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도사집 비부쟁이 노룻 하게 되는 것이 투석대 대정 첩지를 받을 때만
큼이나 맘에 좋았네. 내가 비부 노룻 하게 된 것이 작년 늦은 봄일세. 우리게 늦
은봄에는 노인도 흩것을 입는데 그때 나는 짠지국같이 된 겹옷을 입고 있었고
갓은 파립이고 망건은 파망이니 아무리 남의 집 비부쟁이라도 장가 명색을 들러
가며 그 꼴을 하고야 갈 수 있던가. 만만한데 한군데 가서 흩것 한벌을 우격다
짐으로 뺏고 또 다른 데 한 군데 가서 성한 관망을 억지로 빌렸네. 흩것을 입고
관망을 쓰고 이튿날 식전에 김도사집에를 가는데 일찍이 오란다고 너무 일찍이
가서 사랑 대문도 아직 열어놓기 전이데. 대문 밖에 초가 행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비었고 한 채는 사랑이 들었데. 사람 든 행랑 앞을 왔다갔다 하자니까
그 집 사내가 내다보고 "당신이 배대정 아니오? 이리 들어오시우. " 하고 부르기
에 대문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려고 그 행랑으로 들어갔었네. "대단 일찍 오셨
구려. " 하고 그 사내가 인사하는 말이 너무 일찍 온 것을 웃는 것 같아서 나는
"어제 아씨께서 일찍 오라셨는데. " 하고 우물쭈물 대답했네. "이쁜 안해를 얻게
되어서 맘에 좋겠구려. " "흘아비가 기집이 생기니 좋지 않을 까닭 있소. " "기집
이라두 이만저만한 기집이오. 이 읍내 일판에 둘두 없는 일색인데 댁에 와서 비
부 들려구 몸살하는 사람이 얼만지 모르우. 당신이 움안에 떡 받았소. " "글쎄,
내가 꿈을 잘 꾼 모양인가 보오. " "그러나 비부 노룻 하자면 일이 많소. " "일이
무엇무엇이오? “ "날마다 하는 일이 앞뒤 마당 쓸구 나귀 거두구 푸성귀 가꾸
구 심부름 다니구 이 댁 안팎 심부름이 여간 많지 않소. " 이 자식이 제가 할 소
임까지 내게다가 쓸어 맡길 생각이 있어서 미리 이런 말을 하나 보다 짐작하고
나는 ”양반님네 하라는 대루 하면 고만 아니겠소. " 하고 대답하였더니 "암 그
렇지요. 그렇지만 양반이 시키는 일을 고지식하게 다 하자면 오뉴월 긴긴 해에
두 낮잠 한잠 자지 못하우. 이 댁 도사 나리 생전에는 일이 지금버덤 몇 배가
더 드세서 견디다 못해서 도망한 사람까지 있었소. " 돌아간 김도사가 사람이 어
떻게 까다롭든지 인근 읍에까지 소문이 나도록 유명해서 서울 사람이 경망한 사
람을 애박이라고 하듯이 우리 김해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을 김도사라고 말했네.
