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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26)

카지모도 2023. 8.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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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변 포도대장 김순고의 집은 잿골 초입이라 파자교에서 돈화문을 바라보고

올라오다가 대궐 앞에서 왼편으로 꺾이어 관상감 재를 넘어와서 계산골 다음 북

쪽으로 뚫린 골목을 들어서니 고만이었다. 서림이가 포도대장을 뵈워지라고 청

할 때는 보지 못할까 은근히 근심까지 되더니 대장집에 불려오게 되어 포청문

밖을 나서며부터 포도대장을 보고 싶은 생각이 천리만리 달아났다. 꺽정이의 반

의 반만한 힘만 있어도 포교 서너 놈 한 주먹에 때려눕히고 들고 뛸 수 있을 것

을 생각하니 꺽정이의 힘이 새삼스럽게 부러웠다. 하늘 끝 닿은 데까지 훨훨 가

고 싶은 생각도 나고 밤새도록 거리로 바장이고 싶은 생각도 나서 자꾸만 갔으

면 좋겠는데, 고만 다 와서 솟을대문 앞에 걸음을 멈출 때 포교 하나가 “아이

추워.”하고 몸을 흔드는데 서림이는 추운 줄도 모르면서 몸을 옹송그리었다.

서림이가 대령 포교들 있는 사관청에 와서 한구석에 죽쳐 앉은 뒤 벌써 한식

경이 좋이 지났다. 그 동안에 대령 포교가 들어갔다 나오고 또 포청 포교가 들

어갔다 나왔건만 나와서는 아무 소리들이 없었다. 포교들이 서로 이야기도 별로

아니하여 이편은 조용한데, 건너편은 하인청인 듯 여럿의 지껄이는 소리가 떠들

썩하였다. “까게 어디 보세. 오팔팔 따라질세그려.” “이 사람은 노름 못할 사

람이야. 팔팔 서시에 대지 않구 뽑아서 따라지를 만들었다네.” “서시면 대는

법이지.” “팔자 하나만 더 뽑았더면 순이 아닌가, 이 사람아.” “욕심은 경치

게 많으이.” 지껄이는 것이 엿방망이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엿방망이판에서 지

껄이는 말소리를 서림이가 무심히 듣다가 문득 생각하니, 자기가 포도대장을 보

는 것이 흡사 한 장 더 뽑는 셈인데 더 뽑아서 따라지나 만들지 아니할까. 아니

다. 자기는 이왕 잡은 것이 따라지니까 뽑아서 더 못 되면 무대밖에 더 될까. 겁

날 것이 없었다. 별안간 방울 소리가 떨렁떨렁 요란스럽게 나서 소리나는 곳을

치어다보니 천장 한구석에 설렁줄이 매어 있었다. 대령 포교 하나가 부리나케

들어가더니 곧 도로 나와서 동무 포교들더러 다 일어나라고 뒤설레를 쳤다. “

잡아들이라시든가?” 동무 포교 하나가 말을 물으니 “그럼 뫼셔들이라구 하실

줄 알았나?” 그 포교는 엇나가는 대답을 하였다. 말을 묻던 포교가 서림이에게

와서 제잡담하고 상투를 잡아서 일으켜 세웠다.

포교들이 서림이를 상투 잡고 등 밀고 사랑 앞에 들어와서 댓돌 아래 꿇려 엎

치고 잡아 대령했다고 소리친 뒤 “일으켜 세워라!” 포교들에게 분부가 내리고

서림이가 두 손길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고 섰더니 “얼굴을 치어들어라!” 서림

이에게 분부가 내리었다. 불후리로 촛불을 가리어서 포도대장 앉은 자리가 마루

끝에 달린 등롱불이 비치는 댓돌 아래보다 별로 더 밝을 것이 없었다. 침침한

속에서 내다보건만 포도대장 눈에 영채가 도는 것 같았다. “네 성명이 무엇이

냐?”하고 포도대장이 묻는데, 서림이는 서슴지도 않고 “엄개하구 했소이다.”

하고 대답하니 포도대장은 “엄개라구 했다?”하고 한번 뇌고 나서 “네가 꺽정

이와 서림이를 잡아바칠 수가 있다구 했다지?”하고 물었다. “녜, 그럴 수가 있

을 줄루 믿습니다.” “어떻게 잡아바칠 텐고?” “아뢰옵긴 황송하오나 좌우를

물리시구 비밀히 물어주셨으면 좋겠소이다.” 포도대장이 포교들더러 “너희들

저놈의 몸을 뒤져봤느냐? 안 뒤져봤거든 뒤져봐라.”하고 분부하여 포교들이 달

려들어서 소매 속, 허리춤, 바짓가랑이, 심지어 사타구니까지 만져보고 주물러본

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아뢰니 한참만에 포도대장이 다시 포교들더러 “

너희들은 잠깐 밖에 나가 있거라.”하고 분부하였다. 포교들이 밖으로 나갈 동안

에 마루에 나섰던 청지기, 상노 들도 수청방으로 들어갔다. 서림이가 한번 공손

히 굽히고 나서 “소인이 다른 무엇이 아니옵구 곧 서림이올시다.”하고 아뢰고

포도대장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포도대장 눈의 영채가 더 나는 듯하며 “이놈,

