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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41)

카지모도 2023. 6.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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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후에 황천왕동이가 금교서 떠나서 개성.장단 적성 땅을 지나서 마

전읍에를 오니 해가 겨우 점심때쯤 되었었다. 읍내 바닥으로 돌아다니다가 그중

의 좀 정갈스러워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 앉아서 술을 사먹으며 주인 계집더러

말을 물어보았다. “이 골에 유명한 관상쟁이가 있다는데 그 관상쟁이가 어느

동리 사는지 아우?” “나는 장단서 살다가 이리 온 지기 얼마 안돼서 여기 일

을 잘 몰라요.” 밖에 섰던 사내 하나가 “ 여보 관상쟁이는 왜 찾소? 상을 보

러 왔소?”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가 “네 그렇소.”하고 대답하였다. “여기 달

골이란 데 상 잘 보는이가 하나 있을텐데.” “그가 성이 무어요?” “조씨요.”

황천왕동이가 속으로 “옳다. 됐다.”생각하며 달골 가는 길을 물었다. 달골은

읍에서 지척이라 술집에서 나서는 길로 바로 찾아나왔다. 상 보는 조씨는 집이

동네 안침에 있는데 초가집일망정 제법 큼직하였다. 황천오왕동이가 삽작 밖에

서 주인을 찾으니 한참 만에 아이놈 하나가 안에서 나오며 곧 “샌님 집에 안

기시오.”하고 말하였다. “어디 가셨느냐?” “풀물골 잔치에 가셨소.” “풀물

골이란 데가 예서 머냐?, 가까우냐?” “풀물골이 여기서 가찹소.” “그럼 곧

오시겠구나.” “저녁 전에 오시겠지요.” “애 너의 댁 샌님이 어디서 데려오신

사람이 있지.” “샌님이 데려온 사람이 누구요?” “너만한 아이 하나하구 그

애 아버지하구 데려오셨지,” “난 몰라요.” “너는 못 봤느냐?” “난 몰라요.

” “모르거든 고만둬라. 이따가 너의 샌님 보이러 다시 오마.” 황천왕동이가

달골 동네와 동네 근처를 바장이며 해를 보내고 이 집 저 집에서 저녁연기가 일

어날 때 조씨의 집에 다시 와서 물어본즉 주인이 아직도 오지 아니하여 그 집

앞에서 오락가락 하는데 먼저 보던 아이놈이 어디를 갔다오면서 “여보시오, 나

좀 보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를 불렀느냐?” “녜,샌님이 풀물골서 자

구 오시기가 쉽답디다. 여기서 기다리지 말구 갔다가 내일 아침에 오시우.” “

풀물골서 사람이 왔느냐?” “샌님하구 같이 갔던 양반이 한 분 오셨습디다.”

“내가 난데서 온 사람이라 갈 데가 없으니 너의 집에서 좀 자야겠다.” “마나

님 말을 들어봐야지요.”하고 아이놈이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도로 나와서 “

마나님이 안된다구 합디다. 난 공연히 야단을 만났소.”하고 볼멘 소리를 하였

다. 황천왕동이가 읍에 들어가서 자고 나오려고 생각하다가 읍에 들어가야 마찬

가지 과객 노릇을 할 바에는 이 동네 어느 집에서 하룻밤을 자자고 해보리라

다시 생각하고 잘 곳을 찾으러 다니었다. 황천왕동이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다니는 중에 어느 집 앞을 지나가자 삽작 앞에 섰는 사내가 태가 벗은 품이 촌

농군 같지 아니하여 말벗이 훌륭히 될 듯하므로 그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

를 져보려고 삽작 앞에 가까이 들어서며 “여보?”하고 브르니 그 사람이 삽작

밖으로 나와서 “누구를 찾소?” 하고 묻는데 말소리가 제법 우렁우렁하였다.