"돌아간 이 댁 도사 나리같이 유명짜한 분 밑에서 하인 노릇 하기 어려웠을 게
요. " "지금 서방님은 아버지와 팔팔결 달라서 사람이 좋은 편입니다. " "서방님
이 어제는 댁에 안 기십디다그려. " "함안 조참판댁에 가셨는데 내일 모레나 오
실 게요. " "서방님두 안 기신데 아씨 맘대루 비부를 들이시오? " "아씨가 시집
을 때 데리고 온 몸종이니까 아씨 맘대루 비부를 들이시지요. " "아무리 아씨가
친정에서 데리구 온 종이라두 서방님이 오셔서 딴 말씀이 없겠소? " "딴말씀하
면 소용 있소. 그 사람은 벌써 당신의 안해가 된 것을 도루 뺏겠소 어떻게 하겠
소. " "나를 나가거라 마라 할는지 누가 아우? " "댁 아씨란 이가 사내 돌 쥐어
지르게 똑똑한 양반이오. 서방님이 꿈쩍 못하우. " "그렇기나 하면 다행이오. " "
아씨가 서방님 안 기신 틈을 타서 쌈 잘하기로 소문난 배대정을 비부루 골라들
이실 제 어련히 생각하셨겠소. " "서방님이 안 기신 틈을 타서 나를 비부루 골라
들이시다니 무슨 까닭이 있소? " "까닭은 나두 모르우. " “비부쟁이에 무슨 까
닭이 붙은 것 같구려. " "까닭이 있거나 없거나 당신이 이쁜 안해만 데리구 살게
되면 고만 아니오. " 이때 사랑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그 하인이 계집과 같이
안으로 들어가는데 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었네. 안중문에 들어가서 문안을
하니 아씨란 이가 내다보며 "신랑이 너무 일찍 왔군. " 하고 웃고 "서방님이 안
기신 때니 사랑마루에 올라가 앉았게. " 하고 말하여 나는 사랑으로 나와서 덧문
닫힌 큰사랑 앞마루에 올라앉았네. 얼마 뒤에 탈망에 관을 쓴 양반 한 분이 큰
사랑 건너편에 있는 작은사랑에서 나와서 나를 흘금흘금 바라보더니 가까이 와
서 "무어 하러 온 사람인데 주인양반 안 기신 사랑 마루에 와서 앉았어 ? " 반
말로 말을 묻데. 어떤 양반인지는 모르나 나는 얼른 일어나서 "이 댁에 비부 들
러 온 사람이올시다. "
하고 공손히 대답했네. "언제 서방님이 말씀이 기셨든가? " "아니올시다. 아씨께
서 오라셨습니다. " "옳지, 아씨께서 오라셨어? 그러려니. " 그 양반이 고개를 젖
혀들고 코웃음을 치는 모양이 말웃음 흡사하데. 사내 하인이 세숫물을 가지고
와서 마루 끝에 놓으니 그 양반이 곧 관을 벗고 앉아서 손을 물에 잠그고 국수
같은 때를 밀면서 하인에게 "애기더러 나와서 식전 글 좀 읽으라게. " 하고 말하
데. 알고 보니 그 양반은 선생 양반이고 작은사랑은 글방 사랑이데. 팔구 세 된
주인 애기가 안에서 나오고 고만고만한 동네 아이 네댓이 책들을 끼고 온 뒤에
하늘 천 따지 소리와 맹꽁징꽁 소리에 글방 사랑이 한동안 떠들썩하데. 식전 글
이 끝난 뒤에도 한참 있다가 아침이 되고 아침이 지난 뒤에도 얼마 있다가 초례
를 지내게 되었는데 말이 초례지 명색뿐일세그려. 정작 초례 지내는 동안은 잠
깐이었네, 사랑마당에 멍석 깔고 멍석가에 병풍 치고 병풍 앞에 정화수상 놓고
남녀가 다 입은 옷 입은 대로 정화수상 앞에 마주 서서 절 한번씩 하고 나니 초
례가 끝이 났네. 계집은 참말 얼굴이 얌전하데.
대문 밖에 비어 있는 행랑이 우리 새 내외의 거처할 곳이라 그 행랑에서 첫날
밤을 지내는데 내가 계집 옆에 가까이 앉아서 이 말 저 말 물어보아야 계집은
얼굴을 숙이고 대답 한마디 아니하데. "이 사람 부끄럼이 숫색시버덤 더 많은 모
양일세그려. " 웃어도 대답이 없고 "자네가 벙어린가.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어째 대답이 없나? " 나무라도 대답이 없기에 내가 그 숙인 얼굴를 치켜들고 보
니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데. 첫날밤에 눈물 흘리는 까닭을 대라고 내가 종
주목을 대지 않았겠나. 계집이 부대끼다 못해서 나중에 한다는 말이 "남의 속은
알아 무얼 할라오? " 하고 톡 쏘데. "남의 속이라니 백년해로할 내외가 어째 남
인가. " "백년해로는 다 무어야. 이놈 내주면 이놈하고 살고 저놈 내주면 저놈하
고 사는 신세에 백년해로 쥐똥 같은 소리 마오. " 계집이 봉한 입이 떨어지더니
말이 제법 싸게 나오데. "이 사람 그게 무슨 소린가? “ "남의 집 종된 게 분하
단 말이야. " "종 된 게 분해서 지금 눈물이 났나? ” "그럼 통곡을 해도 속이 시
원치 않은데. " "차차 봐가며 속량해 나가세그려. " "나는 속량도 싫고 아무것도
싫소. " "남의 종 된 게 분하다면 속량하는 게 어째 싫어? " "나는 죽고 싶은 맘
뿐이오. " "그런 맘을 내버리구 우리 잘살아 보세. " 하고 내가 뺨을 대고 비비
려고 했더니 계집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떠다밀고 그외에도 계집이 하도 쌀쌀히
굴어서 치마 앞에 찬바람이 도는 것 같데. 주먹다짐까진는 안 했지만 몇 번 계
집의 입에서 아야 소리가 나왔네. 남의 계집을 억지로 보듯이 하고 하룻밤을 지
내는 중에 내가 계집의 첫눈에 들지 못한 줄을 속으로 짐작했네. 이튿날 식전에
문안하러 안에 들어갔더니 아씨가 나를 불러들여서 앞에 세우고 계집 대접을 잘
해라, 계집 버릇을 잘 가르쳐라 중언부언 말을 이르는데 또라지게 해라를 하데.
