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련이 아버지와 막봉이가 양옆에서 붙들고 가노라니 길이 자연 늦어서 떠나
던 이튿날도 해질 물에 간신히 발안이를 대어왔다. 그 날은 사처에서 자고 그
이튿날 신부례를 지내는데 말이 신부례지 폐백까지 없는 신부례라 거북살스러운
예절을 차리지 아니하여 잠깐 동안에 끝이 났다. 막봉이 부모는 새며느리를 하
루라도 묵히려고 하였지만 막봉이가 고집을 세워서 혼인날 떠나오듯이 신부롓날
도 점심 먹고 되떠났다. 귀련이 아버지가 딸과 사위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딸
내외더러 "형님은 반갑게 알거나말거나 우리 도리는 차려야 할 테니 이번에 아
주 가시리를 다녀가자. " 하고 말하였다.
귀련이가 그 동안 말에 익어서 갈 때보다 길이 좀 빨랐다. 발안이에서 떠나던
이튿날 늦은 점심때쯤 가사리를 당도하였다. 박선달 집 문앞에 와서 귀련이 아
버지는 딸을 말에서 내려 바로 안으로 들여보내고 사위를 데리고 사랑에 들어와
보니 박선달이 첩의 집에 가고 사랑에 있지 아니하였다, 귀련이 아버지가 조카
하나를 보냈더니 그 조카가 갔다와서 지금 곧 오신답디다 하고 말하여 곧 올 줄
알고 기다리었다. 오지 않는 형을 한동안 헛기다리던 끝에 귀련이 아버지는 "안
에나 잠깐 다녀오겠다. " 하고 막봉이는 큰조카와 같이 사랑에 앉혀두고 자기는
작은조카들을 앞세우고 안방에 들어와서 형수게게 인사하고 조카며느리들에게
인사 받는 중에 안중문간에서 큰기침 소리가 났다. "인제 오시지? " "녜, 오십니
다. " 귀련이 아버지가 조카들과 같이 마루로 나오는데 귀련이도 사촌 올케들과
같이 뒤를 따라나왔다. 박선달이 몸집이 뚱뚱한 것보다도 거드름 부리느라고 거
위걸음을 걸어 들어왔다, 마루에 섰는 사람들은 박선달이 잘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루로 올라오며 곧 안방으로 들어오는데 여러 사람이 다 그 뒤를 따라들어왔
다. 박선달이 안방에 들어와서 아랫목에 좌정한 뒤 먼저 귀련이 아버지가 절을
하니 골난 사람같이 뿌루퉁하고 앉아서 왔느냐 말 한마디 아니하 고 그 다음에
귀련이가 절을 하니 "음. "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퍽 컸구나. 자식두
넉넉히 낳겠다. " 박선달은 가장 재미스럽게나 말한 듯이 싱글싱글
웃고 "네 남편이 수원 사람이라지? " 하고 귀련이보고 묻는데 “녜. ” 하고 귀
련이 아버지가 딸 대신 대답하였다. "성이 무언구? " "길 가랍니다. " "길가? 상
놈의 성이로군. " "반명은 아니겠지요. " "그럼 무얼 취해서 혼인을 했담? " "사
윗감 하나 보구 했어요. " "개천에서 용났단 말 못 들어. " "사위가 천하 장사랍
니다. 우리는 몰라두 팔도에 힘꼴 쓴다는 사람은 길막봉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
답니다. " "길막봉이? " 하고 박선달은 곧 미간에 주름을 잡는데 주름 사이에 불
쾌한 기색 이 현저히 나타났다.
"사위 말은 형님을 전에 한번 보인 일이 있다고 합디다. " "날 어디서 봐? "
"지금 사랑에 있으니 나가 보시면 아시겠지요. " 박선달은 혜음령에서
망신한 이야기를 아우가 들어 알려니 생각하면서도 "네가 본들 알 까
닭이 있나. " 딱 잡아떼고 나서 "네가 딸 혼인을 정하는데 어째 내게 의논 한마
디 없이 정하느냐. " 하고 시비를 시작하였다. 아우가 발명하려는 것을 가로막고
박선달이 "내게다 말하면 행세하는 집으루 여의어 줄 것인데 무지막지한 상것들
의 자식을 사위루 얻어서 아무개의 조카사위라구 내돌릴 모양이니 구경 내 낯을
깎잔 말이구나. "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는 "너 같은 것은 본래 내가 동기
루 안 여긴다. 꼴두 보기 싫다. 냉큼 가거라! " 하고 호령호령하였다.