“댁이 이 집 주인이시오?” “녜, 그렇소.” “나는 지나가는 손인데 하룻밤 자

자구 청하러 왔소.” “어렵지 않은 청이나 내 집이 협착해서 손님을 재울 데가

없소.” “봐하니 댁이 그다지 협착하지 않은데 재우기 싫어서 핑계하는 말씀

아니오?” “남의 집 요리를 어찌 알구 핑계라구 그러우. 방이라군 안방.건너방

둘뿐인데 안방은 식구가 쓰구 건너방은 도깨그릇이 차지했소.” “방이 없으면

봉당두 좋구 헛간두 좋소.” “쓸데없는 소리 말구 어서 다른 데나 가보우.” “

내가 유년 과객질을 하구 다녔어두 한번 자자구 청한 집에서 못 자본 일이 없

소.” “이 양반이 뉘게 떼를 쓸 작정 아닌가.” “여보,노형 같은 손 대접할 줄

알만한 친구에게 떼를 못 쓰면 무지랭이 농군들에게 가서 떼를 쓰란 말이오?”

“허허,그 친구 떼를 잘 쓰는군. 그렇지만 참말루 손님을 재울 데가 없소. 그러

니 저녁밥은 내게서 자시구 자기는 다른 집에 가서 자우.” “도깨 그릇 옆이

라두 몸 하나만 부빌 틈이 있으면 잘 수 있을테니 건너방에서 좀 자게 해주구

려.”“저녁 자신 뒤에 잘 데를 내가 지시해 드리든지 어떻게 할 테니 우선 들

어오시우.” 화천왕동이가 그 집 주인을 뒤따라서 삽작안으로 들어올 때 부엌에

서 여편네가 내다보는데 억굴이 해끔하였다. 주인이 방 윗간에 들어가서 방안의

너절더분한 것을 거두어 치웠다. 이 동안 황천왕동이는 방문 앞에 서 있었는

데 부엌 안에 해끔한 얼굴이 두어번이나 나왔다 들어갔다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비로소 주인을 보고 인사를 청하여 주인이 성이 김가인

줄을 알았다. 주인은 인사만 겨우 마치고 바로 일어나서 부엌으로 내려 가더니

사내 여편네의 지껄이는 소리가 한동안 뒤섞여 들리고 그 끝에 “들어

가 앉아 이야기나 하우, 밥상은 내 갖다 드릴께.”여편네의 말과 “얼른 차려 주

어, 내가 들구 갈 테야.” 사내의 말이 똑똑히 들리었다. 주인이 불 붙은 관솔

가지를 가지고 와서 벽에 걸린 등잔에 불을 당겨놓고 다시 가서 겸상으로 차린

밥상을 들고 왔다. 겸상한 것을 가지고 주인은 상이 하나밖에 더 없어서 외상으

로 대접 못한다고 발명하여 말하고 황천왕동이는 일시 지나가는 손을 너무도 정

숙하게 대접한다고 치사하여 말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머리에 쓰고 있던 갓을 벗

어놓고 주인과 같이 겸상밥을 먹는 중에 “물그릇 받으시우.” 해끔한 얼굴이

한번 방 안문으로 나타나고 “찬이 없어 싱겁지요? 고추장을 여기 떠왔소.”해

끔한 얼굴이 또 한번 아래윗간 사잇문으로 나타났다. 해끔한 얼굴이 나타날 때

마다 주인의 미간에 주름살 잡히는 것이 환하였다. 저녁밥들을 다 먹고 상을 치

운 뒤에 주인이 황천왕동이더러 “윗간이나마 여기서 주무시려우?”하고 물어서

황청왕동이는 “윗간은 좋지만 너무 내근해서 거북하니 건너방에 가서 자게 해

주시우.”하고 청하였다. “건너방은 폐방한 방이라 사람이 잘 수 없소. 내근한

건 조금두 관계없으니 여기서 주무시우.” “초면 만난 친구에게 신세를 너무

지우.” “별 말을 다하는구려. 자 옷을 벗구 좀 누우시우.”말하고 주인은 사잇

문을 열고 아랫간으로 내려갔다. “오늘 저녁에 마슬을 좀 가야 할 텐데.” “꼭

가야 할 일이 무어 있소?” “가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말이지.”“가지 않아서

낭패될 일이면 이따가 손님 잠든 뒤에 잠깐 갔다오구려.” “글쎄, 그래 볼까.”

아랫간의 주인 내외가 이러한 수작을 하는 중에 밖에서 “김서방,김서방!”부르

는 소리가 났다. “밖에 누가 오지 않았어?” “저 위의 오서방 목소리 같소.”

