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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꺽정 7권 (30)

카지모도 2023. 6. 1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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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동안 안 지나서 떡 벌어진 주안상 한 상이 들어왔다. 한온이가 황천왕동이

맞은편에 가서 앉은 뒤에 계집들을 보고 “넷이 한테 포갬포갬 앉았지 말구

둘쯤은 이리 나와 앉아서 손님께 술을 많이 권해 주게.” 하고 말하여 계집 둘이

황천왕동이 옆에 와서 앉았다.

“내가 자네하구 하위하려구 내는 술이니까 첫잔을 자네가 들게.”

“뒤에 오면 석 잔이라니 자네가 더 먹어야 하네.” 한온이가 첫잔부터 연해 권하는데

“우리가 많이 먹었다. 어서 먹어라.” 꺽정이가 역시 권하여 황천왕동이가 서너 잔

폭배한 뒤에 잔이 순으로 돌기 시작하였다. 황천왕동이는 술 먹을 흥이 없을 뿐 아니라

술 먹을 마음조차 적건마는 본래 잘 먹는 술을 갑자기 못 먹는다고 어쌔고비쌔고 하기가

싫어서 잔이 앞에 오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한온이는 오입쟁이라 원수를

맺었다 풀었다 하는 오입판에서 마음도 서그러질 대로 서그러졌거니와 자기의

탓으로 황천왕동이가 꺽정이에게 뺨 맞고 걷어차이고 눈물까지 머금게 된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므로 아무쪼록 황천왕동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내가 삼십 평

생에 생일날 볼치떡을 얻어먹기는 오늘이 처음일쎄. 자네 덕에 생일을 잘 쇠어

서 고맙기 이가 갈리네.” 이와 같은 웃음의 소리를 하는 끝에 황천왕동이더러

“여보게, 자네 기생맛을 본 일이 있나?” 하고 물어보니 계집들이 가만히 듣고

있지 않고 “기생이란 음식 이름인가요?” “무슨 음식입니까? 댁에 있거든 우

리들도 맛 좀 보이시오.” 중구난방으로 나서는 것을 한온이가 손을 내저어 누

르고 황천왕동이게 하던 말을 이어 하였다. “맛으루 말하면 장가처가 첩만 못

하구 첩이 기생만 못하니 기생맛을 못 보면 기집맛은 모르네. 기집맛 좀 보구

가려나? 서울 안 일등 명기 넷이 이 자리에 모였으니 넷 중에 하나 골라보게.

아니 저 선생님 옆에 바짝 붙어앉은 내가 마음대루 할 수 없으니까 빼구 셋 중

에서 하나를 고르게. 자네가 속으루 골라놓구 넌지시 내게 말을 하면 내가 자네

위해서 조방꾼이 노릇을 한번 함세. 이름들을 일러줄까? 자네 옆에 보라 저구리

는 추월색, 분홍 저구리는 홍련화, 내 옆은 소월향, 선생님 곁은 두자 이름으루

소홍이라네.” 소홍이란 계집은 “저 양반이 기생 점고를 하나?” 하고 하하 웃

고 추월색, 홍련화 두 계집은 “조방꾼이 노릇을 썩 잘하시는군.” “오입쟁이

날이 나면 건달이 되고, 건달이 배고프면 조방꾼이 된다지.” 하고 서로 보며 깔

깔대고 소월향이란 계집은 웃지 않고 “이 양반이 오늘 미치셨나 보아.” 하고

한온이를 곱게 흘겨보았다. 한온이가 허허 웃고 꺽정이도 껄껄 웃어서 방안의

웃음소리 요란한 속에 황천왕동이만은 억지 웃음으로 따라 웃는 체하였다.

한온이가 웃음의 소리 하는 데서 황천왕동이는 소월향이가 한온이와 사이가 좋

고 소홍이가 꺽정이와 관계가 있는 것을 짐작하여 유심히 소홍이를 살펴보며 속

으로 ‘저 따위 년에게 홀려서 헤어나지를 못하다니 눈에 무에 쓰인 게지. 본정

신으로야 그럴 수가 있나.’ 생각도 하고 또 ‘내가 서울 온 일은 저년도 아마

짐작하렷다. 그러면 내가 몰골 사나운 일 당하는 것을 저년은 고소하게 여길 테

지.’ 생각도 하여 소홍이가 밉기 짝이 없었다. 황천왕동이의 눈이 소홍이에게로

자주 가는 것을 한온이가 보고 “자네두 어떤 양반처럼 살기 있는 기집을 좋아

하는 모양일세그려. 그렇지만 그건 안 되겠네. 처음부터 빼라니까 그래.” 하고

실없이 말하여 황천왕동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미친 자식이로군.” 하고 욕을

하니 한온이는 옆에 소월향이를 돌아보며 “네가 나더러 미쳤다구 하기 때문에

미친 자식이라구 욕을 먹는다. 욕하는 입을 네가 막어다구. 얼른 술 한잔 부어

드려라.”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입을 빼물고 있던 소홍이가 “욕맛이 꿀맛 같

소. 온갖 맛 다 잘 아는 이가 자청해 자실 제는 정녕코 단맛이 나는 게지.” 하

고 한온이게 말을 걸었다. “자네 맛 좀 보려나?” “나는 싫소.” “싫으면 빨

기나 하려나?” “빠는 건 다 무어요. 당신의 입은 사복개천이야.” “자네 입버

덤은 정할걸. 자네 입은 뭇사내 입에, 고만둬라.” “왜 고만두시오? 실컨하지.”

