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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골 꺽정이는 스물나흗날 저녁때부터 밤중까지 서림이 오기를 헛기다리다
가 오지 않는 데 홧증이 나서 “요런 사람이 있나. 내가 떠먹듯이 일렀는데 오
늘 아니 오니 무얼 믿구 내 말을 어기나. 나중에 어디 보자.” 서림이가 오기 곧
하면 무슨 거조를 낼 것같이 별렀다. 꺽정이를 뫼시고 앉았던 여러 두령 중의
박유복이가 서림이 두둔보다도 꺽정이 위로로 “내일 아침 떠나시기 전엔 오겠
지요.”하고 말 한마디 하였더니 “내일 아침에 꼭 올 것은 네가 다짐할 테냐?
” 꺽정이가 큰 눈을 흰자투성이로 뜨고 불호령조로 말을 하는 것이 애매하게
화풀이를 받을 것 같아서 “남의 일을 제가 다짐이야 어떻게 합니까?”하고 박
유복이는 뒤를 뺐다. 다른 두령들은 물계를 보고 잠자코 있는데 눈치 없는 곽오
주가 비꼬아 하는 말로 “서종사가 안 오면 봉산원은 다 잡았구먼요.”하고 말
하여 꺽정이는 화가 복받쳐서 “되지 못한 소리 지껄이지 마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무얼 잘못했소. 왜 내게다가 화를 내시우.” “말대답 마라!” “
형님이 서종사 말을......” “듣기 싫다.” “형님이 아무리 야단을 쳐두 내가 하
구 싶은 말은 다 해야겠소. 서종사 말을 형님이 너무 믿으시는 게 탈입니다. 나
는 서종사가 오늘 오지 않을 줄을 미리 다 알았소.” 쇠 멱미레 같은 곽오주가
말을 불쑥불쑥 하는 데 꺽정이는 화가 꼭뒤까지 올라서 “아가릴 찢어놓기 전에
가만히 닥치구 있거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닌밤중에 큰 야단이 나는 줄 알
고 밖에서 술렁거리기까지 하였으나, 박유복이는 곽오주가 말대답을 더 못하게
윽박지르고 이봉학이는 꺽정이가 화를 가라앉히도록 애를 써서 더 야단은 나지
않고 말았다.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박유복이와 곽오주와 한온이는 오가와 같이 청석골이
남아 있게 하고, 황천왕동이는 봉산 가서 이흠례의 발정 일자를 분명히 알고 마
산리로 오라고 따로 떠나보내고, 이봉학이, 배돌석이, 길막봉이, 김산이 네 두령
을 데리고 마산리로 떠나 가는데, 남아 있는 두령 넷 중의 오가만은 도회청 앞
에서 작별하고 들어가고 그외 세 두령은 다 서산 등갱이 위에까지 따라나왔다.
박유복이가 꺽정이에게 하직 절을 하고 나서 “서종사가 오늘이구 내일이구 오
거든 곧 마산리루 보낼까요?”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증을 내며 “보낼 것 없다.
고만둬라.”하고 말하였다. 졸개 하나가 등갱이 위로 쫓아올라오는 것을 한온이
가 어느 결에 보고 “저게 누굴까?”하고 말하여 여럿이 작별인사들을 하다가
말고 내려다보고 섰는 중에 동산 파수꾼의 패두가 헐레벌떡거리며 올라와서 허
리를 굽실굽실하고 “대장께 아룁니다. 지금 송두부중 김천만이 집 심부름꾼이
들어왔솝는데 서울서 온 급한 편지를 가져왔다구 하옵니다.”하고 한손에 들고
온 편지봉을 두 손으로 바치었다. 꺽정이가 이봉학이더러 받아서 뜯어보라고 하
여 이봉학이가 편지를 들고 “남대문 밖 김치선이의 편지구먼요.”하고 뜯어서
보다가 깜짝 놀라며 “형님, 큰일났습니다.”하고 꺽정이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야?” “서종사가 엊그제 좌포청에 잡혔답니다.” 서림이 잡혔단 소식에 꺽
정이와 여러 두령이 다같이 놀랐다. “어떻게 하다가 잡혔어?” 꺽정이 묻는 말
에 이봉학이는 다시 편지를 들여다보며 “수표교 천변에 하는 최가에게 상목을
취대하려구 하다가 최가 밀고에 잡혔다구 하구, 치선이 자기두 지금 피신해서
숨어 있는 중인데 일이 급하면 이리 오는 수밖에 없다구 했습니다.”하고 대답
하였다. “수표교 천변에 사는 최가가 누구까?” “글쎄요.” “남소문 안 최가
가 그 동안 수표교루 이사를 갔나?” 한온이가 앞으로 나서서 “집에 있던 최서
방이면 설마 밀고를 했을까요?”하고 말하며 고개를 한편으로 기울이다가 또 가
로 흔들었다. 전날 서사 최가에게는 의심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꺽정이가 여
러 두령들을 둘러보며 “여기 서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도루들 들어가자.”하고
말하니 “마산리 길은 파의하실랍니까?”하고 김산이가 물었다. “파의를 하든
지 않든지 들어가서 이야기하자.”하고 꺽정이가 여러 두령들을 데리고 도로 집
으로 내려왔다. 꺽정이가 여러 두령과 같이 사랑에 들어와 앉은 뒤 김천만이 집
심부름꾼을 불러들여서 “서울 편지를 누가 가지구 왔든가?”하고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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