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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15)

카지모도 2023. 1. 26.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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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천왕동이가 오주와 같이 손가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식전 일찍들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놓을 때 "인제들 일어나? " 하고 손노인이 방으로 들어

왔다. 손가가 "꼭두식전 웬일이시오? " 하고 물으니 손노인은 "정신날 때 장기

한번 둘라구 왔네. " 하고 대답하며 곧 천왕동이를 보고 "한번 안 두려나? " 하

고 물었다. 천왕동이가 싫단 말을 하지 않고 곧 장기판을 벌이니 오주가 "장기

두구 언제 갈 테야, 아침들 안 먹구 기달리구 있을 텐데. " 하고 천왕동이를 나

무랐다. 손노인과 천왕동이는 다같이 말대꾸도 아니하고 장기를 두기 시작하여

만참 동안 서로 장군 멍군 하더니 손노인에게는 민궁에 마포가 남고 천왕동이에

게는 양상과 사졸이 남게 되었는데 손노인이 이길 포서는 없어졌지만 비길 수가

있을까 하고 한번 두고 열나절씩 들여다보았다. 손가가 "얼른얼른 두시우. " 하

고 손노인을 재촉할 때 혼자 따로 앉았던 오주가 장기 두는 옆에 와서 판을 번

쩍 들어냈다. "이게 무슨 짓이오? " 하고 손노인이 증을 낼 뿐 아니라 천왕동이

까지 "이럴 거 없이 먼저 들어가게. 나는 나중 가겠네. " 하고 좋지 않은 내색을

보이었다. "나중은 무슨 나중이여 같이 가지. " “자네가 내게다 우격다짐을 할

텐가? ” "우격다짐이구 무어구 장기는 더 못 두네. " "나는 더 두겠네. 장기판

이리 주게. " "안 줄 테여. " "왜 안 주어? " 천왕동이가 벌떡 일어나서 눈을 둥

그렇게 뜨고 오주의 손에 들고 있는 장기판을 빼앗으려고 하니 오주는 장기판을

마당에 획 내던졌다. 천왕동이와 오주 사이에 곧 주먹다짐이 나게 되는 것을 손

가가 중간을 가로막고 말려놓은 뒤 먼저 천왕동이를 보고 노인을 데리고 가서

아침 먹고 장기 두라고 좋은 말로 달래니 천왕동이가 싫다고 아니하고 그 다음

에 오주를 보고 의향을 물으니 오주도 그것은 좋다고 말하여 손노인까지 네 사

람이 같이 산에 들어와서 오가 마누라의 생일 아침을 먹게 되었다.

오가의 집에 전에 없던 사랑채를 새로 세웠는데 사랑방은 간 반통 이 간이요,

방 앞에 반 간 너비 퇴가 있고 방머리에 아늑한 구들까지 있었다. 오가가 천왕

동이를 보고 "이 사랑 지은 뒤 자네 처음 오지 않았나? " 하고 물으니 이 사랑

에 들어앉기는 처음이오. " 하고 천왕동이는 엇조로 대답하였다. "짓는 건 언제

와서 봤던가? " "상량하는 것까지 봤소. " "옳지, 이런 정신 봐. 요전에 오주 위

문 왔다가 보구 갔네그려. " "낙성연에 우리를 청해서 술 한잔 먹일 게지 소리

소문 없이 해먹어 버린단 말이오? 그런 인심이 어디 있소. " "자네가 인심 노래

할 것 같아서 초벌만 해먹구 정작은 안 해먹었네. " "정작은 언제 할라우? " "자

네가 왔으니 오늘 할까? " "생일밥으루 때우잔 말이구려. " "그럼 내일 함세. " "