“그러다가 밤참을 날리게.” “오늘 밤참은 벌써 틀렸소.” “실없은 말 고만두

구 밤참은 장만하지 말게. 손님이 기시니까 선생님두 못 가실 것 같구 나두 못

가겠네.” “손님하고 같이 오시구려.” 황천왕동이는 한온이와 소홍이의 말하는

손님이 자기 말인 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아무 말 아니하였다. 해질 물에 기

생들이 각기 저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소홍이는 잠시 뒤떨어져 있다가 일어서며

한온이더러 “되지 못한 음식이나마 숙불환생이니 꼭 오시오.” 하고 당부하니

한온이는 대답을 아니하고 꺽정이의 입을 바라보고 소홍이가 다시 꺽정이 옆에

가서 “선다님, 어떻게 하실랍니까?”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글쎄.” 하고 대

답을 근지하였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무얼 그러지 말란 말이냐?” “내

가 누구를 푸대접하드냐?” “누가 오지랖 넓게 남의 말 할라구요. 내가 선다님

뵈압구 할 말씀이 많습니다. 오늘 밤에 꼭 오세요.” "할 말씀 많으면 오늘 종일

보구 왜 말 안 했느냐?” “마부가 기다리니까 긴말 할 새 없어요. 자, 나는 갑

니다.” 소흥이가 밖으로 나갈때 황천왕동이에게 “놀러오십시오.” 하고 인사조

로 말하는 것을 황천왕동이는 딴전하고 못 들은 체하였다. 소흥이가 마루 아래

까지 내려가서 다시 방 앞문을 빠끔히 열고 꺽정이를 들여다보며 “꼭 오시지

요.” 하고 다지니 꺽정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꺽정이와 소흥이의 사이는 계집의 욕심이 사내의 정보다 더 많아서 들러붙고

떨어지지 아니하여 꺽정이가 박씨, 원씨 두여편네를 데리고 살면서도 이따금 소

흥이 방에 가서 잤었는데 나중 김씨를 얻은 뒤로 한동안 통히 소흥이를 찾지 아

니한 까닭에 한온이가 중간에서 공연한 매원을 들었었다. 소흥이가 한온이의 생

일날 사랑놀음 오기를 언약할 때 생일날 밤참은 저의 집에서 준비할 터이니 임

선다님과 같이 놀러오라고 청하는 것을 한온이는 선선히 허락하고 꺽정이에게

미리 말까지 하였었다. 이런 속을 황천왕동이는 알 까닭이 없으

므로 혼자 심중에 생각하기를 소흥이란 년이 흉악한 년이다. 저의 선다님을 내

가 빼어가려고 온 줄 짐작하고 밤에 같이 자며 이야기도 못하게 하느라고 갖은

요신을 다 부려서 저의 집으로 끌어가는 모양이다. 이 별장 말대로 며칠씩 묵어

가며 같이 가자고 졸라야 소용없을 건 정한 일이고 오늘 밤에 자세한 이야기 하

기도 틀린 바엔 대충 할 말 하구서 성문 닫기 전에 떠나가는 게 좋겠다. 하고

꺽정이를 보고 “나는 지금이라두 떠나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한온이가 먼저

“이 사람 나더러 미쳤다더니 정작 자네가 미쳤네그려. 지금 어딜 떠나 이 사람

아.” 하고 어깨를 툭 치고 꺽정이가 그 다음에 “지금 해 다 졌다. 자구 내일

가려무나.”

하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장같이 부어오른 뺨을 꺽정이는 처음 보는

듯이 “빰이 아프지나 않느냐? ” 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가 머리를 가로 흔든

뒤 곧 “내가 올 때……” 하고 서울 온 사연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별장

말씀이 이번에는 꼭 뫼시고 오거나 그렇지 못하면 분명히 어느 날 오신다는 말

씀을 듣구 오라고 합디다. 그런데 뫼시구 갈 가망은 없는 것 같으니까 어느 날

쯤 서울서 떠나신다구 대개 날짜라두 정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꺽정

이가 흰자 많은 눈을 뜨며 보면서 “내가 너희들에게 매어 지내는 사람이냐!”

하고 호령하듯 말하는데 언성만 높지 않을 뿐이었다. “매어 지낸다니 말씀이지

만 내가 오구두 싶지 않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남에게 매어 지내는

신세가 가련한 줄을 뼈에 사무치게 알았습니다.” “그래, 신세가 가련한 줄은

알았으니 장차 어떻게 할 테란 말이냐?” “여러 사람들이 전부 다 서울루 오거

나 그렇지 않으면 사방으루 흩어진다구들 하는데 만일 서울루들 오게 된다면

나는 혼자 광복산버덤 더한 두메 속에 들어가 화전뙤기를 일궈 먹더래두 따라

오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어째! 사생동고한다구 맹세한 눔들 말본새 되었다.

