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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32)

카지모도 2023. 2. 15.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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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가 어젯밤에 여기서 잤다지?” 계집의 고개가 수그러졌다. “상관된 지

가 오래겠구나” 계집의 고래가 가로 흔들리었다. “오래지는 않더래두 어제가

처음은 아니겠지?” 계집이 홀저에 고개를 들고 “잘못했으니 용서하시오”하고

목구멍에서 끌어당기는 소리로 말하였다. “예끼 순 더러운 년”하고 돌석이가

계집의 얼굴에 침을 뱉으니 계집이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앉아서 홀

짝홀짝 울기 시작하였다. 돌석이가 김가의 안해를 보고 “저년이 임자의 남편하

구 서루 눈맞은 지가 오래요. 우리하구 같이 처음 저년을 만났을 제 벌써 연놈

의 눈치가 다 수상했었소”하고 말한 다음에 “지금 나는 저년을 아주 속시원하

게 임자의 남편에게 내줄 생각이 있는데 어떻겠소? 임자의 말부터 좀 들어봅시

다”하고 말하니 김가의 안해가 “나는 어떻게 하라구요?”하고 질색을 하였다.

“한 사내 두 기집이 같이 잘살면 고만 아니오”, “어떻게 같이 잘살 수가

있소?”, “잘못 살아두 할 수 없지”, “그렇게 말고 다시 잘 생각하시우”, “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그런 짓들만 다시 못하게 해주시오”, “그런

짓을 다시 못하게 하자면 연놈을 다 죽여버려야겠소그려”, “그러면 이게고 저

게고 말할 것도 없게요”, “죽이지 않구야 그런 짓들을 다시 못하게 할 수가

있소?”, “아주 단단히 다짐을 받으면 되지요”, “다시 않는다구 맹세까지 하

구 돌아서는 길루 곧 쫓아왔다며? 그런데 다짐받아 무슨 소용 있겠소”, “배서

방이 다짐을 받으면 그리 못하겠지요”, “옳아, 배서방은 무서우니까 그리 못할

법하거니. 그렇지만 좀 덜 생각했소. 연놈이 배서방이 무서운 줄 알았으면 애당

초에 그런 짓 할 생의를 할 리가 있소”, “그래도 안 그래요”, “그러나저러나

나중에 다같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해 봅시다”, “그러면 내가 지금 가서 데리

고 오리다”, “가서 데리구 올 것 없이 여기서 오두룩 기다리우”, “올는지도

모르는데 기다리고 있세요?”, “올 테니 염려 말구 기다리우”, “언제 올까요?

”, “언제 오든지 오두룩 기다리구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느니 얼른 가서

데리고 오지요”, “임자는 볼모니까 가지 못하우”, “볼모라니요?”, “아무

소리 말구 있어 보우” 김가의 안해가 눈이 둥그래지며 다시 말을 못하였다.

돌석이와 김가의 안해가 여러 말수작하는 동안에 계집은 건성으로 코만 들여

마시다가 수작이 그친 뒤부터 연해 어깨를 들먹거리며 흑흑 느끼는 소리까지 내

었다. 돌석이가 코방귀를 뀌면서 “어디 우는 낯바대기를 좀 보자”하고 계집의

어깨를 잡아 돌려앉혔다. 계집의 몸은 돌려앉히는 채 돌아앉았으나 낯은 치맛자

락으로 폭 싸다시피 가리었다. 돌석이가 이것을 보고 “낯바대기 좀 들구 앉아

라”말하고 한동안 있다가 “인제 부끄러운 줄은 알구 낯을 들지 못하느냐?”하

고 말하였다. 나중 말이 제법 부드럽게 들리어서 계집은 차차 용서길로 들어가

는 줄 알고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다가 슬며시 낯을 내놓

았다.