“그런거 같군.” 아랫간 앞문을 주인이 밖으로 나가느라고 여닫고 얼마만에 다

시 들어오느라고 또 여닫았다. “오서방이 왜 왔습디까?” “읍내 가자구 왔서.

”“읍내는 왜?” “이주부 소상에 인사 치러 가자구.” “이주부 소상이 벌써

되었어?” “덧없는 세월이 일년이 잠깐이지.” “그래 못 간다구 말했소?” “

남이 가자는 데 안 가면 나중에 이주부 아들들이 알더래두 섭섭하달 것 아니야.

” “그건 그렇지만 손님을 집에 두고 어떻게 가겠소?” “그래두 가봐야지 어

떡하나?” “그럼, 가서 인사만 치고 올 테요?” “가면 자연 제사까지 보구 오

게 될테지.” “나는 밤에 혼자 잘 수 없소.” “손님이 윗간에서 주무시지 않는

가베.” “윗간에 손님이 기시니까 말이지. 뒷집 할머니나 청해다가 같이 자리

까?” “그건 맘대로 하라구.” “지금 오서방이 밖에서 기다리구 있소?” “아

니 내가 옥갓 하구 가마구 했어.” “윗간의 갓을 떼어와야겠구려.” “갓두 떼

어오려니와 손님더러 말두 해야지.” 아랫간에서 주인 내외가 하는 말을 윗간

의 황천왕동이는 다 듣고 앉았는데 주인이 사잇문을 열고 올라와서 “내가 오늘

밤에 어딜 좀 갔다가 내일 식전에 올 테니 밤에 잘 주무시우.”하고 인사로 말

하였다. “단 내외 사는 집에 내가 어딜 나가면 집이 쓸쓸해서 안사람이

무섭다구 하는데 오늘 밤에는 황서방이 의외에 와 주무

시게 되어서 든든해 좋으니 조금두 거북하게 생각 마시우.” “나버덤두 안에서

거북하실 것 아니오.” “든든해 좋다는데 그러우. 아무 염려 말구 편히 주무시

우.” “주인 내외분이 나를 그처럼 믿어 주시는 바엔 염체없이 여기서 그대루

자겠소.” “내가 내일 식전 일찍 오리다.” 주인이 말코지에 걸린 갓을 떼어들

고 다시 아랫간으로 내려갔다. 얼마 아니 있다가 주인이 나가는데

주인 여편네도 따라나가는 모양이더니 삐걱 삽작문을 닫고 짝짝 신발을 끌고

들어왔다. 황천 왕동이가 목침도 달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보따리를 베고 누워

있다가 아랫간의 여편네가 사잇문을 바시시 여는 바람에 벌떡 일어 앉았다. “

이부자리를 좀 내려가야겠습니다.” “네, 내려가시지요.” 여편네가 윗간에 내

려와서 시렁에 얹힌 이불을 내리는데 발을 저겨 디디고도 잘 내리지 못하므로

황천왕동이가 일어나서 거들어 주었더니 여편네는 이불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나

서 황천동이를 돌아보고 쌍끗 웃었다. 해끔한 얼굴에 도화진 두 볼이 두드러지

게 눈에 뜨이었다. 여편네가 맵시 낸 것이나 몸가지는 것이 촌생장 같지 않고

허울 쓴 것도 그만하면 면추라고 할 만하였다. “아이그머니 딱하지, 보따리를

비셨었네.” 여편네가 시렁에서 베개 하나를 내려서 “이 베개를 비세요.” 황천

왕동이 앞에 밀어놓는데 베개 마구리에 붙은 붉은 헝겊이 검어지도록 때가 묻은

것이었다. “베개는 고만두구 목침이나 하나 주십시오.” “베개가 더러워서 싫

다십니까?” “아니요, 천만에.” 여편네가 또 시렁에서 헌 처네 한 쪽을 내려서

옆에 갖다놓으며 “더럽지만 밤에 배 위에나 걸치십시오.” 말하고 연해 곁눈질

을 하였다.

