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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4)

카지모도 2023. 5. 1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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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오주와 길막봉이는 전날 밤에 황천왕동이를 만나서 관군을 피해 다른데로

가기 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날 새벽에 박유복이를 만나서 대장 말씀을 거스리

지 말라고 당부를 받은 까닭에 꺽정이가 군령을 내리는 동안 고개들을 푹 숙이

고 앉아 있었다. 도회청에서 흩어져 갈 때 황천왕동이가 넌지시 곽오주더러 “

아침 안 먹었거든 내게루 같이 가세.” 하고 말하니 곽오주는 고개를 끄덕이다

가 “어린애.” 하고 손을 내저었다. “어린것은 업혀서 밖으로 내보낼 테니 염

려말게.” “이쁜 아주머니에게 공연시리 미움 바치게. 어린애 없는 막봉이 게루

갈라우.” “그럼 내가 아침 먹구 막봉이게루 내려갈 테니 기다리게.” “그렇게

하우.” 곽오주가 길막봉이를 따라와서 꺽정이의 군령이 창피하다고 괴탄하고

앉았는 중에 황천왕동이가 와서 세 사람이 솥발같이 앉아 쑥덕공론을 시작하였

는데 그 공론은 서림이를 때려주자는 것이었다. 꺽정이가 내린 군령은 어기지 못

하더라도 계책을 내바친 서림이는 가만둘 수 없다고 황천왕동이가 발론하여 곽

오주와 길막봉이는 다같이 찬동하고 서림이를 때려줄 소임은 곽오주가 혼자 맡

았다.

이날 점심때 곽오주가 서림이의 집 삽작문 앞에 와서 서종사를 부르니 안마루

에 들어와 앉았던 서림이가 곽오주의 목소리를 듣고 눈살을 잠깐 찌푸렸다가 도

로 펴고 딸아이를 손짓하여 불렸다. 이때 서림이의 안해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

디를 나가고 집에 없었다. “건너집 박두령께 가서 급한 일이 있으니 잠깐만 오

시라구 말씀해라. 만일 박두령이 안 계시거든 그 옆집 오두령께 가서 그렇게 말

씀해라.” 하고 가만가만 일러서 울 뒤로 내보내고 삽작 밖에 나와서 “무슨 바

람이 불어서 곽두령이 네게를 다 오셨소.” 하고 웃으며 인사하였다. “못 올때

왔소?” “천민에 말씀이오.” “내가 청할 일이 있어 왔소.” “무슨 청이오?”

“조용하게 얘기 좀 해야겠소.” “그럼 잠깐 들어오시우.” “여기는 번다하우.

내게루 가서 얘기합시다.” “니는 점심 먹구 곧 대장께를 가야겠소.” “대장께

는 가두 내게는 못 가겠단 말이오?” “그럴 리가 있소. 틈나는 대루 가리다.”

“언제 틈나기를 기다리겠소. 지금 좀 갑시다.” “지금은 못 가겠소.” “일부

러 청하러 왔는데 못 간다니 그게 말이요 무어요?” “나는 점심두 아직 안 먹

었소.” “내게 가면 찬밥이라두 있을 테니 그대루 갑시다.” “대장께서 기다리

실 텐데 언제 등 너머를 갔다 오겠소. 나중에 가리다.” “대장만 내세우면 누가

찔끔하나.” 곽오주는 목자를 부라리고 “곧 잡으러 온 것 같구려.” “그래 잡

으러 왔다.” 곽오주는 해라를 내붙이며 곧 한손으로 서림이의 멱살을 잡고 “

쥐새끼 같은 놈, 주먹맛 좀 보구야 갈 테냐!” 하고 다른 손으로 서림이의 볼치

를 보기좋게 내우렸다. 서림이가 볼을 손으로 가리고 얼굴을 한편으로 돌리면

서 “곽두령 용서하시우. 내가 잘못했소. 같이 갈 테니 멱살을 놓아 주시우.”

하고 항복을 개어올리는데 곽오주는 들은 체 아니하고 서림이를 땅바닥에 메어

꼿고 앉았다. “이 불여우 같은 놈, 아무 데서나 좀 맞아봐라.” 곽오주가 서림

이를 패어주기 시작할때 박유복이가 쫓아와서 곽오주를 꺼들어 일으키고

“네가 미쳤느냐! 이게 무슨 짓이냐!”하고 꾸짖었다. 곽오주가 박유복이게는 말

대답 한마디 아니하고 자빠져 있는 서림이를 내려다보며“이 다음 단둘이 만날

때가 있지. 어디 보자.”하고 벼르고 바로 어디로 가려고 하니“어딜 가느냐!게

있거라.”박유복이가 곽오주를 붙들어 세운 뒤에 서림이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서

