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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27)

카지모도 2023. 2. 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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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가 서방님에게서 외면하면서 나를 보고 "너는 고만 나가거라. " 하고

말하여 나는 밖으로 나오다가 내외간 말다툼하는 말이 궁금해서 안중문간 안에

서 발을 멈추었네. "비부를 들이더라두 사람이나 골라 들여야지. " "그래서 내

가 당신께 골라 들이시랬지요. 나같이 안방구석에 들어앉았는 사람더러 고르라

고 해노시고 지금 와서 무슨 말씀이오? “ "아무리 들어앉았더래두 배가가 양순

치 못하단 말은 들었겠지? ” "석전질을 잘하고 대정이란 벼슬을 했단 말은 들

었소. 비부쟁이로 과하지 않소? " "망나니니 개고기니 별명이 있는 자야. 과하긴

무에 과해! " "사람은 부리기에 달렸습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라도 내가 실

수 없고 저를 잘 대접하면 휘어 부립니다. " "그자가 좋지 못한 사람인 줄까지

알구서 일부러 얻어들였단 말이야? " "좋지 못한 사람인 줄 알고서야 왜 내가

손때 먹여 기르다시피 한 기집을 내주겠소. 당치 않은 말씀 마시오. " "거짓말

고만두어! " 서방님의 말소리가 그치며 곧 사랑으로 나오는 신발 소리가 나서,

나는 얼른 먼저 밖으로 나와버렸었네.

그 뒤 얼마 동안은 서방님이 나보고 말도 변변히 아니하더니 차차로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하여 달포 지난 뒤부터 사랑 잔심부름 외에 서방님 심부름을 내가

도맡아 하다시피 되었네. 심부름을 잘 했다고 칭찬은 별로 듣지 못하고 잘못했

다고 꾸지람은 날마다 받았네. 내가 성미를 죽이고 부처님이지만 생사람으로 갑

자기 부처님 되기가 어디 쉬운가. 당치 않은 꾸지람을 받을 때는 잠자코 있지

않고 좀 들어섰었네. "양반의 집에 있으려면 버룻부터 배워야 한다. " "재하자는

유구무언이라니 양반에게 말대답 못하는 법이다. " 이런 말은 개떡 같지만 "네가

한번 양반 무서운 줄을 알아야겠다. " “조금 잘못하면 귀양갈 테니 그리 알아

라. " 속에 뼈 있는 말도 한번 아니고 여러 번 들었었네. 김도사 때 부터 있는

하인은 동자치의 서방인데 동자치 서방이 내 덕에 신역이 편해졌었네. 이 자식이

편하거든 가만히나 있지 않고 맘에 꾄 듯 싶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나를

가르치니 내가 그걸 잘 받겠나. 내가 눈만 곱게 안 떠도 움찔하는 위인이니까

싸움까지는 한 일이 없지만 사이는 좋지 못했었네. 어느 날 식전에 내가 넓은

안팎 마당을 다 쓸고 허리가 꼿꼿해서 방에 나와 잠깐 누워 있는데 동자치 서방

이 와서 ”서방님이 화초 옮겨 심으신다구 들어오라시어. " 하고 부르데. 사람이

화가 나서 견딜 수 있든가. "이 자식아, 너는 손묵쟁이가 부러졌니? 화초두 못

심그게. " "왜 내게다 골을 내어. 서방님이 부르신다는데. " “서방님만 내세우면

제일이냐, 이 자식아. " "그저 말하지, 왜 이자식 저자식 해. " "이자식 이. " 하

고 내가 방에서 뛰어나가며 곧 이를 악물고 대어드니 동자치 서방이 "아서 아서.

" 하고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을 치데. 내가 홧김에 한번 귀때기를 우려주었더

니 대번에 울상을 하고 "배대정 왜 이러우. 내가 무얼 잘못했소? " 하고 두 손을

얼굴 앞에 내들고 흔드는데 그 꼴이 우스워서 나는 더 손댈 생각이 없어졌었네.

