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촉해서 두어 술 떠먹구 왔습니다.”“아까 더 생각한다든 건 인제 말하게 됐
소?” “조용한 틈에 말씀하려구 급히 왔습니다.” “대체 무슨 좋은 계책이오?
” “안 뜰아랫방 같은 조용한 데 가서 말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밖
에 샐까 봐 염려요? 그럼 이 사랑에 딴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면 되겠구려.”
꺽정이가 밖을 내다보며 “불출이 게 있느냐?” 하고 소리치니 신불출이가 녜
대답하며 곧 쫓아와서 앞 툇마루에 양수거지하고 섰다. “능통이 밥 먹으러 갔
느냐?” “아직 안 갔습니다.” “능통이는 밥 먹으러 가라구 하고 너는 밖에
나가 서서 사랑에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그러구 너두 내가 부르기 전엔
들어오지 마라.” “두령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오리까?” “내가 사람을 금하랬
다고 말 못 한단 말이냐!”“녜, 잘 알았소이다.” 불출이가 미처 밖에 나가기
전에 오가가 사랑마당으로 들어왔다. 오가는 낮에 여러 두령이 모였을 때 빠진
까닭에 사과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불출이가 오가를 보고 한걸음에 쫓아내
려가서 앞을 막으며 “대장께서 사람을 금하라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꺽
정이가 방에서 듣고 툇마루에 나서서 “저리 비켜서라!” 하고 불출이를 꾸짖
어 한옆으로 비켜세운 뒤에 한자리에 박은 듯이 서 있는 오가를 내려다보며 “
무슨 일이 있어 오셨소?” 하고 물으니 오가는 “아니요, 낮에 못 와서 잠깐 보
입구 가려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다른 일은 없소?” “없습니다.”
“그럼 가시우. 지금 서종사의 계책을 들을 참인데 계책이 밖에 새면 안된다구
해서 사랑에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금하라구 방금 영을 내린 끝이오.” “그
렇습니까. 그럼 바루 가겠습니다.” 오가가 돌아서 나간 뒤에 꺽정이는 “인제
밖에 나가 있거라.” 하고 일러서 불출이까지 내보내고 방에 들어와 앉아서 “
자, 인제 계책을 들어봅시다.” 하고 서림이의 말을 재촉하였다. 서림이가 저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아까 저 간 뒤에 여러분이 더 의논들 하셨습니까?” 하고
물어서 꺽정이가 낮에 의논들의 골자 두 가지를 이야기하여 들린 뒤 “내가 서
종사하구 상의해서 결정하기루 했소.” 하고 말하였다. “두 가지 의논이 다 좋
습니다. 그러나 도대체루 말하면 이번 관군은 그다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관군의 속을 어떻게 알아봤소?” “별루 알아본 건 없지만 제 속에 요량이 있
습니다.” “요량을 좀 이야기하우. 어디 들어봅시다.” “지금 북쪽으루 내려
온다는 것은 분명 신계 군사일 게구 서쪽으루 들어온다는 것은 주장 평산 군사
일 게구 동쪽과 서쪽을 에워싼다는 것은 송도 군사일 텐데 이중에 혹 경군이 섞
였을지는 모릅니다. 늦은 봄에 황해감사가 갈리구 송도 도사가 새루 나지 않았
습니까. 사람 좋은 전 황해감사가 대간의 탄핵을 맞구 갈린 것두 우리네 때문이
구 남행짜리루 내려오던 송도 도사를 전에 없이 호반이 해온 것두 우리네 때문
이니까 황해감사와 송도유수가 협력해 가지구 우리를 치러 오는 것이 벌써 있음
직한 일이건만 황해감사나 송도 도사나 온 뒤 서너 달이 지나두룩 아무 소리 없
다가 인제 일으키는 것은 이번에 조정 명령이 내린 모양입니다. ” “그런데 염
려할 거 없다는 건 무얼 보구 하는 말이오?” “아무리 사면팔방으루 들어오드
래두 우리 힘으루 막을라면 막을 수 있구 피할라면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슬그머니 피해 주면 어디 가서 좀도적을 잡거나 아무 까닭 없는 백성을 잡아다
가 치도곤으루 두들겨서 대적을 만들어 색책하구 말 것입니다.” “피하다니
창피스러운 소리 하지 마우.” “앞으루 큰일을 하실 텝니까? 만일 큰일을 하실
테면 작은 창피는 참으셔야 합니다.” “창피를 참아서 될 일이 무어요?” “지
금 우리 힘으루 해주 감영 하나를 뺏어서 차지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 잘
하는 사람이 생각해 보구려.” “화내지 말구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앞으루 큰일을 하실려면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황해도를 차지하시구 그 다음에
평안도를 차지하셔서 근본을 세우신 뒤에 비로소 팔도를 가지구 다투실 수가 있
습니다. 그런데 황해도를 차지하기기까지는 아무쪼록 관군을 피하시구 속으루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꺽정이가 서림이 말을 들을 때 눈썹을 치어들리고 입