생일 후물리기루. " "그럼 언제 할까? 모레 할까, 글피 할까? " "공연히 그러지

말구 한번 큰잔치를 차리구 우리를 청하우. " "아따, 자네 분부대로 함세. " 오가

와 천왕동이가 이런 실없는 수작을 하는 중에 아침상이 나와서 박유복이 하나만

밥을 데시기고 그외의 여러 사람은 모두 고기 반찬으로 밥을 포식들 하였다. 먹

은 밥이 채 자위도 돌기 전에 천왕동이가 아랫간에서 윗간으로 내려와서 손노인

을 보고 "한번 접전을 해보실라우? " 하고 도전을 하니 "그래 보세. " 하고 손노

인이 천왕동이에게로 가까이 갔다. 손가가 가지고 온 장기판과 장기 망태를 갖

다주어서 천왕동이와 손노인은 마주 앉아서 장기판을 벌이었다. 오가는 얼마 동

안 들여다보다가 안으로 들어 가고, 손가는 심부름하는 틈에 가끔 와서 들여다

보고, 유복이는 속이 거북하다고 구들에 가서 누워 있고, 오주는 앞 툇마루 양지

짝에 너부죽이 엎드려 있었다. 장기 두어 판 끝난 뒤에 천왕동이가 오줌 누러

나왔다가 오주의 엎드린 것을 보고 "볼기 한번 때려줄까. " 하고 웃으니 오주는

말대꾸도 아니하고 눈만 감았다 떴다 하였다. "눈병이 났나, 왜 눈을 끔벅거리

나? "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 "보라는 게. 무어야? " 천왕동이가 오주 앞에 와

서 들여다보니 오주는 눈을 감고 "오색 잔구슬이 줄줄 흘러내려오네. " "어디? "

"흐릿한 하늘 복판에 함박꽃 같은 자지구름장이 둥둥 떴네. " "이 사람이 갑자기

미쳤나. 웬 헛소리야. " 오주가 눈을 번쩍 뜨고 "누가 헛소리를 해. 나처럼 여기

엎드려서 눈을 슬쩍두 감아보구 꽉두 감아보지, 갖은 것이 다 보일 테니. " 하고

눈감는 시능을 하여 보이었다. "에 이 사람 나는 싫어. 자네나 혼자 실컷 보게. "

오가가 마침 안에서 나오다가 말끝만 듣고 "무얼 혼자 보란 말인가? " 하고 물

으니 천왕동이가 "오주 눈 속에는 색색이 구슬이 줄줄 흐른다우. " 하고 대답하

였다. "눈 속에 구슬이 흐르다니? " “눈을 감구 있으면 별것이 다 보인다우. "

"그 구슬은 잘 두었다가 그림 속의 색시를 오가의 말을 듣고 천왕동이가 깔깔

웃으니 "무엇이 그렇게 우습담. " 하고 핀둥이를 주었다. "노총각은 색시란 말만

들어도 웃음이 절루 나오는 게지. " "색시 생각 말게, 노총각이 좋으니. " 천왕동

이가 오가와 오주의 말은 대척 않고 "장기판이 식어 못 쓰겠다. " 하고 딴전하며

곧 방으로 들어왔다. 손노인이 장기를 지면서도 자꾸 맞두다가 나중에는 떼기내

기를 두게 되었는데 천왕동이의 수가 왕청뜨게 높아서 상을 떼어 주초도 이기고

말을 떼어주고도 이기고 포까지 떼어주고도 역시 이겼다. "차 하나는 떼어야 두

겠소. " 하고 천왕동이가 말하니 손노인은 쓴입맛을 다시면서 "차는 고만두구 차

포 오졸구상마라두 떼게 되면 떼는 게지. 그러나 나버덤 별루 나은 수가 없는

것 같은데 괴상스러운 일일세. 포 떼구 어디 한번 다시 두어보겠네. " 하고 말을

새로 절이려고 할 때 안에 다녀나온 손가가 "점심이 곧 나오게 될 터이니 아주

점심 먹구 두시우. " 하고 말하여 ”녜. “ 하고 손노인도 장기판에서 물러앉았

다. "내 장기수가 전에 대면 많이 줄었네. 낫살을 먹으니까 아무래두 선망후실해

서 할 수 없어. 전에 조선국수가 서울 구리개란 데 살았는데 내가 국수하구 포

떼면 상승부하였었네. 지금 같아서는 차 떼구두 어려웠을 걸세. " 손노인 말끝에

"그 조선 국수가 지금두 그저 서울 사우? " 천왕동이가 물었다. "그는 벌써 죽었

어. 내가 서울서 송도루 이사온 뒤에 바루 죽었단 소식을 들었으니까 지금 이십

년이 가까웠네. " "그럼 그 뒤에는 국수가 없소? " "왜 없기야 하겠나. 내가 탑

고개 같은 촌구석에 와서 파묻힌 지가 십여 년이니까 있어두 도르지. " "어디 가

서 물으면 알겠소? " "지금 말한 국수가 살았을 때 장래 국수가 될 만하다구 치

던 사람이 셋이었는데 첫째는 과천 사람 오씨구, 둘째는 봉산 사람 백씨구, 나두

셋째루 한몫 끼였었네, 모르긴 몰라두 과천 오씨가 아마 국수 되었을 것일세. "

