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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5)

카지모도 2023. 1. 1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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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도적 오가는 한동안 정신없이 도망하다가 뒤에 쫓는 사람 이 없는 것을

보고 살금살금 돌아와서 언덕 위에 숨어 앉아서 삐끔삐끔 내다보며 세 사람의

의논하는 말을 한마디도 빼지 않고 들으려고 손을 쪽박같이 오그려서 귓바퀴에

대고 있었다. 아주 죽이지 말잔 말과 내버리고 가잔 말에 눈살을 조금 펴다가

송도로 끌고 간단 말에 상을 다시 찌푸렸다. 곽오주가 송도로 끌려가면 필경 죽

게 될 것이라 끌려가기 전에 구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까. 늙

은 오가는 고개를 숙이고 꾀를 생각하였다. 쫓아내려가서 아주 죽이지 말자던

사람을 붙들고 이왕이니 아주 살려달라고 빌어볼까. 오가는 곧 쫓아내려갈 것 같이

벌떡 일어섰다가 자기마저 묶어서 끌고 가면 어떻게 하나. 오가는 다시 주저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박서방이 있었으면 이런 변이 나지두 않구 나더라도 도

리가 있으련만 부전부전하게 양주를 왜 갔노. 가더라도 속히 올 것이지 간 제가

벌써 며칠이야. 왜 이렇게 오래 아니 온담. " 늙은 오가는 혼잣말로 지껄이고 하

늘을 치어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주가 묶여가는 꼴을 보고 있느니 집에 가서

집안 식구들과 같이 울기나 하겠다 생각하고 오가는 숨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는 일어났으나 발길이 차마 돌아서지 아니하여 한참 머뭇거리다 가 흘저에 길

아래를 향하고 섰다. "오주, 자네는 인제 영결일세. 자네 죽은 뒤에 박서방과 내

가 자네 원수를 갚아줌세. 우리 둘이 세 놈을 당할 수 없으면 임꺽정이에게 조

력을 청하겠네. 어떻게든지 세 놈의 온 집안을 도륙내서 자네 원수를 갚아줌세.

" 오가가 염불하듯 중얼거린 뒤에 돌아서서 산속으로 들어가다가 중간에서 갑자

기 길을 변하여 탑고개 밑에 있는 탑고개 동네로 내려갔다.

탑고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도적의 그늘에서 사는 까닭에 도적을 무이지 못

하였다. 이것은 탑고개 아래 있는 탑고개 동네뿐이 아니요, 탑고개 아래 있는 양

짓말이든지 탐고개 넘어 있는 게정골이든지 다 매일반이나 탑고개 동네는 도적

의 벌이자리 턱밑이니만큼 도적들과 교분 있는 사람이 다른 동네보다도 많았다.

청석골 붙박이도적 오가가 혼자서 구메도적질할 때에는 식전 나와서 저녁 때 들

어가려면 점심을 싸가지고 다니었는데 댓가지 도적이란 박유복이가 오고 쇠도리

깨 도적이란 곽오주가 와서 기세 있게 도적질 하게 된 뒤로 시장하면 동네에 들

어가서 술이나 밥을 달래서 먹었다. 동네 사람은 술이나 밥을 제공하는 대신 여

러 가지로 덕을 보는 까닭에 도적이 오는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아니하였다. 말

하자면 청석골 여러 동네 사람은 대개 포도 군사 앞에 양민 노릇하고 도적 괴수

앞에 졸개 노릇하는 두길보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늙은 도적 오가가 산속으로 들

어가다 말고 탑고개 동네로 내려온 것은 식구를 보러 가지 않고 졸개를 찾아온

셈이다. 오가가 동네 와서 어느 집에 들어앉으며 곧 동네의 말주변이나 하는 사

람 서너 명을 불러다가 앞에 앉히고 곽오주의 봉변한 일을 대강 이야기한 뒤 "

지금 박서방두 집에 없구 나 혼자서는 구해낼 도리가 망연한데 자네들의 힘을

빌면 될 수 있는 꾀가 한 가지가 있으니 자네들이 힘 좀 써주게. " 하고 여러 사

람을 돌아보니 "될 수 있는 일이면 하다뿐이오. " 도적에게 긴하게 보이려는 사

람도 있고 "뒤에 탈이나 나지 않을 일인가요 ?" 미리 뒷일부터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중의 가장 똑똑한 사람이 “우선 꾀를 말씀하시우. 어디 들어봅시다. "

하고 오가의 꾀를 듣고자 하였다. 이렇게 이렇게 할 일이라고 오가가 자기의 생

각한 꾀를 말하고 나서 "자네들만 일없이 하면 뒤탈은 날 까닭이 없지 않은가?