여편네가 얼굴 해끔한 값으로 조신치 못한 모양이라 황천왕동이는 말 대척을

아니하고 잠자코 있었더니 여편네가 한동안 몸을 비비 꼬고 섰다가 홀저에 골난

것 같이 이불을 덥석 집어안고 뽀르르 내려가며 사잇문을 탁 닫았다. 아랫간에

가서 한참 무어라고 종알종알하고 그 뒤에는 자는 것같이 조용하였다. 황천왕동

이가 고정하게 베개를 내놓고 보따리를 다시 베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 중에 아

랫간에서 나는 기척에 귀가 절로 쏠리었다. 잠 안자는 표를 알리려는 뜻인지 헛

기침을 가끔 하고 사내 냄새가 콧속을 간지르는지 재채기를 여러 번 하였다. 갑

작스럽게 병이 난 것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하더니 얼마 뒤부터는 “아이구.”

“아이구머니.” “아이구 아파 죽겠네!” 죽어가는 소리를 줄달아 하여 황천왕

동이는 들랴말랴 하는 잠이 그만 번놓이었다. “손님.” “아이구 손님?” 자지

러지게 부르는 것을 대답 안 하고 “내려와서 물 조금만 데워주세요.” “얼른

와서 가슴 좀 눌러주세요.” 안타깝게 사정하는 것을 가만 내버려두었다. 사잇문

이 별안간 펄떡 열리고 여편네가 근두질치듯 굴러들어오며 곧 옆에 와서 달라붙

었다. “속의 적이 치밀어요.” “숨이 막혀 죽겠어요.” “아이구 죽겠네.” “

사람 좀 살려주세요.” “억센 손으로 꽉 좀 눌러주세요.” 황천왕동이가 어이없

어서 누운 채 가만히 있었더니 여편네의 얼굴이 가슴에 와서 닿고 손이 허리에

와서 얹히었다. 황천왕동이는 본래 방외 색에 대하여 근엄하기가 도덕군자 볼

쥐어지를 사람인데다가 여편네의 행실이 하도 더럽고 망측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도리어 더 단단하여졌다. 여편네를 떠다 밀고 일어 앉아서 “네 병은 내가

말루 고쳐줄 테니 일어나서 말을 들어라.” 해라를 내붙였다. 여편네가 무춤무춤

하고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잡아 일어켜 앉히고 “너갈이 부끄럼

이 없는 기집은 내 평생에 처음 봤다. 서방 없는 기집이라두 부끄럼이 없으면

못쓸 텐데 뚜렸한 서방 있는 기집으루 너같이 부끄럼이 없어서야 사람이냐 개짐

생이지. 개짐생두 너버덤은 낫다. 암캐가 수캐에게 먼저 덤비는 법이 없구 수캐

가 덤벼두 꼬릴 샅에 낄 때가 많다. 너 같은 기집은 개짐생으루 치구서 잔등이

가 부러지두룩 패주어두 좋겠지만 네 서방 낯을 봐서 내가 십분 참구 고만둔다.

이후에는 아예 더러운 행실을 할 생각 마라. 내 말이 네 병에는 당약이니 명심

해 들어두어라.” 통통이 꾸짖었다. 여편네는 앓는 소리도 못하고 낯바닥도 못

들고 앉아 있다가 황천왕동이 입에서 “고만 가서 아무 소리 말구 자거라.” 말

이 떨어진 뒤 비로소 힘없이 일어나서 아랫간으로 내려가며 바로 일장 통곡을

내놓았다.

‘이웃 사람이 쫓아와서 우는 까닭을 물으면 저년이 무어라구 대답할라노’

황천왕동이는 이웃 사람이 아닌 밤중의 곡성을 듣고 쫓아오려니 생각하였는데 통

곡이 끝나도록 오는 사람이 없었다. 여편네가 곡을 그치고 앞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안방 뒤꼍으로 돌아가더니 “김도령, 김도령!” 사람을 불렀다. ‘저년이