"과천 사람 말을 들으니까 참말 오장기라구 장기 국수가 있었답디다. 그런데 그두

죽는 지가 오래랍디다. " "지금 살았어두 나이 환갑이 못 되었을 텐데. " "죽은 지가

십 년이 넘었답디다. " "그럼 오십두 못 살구 죽었네그려. " "봉산 백씨는 나이

얼마나 되었겠소? " "오씨버덤 한두 살 아래였을걸. " "봉산이나 한번 가보까. "

"십여 년 전에 내가 봉산물 먹으러 갔다가 서루 만나서 하룻동안 장기를 같이

둔 일이 있는데 그때 그 사람의 아버지가 봉산 이방이라더군. " "백씨 장기가

노인과 어떻소? " "그때에두 나버덤 셌으니까 지금 나루는 어림없을 테지. "

오가는 천왕동이의 어깨를 치면서 "봉산 갈 일이 났구먼. " 하고 웃고 손가는

천왕동이를 바라보면서 "봉산이 여기서 이백삼십 리 가량이니까 점심 먹구

가두 넉넉히 가겠소. "하고 웃었다.

점심 국수상이 나와서 여러 사람이 먹기 시작할 때 유복이가 저를 들지

아니하여 겸상한 오가가 "자네 조금두 안 먹을라나? "하고 물으니 "아침에 가리

를 많이 먹었더니 속이 징건해서 점심을 먹구 싶은 생각이 없소. "하고 유복이가

대답하였다, 오주가 유복이의 안 먹는단 말을 듣고 "형님 국수 내나 주우. " 하

고 손을 내미니 유복이는 "그래라. "하고 곧 국수 그룻을 집어주었다. 천왕동이

가 "체증이 생겼소? " 하고 유복이더러 묻는데 오가가 유복이 대신 "속병으루

봄내 음식을 못 먹어서 봄타는 사람같이 저렇게 말랐다네. " 하고 대답하였다. "

속병에는 봉산 영천물이 좋습디다. 내가 구체루 고생하다가 영천물 먹구서 났소.

한번 가서 자셔보시우. " 하고 손노인이 유복이를 권하고 "속병에는 약물이 좋

지. 자네 장모두 가끔 속앓이루 고생하는 사람이니 한번 같이 가보게. " 하고 오

가 역시 권하는데 유복이는 들을 만하고 있다가 "아이 귀찮아. " 하고선 "여편네

동행이 귀찮긴 하지. " "누가 그 말이오? " "그럼 무슨 말인가? " "속병이 귀찮

난 말이지. " "그러기에 약물 먹으러 가란 말 아닌가. " "맘 내키면 한번 가보지

요. " "약물은 백중때가 좋다네. 칠윌에 가서 먹구 오게. " 천왕동이가 손노인을

바라보며 "약물은 칠월에 먹어야 하우? 요새 먹어선 못쓰우? " 하고 물으니 손

노인은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느라구 고개만 가로 흔들었다. "요새 먹어두

좋단 말이오, 어떻단 말이오? " "나는 사월인가 오월에 가 먹구두 효험을 보았으

니까 요새두 좋겠지. " 천왕동이가 손노인의 말을 듣고는 곧 유복이를 향하여 "

갈라거든 속히 한번 나하구 같이 갑시다. " 하고 말하였다. 점심 뒤에 오가가 안

에 들어가서 마누라를 보고 봉산 약물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마누라가 들었다

보았다 하고 곧 내일이라도 떠나가자고 유복이를 졸랐다. 봉산을 속히 가기로

작정되어서 천왕동이는 양주서 기다리지 않도록 한번 가서 다녀오기로 하였다.

