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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24)

카지모도 2023. 2. 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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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돌석이가 사냥꾼 세 사람을 데리고 호랑이 사냥을 떠나는데 찰방이 돌

석이를 보고 "대개 며칠이나 걸리겠느냐? " 하고 물으니 돌석이가 한참 생각하

다가 "날짜는 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소인의 겉가량으루 열흘 잡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오냐, 열흘도 좋다, 그 동안 내가 궁금하면 사람이라도 보내볼 터이

니 너희들이 가서 숙소를 한 곳에 정한 뒤에 곧 한번 기별해라. " "죽은 놈의 자

식이 오릿골 저의 매가루 같이 가자구 합니다. " "그자의 자식두 사냥 간다느냐?

" "녜, 호랭이 잡는 데까지 따라다니겠답니다. " "그러면 사람을 보낼 때 오릿골

로 보낼 테니 그리들 알고 가거라. " 돌석이와 사냥꾼들이 죽은 역졸의 아들아이

를 앞세우고 오릿골로 왔다. 죽은 역졸의 사위는 그 처남아이의 손위라 나이 근

삼십한 장정인데 당가한 살림에 살림 형편이 과히 구차치 않아서 돌석이 일행을

술밥으로 진창 대접하였다. 돌석이가 칙사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하는 일은 잔

돌 굵은 돌을 주워다 놓고 하루 몇 차례씩 팔매만 치고 정작 호랑이 사냥을 나

서지 아니하여 역졸의 아들아이가 재촉하고 같이 온 사냥꾼들까지 재촉하나 돌

석이는 하루 이틀 미뤄나가기만 하는데 그 동안에 닷새가 그냥 지나갔다. 역졸

의 딸 내외는 주인 된 체면으로 차마 와서 재촉은 하지 못하나 속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답답하여 내외간에 뒷공론이 많았다. "사냥 온 사람들이 산에는 갈

생각두 안하니 그게 웬일이오? " "글쎄 낸들 알 수 있나. " "그 사람들이 온 지

가 벌써 며칠이요, 오늘이 닷새째 아니오? " "배대정이란 사람이 안 가려구 한다

구 같이 온 사람들두 투덜거리데. " "배대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대정쟁이 노

릇하든 사람 아니겠소. 대정쟁이 출신이 큰사냥을 어떻게 하오. 토끼 새끼도 잘

잡을는지 모르겠소. " "그 사람이 돌팔매질을 잘 친다네. " "팔매질로 큰 짐생을

잡았단 말 들어보았소? " "듣지는 못했지만 혹시 모르지. " "내 생각엔 찰방 나

리가 속은 것 같소. " "찰방이 데리구 온 사람이라는데 어련히 잘 알구 보냈겠

나. " "동생 말을 들으니까 찰방 나리가 처음에 불러 물어보고 보냈답디다. " "그

래두 아주 허무할 듯하면 보냈겠나. " "그러나저러나 우리 집에서 여러 사람을

무작정하고 두고 먹일 수 없지 않소? " "며칠만 더 두구 보세. " "며칠 후에는

어떻게 할 테요? " "가라구 쫓아버리지. " "가만히 두고 보지 말고 사냥 나가라

고 말을 좀 하구려. " "내일 안 나가면 말을 좀 하겠네. "

주인이 말하려고 벼르는 날 이른 식전에 배대정이 "오늘부터 산에를 좀 나가보

까. " 하고 사냥갈 준비를 차리었다. 잔돌은 차고 다니는 바랑만한 주머니에 넣

고 굵은 돌은 주인집에 있는 외멍구럭에 담아서 역졸의 아들에게 맡기면서 "너

는 이것을 메구 내 뒤를 따라오너라. " 하고 말을 일렀다. "돌덩이는 산에 가면

쌔버렸는데 왜 무거운 것을 메구 가자시우? “ "닷새 동안 손에 익힌 돌들이다.

