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왕동이가 혼자 짬짬하니 앉았다가 막 자리에 누웠을 때 중문이 열리는 소
리가 곧 마당으로 들어오는 신발 소리가 났다. 건너방의 아이놈들은 벌써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가 없어서 황천왕동이가 내다보려고 다시 일어 앉는 중에 방
문 밖에서 어떤 사람이 “선다님, 예서 주무십니까?” 하고 말을 묻는데 말소리
가 황천왕동이 귀에 익히 들이었다. 황천왕동이가 방 앞문을 열고 내다보며 “
그게 누구냐?” 하고 물으니 어둔 속에 섰는 사람이 “언제 오셨읍니까?” 인사
하고 앞으로 나서는데 보니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요 곧 애꾸눈이 노밤이
었다. “아까는 눈에 보이지 않더니 어디 갔다오나?” “어딜 갔다와요? 선다님
을 찾아왔지.” “자네 여기 와 있구 어디 다른 데 가 있나?” “선다님댁 가서
있지요.” “선다님댁, 선다님댁이 어디야?” “동소문 안이오.” “방으로 좀
들어오게.” “방에 들어 갈 것 없지요. 선다님은 대체 어디 가셨습니까?” “여
기 젊은 주인하구 같이 놀러나가셨네.” “그렇지, 기생방에 가셨지. 그렇다니까
술이 취해서 안 오신다구 가 뫼시고 오라구 사람을 성가시게 굴어.” “누구?”
“누가 그러겠소! 선다님 밀짝이 그러지.” “잠깐이라두 들어오게. 지금 내가
잠은 안 오구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네.” “그럼 잠깐 들어가 앉았다 갈까.”
노밤이가 방으로 들어오며 곧 아랫목에 와서 엉거주춤하고 “방이 차지나 않은
가요?” 하고 요 밑에 손을 넣어보고 그대로 주저물러 앉았다. “여보게, 선다님
첩두 기생 퇴물인가?” “선다님 첩이 어디 있소?” “자네가 선다님 첩의 집에
가서 하지 않았나?” “언제 내가 그렇게 명토 박아 말합디까. 그저 선다님이랬
지.” “그럼 선다님이 기집 없이 홀아비 살림을 하시나?” “여기 가두 기집,
저기 가두 기집, 기집에 걸려서 자빠질 지경인데 홀아비란 다 무어요? 데리구
살림하는 사람만두 자그마치 셋씩이나 된다오. 그런데 그 세 사람이 각기 본기
집이라지 첩이란 사람 하나 없소. 정작 본마누라님이 이런 걸 알면 기가 찰걸.”
“네끼 미친 사람.” “누가 미친 사람이란 말이오? 기집에 미친 임선다님 말이
오?” “그래 선다님이 서울서 장가를 세 번 드셨단 말인가? 첩을 셋씩 들어앉
혔대두 곧이가 들리지 않네.” “공연히들 나를 거짓말 잘하는 사람으루 돌리지
만 실상은 나처럼 정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습디다.” “자네는 거
짓말을 정말처럼 한다며?” “내가 정말을 거짓말처럼 한 때는 혹간 있었을는지
몰라두 거짓말을 정말처럼 한 적은 꿈에두 없소.” “선다님 장가 세번 들었다
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구 정말인가 그래?” “장가를 세 번 들었다면 거짓말이
되게. 서울 본기집 노릇하는 사람이 셋이란 말이지.” “장가 안든 본기집이 어
디 있나, 그 말부터 구석이 비네.” “남성 밑 박씨는 귀밑머리 풀구 성례를 갖
추었다구 본기집이라구, 동소문 안 원씨는 재상 딸을 자세하구 본기집이라구, 역
시 동소문 안 나 있는 집 김씨는 첫날밤에 첩노릇 안 하기루 언약했다구 본기집
이라구, 모두 다 본기집이라지 첩이라지 않습디다. 내말이 왜 구석이 빌 까닭이
있소?” “박씨, 원씨,김씨란 다 어디서 생긴 것인가?” “선다님이 기집을 주름
잡는 이야기를 통히 못 들으셨구려.” “자네 어디 이야기 좀 하게.” “이야기
할 테니 내게서 이야기 들었다구 선다님더러 말이나 마시오.” 꺽정이가 산림골
가난한 양반의 집의 딸 박씨에게 장가든 이야기와 당시 재상 원판서의 딸을 업
어온 이야기와 정문 받은 열녀 김씨와 붙어 사는 이야기를 차례로 다하고 노밤
이 자기가 김씨의 집 계집종을 첩으로 데리고 살게 되어서 창피하게 행랑살이한
다는 것까지 이야기하였다. 황천왕동이는 꺽정이의 난봉 부리는 것이 주장 기생
오입이려니 생각하였을 뿐이고 아주 첩을 두었으리라고까지도 생각 못하였더니
천만 뜻밖에 안해로 대접하는 계집이 셋이나 된단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노밤이의 얼굴울 뚫어지도록 바라 보고 있다가 “거짓말루 나
를 놀리면 자제 내 손에 죽네.” 하고 야무지게 말하니 노밤이는 말 같지 않게
여기는 모양으로 히웃으며 “거짓말이면 내 목을 내 손으루 비어 바치리라.”
