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 말이 없이 막봉이를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가 막봉이 앞으로 나 앉으며
"여게 총각, 나하구 이야기 좀 하세. " 하고 부드럽게 말하니 막봉이는
“녜. ” 하고 대답하는 것부터 공손스러웠다. "자네 성명이 무언가? "
"길막봉이올시다. " "어디 사나? " "수원 삽니다. " "부모 다 기신가? “
”녜. “ "몇 형젠가? " "사형제의 끝이올시다. " "자네 남의 집에 데릴사위루
갈 수 있겠나? " 귀련이 어머니가 "여보? " 하고 남편에게 눈을 흘기니 귀
련이 아버지는 "가만히 있게. " 하고 안해에게 손을 내젓고 다시 막봉이를 향하
여 "자네 부모가 허락하시겠나? " 하고 물었다. "내가 가구 싶다면 고만이지 부
모가 무어라겠소. " "자네가 불패천인 겔세그려. " "불패천이라니 못된 놈이란 말
인가요? " "혼인은 인륜대사인데 부모가 알은 곳을 안한단 말인가? ” "나이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스물한 살입니다. " "나이 스물한 살이여? " “녜. ”
"인제 그만큼 알았으니까 우리끼리 의논할 일이 있네. 자네는 가. "어데루 가란
말입니까? “ "어데든지 자네 맘대루 갈 것이지 나더러 물을 거 있나. 며칠 뒤에
한번 다시 오게. " 막봉이가 한참 생각하다가 ”며칠 뒤에 다시 올 거 없지요.
지금 내가 웃방에 가 있을 께니 의논들 하시구려. " 하고 대답하며 곧 귀련이 아
버지의 말도 더 들어보지 않고 윗방으로 내려갔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 "무
얼 어떻게 하면 좋으냐 말이요, 보내는 게지. " "내가 좋게 말해두 안 가는 걸
어떻게 하나. " "누가 사위나 삼을 듯기 말하랍디까. " "그렇게 말해서 보내놓구
보려구 그랬지. " "그러지 말고 곧 가라시오. " "가지 않는 걸 끌어내나 잡아내
나. " "귀련이 시켜 가래 봅시다. " "귀련아, 네가 가라구 할 테냐? " "너의 아버
지 말씀을 왜 대답 않니? " "아비 어미의 말을 들은 체 않는 법이 어디 있니? "
"이애가 환장이 되었나. " 귀련이 부모가 말을 그치고 서로 바라보는 중에 날이
활짝 밝았다. 낮에도 오는 사람이 없는 집에 새벽 손님이 찾아왔다. "박서방 일
어났나? 일어났거든 좀 나오게. " 하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귀련이 아버지가 삽
작 밖에 나가 보니 김풍헌 늙은이가 지팡이 짚고 서 있는데 기색이 좋지 않은
것이 시비하러 온 사람 같았다. "이게 웬일이시오? “ "자네에게 치하 왔네. " "치
하라니요? " "장사 사위 얻은 치하 왔어. " "장사가 누구요? " "장사가 누군 걸
몰라서 묻나? 소금장수 , 똥장수 자네 사위 잘 얻었데. 그렇지만 남의 자식들을
병신이나 만들지 말라고 당부 좀 하게. ” “무슨 소리요? 당초에 영문을 모르
겠소. " "자네가 모르쇠루 잡아떼는 모양인가. " "무얼 잡아뗀단 말이오? " "소금
장수가 자네 집에서 자지 않았나? 왜 대답이 없나? 더 잡아뗄 뱃심이 없나? 고
르구 고른 사위 데려내다 구경 좀 시키게. ” "알지두 못하구 왜 시비요? " "무
얼 알지 못해, 자네가 장한 사위 얻은 것을 알지 못해! " "누가 사위를 얻었다고
말합디까? " "자네가 딸을 잘 두었으니까 소금장수 같은 사위나 얻어야 알맞
을 것일세. " "내 딸 걱정 마시오. 당신 손자하구 부득부득 흔인하자지 않소. " "
하자면 누가 한다던가? 내 손자를 총각으루 늙히더래두 자네 딸하구는 혼인하지
않네. " "나는 뒤가 급해서 더 말하구 있을 수 없소. " "나두 더 할말 없네. 자 가
네. " 김풍헌은 뿌르르 하고 돌아서서 지팡막대를 드던지고 귀련이 아버지는 삽
작 밖에 있는 뒷간으로 들어갔다.
귀련이 어머니가 손님이 누구인가 알고 싶어서 남편 뒤를 따라 나왔다가 남편
이 방에 없는 동안에 귀련이에게 말을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즉시 방으로
되들어왔다. 귀련이 옆에 와서 붙어 앉으며 "이애 귀련아, 나하도 이야기 좀 하
자. " 하고 말한 뒤 곧 귀련의 귀에 입을 대고 "총각이 네 맘에 드니? 네 맘에
들 것 같으면 숨기지 말고 말을 해라. 너의 아버지하고 좋도록 의논할 테다. " 하
고 가만가만 말하였다. "인제 몸을 버렸으니까 죽어도 다른 데는 못 가요. " "소
금장수 총각을 사위로 얻으면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너희 큰아버지 보기가
창피하지 않으냐! " "큰아버지가 절까지 했다오. " "큰아버지가 절을 하다니?
