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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1)

카지모도 2023. 5. 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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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청석골

 

1

이때 조선팔도에 도적이 없는 곳이 없으되 그중에 황해도가 우심하였다. 황해

도 일경은 변동도적의 소굴이었다. 황해도 민심이 타도보다 사나우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황해도 양반이 타도보다 드세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또 황해도

관원의 탐학과 아전의 작폐가 타도보다 더 심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건만 황

해도 백성은 양순한 사람까지 도적으로 변하였다. 양순한 백성이 강포한 도적으

로 변하도록 지방의 폐막이 가지가지 많은데 그중의 가장 큰 폐막은 두 가지였

다. 한 가지는 각색 공물이니 나라에 진상하는 물품이 너무 많아서 민력으로 감

당할 수가 없고, 또 한 가지는 서도부방이니 평안도 변경에 수자리 살러 가는

것이 괴로워서 민정이 소연하였다. 황해도의 지광이나 토품이나 인구나 물산이

다 하삼도에 대면 어림없이 못한데 진상물품은 종목과 수량이 하삼도보다 훨씬

더 많고 또 까다로웠다. 가령 노루 진상으로 말하더라도 그저 노루면 다 쓰는

것이 아니고 사냥꾼의 말로 ‘수건부치’ 니 ‘대장’ 이니 하는 큰 노루라야

쓰는 까닭에 진상에 쓸 것을 몇마리 고르느라면 백여마리씩 잡을 때도 없지 아

니하였다. 그래도 노루는 흔하니 소산 이라고도 하겠지만 사슴으로 말하면 국초

에는 흔하였는지 모르나 당시는 거의 절종이 되어서 소산도 아닌데 진상 종목에

들어 있었다. 녹용 같은 약재와 녹포 같은 별미는 진상할 만한 물품이나 되지만,

녹미 (사슴 꼬리) 녹설 (사슴 혓바닥) 같은 약재도 아니요 별미도 못 되는

물품이 진상을 시키는 건 단초에 까닭 모를 일이었다. 소산이 아니라 할 수 없

이 서울 가서 사서 바치는데 전의 진상품이 밖에 나온 것을 되사서 바치니 우습

기 짝없는 일이건만, 진상품이 사옹원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또 들어가는 사이에

황해도 백성의 고혈이 마르니 웃기는커녕 통곡해야 좋을 일이었다. 일기 더운

때 생물을 진상하자면 서울 오는 동안에 빛이 변하고 맛이 가서 퇴짜를 안 맞을

수 없고 퇴짜를 안 맞자면 진상 받은 관원으로부터 하인에게 까지 인정을 안 쓸

수 없었다. 이 까닭에 진상은 꼬치로 꿰고 인정은 바리로 실린다는 속담까지 생

기었었다. 진상에 인정에 백성의 고혈이 말라드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

며 작청에서 관가에서 또는 감영에서 고혈을 빨아갈 수 있는 대로 빨아가니 백

성은 중병 든 것같이 피골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황해도의 군역은 서울 상번

