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에 좌변 포도대장 김순고가 예궐하여 도적 잡는 일로 탑전정탈을
받자올 일이 있다고 폐현을 청하였더니, 상후가 마침 미감으로 미령하여 승전색
이 포장의 말을 물어들이란 어명을 받들고 정원으로 나왔다. 내시라도 어명을
받은 사람이라 김순고가 승전색에게 절을 한 뒤 “해서대적 임꺽정이의 도당 서
림이란 자가 엄개라고 변성명하고 숭례문 밖에 와서 있는 것을 탐지하옵고 체포
하여다가 죄상을 대개 추문하온즉, 지난 구월 초오일에는 장수원에서 모여서 전
옥서를 타파하려고 이러이러하게 획책하였다고 말하옵고 오는 이십육일에는 평
산 남면 마산리에 모여서 신임 봉산군수 이흠례를 살해하려고 준비할 터인데 대
개 이러이러한 까닭이라고 말하오니, 그 말을 다 준신할 수는 없사오나 부장 하
나, 군관 하나를 속히 역마 주어 보내서 봉산군수 이흠례와 금교찰방 강려로 더
불어 상의하여 비밀히 근포하도록 함이 어떠하올지. 또 이번에 만일 꺽정이를
잡지 못하고 놓치면 서림이가 내년 안으로 잡아 바치겠다고 하오나 반복하는 자
의 말을 신청할 것이 못 되오니 서림이를 어찌 처치하올지.” 이런 사의로 위에
아뢰어 달라고 말하였다. 그 승전색이 합문안으로 들어갔다가 한동안 지난 뒤
다시 나오는데, 서림이는 아직 그대로 두고 보고 그외는 아뢴 사의대로 하란 전
교가 포장에게 내리고, 또 뒤미처 다른 승전색이 나오는데 선전관 정수익이에게
부장 두엇을 데리고 가라고 하되 말들을 주어서 급히 가게 하라시는 전교가 정
원에 내리었다.
이때 오위부장들 중의 충좌전위에 매인 연청령은 용맹이 무쌍하고 호분우위에
매인 이의식은 무예가 출중하여 부장청에서 이름들이 높았던 까닭으로 이 두 사
람이 뽑히어서 정수익과 같이 가게 되었다.
선전관 정수익이 전교와 표신과 마패를 받자온 후 궐내에서 물러나오며 즉시
부장 연천령, 이의식 두 사람을 데리고 황해도 길을 떠나는데, 동짓달 추운 밤에
밤새도록 갈 길이라 휘항에 털토수에 술병까지 어한제구를 단단히들 차리었다.
청석골 도둑놈들이 평산 마산리에 가서 모인다는 것이 스무엿샛날이라니 앞으로
이틀 동안에 봉산읍 사백이십 리 길을 가서 기병하여 가지고 다시 마산리까지
소불하 수백 리 될 길을 가야 할 터인데, 거기다가 금교서 찰방을 보고 가자면
지체가 될 것이고 또 봉산 가서 기병하자면 동안이 걸릴 것인즉 날짜가 촉박 여
부 없어서 밤길을 가도 빨리 가야 할 판이었다.