" 귀련이가 막봉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강 옮기는데 귀련이 어머니는 재미있게
듣고 나서 "참말 그렇게 봉변을 했으면 잘코사니지만 총각의 허풍인지 누가
아니? " "나도 처음에는 곧이 안 들었더니 나중 보니까 도적놈을 혼냈단 말이
거짓말이 아닙디다. " “거짓말 아닌 줄을 무얼 보고서 알았니? " 귀련이
가 막붕이의 울 뛰어넘던 것을 이야기하고 나서 막봉이의 총각들과 싸우던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귀련이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의 아버지도
들으시게 이야기하려무나. " "무슨 이야기야? " "어제 저녁에 총각난리가 났었더
라는구려. " "총각난리란 다 무어요? " "이애 네가 이야기해라. " 귀련이가 고대
를 다소곳하고 앉아서 눈으로 본 광경을 다 이야기하였다. "적가리 총각들이 왔
다가 혼나고 간 모양이지요. " 귀련이 어머니가 남편의 말을 자아내었다. "총각
놈들은 어떻게 알구 왔을까? " "저녁 전에 초군 아이들이 와서 보고 갔다니까
그 아이들이 가서 이야기한 게지요. " "내가 김풍헌이 새벽에 쫓아와서 영문 모
를 소리를 지껄이더라니 김풍헌의 손자두 섞여 왔던 게로군. " "앞장섰기도 쉽지
요. " 귀련이 아버지가 딸을 돌아보며 "너는 나가서 아침이나 지어라. " 하고 말
을 일러서 귀련이가 말없이 일어설 때 "쌀이 웃방에 있으니까 내가 내주고 오리
다. " 귀련이 어머니가 말하고 딸과 같이 일어섰다. 이때 윗방의 총각은 개잠이
들어서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까지 났다. 막봉이는 개잠 자고 귀련이는 밥짓
는 동안에 귀련이 부모는 서로 의논하고 막봉이를 사윗감으로 정하여 성례까지
속히 하기로 작정하였다. 혼인이 말썽없이 되어서 막봉이도 좋아하고 귀련이도
좋아하였다. 귀련이 아버지는 딸의 행적을 덮어주려고 그대로 혼인을 정하였으
나 막봉이가 눈이 불량스러워서 마음에 탐탁치 못하였고, 귀련이 어머니는 막봉
이의 인물이 김풍헌 손자만큼 준수하지 못하여 부족한 중에 소금장수 사위가 종
시 창피하였다. 귀련이 아버지가 궁합도 잘 보고 택일도 잘 하는 사람이라 막봉
이의 정유생과 귀련이의 경자생이 간지 오행으로도 상생이라 좋고 납음 오행으
로도 상생이라 좋고 또 이 토랭으로는 어떻고 저 오행으로는 어떻다고 궁합 보
는 문서를 다 늘어놓은 뒤에 혼인을 하자면 이 달이 대리월이라 이 달 안에 작
수 성례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택일을 가깝게 하여 막봉이는 오륙 일 안에 발안
이 집에를 다녀오제 되었다. 이 날 아침 뒤에 막봉이는 안성서 떠나서 이튿날
아침때 발안이로 돌아왔다. 그 동안 삼봉이도 송도서 손가의 집 이사를 보아주
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부모 형제 모여앉은 자리에서 막봉이가 데릴사위로 장
가가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니 늙은 부모는 막내아들마저 성취하게 되는 것만 다
행하여 좋다고들 말하고 큰봉이와 작은봉이는 마음에 맞지 않는 막봉이가 따로
가서 살게 되는 것이 시원하여 좋다고들 하는데 오직 삼봉이만은 동생과 떨어지
기가 섭섭하여 막봉이를 보고 "네가 집에서 나가면 나두 집에 있을 재미 없다.
식구 끌구 타관으루나 나가겠다. " 하고 말하였다. 타관으로 나간다는 딸이 아비
귀에 거슬렸다.
