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석이가 먼저 수양모를 보고 "어째 싸움이 났소?" 하고 물어서 수양모가
까닭없는 일에 죽을 욕을 보았다고 증언부언 하소연하는데 김가의 안해가
자기 잘못이 없는 것을 변명하려고 말가리를 드니 "임자 말은 나중 들을
테니 잠깐 가만히 있수. "하고 돌석이가 눌렀다. 수양모의 하소연이
되씹는 말이 많은 것을 참고 듣다 못하여 "인제 다 알았으니 고만두우. "
하고 무질뜨리고 "자, 임자 말을 들읍시다. "하고 돌석이가 김가의 안해
를 향하고 앉았다. 며느리 간 곳을 일러주지 않고 모른다고 속이니까 자기가 골
이 났다. 자기를 떠다 박지르니까 머리채를 잡은 것이지 자기가 선손 건 것이
아니다. 김가의 안해가 발명을 부산하게 하니 돌석이가 "그까짓 말은 듣지 않아
두 좋소. " 하고 가로막고 "내가 말을 물을 테니 묻는 대루 대답만 해주우. " 하
고 말하였다. "임자 남편이 우리 집에 놀러오는데 의심나는 일이 있소?" "처음에
는 친구 집에 놀러오는 줄만 알았으니까 의심낼 까닭이 없지요. ""그러면 어째
의심이 나기 시작했소?" "지금은 의심할 것도 없소. " "의심할 것두 없이 안 일
이 무어요?" ”친구 집에 놀러다니는 것이 아닌 줄을 알았소. “ ”어떻게 알았
소. “ 김가의 안해가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는 모양인 것을 보고 돌석이가
앞으로 나앉으며 ”왜 말 안 하우?“ ”말 못 하겠소. “ 하고 표독스럽게 말하
다가 ”아는 것을 바른 대루 말하면 내가 옹용 조처를 할 테니까 염려 말구 말
하우. “ 하고 슬그머니 달래었다. “그애 아버지가 어제 낮에 집에서 나가서
밤새도록 들어오지 않았소”, “그래서?”, “밤에 내가 온동네를 다 찾아다녔소
”, “그래 우리 집에 와서 찾았소?”, “내가 이 집 울 밖에 와서 밤중까지 붙
어섰었소”, “어째 들어와 보지는 않았소”, “삽작이 닫아걸려서 못 들어왔소
”, “치운데 고생했구려”, “치운 줄도 몰랐구요”, “방에서 지껄이는 소리가
잘 들립디까?”, “말은 들리지 않지만 목소리야 모르겠소”, “삽작은 떼어젖히
구 들어올 생각 안 하구 그대루 갔단 말이오?”, “울 밑에 개구멍 뚫고 싶은
생각은 많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소”, “무던하우” 돌석이는 비양스럽게 말
하고 곧 수양모를 돌아보며 “김서방이 어젯밤에 우리 집에서 잤소?”하고 물었
다. “나는 읍내 가서 자구 왔어”, “읍내는 어째?”, “전에 꾸어주었던 곡식
을 받으러 갔었어. 가서 받아오라고 어지간히 성가시게 굴어야지” 돌석이는 고
개를 끄덕이며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돌석이가 한동안 미간을 찌푸리고 앉아서 간통한 계집을 어떻게 처치하면 좋
을까 생각하였다. 죽이자니 분풀이가 안 되고 그렇다고 자자 같은 것으로 망신
줄 계집도 못 되었다. 돌석이가 말없이 앉았는 것을 보고 김가의 안해가 “인제
나는 갈 테요”하고 일어서니 돌석이는 “좀 가만히 있수”하고 손을 잡아 주저
앉히고 나서 수양모를 돌아보며 “대체 이년의 기집이 간 데가 어디요”하고 물었다.
“나도 몰라. 내가 정말로 몰라서 모른다고 했는데 저년의 여편네는 숨기느니
속이느니 하고 내 머리채를 들었다니까”, “한 집안에서 어디 가는 것도 모르
구 있었단 말이오”, “나는 방안에서 손님 대접하느라고 몰랐어”, “손님은 누
구요?”, “봉산 황서방이 송도 박서방이란 이하고 같이 왔다 갔어”, “언제 왔
다 언제 갔단 말이오?”, “그 사람들이 어제 왔더래. 어제 왔다가 집에 사람이
없으니까 읍으로 들어갔었더래. 내가 오늘 식전에 읍에서 나오다가 길에서 만나
서 같이 와서 술대접하고 만나보고 가라고 한사하고 붙들어도 황서방이 말미 얻
은 날짜가 있어서 가야 한다고 고집을 세우니 어떻게 더 붙들 수가 있어야지”,
“그래 그 사람들 술대접하는 동안에 살그머니 어디루 갔단 말이오? 그래 어느
때쯤 되오?”하고 물으니 늙은 여편네는 아직 골이 덜 풀렸던지 말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김가의 안해가 무료하여 혼잣말하듯이 “둘이 어디로 같이 간 게요”하고 말
하니 돌석이가 “그건 어떻게 아우?”하고 물었다. “이 울 밖에 와서 섰는 것
을 보고 온 사람이 있소”, “둘이 같이 울 밖에 나선 것을 본 사람이 있단 말
이오?”, “아니오. 그애 아버지가 이 울 밖에 와서 기웃거리드라오. 그 말을 듣
고 내가 부리나케 쫓아왔소”, “놈팽이하고 싸우러 왔다가 애꿎은 늙은이하구
싸웠구려”, “그러지 않아도 대판으로 싸움을 했소. 새벽에 들어왔을 때 대번