어느덧 해가 다 져서 지겟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발이 없어지고 바로 방안이

어둠침침하였다. 돌석이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저녁밥이 어떻게 되었

소?”하고 물으니 수양모 늙은이가 부엌에서 마주 내다보며 “다 되었네. 어디

서 먹으려나? 건넌방으로 들어갈까?”하고 물었다. “아무데서나 먹읍시다. 이리

가져오시우”, “불을 켜야겠지?”, “봉당에 화톳불을 놓구려”

수양모 늙은이는 돌석이 말대로 화톳불을 놓은 다음에 저녁밥을 가지고 건넌

방으로 들어왔다. 저녁밥을 두루거리로 같이들 먹는데 돌석이는 김가의 안해를

권하고 늙은이는 며느리를 권하였다. 며느리와 김가의 안해가 모두 몇 술 뜨지

않고 나앉는 통에 늙은이 역시 운이 떨어져서 전의 반만큼도 먹지 못하고 술을

놓았는데 돌석이만은 자기 밥 다 먹고 남의 밥까지 더 먹었다. 저녁밥이 끝난

뒤에 늙은이가 돌석이를 보고 가장 의논성 있이 “저 댁은 고만 보내세”하고

김가의 안해를 보내자고 말하다가 “같지 않게 참견할 생각 마우” 돌석이에게

몰풍스럽게 핀잔을 받았다.

늙은이가 무료하여 한동안 말없이 앉았다가 생각해 보니 분하든지 “내가 무

얼 잘못했나? 내게까지 골낼 게 무어냐? 먼길 갔다와서 곤할 테니까 일찍 자게

할라고 말했지. 참견인가. 또 참견이라도 그만 말에 같지 않다고 핀잔하는 건 너

무 과해. 밤새도록이라도 붙들고 앉았지 누가 말리어”하고 중얼거리었다. “내

가 어머니한테 골낼 까닭이 있소? 노여워 마시우”, “그러기에 말이지”, “김

가놈이 오거든 두 계집을 함께 내줄 작정이오”, “두 기집이라니?”, “저까지

더러운 년을 누가 다시 데리구 살겠소”, “인심 좋군. 계집을 훌훌 남 내주게

”, “내가 안 데리구 살 바엔 내주지 무어하우”, “내가 사내 같으면 미워도

안 내주겠네”, “나는 미워서 내줄라구 하우”, “내준다는 건 말뿐이지 데려갈

놈은 어디 있고 따라갈 년은 어디 있어”,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좋아할는지

누가 아우”, “만일 참말 데려가면 어떻게 할 테야?”, “어떻게 할 거 무어 있

소. 고만이지”, “사내가 남의 기집을 뺏을 망정 제 기집을 남에게 뺏긴단 말이

될 말이야”, “쓸데없는 훈수 말구 고만 안방으루 건너가시우”, “그러지 않아

도 설거지하러 나갈 테야”

수양모가 나가서 저녁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두 계집이 다 입 한번 뻥긋 아니

한 건 다시 말할 것도 없고 돌석이까지 입을 봉한 사람같이 말 한마디 않고 앉

아 있었다. 돌석이가 나중에 졸음이 와서 기지개를 켜고 눈을 비비면서 “이놈

이 아니 오나?”하고 혼잣말하니 밖에 있는 수양모가 귀 밝게 듣고 “내가 가서

불러가지고 올까?”하고 나섰다. “고만두시우”, “왜 고만두어?”, “설거지

다 했거든 안방에 들어가서 가만히 기시우” 돌석이가 곧 계집을 향하고 앉아서

“김가가 오면 너를 주어 보낼라구 했더니 아니 오니 네가 김가에게루 가거라”

하고 말하니 계집은 말대꾸 안 하고 김가의 안해가 “갈 사람이나 고만 보내주

시오”하고 말하였다. “임자는 못 가우. 여기서 나랑 같이 잡시다”, “별 망칙

한 소리를 다 듣겠네”, “무에 망칙하우. 기집 바꿈밖에 더 되우”

김가의 안해가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지겟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려고 하

니 돌석이가 얼른 와서 뒤로 끼어 안아다가 방구석에 동댕치듯이 하여 주저앉힌

뒤에 시렁에 얹힌 이불을 내려서 아랫목에 펴놓으며 곧 김가의 안해를 우격다짐

으로 끌어다가 누이려고 하였다. 한동안 아이구지구 소리와 우당퉁당 소리가 같

이 났다. 돌석이가 김가의 안해를 잔뜩 끼고 누워서 머리맡에 앉은 계집더러 “

너는 너 좋아하는 놈한테루 가거라”하고 말하니 계집은 분하기보다 우습기가

더하고 부끄러운 마음보다 해괴스러운 생각이 더 많아서 “어디 가 자지 못해서

발채 잠자고 있으까”하고 말대답하였다. “이년아, 아가리 찢어놓기 전에 어서

나가거라” 돌석이가 소리를 지르자 계집은 후다닥 뛰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며 지겟문을 메어박듯이 닫히었다.