림이는 입에서 피가 좀 나고 망건 뒤가 짜개지고 양편 어깻죽지를 맞아서 두 팔

을 들기 어려울 뿐이건만 꼼짝 운신 못 하는 사람같이 박유복이 팔에 온몸을 실

리었다.“상하신 데는 별루 없나 보니 다행이오.”“겉에 상한 데는 없는지 모르

지만 속으로 골병이 들었을 테니 살 수 있소?”서림이가 죽어가는 소리로 박유

복이더러 말하는데 곽오주가 옆에서 “이놈아 엄살 마라. 어디를 얼마나 맞아서

골병이 들었다느냐.”하고 다시 주먹을 부르쥐고 서림에게 달려들고 하다가 박

유복이에게 호령을 듣고 물러섰다.어디 나갔던 서림이의 안해와 아이들은 어느

틈에 와서 울상들을 하고 있고 서림이의 딸은 심부름을 똑똑히 하느라고 오가의

집에까지 가서 아비의 말을 전하고 오가와 같이 왔다. 오가는 서림이의 몰골과

곽오주의 상호를 보고 대번 곽오주가 서림이에게 행패한 것을 짐작하고 “두발

부리들을 하더래도 집안에 들어가서나 하지 졸개들이 보면 창피하지 않은가. 여

기가 고샅길이라고 졸개들이 안 오는 줄 아나? 대체 종기는 곪으면 터지구 터지

면 합창이 되는 법이니 앙숙이란 종기가 싸움으로 터져서 응어리가 쑥 빠졌으면

둘 사이의 화해가 합창일세. 선손 걸은 사람이 누군가?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하

게.”하고 입담 좋게 지껄이는데 곽오주가 박유복이에게“형님 난 고만 가겠소.

”하고 말할 뿐 아니라 서림이도 박유복이더러 “내가 좀 누워야겠으니 방으루

데려다 주시우.”하고 말하였다. 박유복이가 먼저 곽오주를 보고 “내가 네게 할

말이 있으니 다른 데루 가지 말구 오두령댁에 가 있거라.” 하고 이르고 그 다

음에 오가를 보고 “오주를 데리구 먼저 가시우.” 하고 말하여 곽오주를 오가

에게 딸려보낸 뒤 서림이를 거처하는 방에 갖다 눕혀 주고 서림이가 목이 마르

다고 하여 그 딸아이가 냉수를 갖다 먹이는데 도로 일으켜 앉혀줄 뿐 아니라 냉

수 한 그릇을 먹고 난 뒤에는 다시 눕혀 달라지 않고 벽에 기대어 앉아서“박두

령이 조금만 늦게 오셨더면 나는 죽은 사람이오.”하고 한숨을 내쉬었다.“미욱

한 위인이란 소나 진배없소. 서종사, 쇠게 뜨인 셈만 잡구 오주를 용서하우.”“

뜨는 소를 가만두면 여러 사람 구ㅊ히라구요.”“서종사 내 낯을 봐서 용서하우.

”“내가 용서하구 또 대장께서 용서하시더래두 군율이 용서 안 할걸요.”“군

율이 용서 않다니 무슨 소리요?”“고의루 야료하구 군율을 안 당할까요?”박유

복이는 서림이 말을 듣고 한동안 잠자코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서 서림이를 내려

다보며“나는 오주를 도둑놈으루 끌어들인 죄가 있어서 오주가 만일 죽게 되면

같이 죽어야 할 사람이오. 내가 죽게 되는 때는 손때 먹인 하는 말을 남기고 뒤

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 서림이는 꺽정이를 충동여서 군율로 곽오주에 앙갚

음하려고 생각하다가 박유복이 말에 여기가 질려서 망설이게 되었다. 곽오주를

군율에 몰아놓기는 쉬우나 군율을 켜도록 꺽정이를 충동이기가 쉽지 않고 밉쌀

맞은 곽오주는 아주 죽여 없애면 좋겠으나 다른 두령은 고사하고 제일 정분 좋게

지내는 박유복이부터 척을 짓게 정이의 가까이 부리는 졸개 하나가 삽작 안으로

들어왔다. 서림이는 꺽정이가 부르러 보낸 줄 짐작하고 얼른 자리에 드러누웠다

가 졸개가 방 앞에 와서 기척할 때 나직한 소리로 ”게 누구 왔느냐?“하고 물

었다.”대장께서 곧 오시랍니다.“”내가 지금 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 있다나