귀련이 아버지가 우는 딸을 데리고 사랑으로 나와서 사위더러 가자고 말할 때
막봉이가 귀련이의 우는 까닭을 물으니 "당신이 상놈이라구 우리 아버지가 호령
을 받았다오. " 귀련이가 울면서 대답하였다. "누가 호령을 해? " "누구야, 이 집
선다님이지. " "상놈이라구. " 하고 막봉이가 한번 뇌고 나서 귀련이 부녀가 붙들
사이도 없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막봉이가 안마루에 껑청 뛰어올라설 때
박선달이 안방 머리맡 문을 열고 내다보며 "웬놈이 내정 돌입하느냐! " 하고 호
령하였다. 막봉이가 팔을 걷어붙이며 방문 앞으로 대어드니 박선달이 일변 윗간
으로 피하여 가며 일변 "얼른 하인들 불러서 저놈을 잡아내라! " 하고 고성을 질
렀다. 막봉이가 신발 신은 채 방으로 뛰어들어 와서 윗간 문 열고 도망하려는
박선달을 쫓아가서 뒤꼭지를 움켜잡았다. "양반 좀 구경합시다. " 하고 막봉이가
박선달을 떠밀고 방에서 마루로 나오고,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박선달의
큰아들은 사랑에서 들어오다가 도로 나가고, 둘째아들은 절굿공이를 들고 막봉
이게 덤비다가 발길에 차이어 마당 한구석에 나가자빠지고, 끝에 아들은 부리는
계집아이들과 같이 건넌방 모퉁이에 숨어 서서 발발발 떨고 있고 박선달의 마누
라와 며느리는 "아이구 이런 변이 어디 있나. " "아이구 저놈을 어떻게 하나. "
실성한 사람 군소리하듯이 지껄이며 마루 구석에 뭉치어 섰다. 막봉이가 다시
박선달을 떠밀고 사랑으로 나가려고 할 즈음에 박선달의 큰아들이 집안 사람과
동네 사람을 몰아가지고 들어오는데 어중이떠중이 수효는 십여 명이 넘었다. 막
봉이가 이것을 보고 박선달의 뒤꼭지를 잡은 채 여러 사람을 향하고 서서 "너희
놈들이 내게 덤비는 날이면 박선달부터 태기치구 너희놈들두 하나 성하게 두지
않을 테다. " 하고 박선달을 곧 태기칠 것같이 둘러메려고 하니 박선달은 죽어가
는 소리를 하고 여러 사람은 선뜻 대어들지 못하였다. 전에 마부로 송도 갔던
사람이 여럿 중에 섞여 있다가 막봉이를 알아보고 "아이구머니 큰일났네, 저 양
반이 혜음령서 도둑놈 혼내던 장사 아니라구. 여보게 우리 따위는 백 명, 이백
명 함께 덤벼두 소용없어. “ 하고 호들갑을 떨어서 여러 사람들은 구경하러 온
것같이 서서 보기만 하는데 박선달의 큰아들이 어느 틈에 도끼 하나를 찾아들고
슬그머니 막봉이 뒤로 돌아왔다. 귀련이 아버지는 처음부터 막봉이를 쫓아들어
오려고 하였으나 귀련이가 은근히 백부의 욕보는 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저의 아버지에게 울고 매달렸다. 사랑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쪽문 안에 귀련이가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서서 들여다보는 중에 사촌의 도끼가 남편 뒤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보고 "아이구머니!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막봉이가 고개를 돌이켜 도
끼를 보고 박선달을 돌려세우며 곧 앞으로 떠다박지르니 아비가 엎어지며 아들
이 자빠지는데 도끼는 옆으로 떨어졌다. 막봉이가 곧 박선달과 큰아들을 잡아
일으키고 또 마당 구석에서 쩔쩔매는 둘째아들까지 끌어다가 삼부자를 느런히
앉힌 뒤에 한번 휘 돌아보다가 중문간에 있는 절구통을 한달음에 가서 들고 나
왔다. 막봉이가 박선달 삼부자 앞에 와서 절구통을 번쩍 치어들 때 귀련이 아버
지가 딸의 손을 뿌리치고 쫓아나왔다. ”이 사람 무슨 짓을 하려구 이러나? " "
삼부자를 박살낼라구요. " "이 사람이 미쳤나! " “왜 미쳐요? 상놈의 목숨 하나
를 양반의 목숨 셋과 바꿀랍니다. "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럴라면 나를 먼저 죽
이게. 이 사람 제발 좀 고만두게. " 막봉이가 박선달 삼부자를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던 까닭에 장인의 말에 못이기는 체하고 “고만두라시면 고만두어두 좋지
요. 그렇지만 박선달이 그런 버룻을 다시 안 한다구 맹세하는 말을 들어야겠으
니 그리 아시오. " 하고 절구통을 쾅 내던지고 박선달을 내려다보며 ”동생이 상
놈 사위 얻었다고 호령질하는 양반님네가 여간해서는 잘못한 줄을 모를 테니까
초죽음을 해놔야겠다. " 하고 팔죽지를 잡아 일으켰다. “아이구 팔 부러진다. 다
시 안할 테니 팔 놔라. " ”너무 싹싹한데. " "아이구 팔이야. " "다시 그런 버릇
못하지 ? “ "안 하마, 안 하마. " "어째 양반이 독하지 못해. " 막봉이가 코웃음
을 치고 박선달의 팔을 놓아주었다. 귀련이 아버지가 딸 내외를 데리고 나갈
때 등 뒤에서 "인제는 형제 아주 의절이다. " 하고 박선달의 소리치는 말이 들리
었다.