" 하고 뒷걱정하던 사람을 바라보니 "이틀 밤이나 붙잡아 묵히자면 진창 먹여야

할 텐데 우선 우리 동네에 좋은 술두 없는걸요. " 하고 그 사람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술은 걱정 말게. 우리 집 술두 내오구 또 모자라면 탑거리나 금교역말

에 가서 사오지 걱정인가. ” 오가의 말끝에 긴하게 보이려는 사람은 "우리가

수단을 한번 내보세. " 하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똑똑한 사람은 "일이 잘되면

상급들을 후히 주실 테지요? " 하고 오가를 바라보며 웃었다. "여부가 있나. 일

만 되게 하게. " 오가의 말에 뒷걱정하던 사람까지 직수굿하여졌다. 오가가 불러

온 사람들을 돌려보낸 뒤에 그 집주인 젊은 사람을 불러서 양주를 갔다오라고

일렀다. "오늘 밤에 임진나루까지 가서 강이 만일 풀렸으면 내일 식전 첫배 타구

건너는 게지만 아직은 강이 안 풀렸을 게니 등빙해서 내처 밤길루 가면 내일 점

심 전에 양주를 플어갈테구 곧 되짚어 떠나서 밤길을 걸어오면 늦어두 모레 아

침때는 돌아을 수 있을 것일세. " "글쎄요, 일백 육칠십 리 길을 두 밤 하루

낮에 도다녀올 수 있을까요. " "곽오주의 목숨이 자네 걸음에 달렸네. 자네가 일

을 그르치면 나는 오히려두 용서할 테지만 박서방이 곧 자네를 죽이려구 할 것

일세. " "그럼 다른 사람 보내시지요. " "자네밖에 보낼 사람이 없어. 자네가 잘

만 갔다오면 자네는 오주에게뿐 아니라 곧 우리에게 큰 은인이니까 두구두구 잊

지 않음세. 시각이 바쁘니 지금 곧 떠날 차림을 차리게. 모레 아침때 늦어두 모

레 점심때는 박서방이 여기를 대어와야 하네. " "정 가라시면 할 수 있세요. 갔

다오지요. 박서방 가 있는 집이 찾기나 쉬울까요? " "양주읍내 가서 임꺽정이 집

은 두 번두 묻지 않구 찾아갈 수 있을게니 걱정 말게. 그러구 임꺽정이 처남을

앞서 보내달라구 내가 말하더라구 박서방보구 말하게. " 젊은 사람은 이른 저녁

밥을 든든히 먹고 양주길을 떠나갔다. 양주 가는 사람이 떠나기 전에 동네 사람

대여섯이 큰길로 나갔다. 세 사람이 고개에서 내려와서 송도길로 가는데 앞선

총각은 결박지운 곽오주를 압령하고 중간에 든 사람은 쇠도리깨를 어깨에 엇메

고 뒤따르는 사람은 채롱짝을 걸머졌다. 동네 사람들이 쫓아 가서 서로 만나 걸

음들을 멈춘 뒤에 동네 사람 하나가 앞선 총각을 보고 말을 붙이는데 총각이라

고 말을 낮춰 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쇠도리깨 도둑놈 아니오? " "그렇소. " "이

도둑놈이 잡혔으니 인제는 우리가 살았소. 우리는 이 안동네 탑고개에 사는 사

람들인데 도둑놈 때문에 밤잠을 편히 못 잤소. " "그랬겠지. " "장사들이 어디서

오셨소? " "수원서 왔소. " "세 분이 다 수원 사시오? " "저 뒤에 있는 이는 송

도 사우. " "옳지, 한 양반은 가까이 사시는군. " 다른 사람 하나가 나서서 말을

물었다. "그래 이 무서운 도둑놈을 어떻게 잡으셨소? “ "주먹으루 때려잡았소.

" "참말 천하 장사시오. 그래 이 도둑놈을 수원으로 끌고 가실 테요? ”

"아니요, 송도루 끌구 가우. " 또 다른 사람 하나가 나서서 말하였다.

“송도 들어가시자면 늦을 테니 우리 동네서 묵어가시우. "

"공연한 폐를 끼치느니 좀 늦더라두 가겠소. " "폐라니 천만의 말씀이오. 말하라

면 세 분은 우리 동네 은인이신데 하루 이틀은 고사하구 일년 이태라두 묵어가

시우. " "당치 않은 말씀이오. " 여러 사람들이 다 함께 나서서 "우리가 안 뵈었

으면 모를까 뵙구야 그대루 가시게 할 수 있소. " "보잘것없는 가난한 동네에 천

하 장사 세 분을 뫼셔가기가 황송한 일이나 우리들의 정성을 살펴서 같이 갑시

다. " "꼭 오늘 송도를 가셔야 한다면 우리가 홰라두 잡혀 드리겠지만 그럴 것

없이 우리 동네 와서 묵어가시우. " "날세가 늦지 않았더라두 동네 앞을 그대루

지나가시게 하면 우리의 도리가 아니오. "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말하

였다. 총각이 중간 사람을 보고 "형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 하고 묻고 또

