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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11)

카지모도 2023. 1. 22.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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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봉이가 관솔불을 화토바탕에 내던지고 봉당 같에 걸터앉아서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듯이 한등안 삽작문만 바라보고 있다가 관솔불을 다시 들고 삽작 밖에 나

와서 사방을 돌아보았다. 혹시 어디서 대답이 있을까 바라고 "귀련아! 귀련아! "

하고 불렀다. 앞으로 대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뒤로 대고 불러도 대답이 없고

오직 메아리가 되받아 울릴 뿐이었다. 계집애 편성에 혹시 자처나 하지 아니하

였나 샘 있는 곳도 찾아가 보고 늘어진 나뭇가지도 살펴보았다. 처녀의 부모가

오면 말썽스러을 것은 정한 일이고 잘못하다가는 무단히 악명을 쓰고 살인옥사

까지 당할는지 모르는 판이라 진즉 도망하는 것이 상책 같아서 도망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처녀의 부모를 보고 실상대로 말하고 밝는 날 처녀를 같이 찾아보고

가든 말든 결단하리라 생각하고 막봉이는 다시 삽작 안으로 들어왔다. 막봉이가

아랫방에 들어와서 팔을 뒤로 짚고 천정을 치어다보고 앉았다가 윗방 보꾹에를

한번 보려고 두 방 사이에 있는 지겟문을 열고 내려보는데 바로 지겟문 앞에 옹

송그리고 누워 있는 사람이 눈에 뜨이었다. 처녀다. 처녀가 자는지 자는체하는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막봉이가 속은 것이 분하여 처녀에게 종주먹을 대고 싶

은 마음도 바이없지 않았으나 처녀의 얼 굴을 보니 자연 마음이 가득하여져서

잡아 일으킬 생각조차 가뭇 없이 사라졌다.

한동안 지난 뒤다. 막봉이와 귀련이가 아랫방 등잔불 아래 같이 앉아서 이야

기하는데 귀련이의 지껄이는 것이 저녁 전 사설할 때처럼 무람이 없었다. "아까

나를 찾으러 퍽 돌아다녔지? " "매우 옹골지겠다. 속은 내가 얼뜨니까 속인 너를

나무라지 않는다. " "누가 속였나, 자기가 속았지. " "속일 맘이 없으면 번연히

찾는 줄 알면서 왜 나오지 않구 숨어있었니? “ "찾는 꼴 좀 두고 볼라고. " "그

게 속인 거 아니구 무어냐? " "웃방문 열 때는 곧 들키는 줄 알았어. " "아무리

옹송그리구 누웠더라두 만졌을 것인데 꼭 빈자리루만 알구 속았다. " "빈자리니

까 빈자리로 알았겠지. 이 방문 열어보고 웃방으로 을때 나는 가만히 중두리 사

이에 숨어 앉아서 숨도 크게 못 쉬었어. " "날 속일라구 그랬지? " "숭칙스러워

그랬어. " "무에 숭칙스러워? " "사람이 숭칙스럽지 않아. 가래도 가지 않고 지

싯지싯 눌어붙어 가지고 그예. " "그예 어째? " "듣기 싫어, 그만두어. " "내가

무슨 말 했나. 듣기 싫다게. " "듣기 싫다는데 무슨 말이야. 그예 어째 하고 묻는

것부터 벌써 숭칙스러운 사람이지 무어야. " "입으루는 가라면서 속으루 은근히 붙든

네가 숭칙스럽지. " "둘러씌우면 장산가. " "내가 장사라구 흰목을 빼다가 거짓말

이란 타박을 받구 쑥 들어갔다. " "총각 둘을 한손에 하나씩 들고 내두를제 장사다 하

고 소리나 한번 질러 줄 걸 잊었어. " "다 내다보았구나. " "그럼 삽작 귀틀에 붙

어서서 죄다 보구 웃방으로 틀어왔는데. " "삽작 밖에 나서 보면 누가 말리더냐,

귀틀에 붙어섰게. " "참말 삽작문 닫혔소? “ "안 닫혔다. " "개호주 와서 개 물

어가요. 좀 나가서 꼭 닫치고 들어오. " "같이 나가자. " "왜 ” "나 나간 동안에

또 숨바꼭질할까 무섭다. " "소금 지고 다닐 때 냇물은 못 건너겠구려. " "왜? "

