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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33)

카지모도 2023. 6. 14.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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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보시오. 세상에는 영웅이 더 염려라구 내 말하지 않습디까?” 서림이가 먼저

한마디 하고 “대장 형님이 기집에 곯아죽었더면 서종사는 퍽 신통할 뻔했소.”

곽오주가 뒤받아 한마디 하고 “우리 대장이 기집질에두 대장일세.” 늙은 오가

도 한마디 하고 “사생동고하자구 맹세하구 갈 놈은 누구며 가랄 놈은 누구야?

” 배돌석이도 한마디 하고 “시골 안해 한 분에 서울 안해 셋이면 대장 형님두

배두령 형님과 같이 사취 장가까지 드신 셈이군.” 길막봉이도 한마디 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이 다들 한마디씩 지껄이는데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는 입들을 다물

고 말참례를 하지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과 박유복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형님네는 아이적 동

접으루 자형 일을 고주리미주리까지 다 잘 아시지만 기집동사에 생각이 어떻든

건 나만큼 모르시기 쉬우리다. 본기집이 튼튼해서 애새끼 낳을 만한데 첩을 두

는 건 잡놈의 짓이다, 오입으루 기집질을 하더라두 첩은 둘 것이 아니다, 첩을

두면 집안이 시끄러워 못쓴다, 우리 누님을 보구 자네가 늙다리 되기 전엔 첩을

안 둘 테니 안심하게, 첩을 둘라면 벌써 두었네, 계제가 없어 못 두었겠나 이런

말 하는 것을 내 귀루두 많이 들었소.평일에 이런 말을 하던 이가 지금 첩두 아

니구 본기집으루 기집을 셋씩이나 두었다니 오장이 바뀌지 않구야 그럴 리가 있

소? 우리 남매가 허항령 무인지경에서 세상을 모르구 자란 사람으루 자형 한 사

람을 믿구 바라구 세상에 나와서 이십 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누님뿐 아니라

나두 자형을 하늘같이 여겨 왔는데 하늘이 사람을 속일 줄이야 누가 알았소. 내

가 뺨맞구 떠다박질린 건 그 당장 야속했을 뿐이지만 자형이 환장한 것은 생각

할수록 분하우. 형님네두 우리 남매가 돼서 생각 좀 해보시우. 이렇게 분할 데가

어디 있겠소.”하고 원정하듯 하소연하듯 말한 뒤에 한숨까지 길게 쉬었다. “아

주머니 보였나?” 박유복이가 물어서 “누님 말씀이오? 보였소.” 황천왕동이가

대답하였다. “아주머니께서 펄펄 뛰시겠네.” “누님께는 아직 말씀 못했소.”

“말씀 안 하기를 잘했네.” “이따가 말씀할 작정이오. 누님이 그러지 않아두

동기간에 말을 기인다구 늘 사살을 하는데 이런 일을 말씀 안할 수 있소?” “

말씀하는 게 부지러울 것 같애.”“내가 말씀 안 하면 모르실 일일세 말이지요.

” “말씀을 하더래두 좀 두었다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다른 데서 말이

나서 듣구 보면 나는 누님만 기인 사람이 될 테니 말씀하겠소.” 박유복이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할 그 즈음에 이봉학이가 박유복이더러 “남매간에 이야기하

구 안 하는 건 대사가 아니니까 황두령이 자량해 할 일이야.” 말하고 좌중을

향하여 “대장 형님께서 잠깐 왔다 또 가신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니 무슨 수단

으루 다시 못 가시두룩 할까 그게나 좀 의논들 해보지.”하고 말하였다. “서울

있는 기집들을 다 끌어 내려오면 다시 안 가시겠지.” “우리들이 못 간다구 붙

잡구 늘면 어쩌겠소?” “또 가신다거든 우리들두 다같이 간다구 나섭시다.”