"서방님께 가서 곧 들어간다구 말씀해. " "그리하우. 그리하우. " 동자치 서방이

간 뒤에 다시 방에 들어와서 허리를 펴고 사랑으로 들어가니 서방님은 사랑방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사랑방에 앉았고 동자지 서방과 동네 하인 두엇은 사랑마

당에 웅긋쭝긋 서서있데. 서방님이 나를 보더니 곧 동자치 서방과 동네 하인들

에게 "저놈 끌어다 댓돌 아래 꿇려라. " 하고 호령하데. 내가 상투 잡혀 끌려가

서 맨땅에 꿇어앉은 뒤에 서방님이 내려다보며 "이놈! 부르러 내보낸 사람에게

어째 손찌검했느냐?" "또 양반이 부르면 즉시 들어올 것이지 실컷 자빠져 있다

가 들어온단 말이냐!" 호령이 서리 같으나 나는 발명할 생각이 없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네. "너 같은 놈은 매를 좀 맞아야 한다. " 하고 하인들더러 멍석을

말아들여라, 매를 꺾어오너라 야단을 치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맷집 좋기로 남

에게 둘째 안갈 사람이지만 멍석말이 매맞기는 이때가 평생 처음일세. 안에서

계집들이 내다보고 글방에서 아이들이 내다보고 창피하기라니 이루 다 말할 수

가 없었지.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 항복한 뒤에 "이번은 용서하나 이 다음에 또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별반거조를 낼 테니 그리 알구 있거라. " 으름장을 받고

나왔네. 나의 계집 명색은 그 동안 없는 정도 날 만큼 같이 살았건만 내가 매맞

고 방에 나와 누운 뒤에 안에 있고 나와 보지도 않고 저녁 뒤에 나와서도 가엾단

말 한마디 없고 도리어 뾰로통하고 있데. 당장에 곧 박살을 내고 싶었지만 나는

꿀꺽 참고 고만두었었네.

내외간에 탐탁하지는 못하나마 그럭저럭 살아가는 중에 반 년이 지나서 구시

월 깊은 가을이 되었었네. 김도사집 추수가 볏백 좋이되는 까닭에 도조바리가

날마다 들어오는데 말질은 내가 혼자하고 말목은 동자치 서방과 둘이 반분했었

네. 나 혼자 차지해야 좋을 것을 남에게 나눠줄 까닭이 없지만 전에도 그렇게

했다기에 경위를 묻지 않고 그대로 했었네. 도조를 흡사까지 영악하게 받아들이

었더니 밀린 도조 채출은 고사하고 묵은 빚 추심까지 나를 시켜서 나는 아귀다

툼과 주먹다짐을 하루도 몇 번씩 할 때가 많았었네. 첫가을부터 안의 가을일이

바쁘다고 계집이 밤중까지 안에서 안 나오는 때가 종종 있더니 가을일이 끝난

뒤에는 도리어 심하여서 초저녁에 나와 있다가도 나 잠든 틈에 다시 안에 들어

가서 닭까지 울리고 나오는 때가 더러 있었네. 이런 때는 계집의 입에서 "언제

깨셨소? 늦었으니 어서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납시다. " "일에 부대껴서 사람이 곤

해 죽겠소. " 이런 말이 나오는데 말소리에 정이 똑똑 떨었네. 어느 날 낮에 내

가 빚 추심하러 나가 돌아다니다가 술잔을 얻어먹고 들어와서 저녁밥을 먹는지

마는지 하고 쓰러지며 곧 잠이 들었다가 밤중쯤 잠이 깨어서 옆을 더듬어 보니

계집이 없데그려. 다른 때 같으면 쓴입맛이나 다시고 다시 잘 것인데 그날 밤은

계집이 옆에 없는 까닭으로 잠이 잘 오지 아니하여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갖은 몹쓸 생각을 다하는 중에 방문이 부스스 열리더니 계집이 살그머니

자리에 와서 눕는데 부시럭 소리도 별로 없이 누울 제는 옷 입은 채 눕는 모양

이데. "또 안에 들어갔었나?" “잠이 깨셨소?” “어디 가 있었나? 안인가, 사랑

인가?” “사랑에를 내가 왜 가 있단 말이오. " “고만두게. 나두 다 짐작하네.

언제든지 내 눈에 들키는 날은 좋지 못할 게니 그리 알게. " “무슨 소린지 난

모르겠소. " “나는 바지저고리만 다니는 줄 아나. 내가 이 집에 오든 첫날부터

눈치를 다 알았네. " “글쎄 무어요?” “꼭 말을 들어야 속이 시원하겠나?” “

공연히 사람을 의심하지 마오. " “의심? 의심은 벌써 지나갔네. " “같이 살기

가 싫거든 그저 싫다고 하오. " “자네가 나를 싫다니까 걱정이야. " “누가 싫

다구 말합디까?” “말루 하면 숫제 낫게. " “전에는 참았지. 참는 것도 한이

있어. " “나를 잡아먹고 싶거든 잡아먹우. 맘대로 하오. " “왜 내가 사람 먹는

사람인가. " 계집이 홀짝홀짝 울기 시작하여 나는 달래서 데리고 자고 이튿날 아

침에 안에 들어가서 아씨를 보고 “요새 안에 일이 바쁩니까?” 하고 물으니 아

씨가 “왜?” 하고 나의 묻는 것을 괴상히 여기데. “소인의 기집을 늘 밤일을

시키시니까 말씀이에요. " “언제 밤일을 시켰단 말이야?” “우선 어젯밤에두

소인의 기집이 밤중이 지나서 나왔습니다. " 아씨는 눈썹이 쌍크래지고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잘 알았다. 이후에는 내가 밤에 일을 시키려면 너를 불러서 들