박선달이 망신당한 분풀이 하려고 속으로 원에게 청촉하여 놓고 겉으로 소지
를 바치는데 막봉이가 내정돌입하여 삼부자를 구타하였고 불량한 아우가 뒤에서
부추겼다고 사연을 꾸미어서 막봉이는 장인과 함께 안성 관가에 잡혀오게 되었
다. 공타 마당에 막봉이는 발명을 잘하지 못하였으나 막봉이의 장인이 전후사를
차근 차근 아뢰었다. 원도 속으로는 박선달이 봉변하여 싸거니 생각하면서도 박선달
의 뇌물 받은 값을 하려고 억지 공사를 하러 들었다. 안성 육방 관속에는 박선
달을 밉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때 형리도 그중의 한 사람이라
동헌 툇마루에 엎드린 채 원에게 넌지시 말을 아뢰었다. "박선달 형제 중에 형이
그악하옵구 아우가 무던하온 것은 경내 상하가 다 아옵는 일이온즉 소지를 준신
하옵시구 공사하옵시면 뒤의 청문이 사나울 듯 하외다. " 원이 형리의 말을 듣고
이윽히 생각하다가 막봉이에게는 이타물구인성상자 조문을 켜서 태 40으로 경하
게 치죄하고 막봉이 장인에게는 형제 우애 있이 지내도록 힘쓰라고 훈계하여 공
사를 마치었다. 막봉이가 볼기 맞고 나오는 길에 가사리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
을 장인이 한사하고 말려서 바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막봉이가 데릴사위 노룻
하기 시작한 뒤로 달이 벌써 두서너 번 바뀌었다. 그 동안에 귀련이와 내외간은
의초좋게 지내었으나 장모와는 서로 뜻이 맞지 아니하여 말다툼인 여러 번 났었
다. 장모 의 잔소리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하여 막봉이는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는데,
장인의 생일 전날 막봉이가 곡식말을 가지고 가서 반찬거리를 바꾸어 올때 장모가
떠먹듯이 일러준 김 한톳을 잊고와서 장모는 화가 천등같이 났다. "그게 무슨 놈
의 정신이야. 까마귀고기 먹었나! " "잘못되었소. " "잘못되었다면 고만인가. " "
그럼 어떻게 해요? “ "북어 가지구 가서 김으로 바꾸어 오게. " "내일 가서 바
꾸어 오지요. " "당장 가서 바꾸어 오게. " "배가 고픈데 어떻게 또 장에를 갔다
온단 말이오? " "배가 고파 안 바꿔 오면 저녁은 못 먹을 테니 그리 알게. " "한
끼 굶어 죽지 않소. " "누가 굶겨 죽인다나, 우리 세 식구 하루 먹을 밥을 한끼
에 다 먹는 위인이 그중에 큰소리까지 하네. 자네 온 뒤로 양식이 곱들어 잘난
사위 덕에 우리까지 바가지 차고 나서겠네. " "양식이 아까워서 나를 두구 먹이
지 못하겠단 말이오? " "무슨 유세야, 힘센 자센가. 소가 세도 왕노릇 못해. " "
나더러 소란 말이오? ” "그래 소라면 어쩔 테야. " "내가 소면 당신 딸두 소구
당신 딸이 소면 당신두 소지. " "저것 보게, 장모더러 욕하지 않나. " "내가 지구
고만두겠소. “ 막봉이가 사설하는 장모를 내버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밥짓던
귀련이가 "들어오지 말구 나가오. " 하고 독살스럽게 말하였다. "자네까지 구박
인가. 데릴사위 노릇 더러워 못하겠네. " "내 부모가 당신 부모지, 그렇게 욕하는
법이 어디 있소? ” "누가 욕을 해? " "나는 귀가 없는 줄 아오? " 골난 막봉이
가 골김에 귀련이 어깨를 한번 탁 쳤다. 귀련이가 죽는 소리를 하여 귀련이 어
머니는 말할 것 없고 방에 드러누웠던 귀련이 아버지까지 부엌으로 쫓아와서 귀
련이의 저고리를 벗기고 보니 한편 어깻죽지가 금시에 먹장 갈아 부은 것같이
되었었다. 귀련이 어머니는 곧 막봉이의 멱살을 잡고 매달리고 귀련이 아버지는
막봉이를 흘겨보며 딸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귀련이 어머니가 골김에 앞뒤
생각 없이 사위를 내보내자고 주장하여 막봉이는 데릴사위 노릇을 다하고 쫓겨
나게 되었다. 막봉이가 발안이 집에 돌아와 보니 삼봉이는 안해까지 끌고 등짐
장사를 나갔고, 큰봉이 , 작은봉이만 집에 있는데 막봉이 온 것을 보고 형제가
다 "네가 어딜 가면 조신하겠니. " 하고 냉대하여 막봉이는 부모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집에서 도로 나와서 매일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오가의 권으로 청석골
와서 같이 있게 되었다. 불과 반 년 전에 쇠도리깨 도적을 잡으러 왔던 사람이
우습게 쇠도리깨 도적과 한패가 되어버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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