하고 다짐 두듯 대답하였다. “자네 동소문 안으루 갈 테지? 나하구 같이 가세.
” “오늘 밤에 같이 가잔 말이오? 길에서 순라에게 붙들려 갈라구요.” “자네
는 어떻게 안 붙들려 가나?” “나는 성균관 수복이패를 가졌소. 순라가 붙잡구
물으면 관의 급한 심부름을 갔다온다구 거짓말을 꾸며대지요. 성균관을 맹꽁징
꽁하구 밥먹는 데라구 말하는 사람두 있습디다만 실상 옛날 성인들을 뫼셔놓구
나라에서 춘추루 두 번 굉장하게 치성을 드리는데 그 치성드리는 것을 식전 올
린다구 한답디다. 나라에서 위하는 데라 밤의 순라들두 성균관
지경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우.” “자네 그런 패가 어디서 났나?” “그
따위 위조는 이 집에 들이장여 있소.” “서사더러 말하면 하나 얻을 수 있겠네
그려.” “서사가 주인의 말없이 내놓겠소? 공연히 섣부른 수작하다 코떼지 말
구 내일 낮에 선다님을 앞장세우구 오시우. 다 알구 상면 시키라는데 설마 못한
다구 하겠소.” 황천왕동이는 말을 그치고 잠자코 앉았는데 종없이 지껄이기 좋
아하는 노밤이는 지껄일 만큼 지껄이고도 미진하여 혼자서 자꾸 시벌거리었다.
“남성 밑 박씨는 그 동안 한번 낙태를 했지요. 발써 달포나 되었는데 아직두
그 빌미루 앓는답디다. 운씨는 약하디약하게 생겼어두 강단이 있어서 밤잠두 별
루 없는갑디다. 선다님이 안 가 주무실 때는 밤늦도룩 언문책을 보는데 초성 좋
기라니 천하일품이오. 우리 안주인이 원씨의 책 보는 소리를 기생년 노랫소리라
구 비웃어 말하지만 실상 기생년들 노랫소리보덤 더 듣기 좋소. 안주인은 사람
만 딱장떼구 아무 취할 것이 없건만 선다님께 제일 고임을 받소. 아무두 잠자리
를 잘하는 모양이야. 원씨는 본래 내 몫으루 정하구 업어오기두 내가 업어왔는
데 선다님이 가루채 가구 김씨네 기집종을 나더러 첩으루 데리구 살라구 내주기
에 기집 없는 놈이 그나마 받았더니 안주인이 나를 곧 비부쟁이루 대접하는구
려. 물계 모르는 여편네는 책망할 것이 없지만 선다님이 그런 대접을 시키는 건
어찌 생각하면 조금 야숙하다구 할 듯하지요. 안주인이 내 첩이란 것을 보구 내
말을 하자면 꼭 네 서방이라구 하우. 비위 좋기루 팔도에 소문난 나두 그 소리
를 들을 때는 욕지기가 절루 납디다. 그래두 내나 하니까 그 아니꼬운 걸 참구
지내지 다른 사람 같으면 하루두 못 살구 벌써 나갔을 것이오. 나는 선다님하구
정분이 여타자별한 터에 나가느니 들어가느니 할 수가 있소. 선다님이 광복산으
루 가게 되면 나두 따라갈 작정인데 서울 살림들을 걷어치우구 가지 않구 나보
구 뒷수습이나 하라면 성가실 모양이오.” 노밤이는 꺽정이가 서울 있는 계집들
을 저에게 내맡기고 얼른 광복산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까닭에 미친놈
처럼 시벌거리는 속에 그 마음이 들여다보이어서 황천왕동이가 속으로 저놈이
참말 숭물스러운 놈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노밤이가 저 혼자 실컨 지껄이다가 너무 늦어서 간다고 일어서 나간 뒤로 황
천왕동이는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황천왕동이 마
음속에 이 생각 저 생각 여러 가지 생각이 나는 중에 노밤이 같은 미친놈의 말
을 준신할 수는 없으나 백인데 서사를 끌고 나가서 술잔을 먹여가며 물어볼까
상노아이들을 꾀솜꾀솜하여 물어볼까. 서사는 바로 말해 줄는지 모르고 상노아
이들에게는 체신을 잃기 쉬워서 생각을 얼른 질정하지 못하였다. 건너방에서 상
노아이들 코고는 소리가 나다 말다 할 뿐이고 온 집안이 조용할 때 큰집과 통래
하는 일각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히는 소리가 나며 곧 뒤미처서 “천왕동아 자느
냐?” 한온이의 술취한 말소리가 났다. 황천왕동이는 이때껏 자지 않고 벽에 기
대어 앉아 있었으나 신발 소리로 꺽정이가 오지 않는 것을 알고 비위가 틀려서