네가 내 앞에 와서 비로소 성명을 바루 대는 게 무슨 뜻이냐, 농락이냐?”하고

호령이 내리었다. “소인이 포청에 잡혀온 뒤 인제 더 살지 못하구 죽을 것을

생각하온즉 자연 회심이 되와 반나절 동안 굴속 같은 방에서 일생 지은 죄를 가

지가지 후회하옵는 중에, 소인이 죽기 전에 꺽정이를 잡아서 나라에 바칠 생각

이 났소이다. 처음 생각이 나올 때는 소인이 죽을 바엔 꺽정이까지 끌구 같이

죽으려는 속담의 물귀신 심사두 없지 않았솝구, 또 꺽정이를 잡아바치구 소인은

사 받아서 살아나가려는 요행을 바라는 욕심두 없지 않았사오나, 나중에 결심까

지 하옵기는 꺽정이 같은 나라와 백성의 큰 화근을 없애구 죽사오면 이 세상에

서 옳은 사람 노릇은 못하였을지라두 지하에 가서 그른 귀신 되기는 면하올 듯

생각이 들어서 맘을 여러 번 도슬러 먹었소이다. 포청에서 문초를 받을 때 본성

명을 대옵구 소회를 말씀하옵구 꺽정이 잡을 계책까지 다 아뢰올 것이오나, 서

울 안에 있는 한온이 여당 중의 좌우포청 군사들과 여형약제하게 지내는 것들이

포청 소식을 알아내서 뻔찔 기별하옵는 까닭에 포청에서 일이 미처 결정두 나기

전에 한온이와 꺽정이의 귀에 말이 들어갈 염려가 불무하와 소인이 구차하나 거

짓말루 문초를 늦추옵구 영감마님 앞에 와서 당돌히 원정을 아뢰오니 하정을 통

촉하옵시기 바라옵네다.” 서림이의 말이 빈 구석이 없어서 거짓말 듣는 데 집

이 난 포도대장 뒤에도 그럴싸하게 들릴 만하였다. “꺽정이는 지금 대체 어디

있느냐?” “내일 밤까지는 청석골 있을 것이옵구 모레 아침에는 다른 데루 갈

것이외다.” “다른 데란 어디냐?” “평산 남면 마산리에 사옵는 대장쟁이 이

춘동이 집에 가서 여러 놈이 모이옵네다.” “무슨 짓을 하려구 거기 모이느냐?

