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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33)

카지모도 2023. 2. 16.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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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늙은이가 고만 자자고 말하여 이불 하나를 고부 같이 덮

고 누웠을 때 별안간 삽작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곧 여러 신발소리가 들리었다.

안방의 고부가 일시에 이불을 젖히고 뛰어일어났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삽

작을 부수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수효가 근 십 명인데 손에 무엇을 든 사

람도 한둘이 아닌 성불렀다. 영문 모르는 늙은이가 벌벌 떠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김가가 사람 몰고 온 것을 짐작하고 김가가 연놈을 죽이고 거침없이

같이 살겠다고 할 때 단단히 차리고 오라고 당부까지 한 계집이 역시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건넌방 문이 펄떡 열리며 “너희놈들이 다 누구냐?” 돌석이의 야

무진 말소리가 들리고 마당에서 발을 구르며 “이놈아 내 기집 내놔라. " 김가의

볼멘 말소리가 들리었다. “오, 김가놈이냐? 네 기집은 고사하구 내 기집가지 다

내주마. " “남의 기집을 펼쳐놓구 데리구 자두 아무 일이 없겠구나. " “네놈하

구 말다툼하러 온 줄 아느냐, 이놈아. " “네가 여러놈을 끌고 왔다부다만 내 손

에 돌주머니 들었다. 열놈, 스무 놈 가지고는 내게 범접을 못할 테니 숫제 다른

놈들을 다 보내구 너만 남아서 나하구 이야기하자. 내가 창피해서 일을 왁자하

게 하구 싶지 않다. " “이놈아 돌주머니 가졌다면 어떤 개아들놈이 겁낼줄 아느

냐?” “참말루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여기서 보이는 너희놈들

의 대가리 여섯을 삽시간에 모주리 깨어놓을 테니

구경 좀 하려느냐. " 김가가 저의 결찌와 동무를 여섯 사람 끌고 온 까닭에 김

가까지 치면 사람의 수효가 일곱이건만 한 사람은 뒤에 가려서 돌석이 눈에 보

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에게서 ‘자’ 소리가 나자 여러 사람에게서 ‘으

악’ 소리들이 났다. 별빛 아래 시커먼 그림자들이 좌우쪽으로 쫙 갈라지며 한

패는 바로 건넌방 앞문을 들이치고 한 패는 봉당으로 올라와서 건넌방 지겟문을

들이쳤다. 앞문을 들이치는 패 중에서 하나가 아이쿠 하고 나가자빠질 때 건넌

방 안에서 “이년 봐라! 이년아 인내라. 안낼 테냐, 이년아!” 돌석이의 급한 말

소리가 나더니 쿵쿵 벽이 울리는 중에 “나를 죽여도 돌주머니는 안 줄 테다. "

김가 안해의 악쓰는 소리가 났다. 돌석이가 돌주머니를 김가의 안해에게 빼앗긴

모양이다. “옳다. 들이쳐라!” 건넌방의 앞문과 지겟문이 모두 와지끈와지끈 부

서졌다. “저 벽에 붙어섰다. " “아니다. 저 구석에 섰다. " “마구 치지 마라.

우리 손으로 죽여선 못쓴다. " “죽이구 살리는 건 김서방에게 맡기세. " 여러

사람이 뒤떠드는 끝에 “이놈 봐라. " “내뺀다. " 급한 소리들이 연거푸 났다.

돌석이가 붙드는 사람을 뿌리치며 곧 앞문께 섰는 사람을 발길로 내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던 것이다. 여러 사람이 우르르 마당으로 몰려 내려오는데 그중에 한

사람은 안방으로 뛰어들어왔다. 늙은이와 며느리가 서로 끼고 앉아서 떠는 것은

본 체도 아니하고 그 사람이 곧 관솔에 불을 당겨가지고 나가서 화토 바탕에 불

을 놓았다. 마당안이 환하여졌다. 여러 사람이 이리저리 찾는 중에 돌석이가 장

독대 옆에 나섰다. "저기 있다. " 여러 사람이 몽치를 휘두르며 쫓아가다가 아이

쿠지쿠 소리들을 지르며 뒤로 나가자빠지는데 김가는 어느 틈에 살그머니 장독

대 뒤로 돌아가서 돌석이의 정수리를 뒤에서 내리치려고 몽치를 둘러 메었다.

