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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6)

카지모도 2023. 5. 1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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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이가 마침 이봉학이, 박유복이 두 두령들과 같이 꺽정이 사랑에 앉아 있다

가 여탐꾼의 보하는 말을 듣고 “그것 보십시오. 장효범이가 그만 꾀에두 넘어

가지 않습니까.” 하고 꺽정이와 및 두 두령들을 돌아보니 꺽정이는 “서종사

일 요량하는 게 무던하우.” 서림이를 칭찬하고 이봉학이는 “평산부사가 얼뜬

자식이오.” 장효범이를 비웃고 박유복이는 “김가 부자가 무사하게 되었을까.”

억석이를 염려하였다.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인제 황두령을 신계 가라구 이

르시지요.”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지금 곧 불러다가 이르겠소.” 하고 사람을

보내서 황천동이를 불러왔다. 황천동이가 와서 평산 관군의 걷혀간 이야기를

들은 뒤에 곧 서림이를 돌아보며 “강음 관군두 걷혀 들어가게 됐소?” 하고 빈

정대는 말투로 물으니 서림이는 “가만두면 제대루 걷혀 들어가겠지요.” 하고

가볍게 대답하였다. “그렇겠지. 몇 해가 되든지 종당 걷혀 들어가구 말 테지요.

” “강음 관군은 걷혀 들어가지 않더라두 수효가 적어서 여러 길목을 지킬 힘

두 없구 또 우리게 저려서 나가는 사람을 막을 주제두 못 되는데 염려할 거 무

어 있소?” “청석골 안 염려를 서종사가 도맡아 하는데 우리가 염려할 까닭이 있

소.” 황천동이의 말을 서림이는 더 대꾸하지 아니하였다. 곽오주는 본래 서림

이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다시 말할 것도 없고 황천동이와 길막봉이는 중책을 당

한 뒤로 서림이와 사이가 좋지 못하게 되었는데 황천동이가 소견이 좁으니만큼

더 심하여 서림이와 말할 때면 으레 비위를 긁으나 서림이가 지고 참아서 겨우

말썽 없이 지내는 중이었다. 꺽정이가 눈을 곱게 뜨지 않고 황천동이를 바라보다

가 "쓸데없는 소리 고만 지껄여라." 하고 꾸짖은 뒤에 "인제 신계길이 터졌으니

곧 떠나두룩 해라." 하고 이르니 황천동이는 두말 않고 "네" 하고 대답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황천동이가 건장한 졸개 세 사람과 같이 각각 괴나리봇짐 하나씩

가뜬하게 해 지고 신계길을 떠나는데 꺽정이가 황천동이더러 "이천 건천역말서

우리를 기다리기가 거북하거든 먼저 광복으로 가는데 건천역말 앞에 큰 동구나

무가 있으니 그 동구나무에 칼자국 하나를 큼직하게 내놓구 가거라. 우리가 가

서 칼자국만 보면 네가 먼저 간 줄 알구 찾지 않을 테다." 하고 말을 일렀다.

