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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30)

카지모도 2023. 2. 13.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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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련이는 할 말이 없든지 “긴 사설 고만두어요. "하고 고개를 밖으로 돌리니

이방이 딸의 뒤를 받아서 사위를 데리고 말하였다. “네 말대루 하면 사람을 사

귀는데 근본을 보지 않더래두 인물은 보아야 하지 않느냐?”“인물은 물론 보아

야지요. "“인물은 어떻게 보느냐?”“어떻게 보다니요? 눈으로 보구 인물을 알

지요. "“인물을 보는데 신수두 보구 기상두 보구 행동두 보구 재주두 보구 여러

가지 보는 것이 있지만 이것저것 다 고만두구라두 상 하나는 보구 사궤야 낭패

가 없다. 그렇기에 옛날 유명한 사람은 대개 다 상 보는 법을 짐작해서 지인지

감이 있단 칭찬들을 들었다. 내가 아는 것은 없지만 배돌석이 상이 잘 죽을 사

람의 상이 아니더라. 얼굴은 반상이구 눈은 사목인데 사목이란 뱀의 눈이야. 그

런 사람은 친하게 사귀는 게 불긴하니라. "“그렇다구 하더래두 이왕 사귄 사람

을 까닭없이 끊는 수야 있습니까?”“내가 지금 절교하란 말이 아니라 그걸 짐

작해 두란 말이다. "“네,알았습니다. "

그 뒤에 한동안 돌석이가 놀러오지 않고 천왕동이도 찾아가지 않아서 서로 적

조히 지내는 중에 청석골 박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보러 왔다가 돌석이의 이야기

를 듣고 이봉학이와 교분 있는 사람이니 한번 찾아본다고 말하여 천왕동이가 같

이 가기로 하는데 이방이 관가의 말미를 얻어주고 이방의 안해가 길에서 요기할

흰무리를 쪄서 주었다. 천왕동이와 유복이가 식전에 조반을 먹고 떠나서 오다가

흰무리로 점심 요기하고 해가 한나절이 훨씬 기운 뒤에 경천역말을 들어왔다.

돌석이네 집에 와서 보니 삽작이 닫히고 집안이 괴괴하였다. 천왕동이가 삽작을

흔들면서 “배대정. "“배서방. "“돌석이. "갖가지로 불러보았으나 안에서 대답

이 없었다. “이 사람이 집에 없는가 보오. "“역졸들 모여 노는데 가 있겠지.

그리 가보세. "“그 사람의 수양어머니와 안해는 있을 텐데 도무지 기척이 없으

니 웬일일까?”천왕동이가 다시 “할머니!”하고 불러보고 또 “아주머니!”하고

불러보았다. 닭 한마리가 어디서 꼬댁꼬댁할 뿐이요 사람의 소리는 조금도 나지

않더니 건넌방 옆문이 부스스 열리면서 사내 하나가 봉당으로 나왔다. 그 사내

가 키는 후리후리하고 얼굴은 끼끗하였다. 유복이는 돌석이의 앙가바틈한 키와

가무잡잡한 얼굴을 본 일이 없는 까닭에 그 사내를 돌석인 줄 여기고 천왕동이

더러 “주인이 집에 있네그려. 낮잠을 자다가 일어난 모양일세. "하고 말하니 천

왕동이가 아니라고 고개를 외졌다. 천왕동이는 그 사내가 낯이 익으나 전에 어

디서 본 것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 유심히 바라보면서 말을 물었다. “배대정이

집에 없소?”“녜. "“어디를 갔소?”“사신 행차를 뫼시구 평안도 갔소. "천왕

동이는 엊그제 봉산서 중화하고 간 북경 가는 사신 행차를 생각하고 고개를 끄

덕이었다. “아주먼네두 집에 없소?”“녜. "“댁은 누구요?”“나는 동네 사람

인데 이 집 할머니가 읍내 들어간다구 집 좀 보아달라구 해서 와서 있소. "“배

대정의 아낙네두 읍내 갔소?”“녜. " 그 사내가 건넌방 편을 흘끗 돌아보았다.

“배대정이 언제쯤 오겠소?” “나두 모르겠소. ” “오늘내일간 오겠소?” “

글쎄요. ” 천왕둥이가 그 사내에게 묻는 말을 그치고 돌아서서 유복이와 의논

하였다. “어떻게 할라우?” “글쎄,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지금 해가 너무

기울었는데 돌아 갈수 있겠소?” “이 사람아, 자네는 갈 테지만 나는 못 가겠

네. ” “갈 수두 없구 묵을 수두 없구 난감한 일이구려. ” “그럴 것 없이 황

주읍내 들어가면 하룻밤 과객질하세. ” “황주읍내 들어가면 과객질 안 하구두

잘 데가 있소. ” “그러면 더 말할 것 없이 황주읍내루 들어가세. ” “그리합시다.