돌석이가 방에서 튀어나오며 바로 장독대로 달려온 것은 장독대 옆에 돌이 많

은 까닭이었다. 땅에 박힌 돌을 더듬어 뽑느라고 한참 엎드려 있다가 여남은 개

좋이 손모아놓고 일어났었다. 여러 사람이 보고 쫓아올 때 앞으로 들어오는 사

람의 면상을 노려보느라고 김가가 뒤로 도는 것은 미처 눈살피지 못하였다가 뒤

에서 나는 인기척에 놀라서 얼핏 한 옆으로 비켜설 때 왼편 어깨가 지끈 하였

다. 정수리를 노리고 내리친 김가의 몽치가 어깨에 떨어진 것이다. 돌석이가 엉

겁결에 장독대 위에 뛰어올랐다. 한참 동안 독하나를 끼고 돌면서 김가의 몽치

를 피하다가 장독대에서 뛰어나오는 길에 조그만 항아리 하나를 번꺽 들어서 김

가에서 내던졌다. 던지는 솜씨가 남유다른 사람이라 항아리가 감가의 머리에 맞

아 깨어지며 그 속에 들었던 장물이 쏟아졌다. 김가가 자빠진 뒤에 김가의 몽

치로 김가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한 번 치고 두 번 칠 때까지 김가의 입에서 아

이쿠 소리가 나오더니 세 번째 칠 때는 소리조차 없어졌다. 소리 없어진 것이

죽은 표이거니 짐작하면서도 돌석이는 한 번 더 치고 두 번 더 치고 세 번까지

더 쳐서 김가의 대가리를 여지없이 바수어놓고야 손을 그치었다. 돌석이가 죽은

김가를 내버리고 돌 맞고 자빠진 사람에게 와서 몽치 하나를 갈아 쥐고 안방으

로 들어갔다. 돌석이의 모양이 독살난 삵과 같았다. 계집은 고사하고 수양모까

지 돌석이의 모양을 보고 진저리를 쳤다. “이년! 너두 김가 따라 저승으루 가거

라. " 하고 돌석이가 곧 몽치로 계집을 패기 시작하였다. 말리려고 붙드는 수양

모는 허깨비같이 떠다박지르고 살려 달라고 비는 계집은 김가와 같이 해골을 바

수어 죽이었다. 돌석이가 건넌방으로 건너와서 방구석에 쓰러져 있는 김가의 안

해를 보고 “돌주머니를 뺏어간 까닭에 내가 죽을 욕을 보았다. 너두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 하고 얼러메었다. 그러나 김가의 안해는 머리를 여러 번 몹

시 벽에 부딪뜨리고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이라 겁낼 까닭이 없었다.

“데리고 잔 값으로 살려줄까. " 돌석이가 김가의 안해에게 와서 품에 지닌 돌

주머니를 뒤져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말고 헌 의복을 찾아내서 피묻은 옷과

바꾸어 입는데 왼편 팔이 쓰기 거북하여 그제야 비로소 만져보니 어깨가 상하고

저고리 안에 피까지 배었었다. 이웃 사람들이 돌석이 집에 야단난 것을 계집

까닭으로 싸움이 벌어졌나 생각하고 구경삼아 모여들어다가 사람이 늘비하게 자

빠진 것을 볼 뿐 아니라 사람 죽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각기 흩어져 가서 소

문을 내놓기도 하였거니와 눈퉁이 코뚱이에 돌을 맞고 자빠졌던 사람들이 정신

을 차린 뒤에 뿔뿔이 도망해 가서 뒤설레를 떨었다. “살인났다. " “배돌석이

가 살인했다. " 소문이 삽시간에 돌아서 경천역말이 아닌밤중에 발끈 뒤집혔다.

동임들이 나서서 동네 사람을 지휘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돌석이 집에 몰려와서