“우리 재물을 도루 다 찾읍시다. 재물이 없으면 기집질두 못할 것 아니오.” 여

러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말하는 중에 서림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 “안팎 손이

맞으면 다시 못 가시게 할 수 있지요.”하고 말하여 “안팎 손이라니?”하고 이

봉학이가 물었다. “안에는 첫째 대장 부인 그외에 다른 식구들, 밖에는 첫째 우

리 그외에 두목과 졸개들 전부가 합심해 가지구 다시 못 가신다구 붙잡을 사람

이 붙잡구 매달릴 사람이 매달리구 애걸할 사람이 애걸하구 사리루 말씀할 사람

이 말씀하구 등장을 들 사람이 등장 들면 대장두 꼼짝 못하시리다.” 서림이가

말을 끝내고 좌중을 돌아볼 때 마침 꺽정이의 아들 백손이가 밖에 와서 헛기침

하며 곧 방문을 열고 들여다 보았다. “너 어째 왔느냐?” 이봉학이 묻는 말에

백손이는 “외삼촌 아저씨를 좀 보러 왔세요.” 대답하고 나서 황천왕동이더러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방에서 나가지 않고 “왜 나오라

느냐?”하고 물으니 백손이가 누구의 심부름이란 말도 없이 그저 “심부름 왔

소.”하고 대답하였다. 황천왕동이는 성미 급한 누님이 자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부르러 보낸 줄을 짐작하고 “오냐, 곧 갈 테니 너 먼저 가거라.”하고 이르니

“심부름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잔소리 듣기 싫소. 같이 갑시다.”하고 백손이가

혼자는 안 가러 들었다.

황천왕동이가 생질을 앞세우고 오는데 그 누님이 싸리문 밖에 나와서 기다리

고 있다가 “잠깐 다녀온다더니 웬걸 그렇게 오래 있니?”하고 더디 오는 것을

나무랐다. “언제 내가 잠깐 다녀온다구 합디까?” “와서 이야기한다기에 곧

올 줄 알았지, 누가 오래 될 줄 알았어? ” “서울 갔다온 이야기가 좀 길었소.

” “그럼 나두 한옆에 가 앉아서 들을 걸 그랬다.” “누님이 도회청에 무어하

러 온단 말이오?” “너 하는 이야기야 들으러 못 갈 것 무어 있어.” “누님이

들어야 화나구 속상할 이야기뿐이오.” “신신치 못한 이야긴 줄 나도 다 안다.

” “누님께는 이야기를 안 하구 고만둘 생각두 없지 않소.” “오, 내가 성말라

죽는 걸 보고 싶으냐?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방, 건넌방

두 방에 안방은 꺽정이의 누님 애기 어머니가 쓰고 건넌방이 백손 어머니의 쓰

는 방이라 남매 모자 세 사람이 건넌방으로 들어오는데 안방에서 애기 어머니가

내다보고 “봉산 양반이 오시는군.”하고 말하며 밖으로 쫓아나왔다. 애기 어머

니까지 네 사람이 건넌방에들 들어와서 앉은 뒤에 황천왕동이가 애기 어머니를

보고 “애긴 어디 갔소?”하고 물었다. “산상골네가 앓는데 어린애 좀 가 봐

주라고 보냈어.” “산상골 아주머니가 어딜 앓소? 대단친 않기에 박두령 형님

이 도회청에를 왔지.” “어제 저녁밥이 체했다나 보아.” “그런 이야기는 고만

두고 어서 서울 이야기나 좀 해라.” 백손 어머니의 말에 황천왕동이는 녜 대답

하고 “애기 어머니두 좀 들어보시우.” 말하고 나서 꺽정이에게 뺨맞고 떠다박

질린 것부터 먼저 이야기 하였다. 백손 어머니는 눈이 샐쪽하여지며 “그래 너

는 가만히 있었어?”하고 황천왕동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만 있

지 어떻게 하우?” “어떻게 하우란 무어야. 힘이 모자라면 말로라도 해보아야

지.” “마음이 변한 사람에게 말이 귀에 들어가우? 말하면 말이나 귀양보내지.

