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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25)

카지모도 2023. 2. 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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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여편네가 돌석이와 다른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저애가 내 며느립니다. "

하고 면면이 절을 시키었다. 그 며느리가 나이는 이십오륙 세쯤 되어 보이고

얼굴은 해반주그레하였다. "점심을 얼른 지어라. " 늙은 여편네가 며

느리를 내보낸 뒤에 "술들 잡수시겠지요? " 하고 물어서 사냥꾼 한 사람이 "없

어 못 먹습니다. " 하고 대답한즉 "손님들만 두고 나는 갈 수 없고 어떻게 하나!

" 하고 한걱정하다가 말대답한 사냥꾼더러 “술을 좋아하시는 말씀이니 미안하

지만 술 좀 받아가지고 오실라오? 좁쌀을 떠드릴께. " 하고 청하였다. 손님들만

두고 갈 수 없다고 손님을 심부름 보내려고 하는 것이 성한 사람의 일이 아니

다. 그 사냥꾼이 웃으면서 "내가 술집을 모르니 어떻게 하우. " 하고 말한 다음

에 돌석이가 "우리들만 있을 것은 걱정 말구 주인이 가서 받아오시우. " 하고 말

하니 여편네는 "그럼 내가 얼른 갔다오지요. " 하고 일어서 나갔다. 돌석이가 젊

은 과부를 불러들이고 싶으나 차마 그대로 들어오라고는 말하기 어려워서 부엌

편을 내다보며 "물 한 그룻 주시우. " 하고 말을 붙이었더니 젊은 과부는 대답이

없이 물사발을 들고 와서 방안에 들여놓았다. 젊은 과부가 고개는 다소곳하게

가지나 곁눈질을 자주 하는 것이 정이 찰 움직일 여편네 같았다. 젊은 과부가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사냥꾼들은 서로 옆구리를 찌르며 픽픽 웃었다. 뒤에 점

심상을 들여오고 내갈 때도 젊은 과부는 쉴새없이 곁눈질을 하는데 그 곁눈이

많이 가는 곳은 끼끗하게 생긴 사냥꾼 한 사람이었다. 돌석이가 이것을 짐작하

고 슬그머니 불쾌한 생각까지 없지 않았다. 돌석이가 찰방을 따라서 금교로 다

시 가지 않고 경천에 떨어져서 역졸을 다니게 된 뒤 호환에 간 사람의 집 젊은

과부에게 마음이 있어서 일부러 그 집을 찾아다니었다. 젊은 과부도 돌석이 오

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여 두세 번 와서 서로 무람없이 말하게 되고 네댓 번

와서 서로 실없은 말을 주고받게 되고 열 번 안와서 둘이 관계가 생기었다. 시

어미 되는 늙은 여편네가 이것을 알고도 야료할 생각을 아니하고 도리어 조용히

돌석이를 보고 "죽은 아들 대신 나까지 보아주실 테요, 어쩔 테요? " 하고 종주

먹 대듯이 말을 하여 돌석이는 선선히 "내가 곧 아들 노릇을 하리다. " 하고 허

락하였다. 실성한 어머니가 생긴 것은 좋을 것이 없으나 젊은 안해 생긴 것이

좋았다. 돌석이의 안해 얻고 구실 얻은 것이 구기본하면 호랑이의 덕을 본 셈이

었다.

돌석이가 젊은 과부를 안해로 얻은 뒤에 과부의 집을 경천역말로 이사시키고

살림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아침 뒤에 돌석이가 역 마굿간에서 말을 솔질하는

데 안해가 쫓아와서 타관 손님이 왔다고 연통하여 솔질을 건정건정 다하고 분분

히 집에 와보니 황천왕동이가 수양모와 이야기하고 앉았었다. "이게 누구요? " "

놀러오마 하구 그렇게 안 오는 법두 있소? " "놀러갈 맘이 없는 게 아니지만 그

동안은 좀 바빠서 못 갔소. " "그 동안 구실 다니구 장가들구 또 살림 차리구 바

빴겠소. 지금 이 할머니께 대강 이야기 들었소. " "내 집 찾느라구 애쓰지나 않

았소? "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는 중에 마침 이 할머니를 만나서 바루 이리

왔소. " 돌석이가 밖에 있는 안해를 내다보며 "손님을 점심 대접이나 좀 해야지.