김가가 저의 계집이 돌석이 집에 잡혀 있는 줄을 알고 삽작 밖에 와서 동정을

살펴보았다. 봉당의 화톳불을 거의 다 꺼져가고 건넌방은 캄캄하고 안방에만 등

잔불이 키어 있는데 화톳불을 끼고 두 여편네 마주 앉았는 그림자가 방문에 비

쳐 보이었다. 김가가 삽작문을 몇 번 흔들어보다가 집 뒤로 돌아와서 울 밑에

개구멍을 뚫었다. 수숫대 울타리가 해가 묵어 다 삭아서 구멍 뚫기는 힘이 들지

않았으나 버석버석 소리는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김가가 울 안에 들어와서 안방

으로 가까이 가려고 할 즈음에 방문 여닫치는 소리가 나서 안방 굴뚝 뒤에 가만

히 붙어서 있었다. 돌석이의 수양모가 관솔불을 손에 들고 나와 돌아다니다가

김가 섰는 굴뚝 뒤로 돌아오니 김가가 들켜나기 전에 미리 앞으로 나서서 나직

이 “할머니”하고 불렀다. “아이구머니, 이게 누구야?”, “나요”, “김서방

아니라구?”, “녜, 그렇소”, “어디로 들어왔어? 울 넘어 들어왔군. 삽작을 열

어달라지 그게 무슨 짓이야” 늙은이가 김가를 사살할 때 안방에 있는 돌석이의

안해가 굴뚝뒤에서 나는 말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쫓아나왔다. “이게 누구야?”

“내지 누구야. " “어디로 들어왔소?” “어디로 들어왔던지 그건 나중 알구 이

리 와서 내 말 좀 들으우. " 계집이 늙은이를 보고 “어머니, 관솔을 날 주고 먼

저 들어가시우. " “김서방하구 같이 안방으로 들어가 이야기하자꾸나. " “떠들

지 말고 먼저 들어가세요. " “무슨 일이든지 일을 크게 맨들면 뒤탈이 많은 법

이야. 공연히 긁어부스럼 맨들지 마라. " “내가 무슨 일을 맨들어요? 아무쪼록

일 없도록 할 테니 염려말고 들어가세요. "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너도 곧 들

어오너라. 어디로 가지 마라. " 늙은이가 돌아서 간 뒤에 계집은 김가에게 와서

바짝 붙어서서 얼굴을 치어다보며 “알고 왔소?” 하고 명토없이 물었다. “무

얼 알구 와?” “둘이 끼고 자는 걸 알고 왔느냐 말이오. " “둘이 끼고 자다니?

” “모르고 왔구먼. 어디 잠깐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 계집이 둘레둘레 돌아보

다가 “부엌으로 갑시다. " 하고 김가를 끌고 부엌 안으로 들어와서 관솔불은 부

뚜막 위에 놓고 잎나무를 깔고 둘이 나란히 붙어 앉았다. “아까 낮에 안해 자

랑을 너무 하더니 자랑 끝에 불이 붙었소. " “낮에 여기 와서 야료를 했다지?

지금까지 여기 있지. " “여기 있지 어디 가. 둘이 끼고 잔다니까. " “참말이야?

” “내가 언제 거짓말합디까. 연놈이 펼쳐놓고 끼고 뒹구는 꼴은 사람이 눈으

로 차마 볼 수가 없습디다. " “건넌방에서 자겠지?” 하고 김가가 벌떡 일어서

는데 계집이 치어다보며 “지금 막 들이칠 테요. 아까 낮에는 돌팔매 맞아죽을

까 봐 겁을 내더니 지금은 겁이 안 나오?” 하고 조롱하듯이 말하였다. 김가가

잠깐 동안 입술을 깨물고 섰다가 다시 앉아서 “나 혼자 맨손으로는 어려우니까

내가 얼른 갔다 올테야. 그 동안에 떠들지 말구 내버려 두어. 등시포착으루 연놈

을 다 죽이면 우리 둘이 거침새없이 같이 살겠네. " 하고 계집의 귀에 속삭이니

계집이 서슴지 않고 “그럼 얼른 가서 단단히 차리고 오시우. " 하고 당부하였

다. “늙은이에게두 눈치 보이지 말어. " 김가가 말하고 곧 일어서 나간 뒤에 계

집은 안방에 들어와서 김가를 잘 말하여 보냈다고 늙은이를 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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