내일 한번 다시 들러서 안 왔거든 봉산으루 오라구 말이나 일러두구 갑시다. ”

천왕둥이가 유복이를 데리고 경천역말서 황주읍내로 들어와서 아는 사람의 집

에서 하룻밤 숙식하고 이튿날 아침 뒤에 다시 경천역말로 나오는데 황주성문 밖

을 나서서 얼마 오지 아니하여 늙은 여편네 하나가 머리에 곡식 자루를 이고 가

는 것을 만났다. 천왕동이와 유복이가 서로 이야기하며 늙은 여편네의 옆을 지

나 오는 중에 그 늙은 여편네가 “이게 누구시오? 어디 갔다 오시오?” 천왕동

이를 보고 알은체하였다. 천왕동이에게 말을 붙인 늙은 여편네가 곧 돌석이의

수양어머니였다. “어제 읍에 와서 자금 나가는 길이오?” 하고 천왕동이가 물

으니 “어제 읍에서 나를 보셨구려. 보고도 모른 체하셨단 말이오? 지금도 내가

먼저 인사를 아니했더면 그대로 지나가셨겠지. ” 하고 돌석이 수양모는 당치

않는 사설을 하였다. “읍에서 보았으면 왜 인사를 아니했겠소. 공연히 책망 하

지 마우. ”“그럼 내가 어제 읍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아셨소?” “어제 집 보

는 사람이 말합디다. ” “집 보는 사람이라니 누구 말이오?” “어제 이 손님

을 뫼시구 집에 가니까 아무두 없구 젊은 사내 하나가 집을 봅디다그려. ” “

우리 집에를 갔었소?” “배서방을 전위해서 찾아온 길이오. ” “그럼 우리 집

에서 주무시고 기다리시지요. ” “주인 없는 집에서 어떻게 잔단 말이오. ” “

주인이 없더라도 내나 집에 있더라면 붙들어 주무시게 할걸. ” 돌석이 수양모

는 괴탄하고 나서 유복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 손님은 어디서 오셌소?”

“송도서 오신 손님이오. ” “송도서 전위해서 배서방을 보러 오셌소?” “내

게 왔다가 배서방 말을 듣구 한번 만나보러 오셧소. ” “사신 행차를 뫼시고들

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중화서 돌아오고 배서방은 대동까지 가게 되었답니다. 대

동을 갔더라도 오늘은 올듯하오. ” “오늘은 일찍이 올까요?” “그 동안 왔는

지도 모르지요. 얼핏 나가봅시다. ”

돌석이 수양모가 유복이와 천왕동이의 뒤를 따라오는 너무 떨어지는 것을

유복이가 딱하게 생각하여 “머리에 인 자루가 무거워 보이는 구려. 우리가 가

지구 갈께 이리 주시우. ” 하고 곡식자루를 달라고 말하니 돌석이 수양모가

입으로는 “미안해서 어떻게 하라구요. ” 하고 말하면서 자루를 머리 위에서

내리니까 유복이가 받기 전에 천왕동이가 “나를 주우. ” 하고 얼른 받아 옆에

끼었다. “좁살이오. ” “전에 읍내 살 제 남에게 꾸어주었던 인제 가서 받았

소. 나는 내버려둔 것인데 며느리가 가서 받아오라고 성가시게 굴어서 어제 부

대끼다 못해 나왔소. ” “며느리는 어째 읍에 두구 혼자 나오시우?” “며느리

를 읍에 두다니 뉘 며누리 말이오? 우리 며느리는 집에 있지요. 어제 집에서 못

보셨소?” “글쎄, 아무두 없구 젊은 사내가 집을 보더라니까. ” “그애가 마

슬 갔든가 어째 집에 없었을까?” 늙은 여편네의 말을 듣고 천왕동이는 유복이

를 돌아보며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젊은 사내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얼굴은 희여멀겋고 키는 큰 킵니다. ” “아랫말 김서방이로군. ” “나두 어

디서 본 사람 같습니다. ” “호랭이 사냥 갔을 때 보셨겠지. 그 사람이 사냥꾼

이오. ” “옳지 옳지, 새남서 한번 보았군. ” “김서방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지요. ” “이야기 고만하구 길이나 빨리 걸읍시다. ” 천왕동이와 유복이는

돌석이 수양모와 동행하여 돌석이 집에 와서 보니 돌석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돌석이 안해만 혼자 집에 있었다. 돌석이 안해가 인사할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천왕동이는 유복이를 돌아보며 입을 비쭉 내밀었다. 천왕동이와 유

복이가 돌석이 집 안방에 둘어앉아서 술대접까지 받고 한나절이 지나도록 기다

리다가 돌석이가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봉산으로 돌아가지고 공론하였다. “더