"소금짐이 물에 떨어지면 소금이 풀리지요. " "이애 재담 말구 같이 나가자. " 막

봉이놔 귀련이는 그칠 줄 모르고 지껄이던 이야기를 그치고 같이 밖으로 나와서

귀련이는 봉당에 섰고 막봉이는 삽작문을 가서 닫았다. "걸지는 말지. " "왜? " "

아버지 어머니 열고 들어오시게. " “나와서 열어 드리지 걱정이야. " ”아버지

어머니가 오시면 야단이 날 텐데 겁나지 않소? " "아무리 야단해야 익은 밥을

설릴 수는 없겠지. " 막봉이와 귀련이파 이런 말을 서로 지껄이며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귀련이가 무남독녀로 버룻없이 길린 까닭에 수줍은 태는 적고 주책없고 수다

한 그 어머니를 보고 배운 까닭에 말수는 많았다. 막봉이가 언제부터 친한 사람

이라고 막봉이를 보고 갖은 이야기를 다 묻고 또 갖은 이야기를 다하였다. 그리

하여 막봉이는 자기 집 형편도 대강 말해 주었거니와 귀련이 집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귀련이 부모가 가사리 큰집 이웃에서 살다가 귀련이 일곱 살 먹던

해에 놋박재 밑으로 이사갔는데 그때 이사는 대체가 귀련이의 백부 박선달의 탓

이었다. 박선달이 계수와 격이 나고 또 아우와 의가 상하여 귀련이 부모를 구박

하는 까닭에 성정 괴팍한 귀련이 아버지가 아주 무인지경에 가서 혼자 살면 속

상하는 꼴을 보고 듣지 않는다고 재 밑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떠나갔고 호젓하

고 외로운 것을 참고 견디면서 팔년 동안이나 살다가 삼년 전 귀련이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지금 있는 집으로 다시 이사왔는데 이때 이사는 순전히 놋박재 도적

괴수의 탓이었다. 곽가 성 가진 그 도적 괴수가 자주 놀러와서 귀련이를 보면

계집아이 꼴이 박혔으니 고만 시집보내라고 실없는 말같이 말하더니 나중에 자

기 계집으로 달라고 말을 비치는 까닭에 귀련이 부모가 도적을 피하여 인가처

가까이 와서 살기로 의논하고 이 집을 새로 짓고 부랴부랴 들어왔었다. 귀련이

아버지는 논섬지기 밭날가리가 있어서 처자까지 합하여 세 식구가 먹고 살기 걱

정이 없는데 그 논이나 밭이 모두 귀련이의 조부가 죽을 때 둘째아들을 분배하

여 준 것이고 몇백 석 추수한다는 박선달이 아우를 떼어준 것이 아니었다. 박선

달은 아들을 삼형제나 두었지만 아들 없는 아우에게 양자 하나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고 귀련이 부모 역시 양자 아니하고 데릴사위를 얻어서 의지하고 살 작정