나는 새삼스럽게 '인제 비부쟁이가 되었구나. ‘ 생각하며 내 몸을 돌아보았네.
내가 비부 든 지 사흘 되던 날 낮에 주인 서방님이란 분이 함안서 돌아왔었
네. 나중에 나귀 뒤에 따라갔던 상노아이놈에게 말을 들으니 일백이십리 길을
갈 때도 이틀에 가고 올 때도 이틀에 왔다고 하데. 그때 나는 마침 안 뒷간의
거름을 채마머리에 있는 두엄더미로 퍼내는 중이었는데 서방님 오셨단 소리를
듣고 분주히 우물에 가서 손발을 씻고 내 방에 가서 의관을 차리고 서방님을 보
이러 들어갔었네, 사랑에 들어가니 서방님이 안에 들어간 뒤요, 또 안에 들어가
니 서방님이 사랑방에 들어간 뒤라 나는 안중문간에서 얼마 동안 서성거리었네.
서방님이 사랑방에서 나와서 큰옷을 벗고 안대청 북창 앞에 앉아서 점심 반찬
만드는 아씨를 바라 보며 웃고 이야기하는 중에 내가 안마당으로 걸어들어갔었
네, 서방님이 그때까지 내 말을 듣지 못하였던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저게
누구야? " 하고 소리를 지르데, 내가 댓돌 아래 들어가 서서 내 입으로 "비부 배
돌석이 현신드리오. " 하고 하정배를 했네, 서방님이 “비부? " 하고 한마디 뇌
고서는 성낸 눈으로 아씨를 바라보는데 아씨는 "엊그제 새로 들인 비부쟁이오. "
하고 천연스럽게 말하데. 서방님은 얼굴이 희고 곱고 아씨보다 훨씬 젊데. 실상
나이는 서방님이 내 동갑 서른다섯이고, 아씨가 다섯 살 맏이라는데 보기에는
적어도 십년은 틀리는 것 같데. 나는 서방님과 아씨를 번갈아 보고 섰는데 서방
님은 아랫입술을 악물고서 아씨를 노려보고 아씨는 반찬을 만들면서 서방님의
눈치를 살펴보데. "여보, 집안에 새사람을 들이는데 내 말두 들어보지 않구 맘대
루 한단 말이오? " "내가 무얼 맘대로 했단 말씀이오. 비부는 나더러 골라 들이
라고 허락해 주지 않았소. " "누가 허락을 했어? " "정신이 그렇게 없으시오? 날
짜를 대리까? " "내가 그런 말을 했다기루서니 무엇이 그리 급해서 나 없는 동
안에 사람을 들인단 말이오. " "언제부터 별르는 일인데 급히 했다고 걱정이시
오. " "억지부터 별르는 일을 왜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못했소? " "왜 못해요. 무
서워서 못해요? 내가 무슨 굽죌 일이 있습디까. " "내가 잠깐 집에 없는 것을 다
행으루 여길 제는 영영 집에 없었으면 더 좋겠지. " "아무리 처자에게라도 억탁
으론 말씀하지 마시오. " "무엇이 억탁이야? 그래 내가 집에 없는 걸 다행으루
여기지 않았어! 않았거든 않았다구 말해! " ”누가 다행으로 여기도록 맨들랍디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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