" 말하는 것을 듣고 천왕동이가 웃으면서 "신접살림에 무슨 손님 대접할 것이

변변할라구. 일이 없거든 나하구 같이 봉산으루 갑시다. " 하고 말하였다. "가더

래두 점심을 먹구 갑시다, 점심두 안 먹구 길을 갈 수 있소? “ 돌석이가 천왕

동이를 붙들어서 점심을 함께 먹은 뒤에 역에 이틀 말미를 말하고 천왕동이와

같이 봉산으로 놀러왔다. 천왕동이 혼자만 같으면 해가 높이 있어 왔을 것이지

만 돌석이가 있어서 해진 뒤에도 내처 길을 걸어서 초경이 지난 뒤에 천왕동이

의 처가에를 들어왔다. 이방은 사랑을 내주고 이방의 안해는 음식을 장만시키었

다. 천왕동이 안해는 남편이 역졸을 손으로 청하여 왔다고 잔소리하는 것을 이

방의 안해가 "온 손이 돌팔매로 호랑이 잡은 사람이란다. 예사 역졸이 아닐게다.

황서방이 취할 곳 없는 사람을 사귈 리가 있느냐? " 하고 딸을 타일러서 잔소리

를 못하게 하였다. 저녁으로 밥상은 속히 나왔고 밤참으로 술상은 늦게 나왔는

데 밥상에는 고기 반찬이 여러 가지 놓였었고 술상에는 준한 맑은 술이 양푼으

로 놓였었다.

천왕동이와 돌석이는 밥상을 받고서도 이야기, 술상을 대하고서도 이야기, 이

야기가 별로 그치지 아니하였다. 밥상을 받을 때까지도 서로 하오하던 말이 어

느 틈에 하게로 변하여서 술상을 대할 때는 십년 숙친한 이나 다름이 없었다.

돌석이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였을 때 "이 세상에 돌팔매로 사위 취재 보이는 데

는 없나? 나두 장가나 좀 잘 들어보게. 여보게, 취재 보던 이야기 더 좀 자세히

하게, 재미 있네. " 하고 웃으니 천왕동이는 "안해 있는 사람이 왜 또 장가는 들

구 싶다나? “ 하고 웃었다. "가지기가 숫색시만 한가. " "숫색시두 하룻밤뿐이

야. " "하룻밤이 좋은 밤이거든. " "여보게, 실없은 말 고만두구 자네 난리 치러

갔던 이야기나 좀 자세히 듣세. " "자네 자형에게 들었을 테지. " "자형이 무엔

가? ” "누님의 남편이 자형 아닌가. " "매부 말인가? “ "매부는 손아랫누이 남

편이지. " "까다로운 문자말을 누가 아나. " "그래 자네 누님 남편이 지금 무엇

하나? " "무엇 할 것 있나. 집에서 놀지. " "아까운 인재가 썩네. " "역졸이나 장

교를 다니면 썩지 않는 셈일까. " "되지 못한 구실아치는 집에서 노는 팔자만두

못하지. " "자네는 잘했으면 이봉학이만큼 출신했을 것 아닌가. " "나는 고생을

팔자에 타구난 사람이야. 전장에 나가기 전에두 고생으루 살았지만 전장에 갔다

와서는 갖은 고생을 다 했네, 지금두 고생이지 무엔가. " "난리 치구 와서 줄곧

고향에 있었나? ” "고향에 있었네. " "경상도 끝에서 어떻게 황해도 구석까지

불려왔나? " "거지바람이 불어서. " "거지바람이 무슨 바람인가? " "얻어먹으러

왔단 말이야. " 그 다음에 돌석이는 아이 적부터 겪은 가지가지 고생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다.

 