” 애기 어머니가 황천왕동이더러 “잘했소. 그 사람은 덧들이지 않는 게 제일

이야.”하고 말하는 것을 백손 어머니가 “그게 자기 동생만 아시는 말이지. 아

무 죄없는 사람을 때려죽이려고 해도 가만히 있어요?”하고 가로 탄하였다. “

내 동생이 자네겐 아무것도 안 되나?” “내게야 무에 되요? 남남끼리지.” “

남남끼리라는 자네가 친동기간인 나보담 더 가까울걸.” “형님은 고만두세요.

누가 형님하구 말하쟀세요.” “내가 먼저 자네더러 말하자든가?” 황천왕동이

가 중간에서 손을 내저으며 “내 이야기나 다 듣구 말씀들 하시우.”하고 꺽정

이의 서울 안해가 셋씩이나 되는 것을 마저 다 이야기 하였다. 백손이는 “아버

지가 미쳤군.” 말하고 애기 어머니는 “동생이 그게 웬일일까?” 말하는데 백

손 어머니는 말도 못하고 얼굴빛에 새파랗게 질리고 몸까지 부르르 떨리었다.

황천왕동이가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서 그 누님의 모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누

님 좀 누우시려우?”하고 물으니 백손 어머니는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형님

이 맘 변한 건 나두 분하니까 누님이야 더 말할 것 있소? 그렇지만 참으시우.

형님이 앞으루 어떻게 하나 하는 꼴이나 좀 두구 봅시다.” 황천왕동이가 그 누

님을 안위시키는 말에 “그럼, 우리 여편네는 무슨 일이든지 참는 게 제일이야.

” 애기 어머니가 동을 달고 “두구 본다니 두구 보면 아저씨 무슨 수 있소? 어

머니가 소박뜨기나 되구 말지.” 백손이는 뒤받았다. 황천왕동이가 생질보고 “

나두 생각이 있다.” 말하고 백손이가 외삼촌에게 “무슨 생각이오? 나 좀 들어

봅시다.” 말대답하여 구생간에 말이 오고가기 시작하였다. “너의 아버지가 우

리 누님을 소박하면 우리 누님두 너의 아버지를 소박하지. 외소박 내소박이 맞

장구치면 고만 아니냐.” “아저씨가 어머니를 다른 서방 얻어주겠단 말이오?”

“내소박이 다른 서방 하는 것인 줄 아느냐?” “그럼 무어요? 아버지하구 맞장

구를 치자면 어머니가 다른 서방을 얻어야 하지 않소.” “말 같지 않은 말 하

지 마라.” “아저씨 생각을 좀 똑똑히 말해 보우.” “누님이 내외간에 같이 살

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할 수 없이 누님을 뫼시구 다른 데루 갈 생각이다.” “

다른 데 어디루 갈 테요?” “갈 데 없어 못 사겠느냐? 우리 부모 산수 밑에 가

서 살다가 죽은 귀신이라두 부모 형제 한테 모이구 좋지.” “기껏하여 백두산

속으루 도망갈 생각이구려. 그게 어디 맞장구요.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기집을

셋이구 넷이구 끌구 와야 다 따루 살리지 우리하구 한데서 살라진 않을 테니까

그까지 년들 우리하구 상관없으면 고만 아니오.” “너의 아버지의 안해면은 네

게 어머니야. 너부터 상관없이 못 지낼 게다.” “아버지가 기집에 미쳐서 줏어

들이는 년들을 어떤 쓸개빠진 눔이 어머니라구 하겠소? 이년 저년 하며 해라

해두 좋지.” “너의 아버지한테 맞아죽으려구?” “내가 맞아죽을 지경이면 그

년들을 다 때려죽이구 죽지 외자루 죽지 않소.” “어디 두구 보자.” “두구 보

구려.” 백손이가 외삼촌에게서 얼굴을 돌리어 어머니를 향하고 “아버지가 우

리를 돌봐 주지 않더래두 내가 나이 이십인데 설마 어머니 하나를 편하게 먹여

살리지 못하리까. 아무 염려 마우.”하고 말하니 백손 어머니는 들어붙은 입이

겨우 떨어져서 “듣기 싫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도회청에 모였던 다른 두령들은 다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가고 이봉학이와 서