외에 평안도 변경방비가 더 있어서 갑사. 기병 2천 명이 10월 초일일부터 이

듬해에는 다른 2천 명이 역시 번갈아서 의주 . 이산 . 강계같은 변경 요해지에

가서 수자리를 살러 가는 곳이 멀고 가깝고 낫고 못한 것이 있으므로 군무맡은

이속이 이것을 가지고 농간하여 인정받으면 가깝고 좋은 곳을 택하여 보내주고

인정을 못 받으면 멀고 좋지 못한 곳으로 몰아 보내니 인정 줄 것이 있고는 좀

하여 안 줄 사람이 없고 수자리 살 곳에 가서는 서도 사람 (평안도 사람) 들

이 황군이라 일컫는 것을 으레 먹을 감으로 여겨서 등골가지 빼어먹는 까닭에

수자리를 한번 살면 몸에 남는 것이 없고 두번 살면 집에 남는 것이 없고 세번

살면 목숨까지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목숨을 보전하려고 도망을 하면 침책

이 일가에 미치고 이웃에 미쳐서 일가 사람과 이웃 사람까지 못살게 되었다. 을

묘년 난리뒤에 나라에서 서도부방을 영폐하기도 결정하여 황해도 백성은 살 수

하나 난 줄 알았는데 불과 사 년 만에 평안도 감사 . 병사의 장계로 말미암아

다시 복구하게 되어 고역을 새삼스럽게 치르게 되니 민정이 소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해도 백성들 생각에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일반이니 꺼

리고 사리고 할 것이 없다고 칼 물고 뛰엄뛰기로 도적들이 되었다. 명화적패가

밤에 불켜 가지고 촌에 들어오는 건 예삿일이고 대낮에 읍에 들어와서 옥문을

깨뜨리고 관문을 에워싸고 관예를 죽이고 관물을 뺏어가는 일까지 혹간 있었다.

황해도 24관 관하에 이런 명화적패가 여기저기 있었지만 그중에 청석골패가 가

장 기세가 무섭고 이름이 높았다. 청석골 본바닥 도적 오가는 텃세와 나이 덕과

언변 힘으로 은연히 괴수 대접을 받아왔으나 인품과 역량이 괴수 재목이 못 되

는 줄을 오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아는 까닭에 기회 보아서 임꺽정이를

괴수로 떠받들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꺽정이가 길막봉이와 곽능통이를 앉아

서 연석 배설할 것을 공론하는 중에 오가가 한판 차리고 나앉으며 “여러분께

내가 말씀 한마디 할 것이 있소.” 하고 한두 번 헛기침을 하고 나서 “우리가

이때까지는 작구 큰일을 여럿의 공론으루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중에서 대

장 하나를 뽑아서 위에 세우구 대장의 호령과 약속으루 일을 해가두룩 하면 좋

겠소.” 하고 여러 두령을 둘러보았다. 서림이와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는 눈치

들이 빨라서 오가의 마음을 알고 임꺽정이와 박유복이와 배돌석이는 요량들이 있

어서 오가의 뜻을 짐작하나 눈치 없는 곽오주와 요량 적은 길막봉이는 오가 자

기가 대장이 되고 싶어하는 줄로 여기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오주가 먼저 “

대장 노릇이 하구 싶소?” 하구 들이대듯이 말하니 오가는 껄껄 웃으며 “내가

하구 싶다면 자네가 뽑아 줄라나?” 대답하고 막봉이가 그 다음에 “아무리 급

한 일이기루 잠깐 공론할 틈이야 없겠소!” 하고 심사 틀린 말투로 말하니 오가

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공론이란 게 좋긴 좋지만 잘못하다간 신주 개 물려보내

는 법이니.” 하고 대답하였다. 서림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잔치 차릴 것을 이

야기하는데 별안간 대장 뽑을 공론을 내시니 대장을 뽑아놓구 아주 큰잔치를 차

리잔 말씀입니다그려.” 하고 말하니 오가는 손뼉을 치면서 “일등 모사가 다르

구려.”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대장을 뽑자면 어떻게 뽑으실랍니까?” “내

일 아침 도회청에 모여서 공론해 뽑읍시다.” “대장만 뽑구 중군은 안 뽑으실

랍니까?” “내 생각엔 중군은 따루 뽑지 않아두 좋을 듯하나 그것두 공론해 작

정합시다.” 오가가 서림이와 서로 수작하는 중에 오주와 막봉이는 “대장쟁이

가 나거든 도리깨나 하나 새로 치어 달랄까.” “도리깨가 있는데 또 치어 달래

서 무어하우. 아무것도 없는 나나 하나 치어 달라지.” “도리깨가 갖구 싶은가?