잔말 말구 가지구 가자. " "호랭이를 창으루 잡지 않구 돌멩이루 잡으실라우? "

"창으루 잡든지 돌덩이루 잡든지 잡기만 하면 고만 아니냐. " "돌덩이에 호랭이

가 잡히나요? " "얼뜬 호랭이는 잡힐는지 누가 아느냐? 가서 보구 말을 해라. "

돌석이가 창 하나를 들고 앞에서 가고 아이가 돌멍구럭을 메고 그 뒤를 따라가

고 사냥꾼들이 각기 창을 메고 중간에 늘어서 가고 주인과 동네 사람 넷이 여러

사람의 점심밥을 걸머지고 뒤에서 몰려갔다. 마늘메서 시루메로 들어가며 호랑

이의 발자국은 많으나 정작 호랑이는 구경도 못하고 도로 내려오다가 먹골 근처

에서 점심들을 먹는데 먹골 나무꾼 하나가 와서 방금 소학골 산속에서 호랑이를

보았다고 말하여 총총히 점심들을 먹어치운 뒤에 그 나무꾼까지 데리고 소학골

로 들어왔다. 나무꾼이 보았다는 자리에 호랑이가 있지 아니하여 근방을 뒤지는

중에 시냇가에 있는 조그만 장등 위에 큰 송아지만한 것이 누워 있는 것을 일행

중에 한 사람이 먼저 보고 손가락질하여 가리켰다.

서쪽에는 정방산성이 가로막혔으나 산성을 끼고 남으로 도망할 수가 있고 동

쪽에는 새남으로 내뺄 길이 있다. 돌석이가 사냥꾼 세 사람은 새남 편으로 보내

서 호랑이 내뺄 목을 지키게 하고 오릿골 동네 사람들과 먹골 나무꾼은 몽등이

들을 들고 정방산 편으로 가서 호랑이 못 가게 아우성을 치라고 일렀다. 여러

사람들이 나뉘어 간 뒤에 한동안 착실히 있다가 돌석이가 역졸의 아들을 데리고

호랑이의 대가리 있는 편으로 가서 장등을 타고 호랑이 누운 곳으로 내려가는데

창은 아이를 들리고 돌멍구럭은 자기가 어깨에 메었다. 풀을 헤치고 한 걸음 두

걸음씩 가까이 들어가는 중에 호랑이가 낮잠을 자다가 깨었던지 부스스 일어나

서 앞뒤 다리를 펼 수 있는 대로 펴서 허리를 잘록하게 하고 주홍 같은 아가리

를 벌릴대로 벌리었다. 돌석이가 이것을 보자 얼른 돌덩이 하나를 손에 들고

쫓아들어가며 팔매를 치니 그 돌덩이가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 박혔다 호랑이

가 돌을 뱉으려고 대가리를 흔들면서 칵칵 거릴 때 돌덩이가 연주전같이 연거푸

대가리 위에 떨어졌다. 호랑이는 아가리에 돌덩이를 문 채 새남 편으로 달아났다.

돌석이가 아이와 같이 호랑이 뒤를 쫓아을 때 앞에 사냥꾼 세 사람이 있는 것

을 믿었더니 호랑이는 멀리 내빼서 눈에 보이지 않고 목 지키러 온 세 사람은

새남 가는 길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어디루 갔소? " 돌석이가 장등에서

내려다보고 소리쳐 물으니 세 사람이 다같이 쫓아올라오며 그중의 앞선 한 사람

이 "호랭이가 이리루 왔소? " 하도 도리어 물었다. "이리루 오다니, 호랭이 오는

것두 못 봤단 말이오? " "우리는 못 봤는걸. " "목은 알뜰하게 잘 지켰다. 예끼

순 밥 빌어다 죽 쑤어먹을 자식들 같으니. " 돌석이가 골이 나서 욕질을 하니 그

중에 한 사람은 반죽이 좋아 "밥으루 죽을 쑤면 느루 먹구 좋지그려. " 하고 이

죽거리고 한 사람은 성깔이 있어서 "호랭이는 자기가 놓치구서 왜 우리보구 욕

질이야! 우리가 만만하니까 잿골에 말 박긴가. " 하고 중얼거리고 남은 한 사람

은 성미가 부드러워서 "우리가 사냥질이 서툴러서 목을 잘 본다는 게 알량하게

보았소. 용서하구 그놈이 멀리 내빼기 전에 쫓아가나 봅시다. " 하고 돌석이의

눈치를 보았다. "호랭이는 벌써 봉산 갔겠소. " "새남까지나 가보구 옵시다. " “

제기! ” 하고 돌석이가 먼저 새남 편으로 걸음을 떼어놓으니 사냥꾼 세 사람이

서로 돌아보면서 아이와 같이 돌석이의 뒤를 따라왔다. 새남을 거의 다 와서 난

데없는 아우성 소리가 들리더니 호랑이가 이편으로 뛰어오다 말고 가로새어 내

빼려고 하였다. 돌석이는 이것을 보고 일변 돌주머니를 벌리며 일변 호랑이를

앞질러 가서 돌팔매 한 개로 호랑이의 한편 눈을 맞혔다. 호랑이가 앞발로 저의

눈퉁이를 허비는 동안에 다시 돌팔매 한 개로 호랑이의 다른 편 눈을 마저 맞혔

다. 돌덩이가 아가리에 들어박히듯이 돌이 눈 속에 들어 박히지는 아니하였으나

호랑이는 눈이 아파서 뜨기가 어렵든지 두 눈을 다 감고 아가리만 딱딱 벌리며

어흥 소리를 질렀다. 아가리에 틀어박혔던 돌덩이는 어느 틈에 빠져 없어졌다.