내게 분풀이를 하려구 이웃집 총각놈을 청병하지 않나.’ 황천왕동이가 귀를 기

울이고 있자니 남녀의 지껄이는 소리가 나는 중에 여편네의 가는 말은 분명치

않고 사내의 굵은 소리만 똑똑하였다. “밤중에 왜 울었소?” “나는 또 놈팽이

에게 얻어맞구 우는 줄 알았어.” “과객놈이 덤비거든 받아주지.” “울음을 내

놓으니까 찔끔해서 내빼더란 말이지. 그 자식 얼뜬 자식일세.” 여편네가 들린다

고 말을 했는지 사내 소리도 가늘어졌다. 한동안 지난 뒤에 남녀의 발짝 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나오고 밖에서 방으로 들어왔다. ‘총각놈이 저년의 거짓말을 곧

이듣고 분풀이를 해주러 왔으니까 몽둥이라두 들구 샛문으로 뛰어들려니.’ 황

천왕동이가 일어나서 사잇문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아랫간에서 음탕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저년을 가만둘 수가 있나. 쫓아올라가서 연놈을 한데 짓밟아

줄까 부다.’ 황천왕동이가 생각할 때 아랫간 앞문이 왈칵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연놈 다 꿈쩍 말구 가만 있거라.” 말하는 목소리가 바깥주인이 틀림없었다.

소상집에 가서 밤새우고 온다던 사람이 어느 틈에 소리없이 돌아왔다. 황천왕동

이는 아랫간에서 천변수륙을 다하더라도 모른 체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사잇문

으로 총각놈이 뛰어들어오려고 하여 사정없이 발길로 내질렀다. 총각놈이 나가

자빠지자, 쫓아들어온 주인의 손에서 긴 칼이 번쩍하였다. 방구석에 붙어앉은 여

편네가 “살인이야!” 외치는데 주인이 “이년.”하고 칼로 쳐서 “아이구.” 소

리를 지르며 앉은 자리에 쓰러졌다. 피비린내가 코를 거슬렸다. 황천왕동이가 살

인에 참섭되는 것을 재미없게 생각하여 사잇문을 닫고 자리에 와 앉아서 ‘어디

다른 데로 가는 게 좋겠는데 밤중에 갈 데도 없고 관상쟁이를 보고 가야 할 텐

데 멀리 갈 수도 없고 어떡하면 좋을까.’하고 생각을 얼른 질정 못하는 중에

주인이 아랫간에서 내려오더니 앞에 와서 절을 너푼 하였다. “절이 웬일이오?

” “세상에 드무신 양반을 몰라뵈옵구 잘못한 일이 많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무에 세상에 드물단 말이오?” “밤중에 품속에 기어드는 젊은 기집을 꾸짖어

내쫓는게 어디 제마다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꾸짖어 내쫓은 건 어떻게 알았

소?”“제가 죄다 엿들었습니다.” “그럼 벌써 왔구려.” “당초에 읍에를 안

가구 삽작문으루 나갔다가 울타리 구멍으루 들어와서 집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 “내가 하마트면 죽을 걸 아슬아슬하게 면한 모양이군.” “그년이 행실이

부정한 줄을 짐작하구 조련질까지두 몇번 해봤지만 죽어라구 토설을 아니해서

언제든지 한번 등시포착을 하려구 속으로 벼르구 있는 중인데 그년이 당신을 뵈

입구 눈치가 다르기에 거짓말루 소상집에를 간다구 하구 숨어서 지켰습니다.”

“인제 살인까지 하구 어떻게 할 테요?” “등시 포착으루 살인한 것이니까 관

가에 들어가서 자수하면 대살 당할 리 만무하지요만 부모두 없구 처자두 없구

단지 저 한몸인데 구태여 옥 속에 들어가서 고생할 까닭 있습니까. 이 밤으루

도망할랍니다.”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밝는 날까지 여기 기시다간

횡액으루 고생하실 테니 밤에 떠나가셔야 합니다.” “밤에 떠나가긴 어렵지 않

지만 이 동네 관상쟁이 조씨를 꼭 좀 만나보구 가야겠으니 난처하우.” “관상

쟁이 조생원은 무슨 일루 만나보시렵니까?” “조씨의 일을 자세히 다 아우?”