"늙은 아비 어미는 내버리구 가두 좋단 말이야? " "형들이 있지 않아요? " "형들
은 형들이구 너는 너지. " "막봉이까지 없으면 형들의 되지 않는 잔소리를 저 혼
자 듣느라구 머리가 빠지게요. “ "형들이 잔소리를 한다구 치더래두 너같이 밤
낮 길루 돌아다니는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 "잠깐 잠깐 집에 와서 있는 동안이
라두 그렇지요. " 삼봉이 말대답에 홧증 난 아비가 "아무리 데릴사위루 가더래두
신부를 한번 데리구 와서 아비 어미 상면은 시키겠지. " 하고 막봉이에게까지 체
증기 있게 말하였다. "가서 의논해 봐야지요. " "만일 의논이 잘 안 되면 아비
어미는 며느리라구 꼴두 보지 못하구 죽겠구나. " "의논이 잘 안될 까닭이 있나
요? " "명색이라두 신부례라구 하자면 술잔이나 준비해야 할 거 아니냐. " 큰봉
이가 나서서 "신부례를 한다면 이번에 곧 하게 될까. " 하고 막봉이에게 묻는데
아비가 "그것두 가서 의논해 봐야겠지. " 하고 비꼬듯 말하여 막봉이는 불쾌스럽
게 "혼인날 곧 떠나오두룩 할 테요. " 하고 형의 말을 대답하였다. "첫날밤두 안
치르구? " "첫날밤은 길에선 못 지내우? " 큰봉이가 다시 말하기 전에 아비가 "
그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 하고 나무라는 것을 막봉이가 "법은 무슨 법이
요, 개 콧구멍같이. " 하고 뒤받아서 "나는 모르겠다. 다 너의 맘대루 해라. " 하
고 아비는 삼봉이, 막봉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 뒤에 막봉이가 성관하고 장가 들러 갈 때에 늙은 아비는 백리길 가기에
근력이 부치느니보다 화가 덜 풀려서 후행 갈 생각을 아니하였고, 큰봉이는 신
부렛날 준비할 것이 있어서 후행갈 수가 없었고, 작은봉이는 후행 손님 노릇을
하고 싶어서 가겠다고 말까지 하였으나 막봉이가 같이 가기 싫다고 하여 삼봉이
가 후행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귀련이 혼인날도 박서방 집은 별로 평일과 다름없이 조용하였다. 혼인을 지내
는 줄 알면 올 사람이 더러 있을 터이지만 구메 혼인하듯 소문없이 혼인하는 까
닭에 손님도 없고 구경꾼도 없었다. 전지를 부치는 작인 내외가 일 보아주러 왔
고 박선달의 아들 위로 형제가 인사 치르러 왔을 뿐이고 박선달은 병이 있다고
핑계하고 질녀의 흔인도 보러 오지 아니하였다. 초례를 지내는데 초례청은 마당
이요, 독좌상은 정화수상이요, 멍석 위에 덧간 기직자리는 화문등메 맞잡이였다.
기직자리 위에 신랑 색시가 마주 서서 큰절 한번으로 인륜의 대례를 순성하였
따. 색시 어머니는 말떡 용떡을 만들지 못하여 섭섭하고 청실 홍실을 늘이지 못
하여 섭섭하였지만 그것은 오히려 여차요, 초례 전에 봉치를 제례한 것과 초례
후에 첫날밤은 제례할 것이 마음에 불쾌하여 초례 마치고 곧 상우례한 새사위를
보고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함이나 하나 가지고 올 것이지 맨손으로 오는
법이 어디 있나. 봉치는 지금 와서 말했자 소용없지만 첫날밤은 치러야 하네. 첫
날 밤도 안 치르고 길을 떠나다니 말이 되나. " "안됩니다. " "안될 일이 무엇인
가? " "집에서 그렇게 말하구 왔어요. "
"누가 그렇게 말하고 오라나? " "그렇게 말하구 온 걸 지금 어떻게 해요. 그 대
신 곧 되짚어 떠나오지요. " "누가 얼른 오지 않을까 봐 걱정인가. 첫날밤을 지
내고 가란 말이지. “ 색시 아버지가 옆에서 듣다가 "이 사람 쓸데없이 잔소리
말게. " 하고 핀잔 주고 나섰다. "어째 잔소리라오. 혼인하고 첫날밤 안 치르는
법이 어디 있소? " "미리 다 말해서 알구 지금 와서 무슨 딴소리야. " "미리 말
한 것은 다시 의논 못하오? 이러고저러고 간에 오늘은 못 떠나게 할 테니 그리
아시오. " "고만두구 어서 가서 국수상이나 차려서 먹게 하게. " "오늘은 못 떠나
요. " "그러지 마라. " 남편이 말다툼 아니하려고 수그러지니 안해는 점점 더 기
승을 부렸다. "그런 일은 못될 일이라고 딱딱 무질러 말 못하고 말하는 나더러
잔소리래. 혼인날 떠나온다고 말한 사람도 지각이 없지만 혼인 날 떠나오라는
사람들은 무슨 지각이야. " 사돈 마누라의 말이 저의 집에 피침한 것을 듣고 상
객으로 온 삼봉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제기 소리 한마디를 제법 크게 내놓
았다. "별 해괴한 일 다 보겠네. " 색시 어머니가 혼잣말하듯이 지껄이는데 삼봉
이는 증을 벌컥 내며 막봉이를 보고 "너는 가든지 말든지 나는 간다. " 하고 곧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형님 같이 갑시다. 나두 가겠소. " 막봉이가 붙들었다. 색
시 아버지가 사위 형제를 무마하여 놓고 다시 안해를 타일러서 점심 먹고 다같
이 떠나기로 되었는데 작인 내외는 집에 두고 조카 형제는 가사리 앞까지 동행
하고 딸은 읍내 가서 삯마를 태워가지고 가기로 하였다. 귀련이가 생외 처음으
로 말을 타보는 까닭에 조금만 빨리 가도 겁을 내서 아버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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