2

우리 고향 김해서는 사월 파일부터 오월 단오까지 석전질이 큰 구경거리라 내

가 조그마서부터 석전질 구경에 재미를 들여서 장래 유명한 석전군이 되어 보려

고 일찍이 돌팔매를 치기 시작했네. 밥 먹을 줄도 모르고 팔매만 치러 다니니까

팔매질이 잠간 늘어서 불과 일이 년 안에 동무 아이들 중에서 팔매질로 대장 노

릇을 하게 되고, 사오 년 지나 여남은 살 된 뒤에는 팔힘이 모자라서 어른만큼

멀리 치지 못할 뿐이지 맞히는데 들어서는 어른에게도 질 것이 없었네, 열세

살인가 열네 살에 내가 한번 읍내 사정에 가서 편사 쏘는 것을 보고 돌팔매를

활쏘듯 해보려고 내 자작으로 방법을 만들어가지고 삼 년 동안 팔매를 공부했

네. 그 뒤로는 돌주머니만 차고 나서면 도둑놈도 무섭지 않고 호랑이도 무섭지

않고 눈앞에 무서운 것이 없었네. 지금은 오히려 이십 년 전만 못한 셈이지. 그

렇지만 연골에 배운 재주라 아무리 오래 팔매를 안 치다가도 이삼 일 동안

손이 뻑뻑한 것만 풀리면 도로 제 자욱이 들어서네. 내가 몸에 가진 재

주란 것이 팔매질 외에는 아무것도 없네. 억지로 말하려면 말 잘 타는 것이나

재주라고 할까, 그러나 남보다 나을 것이 있어야지. 우리 아버지가 김해 남역서

역졸을 다닌 까닭에 내가 말을 탈 줄도 알고 거둘 줄도 아네. 그렇지만 아버지

의 거먹초립 계적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일세, 우리 아버지가 생존했을

때까지는 내가 석전판에나 뛰어다니고 석전 없을 때는 팔매질이나 공부하고 빤빤

히 놀고 먹었네. 일하기 싫은 것보다도 의붓어머니에게 미움 바치느라고 집에서

놀면서도 여간해서 빗자루도 손에 잡지 않았네. 나를 난 어머니는 돌 전에 돌아

가고 의붓어머니 손에서 눈치밥으로 자랐는데 어렸을 때는 하루도리로 매를 맞

아서 몸에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었네. 하도 몹시 맞으니까 나중에는 어린 맘에

도 맞아죽기밖에 더 하겠느냐 악이 나데. 악이 늘어가니까 매는 점점 더 맞았지.

내가 천생이 사람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악하고 독해지기는 의붓어머니 덕인

줄 아네. 내가 석전군으로 나설 때부터 매는 안 맞게 되었지만 맘은 하루도 편

할 날이 없었네. 더구나 스물한 살 장가 든 뒤로는 집에만 들어가면 생으로 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별로 집에 붙어 있지 아니했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이월에 아버지가 급한 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보니 의붓어머니와 안해를 먹

여살릴 것이 내 담책이 아니겠나. 그런데 나는 그동안 홧김에 배운 술이 골에

박여서 하루 세끼 밥은 굻어도 하루 한번 술은 안 먹고 못 배길 지경이 되었네

그려. 농사도 할줄모르고 장사도 할줄 모르는 위인이 술에 정신이 빠졌으니 두

식구는 고만두고 단 한 식구라도 먹여살릴 주제가 되나. 의붓어머니와 안해가

방아품을 팔아서 먹고 살았네. 안해 명색이 사람은 못생긴 것이 그중에 염량이

있어서 아버지 돌아간 뒤부터 차차로 의붓어머니에게 불쾌스럽게 굴더니 나중에

는 마구 해내기를 식은 떡 떼어먹듯 하네그려. 의붓어머니는 어머니 아니며 시

어머니는 어머니 아닌가.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데. 버릇을 좀 가르치려고 해보

았지만 안되겠어서 삼 년 겨우 나고 쫓아버렸네. 그 뒤 이삼 년 동안 모다 살림

을 하던 끝에 의붓어머니가 마흔여덟 살 먹은 중늙은이로 어떤 놈한테 미쳐서

후살이를 갔네. 김해 사람들은 내가 의붓어머니를 구박해서 후살이를 보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나를 모함하는 말이고 의붓어머니가 내 주정은 많이 받았네.

우리 아버지 돌아간 뒤부터 의붓어머니와 모자간에 정이 있이 지냈고 또 내가

의붓어머니 방아품으로 먹고 사는 터인데 왜 후살이 가라고 구박했겠나.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미친 놈들이지. 내가 그런 말 하는 놈들하고 싸움도 여러 번 했네.

의붓어머니가 후살이 간 뒤에는 내가 살림을 걷어치우고 남의 집으로 떠돌아다

니다가 을묘년에 투석대에 뽑혀서 전라도를 가게 되었는데 전라도 갈 때는 고향

에 다시 돌아을 맘을 먹지 않았었네. 진중에 가서 처음으로 명색 없는 군졸로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나중에 동향 사람 중군의 천거로 방어사 앞에서 재주를

드러낸 뒤 투석대의 대정이 되고 이봉학이와 겨룸하여 각진에 이름을 드날린 뒤

방어사의 애호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는 난리만 끝나고 보면 곧 만리전정이 눈앞에

터질 것 같았네. 방어사가 재주를 알아주고 중군이 매사에 두둔하니까 진중에서 배대

정 배대정 하고 떠받드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네. 그중

에 방어사의 일가 위장 한 사람이 나를 보면 공연히 눈을 곱게 뜨지 아니하데.