선전관 일행이 떠나는 날 반나절 해로 파주까지 달려와서 저녁밥들을 먹고 파
주서부터 밤길을 시작하였다. 참마다 홰를 갈려 들리고 역마다 말을 갈아타고
홰꾼과 역졸들은 옷이 박착이라도 땀을 뻘뻘 흘리는데 거해부대 같은 말탄 양반
들은 추워서 덜덜 떨었다. 역에 올 때마다 번번이 술로 어한들 하고, 그리하고도
간간이 길가집을 깨워 일으키고 방에 들어앉아서 몸들을 녹이었다. 이튿날 아침
해 돋을 때 금교역말에 당도하였다. 정수익이 우선 객주를 잡고 들어앉아서 전
교 받들고 온 사연을 찰방 강려에게 통기하였더니, 얼마 동안 지나서 관사로 들
어오라고 마중 하인들이 나왔다. 정수익이 부장들과 같이 마중나온 하인들을 따
라서 찰방 관사에 들어와 보니 마당에 향상을 차려놓고 향상 앞에 강려가 모대
하고 서 있었다. 정수익이 향상 옆에 와서 선 뒤, 강려는 분향하고 북향 재배하
고 꿇어앉아서 정수익이 내주는 전교를 공손히 받아서 받들어 읽었다. 그 전교
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선전관 정수익은 부장 연천령, 이의식을 데리고 황해도에
가서 봉산군수 이흠례와 금교찰방 강려와 상의하여 평산 남면 마산리에 모인다
는 도적들을 잡으라는 것이었다. 강려가 전교를 정수익에게 도로 주고 일어나서
“인제 방으루들 들어가십시다.”하고 어명을 몸에 받은 정수익을 향하여 팔을
치어들고 먼저 올라가기를 청하였다. 방에 들어와서도 정수익이를 상좌에 앉히
고 좌정들 한 뒤, 초면 인사들을 마치고 강려는 바로 밖에 나가 편복을 갈아입
고 다시 들어와 앉아서 정수익을 보고 “그 치운 밤에 밤길들을 어떻게 오셨단
말씀이오? 장사들이시우.”하고 위로 말을 하였다. “오늘 봉산을 가자면 또 밤
길을 해야 하지 않겠소? 여기서 봉산이 몇 리요?” “이백십 리요.” “그럼 얼
른 객주에 나가서 아침 시켜 먹구 떠나야겠소.”“아침은 시켰으니 염려 마시구
일이나 의논하십시다. 내 생각엔 도둑놈들이 내일 마산리서 모인다면 당일에 흩
어질 리는 없으니까 모레 마산리를 들이칠 작정하구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소.
” “어떻게 준비한단 말이오?” “나는 수하에 군사가 없는 사람이라 평산 가
서 부사하구 의논해서 기병해 가지구 평산 북면 어수동으루 나갈 테니 여러분은
봉산 가셔서 군수하구 같이 군사를 조발해 가지구 모레 새벽까지 어수동 와서
합세하두룩 해보시우.” “어수동서 마산리가 가깝소?” “봉산서 평산읍에까지
왔다가 다시 마산리를 나가자면 길을 곱걷게 되우.” “그럼, 내일 어수동서 만
나두룩 해보는 게 좋지 않소.” “군사 조발하는 데 동안이 얼마나 걸릴 줄 알
구 그러시우. 그나 그 뿐이오? 여러분이 연일 삐친 끝에 접전을 어떻게 하실 테
요. 오늘이구 내일이구 하룻밤은 실컨 주무셔야 하우.” “아무리나, 그럼 모레
루 정일하구 준비합시다.” 정수익이 강려와 의논을 작정한 뒤, 금교서 아침밥을
먹고 부장 두 사람과 같이 봉산으로 떠나왔다.
봉산 이백십 리를 곧 해지기 전에 갈 것같이 말들을 빨리 몰리었다. 우봉 땅
들어와서 흥의 역마 갈아타고 평산땅 잡아들며 김암 역마 갈아타고 평산읍내 언
뜻 지나 보산 역말 들어오니 해는 한낮이 이미 지났고 금교서 온 이수는 팔십
리밖에 안되었다. 얌전하게 춥던 날씨가 보산서 중화할 때부터 갑자기 변하여
풍세가 사나왔다. 사나운 바람을 안고 가게 되어서 말 모는 역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탄 양반들도 숨이 턱턱 막히었다. 총수령을 넘어와서 안성 역마를 갈아
타고 서흥읍내를 들어올 때는 벌써 길이 잘 보이지 않도록 어둔 빛이 짙었다.
동짓달 짧은 해에 일백사십 리를 온 것도 무던히 많이 왔건만, 앞으로 남은 칠
십 리를 밤길로 마저 가야 할 일이 태산 같아서 선전관과 부장들은 더 빨리 오
지 못한 것을 못내 괴탄하였다.