황천동이의 일행 네 사람이 청석골서 떠나던 날 해 진 뒤에 신계읍에 당도하여

사직단 아래 사람 안 보이는 곳에서 괴나리봇짐들을 끄르고 흰무리 덩이를 내서

요기들 하고 짧은 환도를 내서 몸에들 지니었다. 이날 밤에 두령 졸개 네 사람

이 함께 몰려다니며 맡아가지고 온 일을 하는데 한밤중에는 읍 근처에서 반명의

집을 치고 닭 울 물에는 우봉 접경에서 술장수의 집을 치고 또 새벽녘에는 토산

접경에서 농군의 집을 쳐서 세 군데에서 사람 육칠 명을 죽이고 이천 땅으로 넘

어갔다. 이흠례가 제아무리 벼락방망이라도 치하에서 서너 군데 살인 소동이 나

면 환관 안 하지 못하리라 서림이가 생각하고 이 꾀를 낸 것인데, 황천동이를

보낸 것은 급한 경우에 빠른 걸음으로 도망하란 뜻이요, 우봉 토산 접경에서 살

인하게 한 것은 우봉현령과 토산현감에게 으름장을 놓는 셈이었다. 신계현령은

대당이 경내에 들어와서 횡행하여 살인한 기별을 받고 감영에 첩보를 띄우며 곧

총총히 환관하는데 우봉현령과 토산현감도 다같이 경내가 염려된다고 뒤에 남아

서 적굴을 치려고 하지 아니하여 할 수 없이 다시 모이기를 기약하고 각각 군사

들을 거느리고 흩어져 가게 되었다. 강음현감이 고단한 형세로 잘못하다가 도

적에게 욕보기 쉽다고 읍으로 들어간 것은 신계 우봉 토산 세 고을 관원이 흩어

져 가기 전이라 청석골 서북쪽에는 관군의 그림자도 없고 오직 동남쪽에 개성

관군이 남았는데 동쪽 맡은 도사와 남쪽 맡은 경력이 다 같이 군사를 동독하여

길 없는 산중에 행진할 만한 길을 만드는 중에 서북쪽의 황해도 군사들이 퇴진

하게 된 기별을 듣고 도사와 경력이 서로 만나서 의논한 뒤 기프내와 탑고개 두

곳에 각각 유진하고 적굴의 동정을 기다리었다. 개성 관군이 산 밖에 유진하고

있는 동안에 청석골 산속에서는 장단 토산 강음 각처로 졸개들을 나눠 보내는데

장단도 뒷길로 떠나가도록 하고 여벌 병기와 남은 양식과 무거운 세간을 처치하

는데 땅속에 묻기도하고, 굴속에 넣기도 하고, 또 다른 데 옮겨다가 감추기도 하

여 빈집들만 뒤에 남도록 하고 그 뒤에 두령과 두목 십여 명과 남은 졸개 이십

여 명과 여러 집 식구 이십여 명을 다섯 패로 나눠서 말에 교군에 기구 있는 행

차 다섯을 꾸며 가지고 띄엄띄엄 사이를 두고 이천 광복산으로 떠나갔다.

 

2

광복산은 산이 높고 험하고 바위가 성같이 둘린 곳인데 주회 사오 리에 터는

청석골보다 훨씬 넓으나 인가는 십여 호밖에 안 되어서 꺽정이의

일행이 전접할 도리가 맹랑하였다. 황천왕동이 일행 네 사람이 먼저 왔을 때는

십여 호에 사는 사람이 모두 와서 정답게 인사하고 이 집 저 집에서 오라고 청

하기까지 하더니 다섯 행차가 차례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거지반 문을 닫고

들어앉아서 내다보지도 않고 더러 나와서도 슬슬 배돌며 동정만 살피었다. 본곳

사람들이 일제히 나와 마중하지 않는 것을 꺽정이는 괘씸히 생각하여 졸개들을

시켜서 각 집의 주인 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한바탕 야단을 친 뒤에 우선 안식

구 들여앉힐 집 몇 채를 비어놓으라고 일렀더니 십여 호 사람이 모두 집을 내버

리고 도망하려고 단봇짐들을 쌌다. 꺽정이가 이것을 알고 두목과 졸개들에게 분

부하여 본곳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서 묶어놓게 한 뒤에 십여 호 집을 일행 상하

각 차지하고 들도록 분배하였다. 묶어놓은 사람들을 놓아버리자고 말하는 두령

도 있었고 두고 부리자고 말하는 두령도 있었으나 꺽정이가 그 말을 좇지 않고

죽여 없애라고 하여 광복산에 살던 사람들은 뜻밖에 참혹한 화를 받았다. 꺽정

이의 일행이 마소는 치지 말고 사람만 육십여 명이라 오죽지 않은 두메집 십여

호를 가지고는 구차하나마 용신할 수 없어서 급히 통나무로 귀틀집을 몇 채 세

우기로 작정들 하였는데 집보다도 더 급한 것이 양식이었다. 본곳 사람들의 과

동하려던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나 서속과 귀일 이외에는 두태가 얼마 있을

뿐이요 입쌀은 전혀 없었다. 험한 밥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누구 칠 것도

없고 숫제 먹지 못하는 사람이 오가 내외와 이봉학이 내외와 황천동이 안해와

길막봉이의 장인과 안해와 곽능통이 내외와 서림이와 의원 허생원까지 어른이

십여 명이라 가지고 온 쌀을 그 사람들만 두고 먹어도 이삼 일 조석거리밖에 안

되었다. 제백사하고 양식쌀부터 모아들이기로 공론한 뒤 꺽정이와 오가와 서림

이 외의 여섯 두령이 둘씩 작패하여 가지고 두목과 졸개들을 갈라서 데리고 이

천 인근읍 땅에 나가서 양식을 떨어오는데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는 신계 가서

재원을 떨고 박유복이와 곽오주는 평강 가서 옥동역을 떨고 또 배돌석이와 길막

봉이는 안변 가서 용지원을 떨었다. 세 군데서 떨어온 것이 쌀이 근 이십 석이

요, 다른 곡식이 칠팔 석이요, 소금이 사오 석인데 거지반 다 소에 실려가지고

와서 소는 두고 잡아 고기를 먹게 되었다. 양식과 찬수가 생겨서 한시름들을 놓

게 되어 곧 졸개들을 시켜 재목을 내어서 사람 있을 의지간과 마소 세울 어릿간

을 만드는데 두목은 고사하고 두령까지 나서서 조역들 하여 광복산 들어온 지

달포만에 안돈이 대강 되었다. 꺽정이가 걸음 잘 걷는 황천왕동이를 시켜서 서

울 남소문안 한첨지 집과 연신하게 되었는데 황천왕동이가 서울 삼백여 리를

하루 가고 하루 오고 하는 까닭에 광복산 같은 두메 구석에서도 조정 소식을 빨

리들 듣고 지내었다. 황천왕동이가 한 번 서울 갔다왔을 때 꺽정이와 여러 두령

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듣고 온 조정 소식을 다 전하고 끝으로 “이번에 내가

별소리를 다 듣고 왔소.” 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웃기부터 하였다. “어젯밤에