청석골서 봉산 가는 일행이 떠나는데 오가의 마누라는 말을 타고 손가가 견마

를 잡고 유복이와 천왕동이는 말 뒤를 따라서 다른 사람 보기에는 양반의 부인

이 하인들 데린 것과 같았다. 첫날은 팔십여 리를 와서 평산읍내서 자고 다음날

은 새벽길까지 걸어서 일백이십 리를 와서 검수역말서 자고 삼십 리 남은 봉산

읍내는 사흘 되는 날 아침참을 대고 일찍이 들어왔다. 천왕동이는 떠나던 날 하

루에 올 길을 사흘 걸려서 오느라고 애를 썩이었는데 게다가 또 장기 잘 두는

백씨를 찾아볼 겨를도 없이 동행이 아침 먹고 바로 영천 약물터로 나간다고 하

여 심사가 적지 않게 틀리었다. 천왕동이가 유복이를 보고 "나는 읍내 구경하구

갈 테니 먼저들 가우. " 하고 뒤에 떨어질 작정을 하니 유복이가 천왕동이의 속

을 알고 "우리 물 먹구 가는 길에 읍내 와서 묵어가며 구경할 테니 장기둘 틈이

없을까 봐 걱정 말게. 그때 나두 따라가서 두는 구경 하겠네. 그러구 또 이백여

리 동행해 와서 서루 떨어지면 재미가 있나. 두말 말구 같이 가세. " 하고 끌고

가려고 달래었다. "장기 두는 백씨가 죽지 않았는지, 살아 있으면 어디서 사는지

그거나 알아봐야 하지 않소. " "그게야 이 집에서 물어봐두 알 수 있겠지. " 유

복이가 아침 먹던 객주집 주인을 불러서 "백가 성 가진 사람에 장기 잘 두는 이

가 있소? " 하고 물으니 주인이 선뜻 "있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그 백씨가

어디서 사우? " "쇠전거리 위에서 살지요. " "그 사람이 이방의 아들이오? " "돌

아간 그의 아버지두 이방을 지냈지만 지금은 자기가 이방이오. " 주인이 유복이

의 묻는 말을 대답하면서도 천왕동이를 가끔 바라보더니 나중에는 싱글싱글 웃

으면서 "총각이 취재 보이러 왔나? " 하고 물었다. 천왕동이 장기 두러 온 것을

알 까닭이 없는 주인의 말 묻는 것이 수상한데다가 취재 보인단 말이 귀에 거슬

려서 천왕동이는 "취재가 무슨 취재요? " 하고 말이 곱지 않게 대답하였다. "취

재 보이러 온 것이 아닌 걸 내가 말 잘못했으면 용서하게. " 하고 곧 유복이를

향하여 "더 물을 말씀이 없으면 나 볼일 보러 가겠소. " 하고 밖으로 나갔다.

천왕동이가 동행을 따라 영천 가까이 와서 유숙하며 약물도 같이 먹고 구경도

같이 다니었다. 봉황대 밑에서는 붕어 낚는 늙은이를 만나너 유복이가 반나절

한담하고 미아산 기슭에서는 나물 뜯는 큰애기들을 보고 손가가 공연히 지싯거

리었다. 천왕동이는 늙은이 이야기에 재미를 못 붙일 뿐 아니라 큰애기들 노래

에도 그다지 흥심이 나지 아니하고 오직 백씨를 찾아가서 장기수를 겨루어 보고

싶은 생각만이 마음에 가득하였다. 천왕동이가 참다 못하여 유복이를 보고 "내가

장기를 한번 두어 보구 와야 직성이 풀려서 물두 맛있게

먹구 구경두 재미있게 하겠으니 내일쯤 읍내 한번 갔다옵시다. " 하고 사정하듯

말하니 유복이는 "그럼 나하구 같이 가세. " 하고 말하는데 옆에 있던 오가의 마

누라가 "한 사흘만 물을 더 먹으면 다같이 읍내로 갈 텐데 그 동안을 못 참을

것이 무어 있어? " 하고 핀잔 주듯 말하였다. "나는 물을 고만 먹을 테요. " "박

서방은 일부러 물 먹으러 온 사람이니까 말이지. " "그렇기에 나 혼자 가겠소. "

"혼자 가는 게야 누가 말리나. 그렇지만 하루라도 같이 다니지 못하게 되면 우리

들이 섭섭하지. " 천왕동이가 오가 마누라와 더 말하지 아니하고 쓴입맛만 다시

었다. 천왕동이는 심정이 상한 끝에 즉시 혼자 읍내로 들어가려고 말 없이 나오

는데 유복이가 눈치를 채고 따라나와서 "자네 어디 갈라나? "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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