싸움을 거니까 이따가 이야기한다고 말하고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눕더니 코가
비뚤어지도록 자고 일어납디다. 일어나는 길로 싸움을 시작해서 여간 싸우지 않
았소. 나중에 내가 조목조목 들이댔더니 그제는 잘못했다고 개개 빌고 다시는
이 집에 발그림자를 안한다고 맹세까지 합디다. 그 말을 곧이듣고 그만저만 두
었더니 그렇게 말한 입살의 침이 마르기도 전에 이 집에 와서 울 밖에서 기웃거
리더라니 사람이 분통터지지 않겠소”
김가의 안해가 한참 지껄이고 나서 입에 침을 돌리는데 돌석이 수양모가 물끄
러미 바라보다가 “젊으신네 맘에 분하긴 하겠소. 그렇지만 사내란 건 대개 흘
레수캐거니 생각하고 분한 맘을 삭이시오. 그러고 그런 사내는 아모쪼록 내놓지
말고 집에 붙들어 두는 것이 미덥고 좋습니다”하고 말하니 김가의 안해는 “사
내를 무슨 수로 집에 붙들어 두오. 닭의 새끼니 발목장이를 붙잡아 매오, 어떻게 하오”
늙은이의 교훈을 뒤받고 돌석이는 “나는 분을 삭이자면 어떻게 생각해야 좋
소? 기집이라구 생긴 것은 모두가 흘레암캐거니 생각하리까” 여편네를 훌걸어
욕하였다. “분만 삭일 수 있으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지”하고 수양모가 선웃음
치는 것을 돌석이는 손을 내저어 제지하고 귀를 기울였다. 이때 밖에서 삽작문
을 삐걱삐걱 흔드는 소리가 났다.
돌석이가 밖에 나와 보니 계집이 삽작문에 붙어섰었다. 돌석이가 말소리 거칠
지 않게 예사로 “어디 갔다 인제 오나?”하고 말하며 삽작문을 열어주었다. 계
집이 고개를 숙이고 할깃할깃 눈치를 살피는데 돌석이 눈에 살기가 보여서 겁이
나든지 선뜻 들어오지 못하였다. “어서 들어오게”하고 돌석이가 재촉하여 계
집이 직수굿하고 있던 얼굴을 빤빤스럽게 치어들고 되반들거리며 들어오더니 돌
석이가 삽작문을 닫아거는 동안에 쪼르르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돌석이가 건넌
방에 들어 와 서서 계집을 내려다보면서 “안방으로 건너가세”하고 말하니 계
집이 녜 대답하고서도 좀처럼 일어나지 아니하여 “어서 일어나!”하고 돌석이
가 큰소리를 내었다. 계집이 마지 못하는 모양으로 일어나려고 할 즈음에 돌석
이의 수양모가 안방에서 건너왔다.
“어디를 갔다 왔니?”, “오쟁이네 집에 가서 떡방아 찧어주고 왔소” 돌석
이가 계집의 말을 듣고 “옳다, 옳아. 한 놈에게는 오쟁이지우고 한 놈하구는 찰
떡같이 붙어다녔구나” 마치 남의 일을 빈정거리듯이 말하는 것을 계집은 들은
체 아니하고 시어미를 바라보며 “어머니, 낙상하셨소? 얼굴에 상채기가 많이
났으니 웬일이오?”하고 딴전하였다. “그것두 네년 때문이다” 돌석이가 소리
를 꽥 지르고 연달아 무슨 말을 하려다가 안방문 여닫는 소리가 나는 것을 귓결
에 듣고 지겟문을 열치고 내다보더니 “내 말두 안 듣구 어디를 가려구?”하고
분분히 밖으로 쫓아나갔다.
“누군가요?”, “아랫말 김서방네다. 어젯밤에 김서방이 집에 와서 잤다지?
”, “그년의 여편네가 그런 소리를 합디까? 그년의 여편네 미쳤구먼요”, “오
늘 낮에도 김서방이 집에 와서 너하구 같이 나갔다며”, “그년의 여편네가 거
짓말이 난당이네”, “너는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네 남편이야 거짓말로 알 것이
냐? 너보고 야단을 치거든 발명도 고만두고 그저 잘못했다고 빌어라. 비는 게
제일 좋은 수다”, “빌고 말고 할 건 무어 있어요? 귀밑머리 풀어준 남편인가.
오다가다 만난 터수에 살기 싫다면 갈라서지 걱정이오”, “이애 지각없는 소리
작작 해라”
돌석이가 김가의 안해를 끌고 건넌방으로 들어와서 한옆에 주저 앉힌 뒤에 계
집에게로 가까이 오며 곧 머리채를 잡이 치켜세웠다. “이년아, 누구를 속이려구
거짓말이냐! 네가 바른 대루 말 아니하면 몸에 매밖에 돌아갈 게 없다. 바른 대
루 말을 할 테냐?”, “놓아요, 놓아요”, “잘못한 일 잘못했다구 말하구 빈다
구 그랬어”, “어머니는 나가서 저녁밥 좀 지으시우”, “손찌검 않겠다는 말을
들어야 내가 나갈 테야”, “이년이 바른 대루 말한다면 손찌검할 리 없소. 내가
창피해서 왁자하게 안할 테요”, “그래 그래, 왁자하면 창피하지”, 수양모가
돌석이보고 말하고 또 “이애 바른 대로 말하면 용서한다니 바른 대로 말하렴”
며느리보고 말하였다. 수양모는 돌석이가 머리채 놓고 앉는 것을 본 뒤에야 저
녁밥을 지으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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