이 벌려지더니 몸을 움직여서 서림에게로 가까이 나앉으며 “황해도 하나를 차
지하두룩 되재두 졸개가 사오백 명 있어야 하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졸개
는 그리 많지 않아두 될 수 있을 겝니다.” “어떻게 해서?” “다른 패들을 쓸
테니까 우리 패가 많지 않아두 됩니다.” “다른 패라니 어떤 패 말이오?” “
황해도 땅에 있는 패만 치드래두 평산에 운달산패와 멸악산패가 있구 서흥에 소
약고개패와 노파고개패가 있구 신계 토산에 학봉산패가 있구 풍천 송화에 대약
산패가 있구 황주 서흥에 성현령패가 있구 재령에 넓은여울패, 수안에 검은돌패,
신천에 운산패, 곡산에 은금동큰고개패, 이외에두 각처에 여러 패가 있지 않습니
까. 한패가 적으면 삼사 명, 많으면 수십 명씩 될 터이니 이런 패를 우리 휘하에
넣은 뒤에 각처에서 일시에 일어나두룩 기일을 정해 주구 그 기일에 우리는 해
주 가서 감영을 뺏구 들어앉으면 황해도가 우리 것이 될 것 아닙니까?” “그럼
이후루는 여러 패들이 손아귀에 휘어넣두룩 애를 써야겠소.” “우리의 성세를
가지구 조금만 애를 쓰면 우리 손아귀에 척척 휘어들 겝니다.” “지금 관군을
피하자면 어떻게 피해야겠소?” 하고 꺽정이는 그동안에 벌써 창피하다던 것도
잊어버리고 피할 계책을 믿게 되었다. 꺽정이가 관군 피할 계책까지 묻게 되는
데 서림이는 좋아서 싱글싱글 웃으며 “관군을 헛물 키일 계책이야 얼마든지 있
지요. 그런데 먼저 말씀할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무슨
말이오? 어서 말하우.” “여기가 처녑 속같은 산중이라 자리가 좋긴 하지만 우
리가 힘을 기르는 동안은 여기 한 군데 붙박여 있는 게 좋을 것 없으니 강원도
땅, 평안도 땅 또는 함경도 땅에 이런 자리를 몇 군데 만들어 놓구 이
도, 저 도루 넘나들어서 종적을 황홀하게 하는 것이 좋구요, 우리의 힘이 엔간히
자란 뒤에는 황해도에 와서 어느 산성 하나를 뺏어서 웅거하는데 그것두 거사하
기 전까지는 해주 감영에서 가깝지 않은 산성이 좋을 것입니다.” “졸개들을
끌구 이 도, 저 도루 옮겨다니자면 그게 여간 큰일이오.” “졸개는 일일이 끌구
다닐 것 없이 각처에 묻어두지요.” “각처에 묻어둔다니, 어떻게 한단 말이오?
” “우선 이번으루 말씀하더라두 우리가 관군을 피해서 다른 데루 가는데 두목
졸개 백여 명을 어떻게 다 끌구 갈 수 있습니까. 강음 이방, 평산 이방 같은 우
리의 청을 잘 들을 사람이나 토산 좌수, 장단 호장같은 우리와 기맥 통하는 사
람한테 몇 사람씩 떼어맡겨서 읍촌간에 파묻어 두어 달라지요.” “떼어맡겼다
가 우리가 다른 데루 간 뒤에 관가에 내어바치면 어떻게 하우?” “졸개를 떼어
맡길 때 말마디나 뒤를 눌러두면 아무 일 없을 겝니다. 저의들이 언감생심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강원도, 평안도 등지에다가 이런 자리를
만들자니 좋은 자리를 더러 생각해 봤소?” “생각해 보구말구요, 제 생각에 좋
은 데를 말씀하면 강원도 땅에는 이천의 광복산이나 주음동이 좋구요, 함경도
땅에는 안변 황룡산 속이나 덕원 철관 근처가 좋구요, 평안도 땅에는 양덕의 고
수덕과 맹산의 철옹성이 좋구, 성천 회산 제물성 같은 데두 좋습니다.” “이번
에 관군을 피해 간다면 어디루 가는 게 좋겠소?” “제 생각에는 가까운 이천
광복으루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천을 가재두 한두 번 접적은 해야 할걸.
” “우리가 여기서 나가기 전에 서북쪽 두 군데 관군을 물리쳐서 길을 틔어놔
야지요.”“그렇기에 한두 번 접전은 해야 한단 말이지.” “서쪽이 평산 군사구
북쪽이 신계 군사인 것을 적확히 안 뒤에는 저의들이 제대루 물러가두룩 꾀를
써보지요.” “무슨 그런 묘한 꾀가 있겠소?” “평산부사 장효범이는 사람이
덩둘하니까 오죽지 않은 꾀에두 넘어갈 것이구 신계현령 이흠례는 사람이 좀 똑
똑한 편이니까 여간 꾀에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나 어떻게든지 물러가게 할 수
있지요.” “동쪽 남쪽 관군까지 다 꾀루 물리쳐 버리면 성가시게 피할 것두 없
이 좋지 않소.” “꾀로 물리치는 것이 어디 오래 갑니까. 한번 물리치더래두 얼
마 안 돼서 곧 도루 올 게니까 우리가 아주 잠깐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
어느 틈에 벌써 어두웠구려. 불 켜놓구 다시 이야기합시다.” “저녁 진지를 아
주 잡숫구 나오시지요.” “저녁밥을 조금 먹구 왔다니 내다가 같이 먹읍시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7권 (4) (0) | 2023.05.11 |
---|---|
임꺽정 7권 (3) (0) | 2023.05.09 |
임꺽정 7권 (1) (0) | 2023.05.07 |
임꺽정 6권 (46, 完) (0) | 2023.05.04 |
임꺽정 6권 (45) (0) | 2023.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