” “나는 굵은 철편을 하나 치어 갖구 싶소.” 하고 서로 주거니받거니 지껄이

는 것을 유복이가 오주에게 눈을 흘기고 돌석이가 막봉이에게 손짓하여 더 지껄

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여러 두령이 도회청에 모여서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오가가 좌중을 돌아보며 “자, 우리 대장 뽑을 공론들 하세.” 하고

말을 꺼내고 곧 다시 “공론할 것 무엇 있나, 임두령을 우리 대장으로 뫼시지.”

하고 말하니 꺽정이만 잠자코 앉았고 그 나머지 여러 두령들은 일제히 좋다고

소리치는데 오주와 막봉이는 오가를 돌아보며 고개까지 끄덕거리었다. 오가가

작은 두목을 불러서 미리 준비한 주홍칠한 교의를 갖다가 도회청 중간에 놓게

하고 오가와 서림이가 꺽정이 앞에 와서 교의에 가서 앉기를 청하고 곧 좌우에

서 부축하려고 하니 꺽정이가 손짓하여 말리고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교의에 와

서 걸터앉았다. 새 대장이 교의에 앉은 뒤에 오가와 서림이가 여러 두령과 같이

줄을 지어서 군례로 보이고 그 다음에 작은 두목과 졸개들을 불러들여서 새로

현신을 드리게 하였다. 꺽정이가 대장 칭호를 받은 뒤에 오가의 말을 들어서 서

림이를 종사관으로 정하고, 또 서림이의 의견을 좇아서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대장 좌우에 시위할 군관으로 정하였다. 서장사가 서종서로 변하고 신시위와 곽

시위가 새로 생긴 외에는 칭호 갈린 사람이 없으니 여러 두령은 전대로 두령이

라고 일컫고 작은 두목은 그저 두목이라고 일컬었다. 도회청에 전좌하는 석차를

고쳐 정하고 매일 아침에 조사 보는 절차를 새로 정하였다. 도회청 정면에 교의

셋을 느런히 놓고 동편과 서편에 교의 셋씩을 마주 놓았는데 정면 중간에 놓인

교의 하나만 특별히 높고 그 나머지 교의들은 일매지게 낮았다. 높은 교의가 대

장 임꺽정이의 자리인 것은 말할 것이 없고 대장의 좌편은 늙은 두령 오가의 자

리요, 대장의 우편은 새 종사 서림이의 자리요, 곽오주와 세 두령은 동편 자리에

앉게 되고 배돌석이, 황천왕동이, 길막봉이 세 두령은 서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것은 고쳐 정한 석차이고 대장이 아침 일찍이 도회청에 나와서 자리에 앉은

뒤에 먼저 여러 두령이 대장 앞에 와서 국궁하고 자리에 가서 앉고 두 시위가

좌우에 뫼신 뒤에 두목들이 대청에 올라와서 국궁하고 내려가고 나중에 졸개들

이 마당에 들어와서 국궁하고 물러가는데 국궁 진퇴에 창까지 있었다. 이것은

새로 정한 조사 절차니 도회청 석차와 조사 절차만으로도 대장의 위풍이 나타나

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대장이 여러 두령과 공론하고 싶으면 공론하고 그렇지 않

으면 종사관 하나만 데리고 의논하고 종사관과도 의논하고 싶지 않으면 혼자 생

각으로 결단하여 여러 두령과 두목에게 명령하고 지휘하게 되니 대장의 권력은

그 위풍에서 더 지났다.