남소문 안 한첨지 아들하구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는 중에 그 사람이 나더

러 대장 형님이 분신술 잘하는 것을 아는냐구 묻는데 분신술이 무어냐구 묻기가

창피해서 덮어놓구 나는 그런 말 못 들었다구 대답했더니 그 사람 말이 이천 두

메 구석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자네네 대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니 이것이 분신

술을 잘 안 하구 될 일인가. 분신술 같은 희한한 재주를 가졌다는 건 자랑두 되

겠지만 점잖지 못하게 유부녀를 겁탈하구 잗달게 나무장수의 주머니 밑천을 떨

구 또 멀쩡하게 성한 사람이 애꾸눈이 병신이 되었다니 듣기 좀 창피하데 하구

깔깔 웃습디다. 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구 자세히 이야기하라구 졸라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대장 형님의 이름을 떠대구 유부녀 겁탈한 것은 야주개서 난 일이구,

나무장수 떨은 것은 버터고개서 난 일이구, 애꾸눈이는 영평 도덕여울 근방에

사는 놈이랍디다. 한첨지의 부하 하나가 얼마 전에 무슨 볼일루 영평을 내려갔

다가 도덕여울서 애꾸눈이를 만났는데 그놈이 처음에 대번 나는 임아무개다 네

보따리 게 벗어놔라 하구 한참 만에 다시 내가 임아무갠 줄 알구서두 우두머니

섰으니 한번 칼맛을 볼라느냐 하구 칼을 빼들더랍니다. 한첨지 부하가 대장 형

님의 얼굴을 잘 아는 사람이라, 이놈아 네가 무슨 임아무개냐 하구 우박을 주려

다가 그놈의 하는 꼴을 볼라구 청석골 임두령은 지금 서울 남소문 안에 와서 계

신데 게가 임두령하구 동성동명이란 말이요 하구 물으니까 그놈이 그 말은 대답

않구 네깐놈의 보따리에 무슨 대단한 물건이 들었겠느냐 고만 그대루 가거라 하

구 손을 내젓더랍니다. 한첨지 부하가 서울 와서 그놈의 흉내를 내가며

이야기할 때 젊은 사람은 고사하구 늙은 한첨지까지 허리를 잡았답디다." 황천왕

동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여러 두령은 거지반 다 웃고 "세상 사람이 임아무개

란 성명만 듣구두 겁을 내니까 그 따위 놈이 생기는 게지." "우리가 어디 가다

그런 놈을 만나는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임아무개라구 창피한 짓 하는 놈을

가만둘 수 있소. 다시 못하두룩 버릇을 가르쳐 놔야지." "우리 뒤를 수탐하는 포

도군사들이 그런 것들에게 속아서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지 모르지." "포도군사

같이 산 말의 눈을 뺄 놈들이 그 따위 성명 떠대는 걸 곧이듣나." "포도군사 아

니라두 임아무개라구 하구 창피한 짓 하는 것을 곧이듣는 놈은 미친놈이지." 떠

들썩하게들 지껄이는 중에 꺽정이만은 웃도 않고 말도 않고 눈살을 잔뜩 찌푸리

고 앉아 있었다. 그 이튿날 식전에 여러 두령이 꺽정이에게 아침 문안들 하러

왔을 때 꺽정이가 여러 두령들을 돌아보며 "어젯밤에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래

두 서울을 한번 갔다 와야겠어. 내가 서울 가 앉아서 내이름을 가지구 창피한

짓 하는 놈들을 자세히 알아본 뒤에 한두 놈 본보기를 내놀 작정이야. 이왕 가

는 길에 우리들에게 있는 금은보패를 가지구 가서 팔아왔으면 이런 두메 구석에

서두 군색치 않게 지낼 수 있을테니 연전에 평양 봉물 노느목한 것을 모두 도루

거둬서 나를 주면 좋겠는데 여럿의 의향이 어떤가? 가지구 싶은 물건은 가지구

팔아 쓰구 싶은 물건만 내놓으란 말이야. 이번에 내놓은 물건을 팔아서 공용에

쓰거나 내가 쓰게 되면 그건 나중에 도루 다 물어주지." 하고 말하니 여러 두령

은 다 녜녜 대답들 하였다. 꺽정이는 자기의 이름을 떠대고 창피한 짓 하는 놈

을 몇 놈 본보기로 버릇 가르칠 생각도 났거니와 두메 구석에 들어앉아서 답답

하게 지내느니 번화한 곳에 가서 속시원하게 놀다 오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겸

두겸두 서울길을 떠나는데 피물 약재 서화 옥기명 금은붙이를 한 짐 좋게 만들

어서 졸개 하나를 짐꾼삼아 데리고 단둘이 보행으로 떠났다. 광복서 떠나는 날

늦게 떠난 까닭에 이천읍에 와서 일력이 다 된 것을 보고 놋다리고개를 향하고

나오다가 어느 촌가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꺽정이가 그 집 바깥주

인과 수작하는 중에 주인의 고향이 철원인 것을 알고 "철원서 언제 이사왔소?"

하고 물으니 주인은 손가락을 꼽아보고 "올에 아홉 해가 됐나보우." 하고 대답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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