전후좌우로 둘러싼 뒤에 장정 역졸 오륙 명이 삽작 안으로 들어왔다. 돌석이가

바깥 기척이 수상한 것을 듣고 돌주머니를 한 손에 들고 건넌방에서 내다보며

“ 너놈들은 또 누구냐?” 하고 소리지르니 앞선 역졸 하나가 “배서방 자네가

큰일을 저질렀네그려. 그렇지만 등시포한 셈인데 별일 있겠나. 이리 나오게. 우

리하구 같이 가세. " 하고 온언순사로 말하였다. “너희들이 날 잡으로 온 모양

이구나. 그렇지만 내가 잡혀가구 싶어야 잡혀가지. " “공연히 거센 체 말구 순

순히 같이 가세. " “잔소리 말구 돌 하나 받아라. " 돌석이의 손이 번뜻하며 그

역졸의 앞이마가 돌에 터져서 아이쿠 하고 주저앉았다. 역졸들은 이것을 보고

그만 뺑소니들을 쳐서 밖으로 나갔다. 전후좌우에서 일어나는 아우성을 들으면

서 돌석이는 도망질할 차림을 차리었다. 머리를 수건으로 동인 다음에 거먹초립

을 쓰려다가 쓰지 않고 발로 짓밟아 망가지르고 허리띠를 졸라매고도 여편네의

허리끈으로 저고리를 눌러 덧매고 바지가랑이의 오금 밑을 바짝 동이고 짚신 감

발을 가뜬하게 하였다. 돌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돌 댓 개는 손에 들고 건넌방에

서 나서며 “한 개 받아라. " 마당으로 내려오며 “한 개 또 받아라. " 삽작께로

나오며 “한 개 더 받아라. " 돌팔매 세 번에 삽작 밖에 나와도 앞을 막는 사람

이 없었다. 돌석이가 뛰기 시작한 뒤에 뒤에서 “내뺐다!” “쫓아라!” 고함치

는 소리는 굉장하였다. 그러나 부모 죽인 원수가 아닌데 돌팔매에 대가리 깨어

질 것을 헤지 않고 돌석이를 뒤쫓을 사람은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서 호랑이 쫓듯이 아우성들만 질렀다. 돌석이가 뒤쫓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는 찬찬히 큰길로 걸어서 봉산을 향하고 갔다. 밤길이 더딜 뿐 아니라 경천서

나설 때 밤이 이미 깊었던 까닭에 동이 환하게 틀 때 돌석이는 새남

을 지났다. 돌석이가 전날 저녁밥을 든든히 먹었건만 새남 지날 때부터 시장기

가 몹시 들더니 동선령 내려올 때쯤은 허리가 착 꼬무라져서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봉산읍내까지 대어갈 가망이 없어서 돌석이는 가까운 촌가를

찾아들어갔다. 촌사람의 안타까운 아침밥을 나눠먹고 요기는 되었으나 몸이 갑

자기 천근같이 무거워지며 앉아 있기도 가빠서 돌석이는 한숨 자고 일어나려고

마음을 먹고 염치 불고하고 밥먹은 자리에 쓰러졌다. 돌석이가 한 번 쓰러진 채

이내 정신을 놓고 앓는 소리 하였다. 그 집주인이 민망하기는 짝이 없으나 정신

모르고 앓는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둔 까닭에 돌석이가 하

룻낮 하룻밤을 정신없이 죽도록 앓고 이튿날 식전 돌 만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

리고 일어 앉았다. 돌석이 욕심에는 하루쯤 더 누워 있고 싶었으나 가기를 조이

는 주인의 시각이 민망하여 하는 것을 보고 밥물 한두 모금으로 곡기한 뒤에 주

인에게 치사하고 촌가에서 나서는데 아랫도리가 허전허전하여 작대기 하나를 얻

어서 지팡이 삼아 짚었다. 중병 치른 사람같이 쉬엄쉬엄 걸어서 봉산읍내 삼십

리 못 되는 길을 한나절이 지나도록 걸어왔다. 돌석이가 봉산으로 오기는 황천

왕동이에게 와서 피신하려는 것이 아니고 박유복이를 만나서 따라가려는 것이라

천왕동이야 장청에 출사하여 만나든 못 만나든 백이방의 집에 가면 유복이의 행

지를 알려니 생각하고 바로 쇠전거리로 올라오는데 거리에서 장교 두 사람과 마

주쳤다. 장교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천왕동이의 반연으로 한두 번 만나서 인

사까지 한 사람인데 돌석이를 보고 인사도 아니하고 옆에 동무에게 한두 마디

귓속말을 하더니, 주왕사를 손에 든 낯모르는 장교가 돌석이 앞에 와서 “배대

정이 아니오?” 하고 물었다. “누구시오?” “나는 살인 죄인을 잡으로 나온

장교요. " 돌석이가 살인죄인이란 말을 듣고 얼굴빛이 변하여지자 “아따, 이놈

아 줄 받아라. " 하고 그 장교가 주왕사로 돌석이를 묶는데 돌석이 아는 장교도

얼른 와서 거들었다. 돌석이는 항거할 사이도 없고 항거할 기운도 없어서 곱게

묶이었다. “나를 왜 묶소?” “어제 황주서 공문이 와서 다 알았다, 이 놈아. "

돌석이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말을 묻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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