아무리 위장이라도 그까짓 자식을 내가 알 바가 있나. 저는 저고 나는 나로 지

냈네. 난리가 끝나고 삼군이 보궤를 받던 날 그 자식이 일부러 우리 술 먹는 데

와서 나를 보고 "인제는 김해루 도루 가서 석전군 노릇을 다시 할 텐가? “ "내

가 김해부사나 해가면 자네를 만나보겠네. " 하는 소리마다 사람의 배리가 꿰져

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술김 골김에 내가 그 자식을 칼로 찔러넘

겼네. 그 자식을 죽이고 대살을 당할 작정하고 함부로 찔렀네. 옆에 있던 사람들

이 붙잡고 매달리지 않았더면 그 자식이 죽고 말았을 것일세. 위장을 중상시킨

죄목으로 내가 효수를 당하게 되었었네. 중군이 힘을 안 써주었더면 이 목이 그

때 떨어졌을 것일세. 효수하는 법을 자네 아는가. 처음에 북소리가 꽝 하고 나면

죄인을 잡아내서 윗도리의 옷을 벗기고 얼굴에 회칠을 하고 화살로 두 귀를 꿰

어가지고 군중에 회술레를 시키고 그 다음에 북소리가 또 꽝 하고 나면 죄인의

상투를 풀어서 줄로 표미기에 매어달고 도수가 칼을 들고 겨누고 그 다음에 북

소리가 마지막 꽝 하고 나면 죄인의 목이 땅에 떨어지네. 내가 하마터면 이 꼴

을 당할 뻔했네. 그래도 가짜로 효수하는데 화살을 두 귀에 꿰지 하고 망건 뒤

에 찔러주데. 이봉학이는 효수당하게 되었을 때 참으로 귀까지 꿰었었네. 그 사

람은 남방어사 부하에 있었는데 남방어사가 북문 싸움에 참혹히 봉패한 뒤에 영

암서 퇴진하려고 퇴진령을 놓으니까 이봉학이가 방어사 앞에 들어가서 적군을

버리고 퇴진하는 것이 부당한 일인데 더구나 지금 패전한 끝에 퇴진하면 남의

치소를 받을 터이니 퇴진령을 거두라고 말마디나 좋이 했더라네. 남방어사가 고

집이 무서운 위인이라 자기가 한번 정한 일이면 백이 백소리를 하고 천이 천소

리를 해도 귀 한번 기울이지 않는 터인데 이봉학이의 말을 듣고 놓은 영을 거둘

리가 있나. 말한 이봉학이가 어림없는 사람이지. 당장에 "방자스러운 놈 같으니

네가 죽고 싶으냐! " 호령을 서리같이 하고 곧 중군에게 분부하여 대정 이봉학

이는 군령을 거스르고 군심을 동요시키는 죄가 용서할 수 없으니 즉각으로 효수

하라고 했더라네. 그런데 그날이 마침 나라제사 파젯날이라 중군이 그 사연을

말하여 이튿날 행형하기로 되었는데 소문이 퍼져서 가수성장으로 있던 전주부윤

이윤경아란 양반이 소문을 듣고 그날 밤에 친히 남방어사를 가보고 이봉학이의

목숨을 살려주라고 간청하다시피 말하다가 코를 떼이었다데. 이튿날 식전 아침에

이봉학이를 구경 효수시키려고 거조를 차리어서 회술레까지 끝나고 상투를 매어달

즈음에 어떤 장사 하나가 이봉학이를 뺏어가지고 가뭇없이 어디로 내대서 남방어사가

펄펄 뛰고 영암성중을 집뒤짐을 했지만 어디 있어야 잡지. 남방어사가 퇴진해

간 뒤에 들으니까 이봉학이를 뺏어간 장사는 임꺽정이고 이봉학이와 임꺽정이를

감추어 준 양반은 이윤경 이부윤이라데. 이야기가 가로새었네.

내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그때 진짜 효수는 겨우 면했으나 전정은 다 망치고 생각

하니 기가 막히데. 남들은 고향 간다고 좋아들 하는데 나 혼자 갈 데를 못 정해서 근심

하는 중에 고향에서 같이 온 투석군 한 사람이 같이 가자고 지성으로 권하데그려. 그

사람의 권을 받지 않으니, 어디 다른 데 갈 데가 있어야지. 그래 할 수 없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었네.

