소리로 "사람 다리, 말 다리 모주리 퉁겨놓기 전

에 얼른 가거라! " 하고 꾸짖었다. 양반이 호령을 더 못하고 넋을 잃고 주저앉았

는 마부를 내려다보며 "얼른 가자. " 하고 재촉하였다. 마부가 고삐를 잡고 말을

끌어서 앞으로 얼마나갔을 때 막봉이는 전보다 더 크게 소리내서 웃었건만 양반

은 뒤도 돌아다보지 아니하였다. 꺽정이와 막봉이가 말 뒤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한동안 앉아 쉬다가 일어나서 노량으로 걸음을 걸었다. 널문 주막 앞에 와서 보

니 벌써 멀리 갔으려니 생각하였던 박선달이란 양반이 주막방에 들어앉아서 술

장사 계집을 앞에 앉히고 술을 먹으며 희영수하고 있었다. 막봉이가 이것을 보

고 “보아하니 낫살이나 좋이 처먹은 작자가 기집은 꽤 밝히는 모양일세. 욕이

나 한번 더 보일까부다. "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꺽정이가 "고만두

구 우리 길이나 가세. " 하고 팔을 잡아끌고 주막 앞을 그대로 지나왔다. 꺽정이

와 막봉이가 임진강 나루에 와서 배를 기다리느라고 앉았다가 배를 탔는데 사공

이 배를 띄우려고 할 즈음에 박선달의 마부가 "사공 사공! " 하고 소리지르며

말을 몰고 쫓아왔다. 박선달이 막봉이와 꺽정이가 배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배를

탈까말까 주저주저하는 모양이더니 나중에 상을 잔뜩 찌푸리고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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