” “글피 스무엿샛날 이춘동이 집에 모여서 의논하온 뒤 재령이나 해주땅에 나

가서 숨어 있솝다가 신임 봉산군수 이 흠자 례자분이 해주루 연명 가실 때 그

행차를 엄습하올 것이외다. 봉산 안전께서 신계현령으로 깁신 동안 청석골 두목

댓 놈 잡아 죽이신 일이 있솝는데 승탁되신 이번 기회에 전날 원수를 갚으면 위

명이 날 뿐 아니라 후환이 없다구 봉산 안전을 살해하려구 벼르옵네다.” “너

두 평산으루 갈 걸 못 가구 잡혔느냐?” “녜, 소인두 스무엿샛날 오라는 약속

을 받았소이다.” “꺽정이를 잡아 바칠 계책이 있다니 말해 봐라.” “조정에서

봉산군수나 평산부사나 또는 금교찰방에게 비밀히 령을 내립셔서 스무엿샛날 마

산리를 들이치게 하옵시면 대개 잡힐 듯하외다. 만일 소인이 가서 내외향응하오

면 실수 없이 꼭 잡겠습지요만, 조정에서 소인을 믿구 보냅실 리가 없사온 줄

아옵네다. 이번에 혹 일이 실수되어서 꺽정이를 잡지 못하구 놓치옵더라두 잡을

소임을 소인에게 맡기시면 꺽정이 칠형제패를 내년 일 년 안으루 다 잡아바치겠

소이다.” “꺽정이 칠형제패란 무엇이니?” “꺽정이와 의형제를 맺은 놈이 모

두 일굽이온데 일굽 놈 중의 꺽정이까지 너덧은 무예가 출중들 하외다.” “그

일굽 놈이 이번에 다 마산리에 모이느냐?” “몇 놈 안 빠지구 다 모일 것이올

시다.” “너는 그 의형제 틈에 끼지 않았느냐?” “소인이 적굴에서 구구히

목숨을 부지하올망정 백정의 자식과 형이니 아우니 하옵긴 맘에 부끄

럽사와 꺽정이가 같이 결의하자구 조르옵는 걸 굳이 싫다구 했솝더니, 꺽정이

말이 우리와 같이 결의 않는 것은 종시 딴맘을 두는 것이라구 죽인다구 서둘러

서 소인이 어진혼이 빠졌었소이다. 만일 그때 결의에 참례하였솝던들 오늘날 꺽

정이를 잡아 바칠 생각이 났을는지 마치 모를 일이외다.” “꺽정이가 제 도당

두 많이 죽이느냐?” “죽이다뿐이오니까. 지난 구월달 장수원에 모였을 때두

한 자리에서 둘을 죽인 일이 있소이다.” “장수원에선 어째 모였더냐?” “전

옥에 잡혀 갇힌 꺽정이의 기집 셋이 처교되기 쉽겠단 소식을 꺽정이가 이천서

듣솝구 구월 초닷샛날 장수원에 와서 여럿을 모아가지구 그날 밤에 오간수 구녕

으루 문안에 들어와서 전옥을 깨치구 기집들을 꺼내가려구 획책하옵는 것을 도

당 중의 두 놈이 못될 일이라구 말리옵다가 참혹하게들 죽었소이다. 그날 밤은

파옥 계획을 중지하게 되옵솝구 그 이튿날은 이천서 급한 기별이 와서 이천으루

몰려가서 있는 동안에 전옥의 기집들이 형조 전복사루 넘어가서 관비들 박히게

되리란 소식을 듣솝구 파옥 계획을 파의하였었소이다.” “전옥을 타파하구 관

장을 살해하구 너희놈들은 못할 일이 없구나.” 처음 호령 한마디 외에는 온언

순사로 말을 묻던 대장이 언성을 높이었다.

서림이는 꺽정이를 잡아 바친다고 거짓말하고 살아나갈 가망이 적어서 정말로

잡아 바칠 마음을 먹었었다. 꺽정이를 잡아 바치면 자기는 죄만 면할 뿐 아니라

전정이 있으려니 생각하였다. 일의 고동을 손에 쥐인 포도대장이 말을 순리로

묻는 것부터 일이 자기의 소료대로 되어가는 것이라고 속으로 좋아하던 중에,

포도대장이 꺽정이의 죄를 자리에게 들씌울 심산인지 너희들이라고 하고 토죄하

는 데 가슴이 좀 뜨끔하였다. 죄란 죄는 죄다 꺽정이 하나에게만 밀어붙이고 발

명할 수도 있지만, 섣불리 발명하다가 포도대장의 비위를 거스를까 저어하여 그

저 인과자책하듯 “백번 죽어 마땅하외다.”하고 포도대장의 토죄를 순하게 받

았다. “너이 같은 흉악한 도둑놈들을 못 잡는 건 하릴없지만 잡은 건 살려 둘

수 없다.” “먼저두 말씀을 아뢰었지만 꺽정이를 잡아가지구 같이 죽기가 소인

의 소원이온즉 영감마님께서 깊이 통촉합셔서 꺽정이를 마산리서 잡으오면 며칠

동안이옵고, 만일 놓치구 잡지 못하면 일년 동안만 소인의 목숨을 살려줍시기

바라옵네다.” “꺽정이 잠복한 곳을 네가 밀고해서 잡두룩 한다면 너는 그 공

으루 살 욕심이지, 이놈 같이 죽기가 소원이라니 입에 말린 가짓말 마라!” “어

느 존전이라구 감히 거짓말씀을 아뢰오리까. 소인이 살 욕심 없다구는 아뢰옵지

못하오나 꺽정이를 잡아 바치구 같이 죽사오면 진정 죽사와두 한은 없겠소이다.

” 포도대장이 수청방을 향하고 “이리 오너라!”하고 소리쳐서 청지기 하나가

수청방에서 나온 뒤 “포교들 불러라.”하고 분부하였다. 그 청지기가 도로 수청

방에 들어가서 설렁을 치더니 얼마 안 되어서 포교들이 몰려들어왔다. “그놈을

간에 갖다 가둬 둬라!” 포도대장의 분부 끝에 포교 하나가 분명한 체하고 “북

간에 갖다 가두랍시오?”하고 취품하다가 “북간이란 다 무어냐? 너희들 눈에는

그놈이 북간에 가둘 죄인으루 보이느냐?” 포도대장께 꾸중을 들었다. “박부장

나리가 간에 넣지 말라구 해서 댁에 올 때가지 북간에두 넣지 않았었소이다.”

“가선 남간에 집어넣어라.” 남간에 집어넣으라는 것은 곧 대사죄수로 패 채우

는 것이라 서림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림이가 포교대장에게 발괄이나

한마디 더 하여 보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포교들이 꼭뒤잡이로 내끄는

데 그대로 끌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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