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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5)

카지모도 2023. 5. 12.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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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정이가 화가 나서 쑥덕공론하는 사람의 본보기로 안해를 도회청에 끌어내다

가 혼구녕 내고 싶은 생각까지 났었으나 꿀꺽 참고 “소갈찌 없는 기집년이란

할 수 없다.” 하고 혀를 쩟쩟 차며 사랑으로 나왔었다. 안해에게 난 화가 채 가

라앉기도 전에 박유복이가 곽오주를 데리고 와서 곽오주와 서림이의 싸움질한

것을 이야기하여 꺽정이는 화가 벌컥 도로 나서 박유복이의 이야기도 다 들어주

지 않고 곽오주를 호령질하여 쫓은 뒤에 일변 서림이를 부르러 보내고 일변 좌

기령을 놓았었다. 그러나 꺽정이가 곽오주를 죽일 마음은 없던 까닭에 도회청에

나가기 전에 오가를 불러다가 문의하게 되었는데 오가의 이야기로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의 간련 있는 것도 미리 알았고 두 사람이 곽오주와 같이 죄를 당하려고

나서거든 어떻게 곽오주와 분간하여 결처할 것까지 대강 미리 작정하였었다.

가짜 효수란 것이 본래 효수 시늉인데다가 곽오주의 가짜 효수는 시늉의 시늉이

라 양편 귀 뒤에 화살을 찔렀지만 양편 팔죽지를 잡아서 끌어내가는 것은 양편

에서 부축하고 나가게 되고 사방에 회술에 시키는 것은 도회청 대문에 밖에 나

서고 말게 되었다. 그러나 곽오주가 가짜 효수의 시늉을 한번 당하는 것도 착실

한 본보기기 되어서 그렇게 많던 쑥덕공론들이 다 쑥 들어가 버리고 아무

소리 없이 군령대로 반이할 준비들을 차리게 되었다. 청석골서 속장들 하느라고

부산한 중에도 관군의 동저을 알아들이는 여텀꾼들은 사방에 뻔찔 떠 있었다.

개성 관군은 천마산 서편으로부터 청석골 탑고개까지 둘러싸고 차츰차츰 들어오

고 평산 관군은 강음 관군과 협력하여 두석산 북편과 서편을 막는데 평산 부사

장효범이 금교역말에 내려와 있고 신계 관군은 우봉,토산 두 고을 관군과 합세

하여 제석산 서남편으로 내려오는데 신계현령 이흠례가 전군을 지휘하였다. 관군

의 동정이 자세히 알려진 뒤에 서림이가 이천 갈 노정을 정하고 길 틔울 계책을

세우려고 조용한 틈을 타서 꺽정이와 단둘이 이야기하였다. “이천 가는 길은

대개 우봉 토산 안협 세고을 땅을 지나서 가두룩 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신계 땅으루 해 가는 것이 길이 좀 가찹지 않을까.” “식구들을 끌구 가는 길에

말썽스러운 신계지경을 지나가는 것이 부질없을 줄 압니다. 그리구 길두 별

루 가까울 것이 없습니다.” “우봉 땅으루 나간다면 어느 편으루 나가는 게 좋

겠소?” “고석골루 나가서 수리미를 지나 양수합금으루 가는게 길이 편할 듯

합니다.” “고석골루 나가자면 평산 가음 군사부터 물리쳐 놔야지.” “평산 군

사가 물러가게 되면 강음 군사는 따라서 걷혀갈 겝니다.” “평산 군사를 제대

루 물러가게 할 계책은 무어요?” 서림이가 꺽정이 옆으로 가까이 다가앉아서

귀에 입을 대다시피하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을 꺽정이는 다 듣고 나서 “관

상쟁이는 속을는지 모르나 평산부사가 관상쟁이 말을 듣구 잘 속겠소.” 하고

말하니 “먼저두 말씀했지만 장효범이가 위인이 덩둘해서 그런 우스운 꾀에두

넘어갑니다. 제 꾀가 안 맞을 리 만무하니 두구 보십시오.” 하고 서림이는 장담

하였다. “억석이가 관상쟁이와 친하기나 한가?” “그건 제가 다 알아봤습니다.

친해두 여간 친하지 않답니다.” “그럼 어디 그대루 꾀를 써보우.” “억석이더

러 제가 말을 이르오리까.” “황두령 신계 보낼 것두 아주 말해 두구려.” “황

두령에게 제가 말을 일러선 잘 듣지 않을 겝니다. 그러구 평산 군사가 물러가야

신계길이 터질 테니까 황두령 신계 보내는 것은 나중으루 돌려두 좋습니다.”