“한동네 살구 친하니까 소상히 압니다.” “조씨가 작년 구월에 금교역말서 올

때 김억석이란 사람 부자를 이리 데리구 오지 않았소?” “조생원이 작년 구월

에 금교역말을 간 일이 없는걸요.” “조씨가 작년 가을에 강음,평산 등지루 돌

아다니었는데 금교역말을 간 일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하하 잘못 아

시구 오셨습니다그려. 작년 가을에 청석골 적굴에 잡혀가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

온 관상쟁이 말씀 아닙니까. 그 사람은 나이 아직 오십 못 되었지요. 여기 조생

원은 근 칠십한 노인입니다.” “그럼 그 관상쟁이는 어디 사우?” “두일 삽니

다. 두일 장터에 조씨가 여러 집 살지요.” “두일이 어디오?” “역시 마전 땅

인데 적성 접곕니다.” “마전 땅에 조가 성 가진 관상쟁이가 둘인 줄이야 누가

알났나. 인제 나두 밤에 떠나가겠소. 두일을 가자면 어디루 가우?” “저두 그쪽

길루 갈 테니까 두일 장터까지 뫼시구 가겠습니다.” “그럼 곧 같이 떠납시다.

” “옷이나 좀 갈아입구 찬찬히 떠나십시다.” “아닌 밤중에

곡성이 나구 살인이 나두 이웃에서 꿈쩍 아니하니 괴상한 동네두 다 많소.” “

가까운 이웃이란 것이 총각놈 모자가 사는 뒷집 하나뿐인데 총각놈의 어미가 귀

가 절벽이라 벼락이나 치면 모를까 여간 큰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주 태평 믿구 일을 차렸구려.”

주인이 손 좀 씻고 들어온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뒤에 세수를 멀

쩡하게 하고 들어와서 시렁 위의 옷고리짝을 내려놓고 새 고의적삼을 찾아내서

피묻은 옷과 갈아입고 짚신 감발까지 하였다. 이날 밤 닭 울 녘에 황천왕동이는

그 집주인과 같이 달골서 떠났다. 별빛이 일어서 길바닥이 희미하게 보이는 까

닭에 발을 더듬어 떼어놓지 않고 그대로 길을 걸을 만하였다. 달골 동네 밖을

나온 뒤에 읍내 가는 길을 등뒤에 두고 서쪽길로 나오게 되었는데 길모르는 황

천왕동이가 항상 앞을 서서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뒤에 오는 김가를 기다리느라

고 한참씩 서성거리었다. 김가가 처음에는 “밤길을 잘 걸으십니다.” “어떻게

빨리 걸으시는지 저는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걸음이 빠른 것을 칭찬하여 말

하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빨리 걸으면 닭이 자치기 전에 두일 장터를 가게 될

텐데 오밤중에 가서 어떻게 하실랍니까. 숫제 길에서 날 새울 작정하구 천천히

가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빨리 걸을 묘리가 없는 것을 깨우쳐 말하였다. 황

천왕동이가 그제는 김가를 앞세우고 늘쩡늘쩡 걸어오며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

작하였다. “둘 다 목숨만은 붙여주었소?” “목숨을 붙여주다니요? 모가지들을

도려놓고 왔습니다.” “어느 틈에 그렇게 참혹한 짓을 했소?” “저는 조금두

참혹하게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전에두 그런 일을 더러 해봤소?” “천만

에요.” “초대루는 제법 다부지게 했소. 다 죽어자빠진 사람을 재칼질 할 때 손

이 떨리지 않습디까?” “그런 말씀 고만두구 다른 이야기나 하십시다.” “집

에를 한번 다시 가보구 싶은 생각은 나지 않소?” “글쎄, 다른 이야기나 하십

시오.” “김서방 올에 나이 몇이오?” “병술생 서른다섯입니다.” “여편네는

이십 남짓밖에 안 되어 보이든데.” “제가 두 번 상처하구 세번째 장가든 기집

입니다.” “그래서 나이 치지했군. 나는 첩인 줄 알았소.” “댁이 어디십니까?

이 담에 혹시 찾아가 뵈입더래두 알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금교역말이 청

석골서 가찹지요?” “청석골은 어째 묻소?” “제가 청석골 적굴에 가서 피신

할 작정입니다.” “청석골 적굴에 아는 사람이 있소?” “그 적굴의 괴수 임꺽

정이가 저의 큰아버지께 검술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럼 꺽정이를 잘 알겠구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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