바람이 조금 자는 듯하다가 다시 일기 시작하여 밤에는 풍세가 저녁때보다도
더 사나워졌다.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불구하고 한 시각이라도 바삐 가야
할 길이라 정수익이 저녁밥을 재촉하여 먹고 또 밤길을 나섰다. 홰가 바람에 부
지할 것 같지 않으나 수가 많으면 혹시 나올까 하고 말 한 마리 앞에 홰 세 자
루씩, 도합 홰꾼 아홉을 데리고 나섰는데, 불과 몇 마정 안에 홰 아홉이 다 꺼져
서 홰꾼들을 대도 세우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서관대로 길이 좋아서 희미
한 별빛으로 갈 수는 있지마는, 말을 채쳐 몰지 못하고 예사로 걸리었다. 서흥
용천 역말과 봉산 검수 역말서 역마를 두 번 갈아타고 닭 운 뒤에 봉산읍내를
들어왔다. 정수익이 역졸들 시켜 삼문을 두들겨서 자는 군수를 깨워 가지고 전
교를 받게 한 뒤, 이십칠일 미명에 평산 군사와 어수동에서 합세하기로 약속 정
하고 온 것을 말하고 밤중에 좀 야경스러우나 곧 기병할 준비를 차려서 평명에
행진하도록 하라고 독촉하니, 군수의 말이 기병할 것은 염려 말고 밤길에 삐친
끝에 잠들이나 한숨 자라고 하고 관가 안의 방 하나를 치워 주어서 정수익은 부
장 두 사람과 같이 두둑한 요 깔고 푹신한 이불 덮고 동여가도 모르도록 잠 한
숨 곤하게 자고 해가 뜬 뒤에 일어들 났다.
봉산이 꺽정이패의 자구 출입하는 길목인 까닭에 봉산군수 이흠례는 적환 방
비를 급선무로 알아서 도임한 후 그 동안 한 일이 무기 보수와 군총 조련이라
기병하기 힘들 것이 없었다. 이백여 명 군사를 불각시로 취군하여 무기를 일제
히 나누어 주어서 삼문 밖에 결진을 시켜놓고 이백여 명의 이틀 먹을 군량으로
쌀 두 섬과 조 석 섬을 먼저 실려 보내는데, 군량지기에게 중화참과 숙소참을
일러주어서 앞서가며 미리 준비하여 놓게 하였다. 선전관이 이것을 알고 부장들
과 서로 돌아보며 군수의 처사가 엽렵한 것을 칭찬하고 곧 군수와 같이 행군을
하는데, 연천령과 이의식은 소부대를 거느리고 선진이 되어 앞서 떠나고 이흠례
와 정수익은 대부대를 통솔하고 후진으로 뒤에 떠났다. 용천역말 와서 중화하고
안성역말 와서 숙소하는데 안성 사람은 군사들에게 방을 뺏기고 하룻밤을 한둔
들 하다시피 하였다. 첫닭울이에 떠날 작정으로 한밤중부터 밥을 짓게 하여 군
사들을 밤참 쇰직한 조반을 먹인 뒤에 선진, 후진이 일시에 다 떠났다.
전날 종일 흐리던 날이 밤중은 하여 눈이 오기 시작하였는데 산과 들이 허옇
게 보이도록 쌓이고도 아직 그치지 아니하였다. 눈을 맞으며 행군하여 동이 트
기 시작할 때 어수동을 대어오니 밥짓는 연기, 화톳불 연기가 인가가 잘 보이
지 않도록 자욱하였다. 평산 부사 장효범이 금교찰방 강려와 같이 삼백 명 군사
를 거느리고 먼저 나와 있었다. 봉산군이 안성서 경야할 때 당보수 서너 명을
밤 도와 먼저 보내서 봉산서 오는 군총 수효를 알린 까닭에 오백여 명 먹일 밥
을 지어놓아서 요기하고 온 봉산군들도 시레기 토장국을 부어주는 밥 한 바가지
씩 제각기 다 받아먹었다.
눈이 어느 결에 그치고 아침 해가 구름에 싸여서 올라왔다. 사람들 부르는 소
리, 꾸짖는 소리, 떠드는 소리 야단스럽게 나고 취군하는 징소리, 나발 소리 요
란히 난 뒤 삼엄이 끝이 나서 오백여 명 군사가 선봉대, 중군, 후군 세 때로 차
례차례 떠나 남면길로 내려가는데, 기치는 정제하고 창검은 삼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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