“요량대루 하우.” “저는 지금 가서 억석이를 불러다가 오늘 밤에라두 곧 꾀

를 쓰두룩 말을 이르겠습니다.” 서림이가 꺽정이에게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

다가 홀저에 중간에서 발길을 돌려서 뒷산 파수꾼의 패두 김억석이의 초막을 향

하고 오는데 억석이는 마침 파수막에 올라가려고 초막에서 나오다가 서림이와

마주쳤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자네 보러 오는 길일세.” “저를 보러

오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남 보지 않는 데서 조용히 좀 이야기해야겠

네.” “댁으루 뫼시구 갈까요?” “자네를 불러다 말하려다가 일부러 왔네.”

“그럼 누추한 방이나마 들어가실까요?” “자네 방에 다른 사람이 없는가?”

“자식 혼자 있습니다.” “어디 가서 놀다 오라구 내보내게.” “놀러나가라면

후딱합지요.” “자네게 관상쟁이가 자주 오나?” “가끔 옵니다.” “이맘때두

혹 오나?” “밤에 흔히 놀러오는데 낮에두 혹간 옵니다.” “내가 자네하구 이

야기할 때 관상쟁이가 와선 재미없으니 어디 다른 데루 가세.” “어디루 가실

까요?” “뒷산 으슥한 데 가서 이야기하세.” 서림이는 김억석이를 앞세우고

뒷고개를 넘어왔다. 서림이같이 평소에 도도한 체하는 사람이 하치않은 패두에

게 무슨 일을 말하러 왔을까. 서림이의 어운이 관상쟁이에게 상관되는 일 같은

데 관상쟁이가 무슨 말을 지망지망히 해서 무릎맞춤이 나지 않았나. 그런 일이

면 불러가든 잡아가든 할 터이지 서림이가 친히 물으러 올 리 없지 않은가. 김

억석이는 뒷고개를 넘어오는 동안에 궁금증이 나다 못하여 아니 날 의심까지 다

났었다. 서림이가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앞에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여 김억석

이는 서림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 입만 치어다보았다. “이야기가 좀 길는

지 모르니 아주 퍼더버리고 앉게.” “좋습니다. 이아기하십시오.” “자네 관상

쟁이하구 무간하게 친하지.?” “관상쟁이가 감금을 당했을 때 제가 몇번 수직

하는 놈의 대를 봐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해서 가끔 상종은 합니다만 그는

유식한 하삼인데 조의 같은 무식한 놈하구 무간할 수 있습니까.” “관상쟁이가

자네더러 도망질시켜 달라구 청했단 말이 참말인가?” 서림이 묻는 말에 김억석

이가 입으로는 “그게 웬 소립니까?” 하고 잡아떼는 대답을 하면서도 얼굴에

는 현연히 놀라는 빛이 나타났다. 서림이는 김억석이의 놀라는 빛을 보고 빙그

레 웃으며 “내가 들은 대루 바루 말하면 관상쟁이가 자네더러 같이 도망하자구

했다데.” 하고 말하니 김억석이는 얼굴빛을 아주 변하고 “그런 말씀을

관상쟁이게 들으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내 이야기는 나중 하구 자네 이야

기부터 듣세. 관상쟁이가 자네더러 무어라구 말하든가?” “청석골 있다가는 이

삼 년 안에 비명횡사하게 된다구 말합디다.” “그러니 진작 같이 도망하자구

말하든가?” “그런 말까지 합디다.” “그래 자네는 무어라구 대답했나?” “

잘못하면 큰일날 테니 그런 말은 아예 입밖에 내지 말라구 했지요.” “자네가

틈타서 같이 도망하자구 말했다던데 그건 거짓말인가?” “자꾸 조르기에 생각

해 보마구는 말했지만 같이 도망하자구는 말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줄 몰랐더

니 관상쟁이가 거짓말쟁입니다그려.” 김억석이는 서림이가 관상쟁이에게 이야

기를 듣고 말하는 줄로만 여기었으나 실상 서림이는 도망할 생각이 있을 듯한

관상쟁이가 파수꾼의 패두인 김억석이가 친하게 상종하는 중에 혹 그런 말도 비

쳐 보았으려니 어림치고 넘겨짚었는데 의심을 품고 있던 김억석이가 쉽게 넘어

박힌 것이었다. “대장께서두 아셨습니까?” “모르시네.” “만일 대장께서 아

시면 관상쟁이는 목이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관상쟁이가 물구 들어가는데

자네 목은 성할 듯한가.” “큰일 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침

자네가 장공속죄할 수 있는 좋은 계제가가 있기에 그걸 내가 말해 주러 왔네.”