돌석이가 멍구럭에서 큰 돌멩이 한 개를 꺼내서 들고 있다가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릴 때에 노리고 던졌다. 그 돌덩이가 또 아가리에 들어가 박히니 호랑이는 어

흥 소리도 못 지르고 다시 칵칵거리고 간간이 으르렁거렸다. 돌덩이가 눈퉁이에

떨어지고 대가리에 떨어져서 호랑이가 배기다 못하여 천방지축으로 뛰어 내빼는

데 돌덩이들이 엉덩이와 볼기짝에까지 떨어졌다. 돌석이가 멍구럭의 돌덩이를

한 개 남기지 않고 다 던진 뒤에 아이를 돌아보며 창을 달라고 하니 "호랭이가

인제는 잘 내빼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내가 쫓아가서 창으루 찔러 잡아보리다. "

아이가 창을 가지고 호랑이를 쫓아가는데 사냥꾼들도 따라갔다. 눈은 뜨지 못하

고 아가리는 다물지 못하는 병신 호랑이를 아이와 사냥꾼 셋이 새남 뒤에 와서

찔러 잡았다. 봉산서 나온 장교와 사냥꾼 한 떼가 호랑이 잡은 데 와서 보고 경

천서들 왔느냐고 묻고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물어서 아이가 돌석이 뒤에 따라다

니며 눈으로 본 것을 자초지종 다 이야기하니 여러 사람의 눈이 돌석이게로 모

여들었다. 봉산 사냥꾼 한 사람이 "댁이 어디 사람이오? " 하고 물어서 돌석이가

"경상도 김해 사람이오. " 하고 대답하자 젊은 장교 한 사람이 돌석이 앞으로 가

까이 오며 "전에 전라도 난리 치러 간 일이 있소? “ 하고 물었다. "을묘년에 영

광까지 갔었소. " "성명이 배돌석이 아니오? " 돌석이가 젊은 장교를 유심히 보

면서 "진중에서 나를 보셨소? " 하고 물으니 젊은 장교는 "아니오. " 하고 고개

를 외치며 상글상글 웃었다. 돌석이가 젊은 장교의 성명을 물어보니 황천왕동이

라는데 성명이 생소하여 돌석이는 고개를 흔들며 "나는 모르겠는데. " 하고 다시

입속으로 그 성명을 뇌어보았다.

"대체 나를 어디서 만나봤소? " "지금 여기서 만나봤소. " "처음 만나지요? " "이

다음 만나면 구면이지만 오늘은 초면이오. " "그럼 그렇지, 전에 본 사람을 몰라보두

룩 내 눈이 무딜 리가 있나. 그런데 나를 처음 보면서 내 성명을 어떻게 먼저

아시우? " "팔매질 선성을 들었던 까닭에 어림치구 물어봤소. " "내 선성은 뉘게

들으셨소? " "임꺽정이란 이를 만나본 일이 있지 않소? " "임꺽정이 임꺽정이,

그가 수염 많은 검객 아니오? " "검객이 무어요? " "검객이 무어라니, 칼 쓰는

사람 말이지요. " "칼두 잘 쓰지만 힘이 천하 장사요. " "내가 영암 진중에 있을

때 한번 잠깐 만나보구 이야기는 별루 못해 봤소. 그래 그 사람에게 내 말을 들

으셨소? " "그가 우리 누님의 남편인데 전장에 갔다 와서 댁 이야기를 많이 합

디다. " "그럼 이봉학이란 사람두 친하겠구려? " "녜, 잘 알지요. " "이봉학이가

지금 어디 있소? " "지금 제주 가서 벼슬살이한답디다. " "제주 가서 무슨 벼슬

살이를 할까 제주목사는 아닐 테구. " "현감이랍디다. " "현감이오? 그러면 대정

이나 정의로구먼. " "녜, 정의현감이랍디다. " "남은 내 동갑에 원 나간다더니,

그 사람은 잘되었군. 영암 있을 때는 그 사람이나 내나 다 같은 대정이었었소. "