여보내라고 이를 테니 네 기집이 네 말 안 듣고 들어오는 때는 다리를 분질러놓

아도 좋다. 기집 닦달하는데 그만 일을 못하게 하랴. "

계집이 듣는데 이런 말을 하데. 나는 “녜, 알아 하겠습니다. " 하고 계집을 한

번 흘겨보고 나왔네. 그날 낮에 아싸가 계집을 방망이로 사다듬이해놓고 그날 밤

부터 아기를 아버지 사랑에 내보내 재우는데 서방님은 꿀꺽 소리도 못한 모양이데.

계집이 그 뒤로는 초저녁에 나오고 밤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 없었네. 겨울밤

에 혹시 사랑에 손님이 와서 안에서 밤참을 해낼 때는 아씨 말씀이 있은 뒤에

내가 들여보내고 손님이 가기전에 아씨가 내보내는 까닭에 계집은 그전 행실을

하지 못했었네. 한겨울을 말없이 지내고 해가 바뀌어서 정초 놀 때에 어느 날

동자치 서방이 저녁 마을을 같이 가자고 와서 끄는데 나는 까닭도 없이 모피할

생각이 나서 선뜻 일어나지 아니하다가 술 먹을 데가 있단 말을 듣고 어슬렁어

슬렁 따라 갔었네. 한 집에 가서 보니 동네 사람 네댓이 모여앉아서 쇠머리 도

르리를 하는데 정작 술이 없데그려. 우리가 덧붙이기로 한축 들어서 우리 몫으

로 막걸리 동이를 얻어다가 쇠머리 안주로 먹고 난 뒤에 투전을 하자는 공론이

나서 노름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노름을 즐기지 않는 까닭에 꾼에 들지 아니했었

네. 노름판 옆에서 건밤을 새울 맛이 없어서 나는 먼저 일어서려고 했더니 동자

치 서방이 두어 판 더 뽑아보고 같이 가자고 붙들어서 주저앉아 구경했었네. 두

어 판이라고 말하던 것이 열판이 넘어도 동자치 서방이 투전장을 놓지 않데. 나

는 먼저 간다고 붙드는 것을 뿌리치고 나왔었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삽작 앞

에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나섰기에 발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본즉 검은 것이 사

랑 편으로 움직이더니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는 듯하며 곧 눈에 보이지 아니하

데. 내가 얼른 달음박질로 쫓아와 보니 사랑 대문은 닫아 걸리고 사방은 괴괴한

데 대문 안에 아무 기척이 없데. 내가 진작 얼른 쫓아오지 못한 것으 후회하고

또 조금 일찍이 돌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내 방으로 들어왔었네. 등잔불

이 없어 방안이 캄캄한데 화로에 불씨좌 없어서 할 수 없이 손으로 더듬더듬 더

듬었었네. “인제 왔소? 나는 깜짝 놀랐소. " “불을 왜 껐나?” “지금 끄지 않았소. "

“누가 껐단 말이야?” “나는 끄지 않았는데 잠든 동안에 절로 꺼졌구려. " “

기름은 부어놨나?” “ 기름 부어 놓았소. 아마 심지가 빠진 게요. " “불씨까지

죽였네그려. " “불씨는 숯이 없어서 못 묻었소. " 나는 계집의 대답하는 말을

들어보려고 “지금 오면서 보니까 방에서 시꺼먼 것이 하나 나가니 그게 무언

가?” 하고 물었더니 계집은 “시꺼먼 것이 무어란 말이오?” 하고 생청으로 잡

아떼데. “그것이 우리방에서 나가서 사랑대문 안으로 들어가데. " “헛것을 본

게구려. " “인도깨비를 본 모양일세. " “인도깨비가 무슨 도깨비요?” “관 쓴

도깨비요?” “관 쓴 도깨비야. " “그래 그것이 우리 방에서 나가더란 말이오.

아이구 무서워라” 하고 계집이 내게 착 달라붙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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