늦으면 우리 가기만 고생될 모양이니 고만 일어서세. ” “그럽시다. 말이나 일

러두고 갑시다. ” 돌석이 오거든 만나고 가라고 돌석이 수양모는 한사하고 붙

드는데 말미 얻은 날짜가 있어서 불가불 가야 한다고 천왕동이가 떼치고 일어서

며 말하였다. “박서방이 우리게서 수일 더 묵을 테니 그 동안에 한번 놀려 오

라구 내 말루 전하시우. ”“박서방이라고 하면 누군지 알겠소?”“송도 박서방

이라면 알 테니 염려 마우. ”돌석이 수양모가 건너방 쪽을 향하고 “이애 손

님들 가신단다. ” 하고 소리친 뒤에 잠시 대답을 기다리다가 “그 동안에도

어디를 갔군. ” 하고 혀를 찼다. 돌석이 수양모가 혼자 삽작 밖에까지 나와서

천왕동이와 유복이의 가는 것을 보고 도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아랫말 김가의

안해가 허둥지둥 쫓아왔다. “왠일이오? ” “그애 아버지 여기 와 있지요?”

“아니오. ” “아니가 다 무어요?” 내가 알고 왔는데. “ ”안 왔으니까 안 왔

다지 온 걸 내가 기일 까닭이 있소?“ ”요새 밤낮 이 집에 와서 산답디다그려.

“ ”요새 자주 오지만 오늘은 안 왔소. “ ”안 오다니 말이 되나. 어디 들어가

봅시다. “ ”들어와 보구려. “ 김가의 안해가 집에 들어놔서 안방과 건넌방이

모두 빈 것을 보고는 ”당신 며느리 어디 갓소?“ 하고 물어서 돌석이 수양모가

”나도 모르우. “ 하고 대답하니 김가의 안해는 곧 눈이 샐쭉해지며 ”연놈 다

어디 숨겨놓고 날 속여!“ 하고 돌석이 수양모의 턱살을 치받으려고 하였다. ”

“이년의 여편네가 미쳤나. ” 돌석이 수양모는 뒤로 물러서고 “미친 것이 됩다

나더러 미쳤대. 나가서 행길을 막고 물어봐, 누가 미쳤나. ” 김가의 안해는

앞으로 대어들었다. “이년아 대들지 마라. ” 돌석이 수양모가 김가의 안해를

떠다미니 “늙은 것이 뉘게다 손을 대 !” 김가의 안해는 돌석이 수양모의 머리

를 움켜쥐었다. “화냥년아, 놓아라! 안 놓을 테냐!” “누가 화냥년이냐. 며느리

화냥질시켜 먹는 것이 화냥년이지, 누가 화냥년이야. ” “누가 며느리를 화냥질

시켜 먹느냐?” 돌석이 수양모와 김가의 안해가 서로 악을 써가며 머리채를

마주잡고 끄들었다. 싸움이 어우려져서 서로 안고 자반 뒤집기를 해가며 손톱으

로들 할퀴고 입으로들 물어뜯었다. 이웃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어서 뜯어

말리고 싸움하는 까닭을 물었다. “까닭도 없이 저년이 내 집에 와서 안방 건넌

방 수탐을 해보고 내게다 선손을 거니까 내가 가만히 있어. 내가 늙어서 저년을

병신을 못 맨들었지, 아이구 분해 죽겠네. " 돌석이 수양모는 헐헐하고 "며느리

를 화냥질시키는 늙은 잡것이 됩다 나더러 화냥년이라고 욕을 하니 사람이 분해

서 살 수 있소. " 김가의 안해는 씨근씨근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서

수근수근 지껄일 때 "이게 다 웬 사람들이냐?" 하는 말소리가 들려서 여러 사람

이 돌아보니 집주인 배돌석이가 삽작 안에 들어섰다. "웬일들이오?" 하고 묻는

돌석이의 말에 이웃 사람 하나가 "사움을 말리러 왔소. " 하고 대답하니 돌석이는

수양모와 김가 안해의 꼴을 번갈아 바라 보고 나서 "싸움을 말려놓았거든

고만들 가시우. "하고 이웃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리 와서 내 말 듣게.

어서 이리 와. " 수양모가 부르는 것을 돌석이는 역증난 소리로 "가만히 좀 있수.

"하고 대답한 뒤에 이웃 사람들이 삽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섰는데

쪼그리고 앉았던 김가의 안해가 일어나서 여러 사람 뒤를 따라나가려고

하니 돌석이가 좆아와서 "게 좀 있다 나중 가우. " 하고 앞을 가로막았다. 이웃

사람들이 또 무슨 구경거리나 있을까 생각하고 삽작 밖에 나가서 흩어져 가지

아니하니 돌석이가 삽작께로 나와서 "왜들 안 가구 여기 있소? 어서들 가우. "

하고 눈가지 부라려서 모두 좆아버리고 삽작문을 닫아걸고 들어왔다. "우리 방으

루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 하고 돌석이는 수양모와 김가의 안해를 끌고 안방

에 들어와서 방문까지 닫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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