꺽정이가 대장 되던 날부터 사흘 동안 큰 잔치가 있었고 잔치가 끝난 뒤에 돌

석이와 막봉이가 비로서 새살림들을 차리어 도회청 좌우 옆채가 비게 되어서 꺽

정이가 불출이와 능통이를 갈라들게 하였는데 불출이는 처자 없는 사람이라 전

날 돌석이나 막봉이와 같이 졸개 두엇을 데리고 홀아비 살림을 시작하였다. 꺽

정이가 불출이의 홀아비 살림을 걱정하여 계집 하나를 얻어주어야겠다고 말할

때 박유복이가 마침 옆에 있다가 “오두령집 기집아이년과 짝을 맞쳐주면 어떨

까요?” 하고 물었다. “그거 좋겠다. 그년이 나이 몇 살이냐?” “올해 열아홉

살인가 스무 살이지요.” “과년하구나.” “보기가 징하도록 큽니다.” “오두

령을 청해다가 말해 볼까?” 꺽정이가 오가를 청해 오려다가 그만두고 유복이더

러 “오두령 내외에게 다 말을 하는 것이 좋으니 네가 잠깐 오두령 집에 갔다오

너라.” 하고 일렀다. 오가는 청석골을 꺽정이에게 바치고 바로 한양하기를 청하

여 꺽정이가 조사 보는 것까지 면하여 준 까닭에 집에 들어앉아서 약국 하는 허

생원이나 또는 꺽정이가 붙들어 둔 관상쟁이를 불러다가 말벗삼아서 한담으로

소일하는 때가 많았다. 박유복이가 오가의 집에 갔다와서 “오두령 내외분이 다

형님 생각대루 하시라구 말합디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곧 가까이 있는 불

출이를 불러서 의향을 물으니 불출이는 두 손길을 맞잡고 황감한 처분이라고 대

답하였다. 불출이의 혼인이 쉽사리 완정되어서 불일성례를 시키었다. 불출이 혼

인 뒤 불과 며칠 안 되었을 때 동쪽 기프내와 북쪽 수리미로 관군이 들어온단

소식이 들리더니 뒤미쳐서 남쪽 양짓말과 서남쪽 탑고개와 서쪽 금교역말에서

급한 보발들이 들어오는데 다같이 관군이 쳐들어온다는 기별이었다. 꺽정이가

여러 두령을 모아놓고 관군 막을 일을 의논하는데 의호 먼저 계책을 말할 서림

이가 여로 두령이 제각기 말마디씩 하도록 입을 떼지 아니하여 꺽정이가 서림이

를 보고 “서종사는 왜 말이 없소?” 하고 책망하는 기색으로 말하였다. “저는

지금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더 좀 생각해 보려구 아직 말씀 않습니다.

” “아직 말 안하면 언제 말할 테요?” “낮에 더 좀 생각해 가지구 밤에 다시

와서 말씀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 앉았을 것 없이 집으루 가는 게 좋지 않

소?” “조용하게 혼자 누워서 생각하는 게 좋다뿐입니까. 지금 곧 집으루 갈랍

니다.” 서림이가 먼저 일어나 간 뒤에 박유복이가 서종사의 계책을 들어보고

다시 의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으나 곽오주는 공연히 푸푸 하고 길막봉이와

황천왕동이는 현연히 불만하여 하고 게다가 배돌석이가 서종사의 계책을 들어보

기 전인들 의논하여 낭패될 것이 무엇이냐고 말하여 여러 두령이 한동안 의논들

을 계속하였다. 그 의논은 대개 두 가지에 불과하였으니 한 가지는 여러 두령이

네 패로 나누어 일시에 사방으로 나가서 관군과 접전하자는 것이요, 또 한 가지

는 여러 두령이 함께 나가서 사방 돌아가며 차례차례 관군을 쳐물리치자는 것이

었다. 꺽정이는 처음부터 의논에 참례 아니하고 앉아서 듣기만 하다가 여러 두

령이 두 가지 의논의 우열 장단을 다투느라고 받고채기가 서로 떠들 때 “고만

들 떠들어라. 내가 서종사하구 상의해서 결정하겠다.” 하고 말하여 더 떠들지들

못하게 하였다. 저녁때가 거의 다 되어서 여러 두령은 모두 흩어져 가고 꺽정이

혼자 사랑에 앉아서 관군 막을 계책을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중에 서림이가 들

어왔다. “벌써 저녁을 먹구 왔소?” “먹었습니다.” “저녁이 일렀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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