"서울 양반 하나가 뒤를 보아주는갑디다. " "그렇겠지요. " 두 사람의 수작이 지

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둘씩 셋씩 풀밭에 가서 주저앉았다. 천왕동이가 이것을

보고 “오늘은 고만 작별합시다. 수이 한번 봉산으루 놀러오시우. 장청버덤 백이

방 집으루 찾아오시는 것이 좋소. 백이방 집이 내 처가요. ” 하고 말하여 "녜,

꼭 놀러가리다. " 돌석이가 천왕동이와 작별하고 사냥꾼들과 같이 죽은 호랑이를

떠메고 오다가 정방산 편으로 간 사람들을 불러온 뒤에 오릿골 사람들 시켜 떠

메게 하고 오릿골로 내려왔다. 큰 오릿골 작은 오릿골은 말할 것 없고 나무꾼이

소문을 퍼쳐서 먹골서까지 호랑이 구경들을 쏟아져 왔는데 오는 사람마다 호랑

이를 보고는 반드시 호랑이 잡은 돌석이까지 보고 갔다. 이날 마침 찰방이 좋은

술을 보내주어 돌석이가 사냥꾼들과 같이 밤들도록 술을 먹고 이튿날 늦은 아침

때 오릿골서 떠나서 경천으로 돌아오는데 오릿골 사람 십여 명이 돌석이를 전후

로 옹위하고 왔다. 찰방이 호랑이를 받아 놓고 황주목사를 무안 줄 마음이 급하

여 그날 저녁때 바로 호랑이 잡아온 사연을 전갈하는데 "호랑이를 잡아오라고

사냥꾼 너덧 사람을 보냈더니 보낸 지 이레 만에 오늘 잡아왔습니다고. 호랑이

가 벌써 썩기 시작해서 그대로 더 두면 가죽을 못쓰게 되겠기에 한번 구경도 못

시켜 드리고 곧 거피를 시켰습니다고. " 전갈 하인에게 말을 일러보냈더니 목사

가 그 하인에게 "호랑이는 구경 못 시켜 주시나마 호랑이 잡은 사냥꾼들을

곧 한번 보내줍시사고. " 답전갈하여 찰방이 이튿날 돌석이와 다른 사냥꾼들을

읍으로 들여보냈더니 황주목사가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자세히 물어본 뒤에 목

사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돌석이에게 무명 한 필, 다른 사냥꾼들에게 무명 반 필

씩 상급을 주었다. 돌석이가 다른 사냥꾼들과 같이 상급을 받아가지고 황주 관

가에서 나오는 길에 낯모르는 늙은 여편네 하나가 돌석이의 소매를 잡고 저의

집으로 가자고 매달렸다. "알지두 못하는 사람을 붙들구 집으루 가자니 웬일이

오? " "당신네가 호랭이를 잡으셨다지요? " "호랭이 잡은 이야기를 들을라구

집으루 가잔 말이오? " "호랭이 잡은 양반은 우리 은인이신데 우리 집을 그대로

지나가셔서야 됩니까. 잠깐만 가십시다. " 길가에 보고 섰던 사람 하나가 "그 할

머니가 외아들을 호환에 보내구 실성한 이요. " 하고 말하니 늙은 여편네는 "미

친 놈들의 눈깔엔 성한 사람도 미쳐 보이는가 부다. " 하고 성을 내고 “저깟놈

들의 말 곧이듣지 말고 어서 같이 가십시다. " 하고 돌석이를 끌었다. 돌석이가

늙은 여편네를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서 "어떻게 할라우? " 하고

다른 사냥꾼들을 돌아보니 "생각대루 하우. " "우리더러 물어 볼 거 있소. " "아

따, 가봅시다. " 하고 대답들 하여 돌석이는 사냥꾼들과 같이 늙은 여편네의 뒤

를 따라왔다. 늙은 여편네가 집에 와서 삽작 안에 들어서며 "이애 방에 있니? "

하고 소리치고 손들을 안방에 들여앉힌 뒤에 또 "이애 어디 있니? ” 하고 소리

치더니 한참 만에 소복한 젊은 여편네가 집 뒤껼에서 나왔다. 늙은 여편네가 대

뜸 "너는 왜 밤낮 뒤껼에 가서 사니? " 나무라고 다음에 "내가 호랭이 잡으신

은인들을 뫼시고 왔다. 들어와서 보여라. " 방으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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