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관망과 의복이 준비 다 되엇 인마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이라,
이 밤에 다른 준비를 다하여 가지고 첫새벽 떠나려고 작정하여 떠날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떠나보낼 사람도 밤을 세우게 되었다. 이튿날 동이 트기 전에 꺽
정이와 막봉이와 능통이가 반 달 동안 숨어 있던 진천 이방의 작은집을 떠나는
데, 이방의 첩은 방안에서 인사하고 어린년이는 마당에 내려와서 하직하고 이방
만 삽작 밖에 나와서 작별하였다. 작별할 때 꺽정이가 이방더러 “아쉰 일이 있
거든 우리게루 기별하구 급한 일이 있거든 우리게루 오시우. ” 하고 말한 뒤
한참 있다가 “내가 상주의 첩을 상관했소. 그러나 나를 배은망덕하는 눔으룬
알지 마시우. ”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는 은혜 진 사람의 첩을 상관한 것이 마
음에 궂은 고기 먹은 것 같아서 궂은 고기를 토하는 셈으로 토설하였지만, 이방
은 어이가 없고 귓구멍이 막혀서 작별인사도 탐탁하게 못하였다. 자기에게 사랑
을 받는 첩이 사랑을 저버린 것이 분하고 자기에게 덕을 본 꺽정이가 덕을 모르
는 것이 분하였다. 분이 악심으로 변하여 별 생각이 다 났는데 그중에 꺽정이를
붙들어서 못 떠나게 하고 시비를 차리고 싶은 생각도 났었고, 꺽정이의 가는 노
정을 관가에 밀고하여 체포시키고 싶은 생각도 났었다. 꺽정이를 붙들지 못하고
떠나보낸 뒤에 밀고할 생각이 더럭 많아졌으나 한번 돌쳐 생각하니 꺽정이가 만
일 체포되면 자기를 죽을고에까지 끌고 들어갈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라 밀고하
기도 어려웠다. 꺽정이게 대한 분까지 함께 겸쳐서 첩에게 분풀이를 톡톡히 하
고 싶으나 그도 역시 왁자하게 할 수 없어서 분을 꿀꺽 참고 수일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내었다. 이방의 소견이 좁지 아니하여 첩의 부정한 짓 한 것쯤 용서하고
덮어둘 만도 하건만, 분하고 괘씸한 생각이 속에 있어서 첩을 대할 때 이방이
자리에 누워 있는데 첩이 옆에 와서 눈치를 살피면서 “다리 좀 주물러 드릴까
요? ” 하고 물으니 이방은 첩이 다른 생각이 나서 와서 부니는 줄로 짐작하고
“예끼 더러운 년! 저리 가거라!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첩이 얼굴을 붉히고 무
어라고 입속말로 종알종알 지껄이는데 이방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이년아 무
얼 종알거리느냐! ” 하고 꾸짖으니 첩은 이방을 빤히 바라보면서 “왜 이러시
오? ” 하고 비양스럽게 대답하였다. “떨어 내쫓을 걸 가만두니까 꾄듯싶으냐?
”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 건드리면 당신께도 이로울 거 없으리다. ” “서방
있는 기집년이 부정한 짓 하구 되려 큰소리냐! ” “도둑놈들을 집에 두지 말지.
” “이년이 죽구 싶은가. ” “내 입 한번 뻥끗하면 죽을 사람 따로 있지. ”
이방이 분에 눈이 뒤집혀서 첩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들두들기니 첩이 바로 “살
인이야, 살인이야! ” 하고 외치었다. 행랑은 아직 비었고 이웃은 모두 멀어서
쫓아올 사람이 없고 집안에 있는 어린년이는 어느 구석에 가서 숨어 있는지 기
척도 없었다. 이방이 분김에 벽장 속에 있는 작은 환도를 꺼내어서 첩을 찌르고
한번 피를 본 뒤에는 미친 사람이 되어서 첩을 난도질하여 죽이었다. 이방은 그날
밤에 집을 버리고 도망하여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영영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진천 살인옥사는 원고도 없고 원척도 없고 오직 증인 하나가 있었으니 이것은
어린년이였다. 청석골 화적의 괴수 셋이 이방의 첩의 집에서 보름 동안이나 숨
어 있다 간 것이 어린년이 초사에 드러났었다. 이방을 잡으려고 각처에 이문을
부쳤으나 마침내 잡지 못하고 해포 지나서 옥사를 그대로 결말짓게 되었는데,
그때 이방을 화적의 패당으로 몰아서 가산은 적몰하고 본계집과 본계집의 몸에
서 난 딸 형제는 관비로 박고 화적 괴수들 숨겨 두었던 집은 파가저택하였었다.
그 집터가 오늘날까지 늪으로 남아 있는데 진천 근방 사람들은 이것을 꺽정이
집터라고 일컫는다.
6권 끝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7권 (2) (0) | 2023.05.08 |
---|---|
임꺽정 7권 (1) (0) | 2023.05.07 |
임꺽정 6권 (45) (0) | 2023.05.04 |
임꺽정 6권 (44) (0) | 2023.05.03 |
임꺽정 6권 (43) (0) | 2023.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