” “도중 여러분두 가끔들 사생동고 맹세를 들춥디다.” “너부터 말본새가 되

었느냐 말이야!” “나는 말씀 들어봐서 이번에 아주 영결루 하직하니 갈 생각

까지 없지 않습니다.” “영결이든 아니든 갈 놈들은 다 가래라.” “말씀을 더

들어볼 것 없으니까 인제 나는 떠나가겠습니다.” 황천왕동이가 분연히 일어서

려고 할 때 뗑뗑 울리는 인정 소리가 들리었다.

황천왕동이가 서울 온 사연을 꺽정이에게 말하는 중에 한온이는 슬며시 마루

로 나가더니 마루에서 거닐면서 “여보게, 안경 소리 듣게. 인제 문밖을 나가려

면 월장하는 수밖에 없네. 그래두 갈텐가?” 하고 황천왕동이더러 말하였다. “

이리 들어오게. 자네에게두 좀 할 말이 있네.” “나더러두 같이 가자구 조를 셈

인가?” 한온이가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와서 황천왕동이를 마주 대하고 앉았다.

“내가 자네에겐 사과를 해야겠네.” “ 그런 말 하자구 나더러 들어오랬나? 녜

이 사람.” “자네 몸에 손을 댄 것만은 잘못이거든.” "글쎄 이 사람아, 빰한번

치기두 예사구 빰 한번 맞기두 예사지 그까지 일에 사과를 하느니 삼전을 하느

니 할 게 무어 있나? 더구나 하윗술까지 먹구 난 뒤 새삼스럽게. 그런 줄 몰랐

더니 자네가 옹졸한 사람일세.”

“그러구 내가 이번 가면 또 언제 서울을 올는지 모르니까 자네 하구 다시 만

나기두 쉬웁지 못할 것 같애.” “글쎄, 지금 두 분 수작하시는 말씀에 내가 밖

에서 다 들었는데 나 같은 가욋사람이 참견할 일은 아지니만 나 듣기에는 자네

두 격해서 하는 말이구 선생님두 화나서 하시는 말씀인데. 한 번 더 생각을 해

보시구 다시 이야기하시는 것이 좋을 줄 아네. 이왕 주제 넘게 말을 낸 길이니

내 소견을 잠깐 말하겠네. 대체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도중을 떠나 가시니까 도

중 여러분이 궁금할 때두 많구 답답할 때두 많겠지. 그렇지만 서울루 다 온다거

나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일세. 우리네가 명호를

중하게 여기구 의리를 중하게 여기는 까닭에 된 사람 안된 사람 한데 모여서 죽

을 고 살 고를 가리지 않구 일을 하지 않나. 그런데 지금 선생님 명령 없이 서

울루들 온다는 것두 부하루서 대장을 무이 여기는 일이니까 안될 말이지만 사방

으루 흩어진다는 것은 명호뿐인가 의리를 통히 잊어버리는 일 아닌가. 의리를

잊어버린다는 건 안될 말이라구 말할 나위두 없네. 그나마 쥐대기루 모인 도중

같으면 오히려두 모르지만 그래 아무개패 칠형제라면 어느 패에서든지 다 알 만큼

소문이 높이 난 터인데 사방으루 흩어진다니 빈말이라두 듣기 놀랍지 않은가. 자네루

말하면 의리 외에 정리가 다른 여러분두 다른데 선생님 앞에서 영결루 하직한단 말이

어떻게 입에서 나오나? 선생님 화내시는 건 당연한 일일세. 아까 선생님이 자네

게 너무 과하게 하셨으니까 지금 자네 말이 격해 나오기두 쉽지. 그러니 오늘

밤 자구 내일쯤 다시 이야기를 하시면 좋겠네.” 한온이가 말을 마치고 곧 꺽정

이를 돌아보며 “선생님 제 말이 옳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때 상노아이 하나가 방문 밖에 와서 “저녁 진지가

다 되었는데 진지상을 할까 여쭈어 보랍니다.” 하고 말하니 한온이가 “오냐,

내가 안에 들어가 다녀나올 테다.” 대답한 뒤 황천왕동이더러 “우리 아버지

저녁 잡숫는 것 잠깐 보입구 나옴세.” 하고 일어서 나갔다. 꺽정이는 외상하고

황천왕동이는 한온이와 겸상하여 저녁밥을 먹은 뒤에 한온이가 황천왕동이더러

소흥이에게 같이 가서 놀다 오자고 여러 차례 졸랐으나 황천왕동이는 끝끝내 싫

다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나중에 꺽정이와 한온이가 기생년에게 실신할 수

없다고 소흥이 집에 놀러갈 때 한온이는 황천왕동이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마

음에 미안하든지 말벗으로 서사를 불러다 준다고 하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일찍

잔다고 고만두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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