“좋은 계제가 무엇입니까?” “자네가 관상쟁이하구 같이 도망하는 것처럼

일을 꾸며가지구 금교역말 평산부사 진중에 데리구 나가서 우리가 일간 평산 태

백산성을 치러 가려구 준비한다구 말을 시키게. 관상쟁이는 평산부사 장효범이

두 알구 금교찰방 강려두 안다니까 적굴에서 도망해 나와 적굴 소식을 알리는

것같이 말할 수 있을 걸세. 평산부사가 그 말을 곧이듣구 태백산성을 지키러 가

면 그 틈에 우리가 자무산성이나 철봉산성으루 옮겨갈 작정인데 이것만은 뉘게

든지 말을 말게.” “관상쟁이는 관원들하구 면분이 있다니까 살아나갈 수 있겠

지만 저는 십상팔구 관군의 손에 죽게 될 것 아닙니까?” “자네 부자두 적굴

에 잡혀와서 고생하던 사람이라면 죽을 리가 만무하니 조금두 염려 말게.” “

제 말을 누가 믿나요?” “관상쟁이하구 짜면 되지.” “제가 가더래두 자식은

딸에게 맡겨두구 갈랍니다.” “그러면 관상쟁이가 도망가는 걸루 믿지 않네. 시

집간 딸은 할 수 없지만 아들은 데리구 가게.” 서림이 말끝에 김억석이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닫가 “말씀하시는 대루 해봅지요.” 하고 말하였다.

서림이가 김억석이에게 관상쟁이를 데리고 수작할 말부터 금교어물전에 가서 의

탁할 방편까지 모두 자세히 일러준 다음에 “오늘 밤 곧 나가두룩 하게.” 하고

말하니 김억석이는 대답을 선뜻 아니하였다. “자네가 관상쟁이를 새루 놀려내

는 것이 아니구 관상쟁이가 먼저 자네를 꾀이는 판이니까 같이 가자구 끌구 나

서면 고만 아닌가.” “제가 슬금슬금 돌아다니며 하직두 여쭙구 작별두 해야

할 텐데 오늘 밤은 너무 촉박합니다.” “이 사람 보게. 도망질할 사람이 하직

작별이 다 무언가. 도섭스러운 소리하지 말게.” “적어두 딸은 보구 가야지요.

” “그저 가보는 건 말리지 않네. 그렇지만 작별은 혼자 속으루 하게.” “딸더

러두 말 말란 말씀입니까?” “말 말아야지. 대체 무슨 일이든지 드러내놓구 말

하게 되기까지는 제 그림자를 보구 말해두 못 쓰는 법일세.” “인정에 좀 박절

한걸요.” “이번 일이 잘 되면 자네는 두목으로 올라설 테니 이 다음 두목된

뒤에 웃구 이야기하게그려. 제잡담하구 오늘 밤을 넘기지 말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나 먼저 갈 테니 자네는 뒤에 오게.” 서림이 간 뒤 한참

만에 김억석이는 뒷산 파수막을 돌아서 집으로 내려갔다. 이날 밤에 여러 두

령이 꺽정이 집 사랑에 모여앉아서 이야기들 하는 중에 뒷산 파숫꾼 하나가 거

래도 없이 뜰 앞으로 들어와서 “사산 총찰두령께 아룁니다. 지금 패두 억석이

가 제 자식과 관상쟁이를 데리구 어디루 가옵는데 가는 데를 물으온즉 장령을 물

어가지구 어디 잠깐 갔다온다구 말하옵디다. 장령 물었단 말이 거짓말이 아니온

지 빨리 곧 뒤쫓으면 등성이 서넛 안에서 붙잡아 올 수 있을 줄 아옵니다.” 하

고 아뢰는데 방안의 사람들은 듣고 놀라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때 사산 파수를 총찰하는 두령 이봉학이가 파수꾼을 내다보며 “잘

알았다. 오늘 밤에는 서산 패두가 너의게까지 갈 것이다. 고만 가거라.” 하고

말을 일러서 파수꾼이 나간 뒤에 서림이가 이봉학이를 보고 “장령이라구 핑계

하구 참말 도망하는 놈이 생기면 탈이니 이 다음에는 붙들어놓구 와서 보하두룩

사산에 일어두시지요.” 하고 말하니 이봉학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수일 후에

서쪽으로 나갔던 여탐꾼들이 돌아와서 평산 군사가 갑자기 걷혀갔다고 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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