자는 체하고 가만히 있었다. 한온이가 방 앞으로 가까이 오면서 "불을 켜놓구 자
느냐?”하고 소리치는데 불 끄고 자던 건넌방의 상노아이들이 일어나 마루로 나
왔다. “손님 자리를 깔아 드렸느냐?” “손님이 주무신 제 오래냐?” 상노아이
들을 보고 말을 묻고 “이 자식 잠이 꽤 깊이 들었구나.” “네가 길을 와서 곤
한 게다.” 황천왕동이에게 대고 혼잣말을 지껄인 뒤 한온이가 일각문 쪽으로
도로 갈 때 방안의 황천왕동이는 갑자기 한온이를 불러들일 생각이 나서 “어른
주무시는 방 앞에 와서 기탄없이 떠드는 자식이 누구냐!”하고 방 앞문을 열치
었다. 황천왕동이가 서사나 상노아이들에게 캐어 물어보려는 것을 한온이에게서
파내어 들어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한온이가 돌아서서 황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저 자식 깨었네.” 말하고 마루 앞으로 와서 손에 든 초롱을 상노아이에게 내
맡기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른 들어오시는데 일어나지두 않느냐! 버릇없는 자
식이로군.” “장승처럼 버티구 섰지 말구 어서 앉아라.” “너 앉은 자리를 비
켜다우. 내가 앉을 테니.” “내 옆에 앉구 싶으냐? 자, 이리 와 앉아라.” 황천
왕동이가 펼쳐 있는 이불자락을 밀치고 요 위에 한온이를 앉게 하였다. “내가
오늘 밤에 술을 많이 먹었다.” “배움술이 많이 먹어야 서너 잔 먹었겠지.” “
서너 잔 열 꼽절 더 먹었다, 이 자식아.” “거짓말 마라. 네가 삼십 잔 술을 먹
으면 다 컸게?” “이놈, 버릇없는 소리 마라.” “어린 속에 점잖은 것이 들어
가서 눈이 뒤집힌 게구나. 누구더러 이놈이라니.” “너더러 이놈이랬다. 뺨 한
번 맞구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못생긴 너더러 이놈이랬다.” “실없는 말 고
만두세. 내가 자네에게 정당히 물어볼 말이 있네.” “선생님 말을 물어보구 싶
으냐?” “그래.” “선생님은 기생방에서 곯아떨어지셨다. 술을 배운 제자가 번
고를 두세 번 하두룩 취했을 젠 술을 가르친 선생은 알조 아니냐. 너들의 대장
이 내 술선생이야. 너 아니?” “내가 자네게 물어볼 말은 다른 말일세.” “다
른 말은 무슨 말이냐?” “우리 대장이란 이가 서울서 하는 일이 무언가?” “
술상 받으면 술 먹구 밥상 받으면 밥 먹구 그렇지.” “그 동안 안해 셋이 생겼
는데 중신은 다 자네가 했다데그려.” 한온이가 물끄러미 황천왕동이를 보면서
“그런 말 뉘게 들었니?”하고 물었다. “광복산 있는 우리들두 귀가 둘씩일세.
그런 말두 못 들겠나?” “풍설이다. 그 따위 풍설을 듣구 온 까닭에 네가 선생
님께 말을 막하구 내게 골부림을 했구나.” “풍설이라니 헛말이란 말인가?”
“그렇지, 똑똑한 사람이 왜 헛말을 곧이듣는단 말이냐?” “남성 밑 박씨, 동소
문 안 원씨, 김씨 그것들은 다 무언가?” “그것들이 무언지 나두 모르겠다.”
“박씨는 낙태한 뒤 성치 못하구, 원씨는 약하디약하구, 김씨가 제일 고임을 받
는 것까지 다 들었네.” “다 듣구 무얼 묻느냐? 내가 지금 정신이 들락날락한
다. 내일 이야기하자.” “이 사람 자네가 나를 친구루 알거든 내 말 한마디만
대답해 주게. 그 세 기집이 다 첩이 아니구 본기집이라니 그것이 정말인가?”
“본기집 아닌 것이 본기집이라구 하면 본기집이 되나. 그런 건 묻는 사람이 소
견이 없지. 그런 것들이 본마누라 노릇을 하려구 한대두 너의 누님을 쫓아내구
들어앉진 못할 테니 염려 마라. 허허허, 네가 너의 누님 대신 바가지를 긁으러
왔구나. 허허허.” “웃지 말게, 속상하네.” “아따 이 사람아, 인생 백년에 시
름 잊구 웃는 날이 몇 날이나 되겠나.” 한온이가 황천왕동이의 어깨를 치고 '반
나마 늙었으니' 노래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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