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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방이 집안 식구는 일어난 지 벌써 오래고 사랑을 빼앗기고 안방에서 잔
이방까지 일어난 뒤 한참 되었건만, 사랑에서 자는 사위와 손은 한밤중만 여기
고 자는지 코고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었다. 이방이 자기 안해를 보고 “이애
가 늦잠을 굉장하게 자는군. 아마 가서 깨워야 일어날 모양일세. "하고 사위를
깨우러 나가려고 하니 그 안해가 “내가 어젯밤에 닭 운 뒤에 누웠는데 그때까
지도 사랑에서는 웃고 지껄이는 소리가 납디다. 밤을 밝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
소. 좀더 자게 깨우지 말고 내버려 둡시다. "하고 이방을 나가지 못하게 말리었
다. “조사는 어떻게 하구?”“하루 좀 비어먹으면 어떻소?”“늦잠 자구 조사
를 안 보면 쓰나. "“이따 들어가서 병탈을 해주시구려. "“젊은애들이 하룻밤
쯤 새웠기루 조사에 병탈을 한단 말인가. 나는 전에 이틀 밤씩 내려 새우구두
조사 때 남버덤 먼저 들어갔었는데. "“고만두시오. 나는 다 보았소”“다 봤으
니 내가 거짓말인가.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날 테니 깨워 달라고 말해 놓고 깨
운다고 주먹다짐하던 이는 누구요?”“에 이 사람. "
옥련이가 조반상을 들고 이방이 앉았는 방안으로 들어오다가 부모의 수작하는
말을 듣고 상을 얼른 아버지 앞에 갖다놓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이키고 웃으니
이방은 “너의 어머니 말은 거짓말이다. 곧이듣지 말라. "하고 웃고 이방의 안해
는 “황서방이 혹시 깨워달라고 네게 부탁하는 때가 있더래도 아예 가까이 가서
흔들어 깨우지 마라. 잘못하다가 주먹다짐을 받을는지 누가 아니. "하고 웃었다.
“딸자식 듣는 데 남편을 하자하는 법이 어디 있담. "“내가 무슨 하자를 했소?
”이방 내외가 말을 한마디씩 주고받고 한 뒤 옥련이가 그 어머니를 보고 “고
만 깨우지요. "하고 남편을 깨우자고 말하니 “어제 하루에 황주를 도다녀오고
게다가 밤을 새웠으니 곤하지 않겠니. 늦잠 좀 자게 가만두지 깨울 거 무엇 있
니?” 그 어머니가 말리었다. 이방이 조반 먹고 조사 보러 들어간 뒤에 이방의
안해는 심부름하는 사람들을 사랑 가까이 가서 떠들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앞
뒤 처마에서 짹째글거리는 참새들까지 쫓아주게 하였다.
천왕동이가 식전잠을 달게 자고 일어날 때 돌석이도 잠이 깨어서 같이 일어났
다. “대단히 늦었지?”“글쎄 모르겠네. "천왕동이가 사랑 앞문을 열고 밖을 내
다보니 날이 마침 몹시 흐려서 해가 떴는지 안 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해가
아직 안 떴을까?”“이때까지 해가 안 떴을 리가 있나. "“글쎄, 조사 때가 지난
것 같애. 나를 와서 깨웠을 텐데 깨우는 것도 모르구 잤을까. "“설마 깨웠으면
몰랐을까. 자네 깨우는 소리가 났으면 내라두 잠이 깼겠지. "“잠깐 안에 들어가
보구 나옴세. "천왕동이가 안으로 난 되창을 열고 들어서 보니 안이 쓸쓸한 품이
사람이 없는 것과 같았다. “이거 웬일일가?”천왕동이가 안마루 앞에 들어올
때 장모는 안방에서 내다보고 안해는 건넌방에서 나왔다.“장인 혼자 조사 보러
들어가셨나요?”“자네 깨우신다는 것을 내가 못 깨우시게 했네. "“왜 그러셨세
요?”“어젯밤을 통히 새웠지?”“까닭없이 조사에 빠지면 탈인데요. "“병탈해
주신댔으니 염려 말게. "천왕동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는데 옥련이는 남편의 계
면쩍어하는 모양을 보고 방그레 웃고 있었다.“무에 우스워, 사람두” 천왕동이가
뿌루퉁하여지는 것을 보고 옥련이는 부모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고 “저런 사
람이 단잠 든 걸 깨우면 참말 가만히 아니 있을 게야. "하고 말하며 허리를 잡고
깔깔 웃었다. “간이 뒤집혔나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못할 소리 없구려. "“
그럼 왜 그렇게 웃나? 웃는 까닭을 대게. "“대라 마라 하고 누구를 딱딱 얼러.