림이 두 사람이 뒤에 남아서 바둑으로 소견하고 있는 중에 애기 어머니가 이봉

학이를 찾아서 도회청에를 나왔다. “누님 웬일이시우?” “백손 어머니가 서울

간다고 나갔어. 아무리 말려야 말을 들어야지. 백손이란 자식이 좀 지각이 있으

면 저의 어머니를 못 가게 붙들 것인데 이 자식이 저두 간다고 뜨주거리고 따라

갔어. 모자가 서울을 가고 보면 무슨 일이 날는지 모르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 “황두령이 가서 서울 이야기를 했구먼요.” “서울 이야기를 백손 어머

니가 듣고 곧 기절할 것 같았어.” “황두령은 어디 있나요?” “이야기하고 한

참 앉았다 자기 집으로 갔지.” “황두령더러 쫓아가서 뫼시구 오라구 이르지요.

” “황두령이 혼자 가서 될 듯하면 내가 바루 황두령에게 가서 말했게. 황두령

혼자 가서 안 되어. 여러분이 다같이 가셔야지.” “여러 두령들을 불러모아 가

지구 이야기하리다.” “멀리 가기 전에 얼른 쫓아가도록 해요.” “염려 말구

누님은 들어가시우.” 이봉학이가 즉시 도회청 가까이 있는 두목과 졸개를 불러

서 여러 두령에게 나눠 보내며 빨리들 가서 뫼시고 오라고 분부하였다. 여러 두

령들 오기 전에 서림이가 초벌 의논삼아 의견을 말하였다. “대장의 부인과 아

들이 서울을 가면 일장풍파는 나겠지만 그 대신 대장이 속히 오시게 되구 또 가

신단 말을 못하게 될는지 모르니 쫓아가서 붙들지 말구 그대루 내버려 두시면

좋겠소.” 서림이의 말을 이봉학이가 처음에는 옳게 여기고 “글쎄.”하고 고개

를 끄덕이다가 다시 생각하고 “그래두 그대루 내버려 둘 수야 있소. 우리가 몰

랐으면 모를까.”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황두령을 같이 가라지요.” “황

두령이 갈라구 하까?” “황두령이 안 간다면 박두령이 어떠까요?” “이왕 사

람이 따라갈 바에는 풍파 나는 것을 진정시킬 수단 있는 사람이 갔으면 좋겠는

데.” “그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이두령께서 친히 가시는 게 제일이오.” “내

가 웬 그런 수단이 있을세 말이지.” 여러 두령이 하나둘 오기 시작하여 잠깐

동안에 다 모이었다. 이봉학이가 여러 두령들을 보고 백손 어머니가 아들 데리

고 서울길 몰래 떠난 것을 말하고 여럿이 다같이 쫓아가서 붙들어보다가 정히

붙들리지 않거든 누가 서울까지 따라가기로 하고 내처 따라갈 사람을 아주 작정

하여 가지고 쫓아가자고 말한 다음에 고개 숙이고 앉았는 황천왕동이를 바라보

며 “황두령 한 번만 더 가려나?”하고 물어보았다. “내가 다들 가는 데까지는

같이 가두 서울은 못 가겠소. 몸두 괴롭구 또.” “긴말은 고만두게.” 이봉학이

가 황천왕동이의 말을 중둥무이시키고 “너 가보려느냐?”하고 옆자리에 앉은

박유복이를 돌아보았다. “내가 가서 되겠소?” “무에 되겠느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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