이라 사윗감을 벌써부터 구하는 중인데 그 동안 여러 군데 말이 있었지만 그저

말뿐으로 그친 데가 많고 적가리 김풍헌의 맏손자와는 말이 착실하게 되어서 귀

련이 아버지가 김풍헌을 찾아가 보기까지 하였으나 김풍헌은 맏손자를 데릴사위

로 아주 주기 어려우니 혼인한 뒤에 두 집이 한데 모여 살자고 주장하고 귀련이

아버지는 혼인한 뒤라도 한데 모여 살 것이 없다고 주장하여 주장이 틀려서 혼

인이 아직 완정이 못 되었는데 완정 못된 것이 지금 와서는 도리어 잘된 일이었

다. 귀련이 어머니가 김풍헌 손자를 탐내던 끝이라 막봉이를 보고 김풍헌 손자

만 못하게 여겨서 말썽을 부릴지 모르나 귀련이가 밥 한 끼만 굶을 작정하면 말

썽 없이 될 수 있고 귀련이 아버지는 고집이 세지마는 귀련이 어머니 말엔 별로

고집을 세우지 않는 까닭에 어머니만 말썽을 안부리면 아버지는 걱정 몇 마디

하다가 고만두리라는 것이 귀련이의 추측이었다. 귀련이는 귀련이대로 걱정이

없고 막봉이는 막봉이대로 마음이 태평이라 둘이 윗방 좁은 자리에서 닭 울 녘

까지 웃고 지껄이다가 단잠들이 들었다. 막봉이가 자면서 돌아누우려다가 돌아

눕지 못하고 잠이 깨어서 눈을 떠보니 환한 빛이 방문에 비치어 방안이 희미하

게 밝은데 팔을 베고 자는 귀련이의 얼굴이 그림 같아 보이었다. 막봉이가 팔을

빼는 바람에 귀련이도 잠이 깨었다. "오시는 소리가 났소? “ "아니 날이 다 밝

았어. " "날이 밝기 전에 오실 텐데. " "문이 환하지 않아. " 하고 막봉이가 누

운 채 팔을 뻗어서 방문을 열어놓으니 지새어 가는 달빛이 방안으로 흘러들어왔

다. "동이 튼 줄 알았더니 달빛이로군. " "바람이 차오. 얼른 닫으오. " 막봉이가

방문을 닫으려고 일어서서 밖을 내다볼 때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

다. "오시는 게로군. " 막봉이는 방문을 닫고 와서 다시 드러눕고 "오실 때 되었

어. " 귀련이는 일어나서 옷을 입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련아! " "삽작문 열어

라! " 삽작 밖에서 부모의 소리가 나는데 귀련이는 선뜻 대답 못하고 주저주저

하다가 살그머니 지겟문을 여닫고 아랫방으로 올라갔다. "귀련아! " "귀련아! "

부르는 소리는 차차로 커지고 ”녜. “ 대답하는 소리는 영별치 못하였다. 귀련

이가 방문 열고 나가서 신발을 신을 때 막봉이의 신발은 부엌 편으로 밀어치웠

다. 귀련이가 삽작문을 열어젖히니 그 어머니가 우선 "이것버텀 받아라. " 하고

제사 반기를 내어주고 나서 "아이구 치워. " 하고 새삼스럽게 몸서리를 쳤다. 귀

련이가 부모의 뒤를 따라 아랫방에 들어와서 반기를 싼 대로 끌러보지도 않고

방구석에 놓으니 어머니는 "왜 끌러보지 않니 ? 누르미 맛있더라, 먹어봐라. "

하고 먹기를 권하는데 아버지는 "자다 일어나서 무슨 맛이 있겠니. 두었다 식전

에 먹어라. " 하고 먹지 말라고 말리었다. "먹지 않을라면 가 자거라. 우리도 눈

좀 붙이고 일어나겠다. " 귀련이 어머니가 딸을 향하여 말하고 곧 남편을 돌아보

며 "어서 누우시오. 나도 좀 누워야겠소. 뜨뜻한 방에 와서 앉으

니까 꼬박꼬박 졸리구려. " 말하고 다시 딸을 향하여 "어서 내려가서 자. " 하고

재촉하니 귀련이 아버지도 안해 말을 뒤이어서 "내일 아침은 늦게 먹어두 좋다.

한숨 더 자구 일어나려무나. " 하고 말하였다. 귀련이가 대답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앉았을 때 윗방에서 막봉이가 큰기침을 하였다. 귀련이 어

머니는 입을 딱 벌리고 귀련이 아버지도 눈이 휘등그래졌다. 어머니가 벌린 입

을 겨우 다물고 "웃방에 누구냐? " 하고 묻는데 아버지도 눈을 등그렇게 뜨고

귀련이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금장수요. " "소금장수라니? " ”어머니가

보내셨다며. " "누가 보내, 내가 보냈다고 그러더냐? 총각이지? " 귀련이가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저런 숭한 놈이 어디 있어. 저놈을 죽이나 살리나

어떻게 하나. 아이구 치가 떨리네. " "여편네가 수다스러우니까 무슨 변이 안 나!