"“어디 보세. "“별르면 무섭겠네. "“사내가 늦잠 잤다구 깔깔거리구 웃는 법
이 어디 있담. "“자네가 늦잠 잤다고 웃는 것이 아닐세. "하고 내다보던 장모가
말하였다.“장모두 두던 마시구 걱정 좀 하십시오. "“내가 아까 실없은 이야기
를 했더니 그애가 식전내 웃네. "“무슨 이야기를 하셨소?”“전에 자네 장인이
밤을 새우고 새벽에 누워서 막 잠이 드신 것을 조사 보러 가시라고 내가 깨우다
가 주먹다짐 받은 것을 이야기 했었네. "천왕동이가 안해를 돌아보며 “주먹다짐
받을까 봐 오늘 안 깨웠네그려. 나는 그런 때 업어줄테니 염려말구 깨우게. "하
고 웃었다.“자네 세수 아니하나?”“왜 아니해요?”“세숫물을 내보내 줄까?”
“그러세요. "“얼른 나가 세수하고 해정하게. "“식전술은 조금만 내보내 주세
요. "천왕동이가 장모와 이야기하고 곧 사랑으로 나와서 세수를 마치고 돌석이와
같이 해정술을 먹는 중에 이방이 조사 보고 돌아와서 안으로 난 되창을 열고 들
여다보며 돌석이에게 밤 사이 인사를 말하니 돌석이는 일변 천왕동이와 같이 일
어서며 일변 이방의 인사를 대답하였다.“어서 앉아 먹게. "이방이 돌석이에게
말하는 것을 “다 먹었습니다. "천왕동이가 중간에서 대답하고 이방이 안으로 들
어올 때 뒤를 따라 들어왔다.“어젯밤에 그 손하구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했니?”“그 사람의 소경력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소경력이 그렇게 많든
가?”“기막힌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호랭이 잡은 이야기냐?”“아니오. "
“그럼 무슨 이야기야?”이방이 안방에 들어와서 앉은 뒤에 천왕동이는 양반과
계집을 자자시킨 이야기와 양반 여편네 욕보인 이야기를 대강대강 옮기어 들리
었다.“간통한 남녀를 동시포착해서 죽이지 않구 자자했단 말은 금시초문이다. "
이방의 말끌에 “계집년의 눈자위에 자자를 하고 얼굴을 어떻게 들겠소? 죽는
신세만 못하지. "이방의 안해가 뒤를 달았다. “눈에 왕방울은 외려두 낫지, 그
양반의 꼴을 생각해 보게. 그야 말루 죽느니만 못하지. "“자자한 건 생전 가시
지 않소?”“가죽이나 벗겨내면 없어질까 제절루는 가실 리 없지. "“자기 남편
을 그 꼴로 만들고 그 여편네 맘이 어떨까. "“그 여편네두 봉변이지만 그 봉변
은 표나 없지. "하고 대답하여다. “양반의 여편네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자처해
죽을게요. "“자처해 죽을 여편네두 있겠지만 아닌보살하구 살 여편네가 더 많을걸. "
장인 장모의 수작하는 말이 끝난 뒤에 천왕동이가 마루로 나오는데 옥련이가
“사랑에 온 손이 흉악한 사람이오.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하는 것이 좋지 않소.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염려 말게. "건성 대답하고 웃고 바로 사랑으로 나왔다.