뒤의 사람을 보고 "손서방 어떻게 할라우? " 하고 물었다. "여러분의 정을 막을

수 있나. 가서 하룻밤 폐를 끼치자. " "이왕 늦었으니 묵어가두 좋겠네. " 삼봉이

와 손서방이 각각 대답한 뒤 막봉이가 동네 사람들을 보고 "그럼 같이 갑시다. "

하고 말하여 동네 사람들이 세 사람을 동네로 데리고 오게 되었다. 동네 안 그

중 큰 집, 그 집안 그 중 큰 방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 앉았는데 상좌에 앉은 세

사람은 손님이요, 그 나머지는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 동안에 날이 어두워서 마

당에는 화톳불을 질러놓고 방에는 등잔불을 당겨놓았다. 화톳불은 밝으나 등잔

불은 희미하였다. 아이 어른 여편네 사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장사와

도적을 구경하려고 마당에 가득히 둘러섰는데 밝은 마당에서 어두운 방안에 있

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아니하여 장사의 얼굴을 잘 보여지라고 떠들어서 처음에

총각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고 그 다음에 총각의 형이 방문 앞에 나서서 이편 저

편 향하고 허리를 굽신거리다가 들어오고 나중에 손가가 잠깐 봉당 위에 나섰다

가 도로 들어왔다. 마당에 섰는 사람들이 장사를 구경한 뒤에는 도적이 있는 곳

을 찾았다. 도적은 윗간 한구석에 묶인 채 누워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삐끔삐끔

들여다보는 틈에 늙은 오가가 섞여 가서 일부러 큰 소리로 "쇠도리깨 도둑놈아,

곽오주야. " 하고 부르고 간신히 눈을 뜨고 바라보는 오주에게 안심하라는 뜻으

로 눈을 끔적거리었다. 이날 저녁때 탑거리 주막에는 탑고개로 나갈 장꾼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여러 장꾼 중에 가장 먼저 온 장꾼 하나는 탑고개 마루까지

올라오다가 쇠도리깨 가진 사람이 자빠진 사람 짓찧는 것을 바라보고 쇠도리깨

도적이 행인을 죽이는 줄로 알고 무서운 바람에 가까이 가볼 생각도 못하고 탑

거리로 돌아온 사람인데, 이 사람이 탑고개로 나가는 다른 장꾼들을 보고 허풍

을 떨어서 모두 나가지들 못하고 탑거리 주막에 모여 있게 된 것이었다. "쇠도리

깨 도둑놈이 미친증이 났는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할것 없이 만나는 족족 죽

인다네. " "전에 없던 일인데 그럴 리가 있을라구. " "그렇기에 미친증이 났는가

부다 말이지. " "곽오주가 본래 실성한 사람이니. " "그 사람이 개래동 정첨지 집

에 있다가 미쳐서 쫓겨났답디다. " "아니 그런 것은 아니오. 내가 잘 아는데 잠

깐 미쳤다가 낫습네다. " "아니오. 여보, 지금두 미친증이 남아 있어 어린애 우는

소리만 들으면 당장에 다시 미친다우. " "그래서 어린애를 죽이거든. " "오늘 어

린애 우는 소리를 들은 게지. " "어린애 우는 소리를 듣구 어린애나 죽인다면 모

르지만 어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함부루 죽일까. " "아주 미쳤는지 모르지. "

"그래두 곧이가 잘 안 들리는데. " "곧이 안 들리거든 가보구려. " "이 사람아,

미친 사람의 맘을 성한 사람이 어떻게 요량하나. " "너더댓 사람 때려눕힌 것을

보구 온 사람이 저기 있소. " "여보, 곽오주가 사람 죽이는 것을 보구 왔소? " "

송장이 늘비하게 누운 것을 보구 나는 혼이 났소. " "댁은 어떻게 죽지 않구 살

아왔소? " "그렇기에 혼이 났소. 내가 빨리 도망질 안 쳤더면 쇠도리깨 맞구 벌

써 염라대왕을 보러 갔을 게요. " "우리들이 떼를 지어 가면 어떠할까? " "예사

사람두 미치면 무서운데 곽오주 같은 장사가 미쳤으면 떼지어 가두 소용 없네.

잘못하다 깡그리 맞아죽을는지 모르지. " "그럼 어느 때까지 여기서 이렇게 하구

있단 말인가. " "해 져서 땅거미 된 뒤에 고개를 넘어가자구 아까 몇 사람이 공

론했네. " "집안 식구들이 기다리겠는걸. " "잠깐 기다리는 것이 아주 못 보느니

버덤 더 위 아닌가. " "그거야 말할 것두 없는 일이지. " 여러 장꾼 중에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서로 뒤섞여서 중구 난방으로 지껄이며 해져서 어둡기를

기다리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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