" "내가 가지 말라고 당부한 게 수다스럽단 말이오? " "길에서 오다가다 만난

소금장수를 보구 딸이 혼자 집에 있느니 딸 이름이 무엇이니 말하는 것이 수다

가 아니란 말이여. " "내가 부아통이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소? 잘못했다고 책

망하는 것도 때가 있지, 지금 총각놈을 어떻게 처치할 생각은 아니 하고 나를

책망하고 있소. " "임자가 저지른 일을 누구더러 처치하래. " "귀련이가 아비 없

는 자식이요, 나 혼자 낳은 자식이오? 어째 남의 자식의 일같이 말하오. " "입

좀 닥쳐. " "입을 닥치라니 말본새가 고 뿐이오? " "입이 열 개라두 지껄일 입 없

겠네. " "내가 일부러 딸을 화냥질시켰소. 왜 내게다 이러오? " 귀련이 부모가

내외간에 말다툼을 시작하여 말다툼이 차차로 쇠어갈 때 귀련이는 목메는 소리

로 "아버지, 어머니를 책망 마시고 저를 죽여주셔요. 어머니, 고만 두셔요. 모두

가 제 탓이요, 어머니. " 하고 어머니 치마 앞에 엎드려서 소리내어 울었다. 귀련

이 아버지는 쓴 입맛을 다시고 귀련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었다. "이애 일어나서

내 말좀 들어라. " 하고 어머니가 귀련이를 붙들어 일으키고 입을 귀에다 대고

무어라고 소곤소곤 말한 뒤에 "그렇거든 그렇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거든 그렇지

않다고 말해라. " 귀련이 입을 치어다보다가 다시 "그렇지 않거든 고개만 가로

흔들어라. " 하고 어머니는 재촉하듯이 말하는데 귀련이는 고개를 흔들기커녕 까

딱도 하지 아니하였다. 어머니가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면서 "여보, 이

걸 어떻게 하면 좋소? “ 하고 물으니 귀련이 아버지가 상을 잔뜩 찡그리고 "우

선 총각을 불러내려다가 말이나 좀 물어보세. " 하고 말하여 귀련이 어머니는 귀

련이를 아랫목으로 밀어앉힌 뒤에 지겟문을 열어젖히며 "이놈아, 이리 내려오너

라!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막봉이가 아랫방으로 내려와서 인사없이 쭈그리고

앉았다. "이놈아, 누가 너더러 우리 집으로 가라더냐? " 하고 귀련이 어머니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드는데 "나는 당신의 말을 듣구서 왔소. " 하고 막봉이는

넉살좋게 말하였다. "저런 놈 보게. " "이놈 저놈 않구는 말 못하우. " "너 따위

놈더러 이놈 저놈 못할 게 무어냐! " "귀련이 낯을 봐서 나두 참을 수 있는데까

지 참을 테지만 당신두 말 좀 조심하우. " "이놈이 되잡아 시비할라나? 그래 이

놈아 내가 너더러 가라더래? " ”처음 보는 사람에게 딸의 이름까지 일러주구

또 두번 세번 가지 말라구 당부하는 것이 수상해서 나는 말을 뒤쪽으루 들었소.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오지 않을걸 온 모양이구려. " "너 같은 놈하고는

더 말하기 싫으니 지금 냉큼 가거라. 그러고 이 근방엔 다시 올 생각 마라. " "

귀련이 말을 들어보구야 내가 가겠소. " "무엇이 어째! 이놈아, 귀련이는 내 딸이

야. " "그게야 누가 모르우? " "그러면 잔소리 말고 어서 가. " "당신 딸에게는

물어볼 말두 못 물어본단 말이오? " "물어볼 만한 말이 무슨 말이냐, 이놈아! "

"무슨 말을 물어보든지 그것까지 알려구 할 게 무어 있소. 둘이 웃방에 가서 이

야기 좀 하겠소. " "안된다. " "나두 안되겠소. " 귀련이 어머니는 기가 막히며

말문이 막히어서 말을 못하고 입술만 공연히 나불나불하다가 흘저에 고개를 뒤

로 돌이키고 "귀련아! " 하고 부르는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앉은 귀련

이는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도 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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