이날 아침 뒤에 돌석이가 경천으로 돌아가는데 천왕동이는 작별할 때 “나두
종종 갈 테지만 자네 틈 있는 대루 자주 놀러오게. "하고 당부하였다. 천왕동이
의 당부가 없더라도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술을 먹는 것이 싫은 까닭이 없는
일이라 돌석이가 그 뒤 한 달에 한두 번씩 봉산으로 놀러왔다. 돌석이가 올 때
에 이방의 안해는 사위의 낯을 보아 술밥을 대접하나 딸이 불긴하게 여기는 손
이라 대접이 자연 소홀하였다. 밥상의 반찬까지도 맘들여 해놓는 것이 적고 술
상의 술이 부족하여도 없다고 핑계하고 더 내보내지 않는 때가 많았다. 천왕동
이가 이 눈치를 안 뒤에는 돌석이가 오면 흔히 술집으로 끌고 다니었다. 어느
때 돌석이가 놀러와서 천왕동이가 젊은 계집 있는 술집에 가서 술자리를 벌이고
대접하는데 젊은 계집이 천왕동이를 보고 처시하 사람이니 판관사령이나 실없이
조롱하여 천왕동이가 술김에 골김에 계집의 뺨을 한번 호되게 쳐서 계집이 부어
오르는 뺨을 손으로 덮고 방성통곡까지 하게 되니 술자리가 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천왕동이는 다른 술집을 찾으려고 하는데 돌석이가 술을 그만 먹자고
우겨서 이방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이 서로 지껄였다. “사내가 처가
살이는 안할 거야. "“자네 같은 처가살이면 나는 내 집 열 내놓고 바꾸겠네. "
“처가살이 못해 본 사람의 말일세. 아무리 좋은 처가래두 내 집만 할 수 있나.
"“자네 안해가 봉산 일색이라데그려. "“일색인지 절색인지 그건 모르지만 추물
은 아닐세. "“나를 한번 상면시켜 주지 않을라나?”“그것두 내 집만 같으면 벌
써 상면시켰지 자네 말을 기다리겠나. "“자네 처가에서 친구들 상면하는 걸 좋
아 않는가?”“양반의 집 딸자식같이 내외를 시킨다네. "“나는 이날 이때까지
일색을 구경 못한 사람이라 자네 안해를 한번 구경했으면 눈이 넓어지겠네만 자
네 처가에서 상면 안시키는 거야 할 수 있나. "“내가 우기면 할 수야 있지. "“
자네 좀 우겨볼라나?”“글쎄, 가보세. "
천왕동이가 처가에 와서 돌석이를 사랑에 들어앉히고 곧 안으로 들어왔다. 옥
련이가 건넌방 문 앞에서 바느질하다가 신발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
다.“그 손을 보냈소?”“장인은 관가에 들어가셨나?”“손을 보냈느냐니까 내
말은 대답 않고 딴소리야. "“손은 사랑에 있네. "“또 끌고 왔구려. "“여보게,
사랑으로 나가서 상면 좀 하세. "“누가 상면하고 싶답디까. "“하구 싶지 않더
래도 내가 하라면 하는 게지. "“술이 취했구려. "“잔소리 말구 이리 나오게. "
천왕동이가 안해의 손을 잡았다. 천왕동이는 안해를 끌어내랴거니 옥련이는 남
편의 손을 뿌리치랴거니 실랑이하는 중에 이방의 안해가 안방에서 마루로 나와
서 “무얼 그러나?”하고 물으니 천왕동이가 안해의 손을 놓고 장모 앞으로 가
까이 갔다.