봐서 가겠습니다구 가서 말씀해라.“졸개는 두말 않고 도로 가고 그 뒤에 신불

출이가 쫓아왔다. 방에 들어서는 신불출이를 서림이가 누운 채 바라보며 ”자네

가 또 어찌 왔나?“하고 물으니 신불출이는 온 사연을 말하지 않고 ”대장께서

지금 도회청에 좌기하신답니다.“하고 말하였다.”웬일인가?“”고대 박두령께서

곽두령하구 같이 오셨는데 서종사를 어째 때렸느냐, 서종사를 내 대신으루 때렸

단 말이냐 하구 호령하시더니 지금 좌기하신다구 영을 놓으셨습니다.“”곽두령

이 아직 대장댁에 있나?“”호령 듣구 가셨지요.“”박두령은?“”곽두령하구

같이 가셨습니다.“”그 말씀은 대체 누가 여쭈었나?“”박두령이 오셔서 말씀

하시는갑디다.“”내가 몸이 아파두 가 뵈어야겠네.“”도회청으루 대령하란 분

부를 내가 받아가지구 왔습니다.“”그럼 자네가 날 잡으러 온 셈일세그려. 할

수 있나 같이 가세.“ 서림이가 일어나서 불불이 의관을 정제하고 신불출이를

따라서 도회청에 와서 보니 곽오주와 박유복이와 오가 외에 다른 두

령들은 모두 와서 앉았는데 서림이를 보고 본 체를 아니하였다. 서림이가 자리

에 가서 앉으려고 할 때 이봉학이가 신불출이를 불러다가 몇 마디 꾸짖더니 신

불출이가 서림이에게 와서 자리에 앉아서 대령하는 법이 없으니 밖에 나가 있으

라고 말하여 서림이는 다시 도회청 대뜰 위에 나와 서서 대장 좌기하기를 기다

리었다. 얼마 뒤에 박유복이와 오가가 곽오주를 데리고 와서 곽오주만 밖에 세

워두고 각각 자리에 들어와 앉고 다시 얼마 뒤에 꺽정이가 와서 전좌하였다.꺽

정이가 좌기하며 곧 서림이를 불러들여서 앞에 세우고 곽오주와 싸움하게 된 곡

절을 묻는데 서림이는 여러 두령 듣는데 곽오주를 쳐서 말하기 어려워서 “하치

않은 일 가지구 싸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치않은 일이 무어야?” “

곽두령이 놀러가자는데 실다구 하다가 언황설래에 싸움이 되었습니다.” “누가

손손을 걸었노?” “저는 손찌검 한번 못했습니다.” 서림이 다음에 곽오주가

불려 들어와서 싸움하게 된 곡절을 말하는데 서림이가 못된 계책을 내바친 것이

미워서 한번 때려주려고 벼른 것을 곧이곧대로 복하였다. “군령 내린 뒤에 야

료하면 군율 당할 줄을 몰랐느냐!” “그런 생각은 미처 못했소.” “군율에는

사정이 없다. 너는 죽는 사람이다.” “서린이놈은 죽이지 않구 나만 죽인단 말

이오?” “서림이는 죽일 죄가 없다.” “서림이놈이 아니면 나 혼자 야료할 까

닭이 있소.” 꺽정이가 좌우를 호령하여 곽오주를 끌어내라고 할 때 황천왕도 이

과 길막봉이는 함께 나와서 곽오주와 공모를 한 것을 자복하고 곽오주와 함께

죽기를 원하고 박유복이와 배돌석이와 이봉학이는 같이 나와서 곽오주의 죄를

같이 논지하게 하여 달하고 청하고 오가는 일어나서 군령을 모르고 잘못 범한

것과 군령을 알고 짐짓 범한 것이 분간 있다고 말하여 꺽정이가 오가의 분간 있

단 말을 좇아서 곽오주를 가짜로 효수하게 한 뒤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는 중책

하고 서림이는 경책한 후에 각각 다 기과하게 하였다. 꺽정이가 타처로 반이한

다는 군령을 내린 뒤에 두령들은 거의 다 관군과 접전 한번 못하고 도망하는 것

을 불쾌하게 여기나, 졸개들 중에는 잇속 없는 접전을 안 하게 되어서 은근히

다행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고 두령의 안식구들은 거지반 피란 가는 것을

해롭지 않게 생각하나 졸개의 처자들 중에는 초막간이라도 의지하고 살던 데를

떠나게 되어서 속으로 심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영을 좋다 글타 의론

하면 죄를 당한다는 까닭에 펼쳐놓고 의론들은 하지 못하고 쑥덕쑥덕 뒷공론들

을 하게 되어서 쑥덕거리는 소기가 졸개들의 초막 속에도 나고 두령들의 집안에

서도 났다. 우선 꺽정이 집에서 꺽정이의 누님 애기 어머니는 피란 가는 것을

좋다고 하고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접전 않고 피란 가는 것을 좋지

않다고 하여 시누이 올케간에 조그만 말다툼이 되는 것을 꺽정이가 마침 안방에

들어와 앉았다가 듣고 안해를 눈이 빠지게 꾸짖었더니 백손 어머니는 둘이 말하

다가 혼자 야단 만나는데 속이 상하였던지 “여편네는 죽을 겐가, 입 두고 말도

못 하게.” 하고 중얼거렸다. “무얼 잘했다구 중얼거려! 군령이 좋으니 그르니

지껄여두 군율이야. 군율이 사정 있나. 아무리 대장의 기집이라두 군령을 범하면

군율당하지 별수 없어.” 백손 어머니가 시누이에게 빗대고 “형님하구 나한테

두 군율인지 막둑인지 쓴다니 큰일나지 않았소.” 하고 남편의 말을 빈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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