나는 고향이라고 발을 들여놓아야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니 다른데 갈데 있

나. 같이 오자던 사람의 집에 가서 몸을 부치고 있었네. 처음 몇 달 동안은 그

사람의 부모형제들이 내색없이 대접을 잘하더니 열흘 고운 꽃이 없다고 날이 갈

수록 차차로 처음과 달라지데. 내색이 달라지고 대접이 달라지는 것을 모르는

체하고 참고 지내려니까 그 사람의 부모 되는 바깥 늙은이 안늙은이가 나들으라고

빗대놓고 욕설까지 하는데 작은아들이 나무 아니 해온다고 "개새끼는 도둑 지키구

달기새끼는 홰를 친다. 사람의 새끼가 왜 놀구 처먹는단 말이냐! 싹수없는 자식

이 못된 것은 잘 보구 배우는구나. " 수족 성한 거지가 얻어먹으러 왔다고 "수족

이 멀정하게 성한 녀석이 어디 가 무슨 일을 못해서 얻어 먹는단 말이냐. 우리

집에서 공밥 잘 먹인다는 소문이 났더냐? " 이런 소리를 하루도 몇 번씩 듣게

되니 아무리 비위를 잘 파는 사람이라도 그 집에 더 있을 수가 있든가. 그래서

내가 어느 농가에 가서 머슴을 들었었네. 그러나 전에 모 한 포기 꽃아본 일 없

는 사람이 갑자기 머슴살이를 하자니 고생은 고생대로 되고 일은 일대로 안 되

데. 일 년을 지낸 것도 주인의 집 인심 덕이라고 말할 수 있네. 머슴살이 일년

한 뒤에 한 반년 동안 이집저집으로 돌아다니며 진대를 붙었는데 남들이 술 먹

는 데를 가서 술을 뺏어 먹는 것은 오히려도 예사지만 밥 먹는 데 가서 밥까지

뺏어먹었네. 내가 본래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주 개차반 노릇을 할 작정이니

까 남이 대수롭지 않게 피침한 소리를 하더라도 가만히 듣고 있나. 당장에 싸움

을 걸지. 싸움이 조금만 커지면 칼로 내 가슴을 긋거나 내 살점을 어여내거나

해서 구경하는 사람이 눈을 가리도록 무지스러운 짓을 하는 까닭에 나한테 싸움

하러 덤비는 놈이 별로 없었네. 그러니까 내가 가는 데 쫓을 놈도 없고 내가 달

라는 걸 안 줄 놈도 없을 것 아닌가. 내 뒤에는 손가락질이 떠날 애가 없었겠지.

망나니니 개고기니 하는 조명을 내 귀로도 많이 들었네. 철없는 조그만 아이놈

들이 나를 보고 "돌이돌이 배돌이 일에는 베돌이 술에는 감돌이 싸움에는 차돌

이. " 하고 놀리기까지 했네. 사람의 꼴이 어떻게 되었겠나. 아주 망했지. 이렇게

망한 놈 노릇할 때 어느 날 읍내 사는 김도사댁이란 양반의 집에 불려가게 되었

네. 채가 작죄한 일이 있더라도 양반이 무서을 것 없는데 작죄한 일이 없으니까

안 갈 까닭이 있나. 가서 잘하면 술잔이라도 얻어먹고 오려니 하고 갔었네. 급기

야 가보니 서방님이라는 자는 집에 없고 아씨라는 이가 중문간으로 불러들여서

안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말을 묻데. "자네가 성명이 배돌석인가? " "네, 그렇소

이다. " "자네가 지금 나이 몇 살인가? " "서른다섯 살이올시다. " "처자가 없다

니 참말인가? “ "녜, 없습니다. " "그러면 자네 내 집에 와서 비부쟁이 노릇

을 하지 않을라나? " 내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곧 이것이 웬 떡이냐 하고 생

각했지만 대답이 얼른 안 나와서 주저주저하고 있자니까 아씨란 이가 "여기 섰

는 이 애를 좀 들여다보구 대답하게. " 하고 마루 위에 섰는 계집종을 가리키는

데 그 계집이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생겼데. "이 애가 지금 나이가 스물다섯인데

첫서방이 죽은 뒤 삼 년이 지났네, 내가 마땅한 사람을 하나 얻어주려고 물색하

는 중에 누가 자네 말을 하데. 다른 사람 시켜서 자네 의향을 물어보아도 좋을

테지만 물어보랄 사람도 만만치 않고 나도 자네를 한번 보고 친히 물어보려고

덮어놓고 불렀네. 그래 자네 맘이 있나 없나? " "이런 황감한 처분이 어디 다시

있겠습니까. " "내 집에 와서 비부를 들겠단 말이지? " ”네. “ "그러면 내일

아침에 정화수상이라도 놓고 초례를 지내고 곧 댁 행랑에 와서 있도록 하게. " "

녜, 그렇게 하겠습니다. " "술 한잔 내보내 줄 게니 먹고 갔다 내일 식전 다시

오게. " "녜, 황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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