“사랑에 좀 나가자구 했더니 안 나가려구 뻑스는구먼요. "“왜 사랑에는 나가
자나?”“손하구 상면 좀 시킬라구요. "“상면하기 싫다는 거 억지로 시킬 것 무
어 있나. "“안해를 상면시켜 주마구 말했는걸요. "“아무리 장난이라도 너무 상
없인 하지 말게. "“상없이 할 리가 있나요. "옥련이가 건넌방에서 “상없이 않
는 건 무어야? 나는 지금 손목이 아파 죽겠는데. "하고 소리를 질러서 천왕동이
는 쓴입맛만 다시고 섰는데 이때 마침 이방이 밖으로서 들어와서 말을 물어보고
나서 제잡담하고 “나하구 같이 사랑으루 나가자. "하고 천왕동이를 끌고 나왔
다. 돌석이가 일어나서 인사를 마친뒤에 이방이 천왕동이를 가리키며 돌석이에
게 “저애가 제 안해를 자네하구 상면시킨다구 했다지?”하고 묻더니 “우리네
집에서는 여편네가 내외를 해서 아무리 남편하구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두 보
지 않네. 우리네 집안 범절이 사대부나 다름이 없는 까닭에 홍살문 안 사대부란
소리를 듣네그려. "아니꼬운 소리를 많이 하고 나서 “기왕 상면시킨다구 한 바
에는 상면시킬 것이지만 딸이 지금 몸이 성치 않으니 이 다음 상면하게. " 뒤를
조금 풀어서 말하였다. 돌석이가 하룻밤 묵어가려고 작정하고 왔었는데 이방의
아니꼬운 소리를 들은 뒤에 묵을 생각이 없어져서 내일 식전 볼일이 있는 까닭
에 밤 도와서라도 가야 한다고 총총히 일어섰다. 천왕동이는 돌석이를 붙들어
재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게 아니지만 계면쩍은 생각에 굳이 붙들지 못하고 섭섭
하게 작별하였다. 저녁밥을 먹을 때 이방의 안해가 천왕동이를 보고 “그 손이
섭섭하게 알고 가지나 않았나?”하고 물어서 “내가 우선 섭섭하니까 그 사람은
말할 것두 없겠지요. "하고 천왕동이가 대답하자 옥련이가 “섭섭할 것도 많아.
"하고 뒤받았다. “가깝지도 않은 데 사는 사람이 다 저녁때 가게 되니 섭섭지
않아? 지금 새남두 다 못 갔을 거야. "“그런 좋은 친구를 붙들어 재우지 않고
누가 보내라든가. "“내가 보내구 싶어 보낸 줄 아나?”“역졸 나부랭이를 친구
로 사귀면 행세가 깎인다고 그렇게 말해도 내 말은 말 같지 않게 여기니까. "
“역졸은 저의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역졸인가. 너나 할것 없이 할 수
없으면 역졸이라두 다니지 별수 있나. "“부자가 대대로 역졸을 다닌다니 근본이
역놈이지 무어요. "“근본 가지구는 사람을 말하지 못하네. 내가 사람을 많이 보
진 못했지만 당대에 영웅호걸이라구 할 만한 인물은 거지반 다 근본이 하치않은
모양이데. 다른 사람은 고만두구 우선 보게. 우리 매부만한 인물이 지금 양반에
있을 듯한가. 지금 양반은 커녕 그전 양반에도 없을것일세. 전에 조재상이란 양
반이 잘났었다지만 그 양반두 우리 매부의 선생님께 배웠다네. 우리 매부의 선
생님두 근본으로 말하면 고리백정이구 갖바치야. 갖바치에서 생불이 나구 쇠백
정에서 영웅이 나는 걸 보게. 근본을 가지구 사람을 말할 건가. 아무리 소견없는
여편네라구 하더래두 황천왕동이의 안해 노릇을 하려면 이만 일은 짐작해야 하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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